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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67화 (167/170)
  • 167화.

    컨트롤이 약점인 소서정은 마법 자체를 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스태프를 바닥에 찍었다. 사람 키만 한 스태프의 밑바닥에서 마력이 실처럼 뽑혀 나와 스킬진의 복잡한 무늬를 구성했다.

    평평한, 보통 마법사들이 운용하는 형태의 스킬진이 아니다. 비스듬하게 누워 있다.

    스킬진에서 튀어나온 <화룡창>이, 나온 방향 그대로 신전 안쪽으로 냅다 꽂혀 들었다! 아래에서 비스듬히 올라가는 용의 형상은 말 그대로 승천이라도 하는 듯했다.

    소서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마력 회복 속도로 더 이상 <화룡창> 같은 스킬은 쓰지 못한다. 그는 가용 범위 내에서 마력을 쥐어짜 냈다. 화계 마법사의 상위 스킬 <화우>가 붉게 타오르는 스킬진에서 쏟아져 나왔다.

    권준홍의 버프가 그에게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 소서정의 피부는 희미하게 빛이라도 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땀은 이제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과도한 마력 운용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소서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단우는 그가 그럴 걸 알았다. 1차 공략 때 소서정은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도움 요청 같은 건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모든 팀원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누구라도 부르기만 하면 그의 위치로 달려갈 걸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해야 할 일을 했다. 가장 중요할 때는 요령 같은 건 부리지 않았다.

    마법이 배리어 가동 범위 밖을 폭격해서, 신전의 기둥은 박살 나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게 누가 건물을 크게 지으래.’

    침략하러 온 놈이 이따위 호화로운 신전을 지어 놓고 놀고 있으니 이 꼴을 당하는 게 아닌가.

    ————!

    용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울음소리를 토하며 신전을 빠져나와, 곧장 일행을 덮쳤다!

    팀원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용이 머물던 신전 안쪽과 팀원들 간에는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차우원이 <블링크> 따위로 접근하는 것도 불허하는 먼 거리였다. 그러나 용의 비행은 지도를 접듯이 출발점과 도착점을 하나로 이어 버렸다.

    소서정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용이 노린다면 대상은 그일 터였다. 그가 용을 끌어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우지 않았는가?

    ‘어그로 분산을 했어야…….’

    생각하는 순간 용이 그를 지나쳤다.

    쾅!

    필드가 무너질 듯한 굉음과 함께 이단우가 튕겨져 나갔다!

    “허억!”

    트럭에라도 받힌 것 같은 꼴이었다. 그러나 충격은 트럭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죽겠다.’

    뼈가 으스러졌다. 숨을 쉬는 동작마저 취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그는 호흡을 멈춰 버렸다. 악문 턱에는 무리가 가고, 치아에도 문제가 생겼다. 코와 입에 가득 찬 피가 오도 가도 못하다 흘러내렸다.

    용이 날개를 펴고 빠져나온 순간 팀원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것이 어디로 날아올지 알고 있었던 사람은 이단우뿐이었다.

    차우원은 불가능했다. 그는 이미 열다섯 기는 되는 용아병의 어그로를 한 몸에 받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막아야 한다.

    ‘소서정.’

    용이 분노하는 대상은 정해져 있다. 자신의 알에 위해를 끼치는 상대다.

    이단우는 소서정에게로 향하는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용은 이단우를 쳤다.

    ‘……!’

    -괴물!

    용이 울부짖는 소리를 이단우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괴물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우드득!

    제자리에서 벗어난 뼈와 장기 기관이 힐을 받아 회복했다. 그러나 팔이 날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번의 회복은 더 느렸다. 갈비뼈가 천천히 이동하며 서로 붙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단우는 자신의 신체 해부도도 그릴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충분했다.

    ‘이 새끼 달려들 줄 알았다.’

    1페이즈에서 용은 브레스를 쓰지 않는다.

    ‘알까지 구워 버릴까 겁나나 보지.’

    소서정의 <화룡창>에 열받아 지랄 난 것도 그래서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공격 수단은 마법과 물리 공격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이단우는 이 용의 행동 방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새끼 눈 돌아가서 딜 넣은 게 어떤 놈인지도 안 보이나.’

    하기야 아군도 짓밟고 다니는 놈이 뭐는 보이겠는가?

    예상과는 조금 어긋났으나, 결과는 비슷했다.

    이단우는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막는 방향을 조정해 용이 타격하는 힘이 어느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 이단우의 몸을 어느 방향으로 이동시키도록.

    자신이 정면을 막는 모습이 <미래시>로 보인다면, 용은 무방비한 곳을 쳐 주지 않겠는가?

    대각선 옆면 같은 곳을.

    용은 이단우를 쳤고…….

    이단우는 원하는 위치로 날아갔다.

    신전 방향으로.

    이제 그와 신전 사이에 용은 없다. 잘 치인 덕에 거리도 가까웠다.

    ‘이러면 갈 만하지.’

    착!

    공중에서 떨어진 이단우는, 한 번의 도움닫기를 끝내고 날아갈 듯 달려 나갔다.

    2차 공략 때는 <미래시>를 사용하는 용이 물리 공격으로 죽자고 달려들어서 분석할 시간이 없었다. <미래시>의 작동 원리를 그때부터 알았다면 더 쉬운 공략이 되었겠으나.

    쾅!

    용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단우의 동체시력으로도 용의 움직임은 ‘출발한다’ 정도만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면 이단우는 타격 지점을 예측 가능했다. 날개 달린 파충류가 뭐 공중 곡예를 할 것도 아니고, 직선거리로 도달한다면 올 곳은 뻔했으니까.

    단우는 용의 공격을 피해 냈다!

    속도가 너무 빨라 아예 충격을 받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터져 죽지는 않았다.

    용에게 짓밟혀 속에 있던 걸 다 터뜨리고 절명한 용아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단우는 그 사체를 지나쳤다.

    쾅, 쾅, 쾅!

    용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달려들었다. 버프 지속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이단우는 용케 죽지 않았다.

    권준홍의 버프 숙련도가 얼마인지는 이미 들어 알고 있다. 그 숙련도라면 지속 시간은 앞으로 5초면 끝난다.

    이단우는 입이 바싹 말랐다.

    5, 4, 3…….

    ————!

    용이 고함을 질렀다. 이단우는 멈추지 않았다. 회피 동작에 쓸 시간이 없다. 앞으로 굴러 달려드는 몬스터를 피하고 그 속도를 받아 날듯이 달려 나갔다.

    2, 1…….

    화끈거리는 마력이 등에서 느껴졌다. 몬스터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마력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그 마력이 주는 고통이 익숙했다.

    ————!

    용이 입을 벌렸다.

    ‘미친놈. 뒤나 봐라.’

    이단우는 어느새 알이 보이는 곳까지 들어왔다. 유백색 알이 수십 개의 배리어에 둘러싸인 채 신전의 높은 단 위에 올려져 있다.

    용의 뒤로 접근한 차우원이 위에서 아래로 검을 그었다.

    깨끗한 실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검의 길이는 짧다. 그 공격은 어디에도 닿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공기가 갈라지고 있었다. 멋대로 공간을 지우고 주변의 기류를 뒤틀었다.

    이단우가 어그로를 끌며 시간을 버는 동안, 마력을 충전한 차우원이 알을 공격했다!

    화악!

    알을 감싸는 배리어가 순식간에 수를 불렸다. 반투명한 배리어가 알을 뒤덮어, 알 자체의 색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부족해.’

    저걸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런 공격이라는 걸 용도 알고 있다.

    용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자신의 몸으로 알을 방어하거나, 혹은 알에 대한 공격을 무시하고 두 헌터를 공격하는 것.

    막으면 당장 알은 안전하지만 용은 치명타를 입는다. 그러나 막지 않으면 알은 깨진다.

    이성적으로 알을 방어할 이유는 없다. 막는 데 성공한다 해도 용이 치명상을 입고 죽으면 알이 깨지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그러나 용은 막을 터였다. 이단우는 확신했다. 용의 2페이즈…… 알을 잃은 뒤 미쳐 버린 용을 봤으니까.

    용이 <미래시>를 ‘가까운,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보는’ 데 사용한다면 용이 보게 되는 건 깨진 알이다.

    이단우는 그게 어떤 고통인지 알고 있었다. 그건 그가 이곳에서 겪은 일이었다.

    ———!

    용의 단단한 비늘이 목에서부터 등까지 갈라지고, 뿜어져 나온 피가 유백색 신전을 물들였다.

    이단우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기둥을 무너뜨리며 잔해를 깔고 누운 용 위로 올라탔다. 버프가 끝나, 활기 넘치던 몸은 본래의 피로를 되찾았다. 비에 맞아 싸늘하게 식은 팔다리는 한참 전부터 의지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팔이 덜덜 떨려서 이단우는 호흡을 멈췄다.

    말라붙은 마력 회로가 억지로 달궈지고 확장되며 <성검>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이단우는 비명을 지르는 육체를 무시했다.

    움직임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머리에서 지우고 동작에 집중했다.

    ‘한 곳을 찌른다.’

    셀 수 없이 반복해 온 동작을 재현했다.

    시야가 붉고 귀는 멍한 진공 상태에 들어갔다. 오감으로는 이미 정보랄 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수천 번을 반복해 온 동작이었다. 그의 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곳을 파고들었다.

    <성검>이 단단한 거죽을 찍고 살점을 헤집었다. 이단우의 손은 어느새 피로 흠뻑 젖은 채 용의 여린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세상에 소음이 돌아오고, 용의 비명 소리가 필드를 찢어발길 듯 울렸다.

    -괴물!

    이단우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살고 싶었을 뿐이야.

    ‘쳐들어와서 다 죽인 게 누군데 지랄한다.’

    “그럼 우린 죽어?”

    이단우는 <성검>을 뽑았다. 그리고 체내의 모든 마력을 짜내 <성검>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한계 마력 이상을 담아낸 몸이 화끈거리고 쓰렸다. 속이 메슥거리며 안에서부터 무리를 호소한다. 이단우는 용의 목에 깊숙이 <성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체내의 마력을 모두 뱉어 냈다.

    화악-!

    용의 상처와 모든 구멍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우야, 고개 숙여.”

    단우는 <성검>을 놓아 버렸다. 검 형태로 굳은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단우가 그다음 본 것은, 아름다운 궤적으로 용의 목을 날려 버리는 차우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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