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해골 뱀의 위에서 밀쳐진 순간 이단우는 놀랐다.
기희윤은 2차 공략 때 배신하지 않았다. 헌터 계약의 대가는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으니까.
이 새끼가 자기 목숨 바쳐 이단우를 죽일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이단우가 부모의 원수라도 제 목숨이 대가로 걸려 있으면 복수하지 않을 새끼였다.
그러나 기희윤에게는 어떤 ‘계약 위반’ 페널티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단우는 그런 것을 보고 있었다.
‘왜?’
“먼저 버린 건 너잖아.”
기희윤은 웃지 않았다. 이단우가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이었다.
‘약속을 저버린 건 너잖아.’
이단우의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이 새끼 알았다.’
지금의 이단우는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다. 위반한 건 과거의 이단우다.
2차 공략을 마친 이단우가 죽어 버려서, 기희윤과의 계약은 자동 파기됐다. 그래서 3차 공략을 하는 이단우를 기희윤은 죽이는 것이다.
자신이 죽고 이 새끼가 어떤 표정일지 단우는 내내 궁금했는데, 볼만한 표정이긴 했다. 꼴에 상처라도 받은 것 같은…….
‘어떻게 기억해 냈지?’
의문은 한 걸음 늦게 따라왔다.
등 뒤에서 거대한 마력 반응이 느껴졌다. 등은 불에 타오르는 것처럼 내장에 들러붙고, 눈에서는 전기 같은 게 튀며 눈물이 절로 떨어졌다. 목구멍은 넘어가는 침조차 바윗덩어리처럼 느끼고 있다.
마력의 홍수에 이단우가 삼켜지려는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살았다.”
“……!”
이단우는 차우원의 품 안에 있었다.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반응 속도였다. 실제로 차우원은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검사들에게는 경계 거리가 있다. 검의 길이만큼의 거리다.
이단우는 팀원들이 그 거리 안으로 들어가도 경계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단우에게 경계 대상이 아니다. ‘이단우를 해칠 대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가족과 친구… 길드원들은 보통 예외지.’
차우원이 과거 배지슬의 저택에서 놀랐던 건, 권준홍을 단우가 그 거리 안에 스스로 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기희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권준홍과는 다른 의미로, 기희윤은 이단우에게 경계 대상이 아니다.
계약을 체결한 기희윤은.
하지만 단우가 경계하지 않는다고 차우원도 경계를 놓게 되지는 않았다.
기희윤이 단우를 해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기희윤은 계약의 대가로 목숨을 걸었다. 계약 종료 시점까지 그는 단우의 명령을 따를 터였다.
차우원이 경계하는 건 다른 것이었다.
‘그 눈.’
차우원의 경계는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단우에게 접근하는 기희윤을 세포 단위로 경계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고 수행한 일이 아니다.
이후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였다.
기희윤은 그간 일부러라도 이단우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이단우의 곁에 나타났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했을 때, 차우원은 이미 움직인 뒤였다.
차우원은 이단우를 <블링크>로 이동시키고 그가 있던 자리에 기희윤을 밀어 넣었다.
자신의 품에 안긴 이단우가, 눈을 크게 뜨고 멀어지는 기희윤을 봤다. 밝은 빛이 그의 까만 눈동자에 비쳤다.
그러나 그 광경은 이단우의 눈에 담을 만한 가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차우원은 이단우의 얼굴을 돌려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이단우의 눈이 차우원을 향했다. 꽉 맞닿은 몸으로, 그의 심장이 잠시 멎었다가 미친 듯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그가 헐떡이는 가쁜 숨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그의 가슴이 정신없이 오르내렸다.
그리고 그건 차우원도 마찬가지였다.
“너… 너까지 죽었으면…….”
“단우야, 네가 죽으면 이 팀 전멸이야. 대신 팀원 한 명 잃었네.”
이단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차우원을 쳐다봤다. 차우원은 그의 뺨을 만지다 머리를 꽉 끌어안아 버렸다.
‘단우가 왜 그렇게 만져 댔는지 알 것 같네…….’
차우원은 이단우가 팀원들을 스스럼없이 만지는 게 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건 긴 헌터 생활 끝에 몸에 익은 버릇일 터였다.
입이야 얼마든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몸은 아니지 않은가?
“뭐야! 저거 무슨 짓 했어?!”
“이… 이단우 헌터를 밀었…….”
“놀라는 건 나중에 하고 보스몹부터 잡자.”
차우원이 말했다.
바람이 가라앉으며 빛이 사그라들었다. 제물이 충족된 것이다.
‘팀원을 제물로 바치라는 종류의 관문이 맞았네.’
단우는 2차 공략 때 사제장까지를 대신 바치고 통과한 모양이니, 꼭 헌터의 목숨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제물로 요구되는 마력량이 정해져 있을 터였다.
그 조건을 맞추려면 어지간한 헌터로는 불가능했다. 팀에서 가장 전력이 되는 헌터들을 다수 바쳐야 한다.
‘그 희생 대상조차 자의로 결정할 수 없다.’
차우원은 탱킹 스킬이 있었는데도 제단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탱커조차 버틸 수 없는 바람인 것이다.
이 관문을 아무것도 모른 채 맞닥뜨린다면, 어떤 팀이든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범죄자 한 명 넘기고 통과하는 거라면 선방한 게 아닌가?
가장 큰 디버프가 사라지자 필드에는 두 종류의 몬스터가 남았다. 해골 뱀들과 사제장이다.
해골 뱀이 사제장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으나, 필드는 아직 얼어 있었다. 몬스터의 신체 구조상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다.
차우원은 <블링크>로 앞서 나갔다.
“시간 벌어 줘.”
이단우의 대답은 듣지 않았으나,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을 틀림없이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알았다.
차우원은 해골 뱀들의 사각으로 움직여 사제장의 머리 위로 도달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이단우를 봤다.
이단우는 빙판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다섯 마리의 해골 뱀의 공격을 전부 피해 내고 한 마리 위로 기어올랐다.
뼈마디 위를 달리면서도 평지를 달리는 것과 속도가 다르지 않다. 천부적인 균형 감각과 운동 능력이 합쳐져, 그의 움직임은 거의 기예의 수준에 올랐다.
<성검>이 뱀의 척추를 두부처럼 파고들고, 그곳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제단의 불길한 빛과는 다른 눈부신 빛이었다.
이단우에게 어그로가 끌린 사제장이 고함을 지르며 스태프를 흔들었다.
그의 마법이 이단우에게 닿기 전에…….
차우원은 사제장의 몸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공기가 일그러질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공간을 찢고 몬스터에게 직선거리로 도달했다.
권준홍이 약화시킨 언데드를 소서정이 마법으로 폭격하고 있었다. 바람이 멎어서 소서정은 비행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다중 스킬을 펼칠 수 있는 몹시 드문 마법사였으나, 본진은 화계 마법이었다. 본업에만 집중한 그는 필드가 녹아 무너질 듯한 화력을 뽑아냈다.
무너지는 필드를 뒤로한 채 이단우가 서 있었다.
불티와 재가 눈처럼 나풀거렸다. 이단우는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차우원은 쓴웃음이 나왔다. 죽어 버린 과거의 차우원이 원망스럽다.
‘왜 죽어 버려서 애를 괴롭게 만들지.’
그 차우원은 이단우의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되리라는 걸 몰랐을까?
더 생각해 봤자 자신이 쓰레기라는 것만 확인하게 될 것 같아서 차우원은 생각을 접었다. 그는 두 팔을 벌렸다.
“봐. 이런 데서는 안 죽지. 내가 죽으려면 피할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하잖아. ……이렇게는 안 죽어.”
“…….”
“그리고 그런 상황은 안 생길 거야. 그렇지?”
이단우의 새파랗던 안색이 하얗게 돌아오더니,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설마 하는 기색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아, 이 얘기는 하면 안 됐나.’
쓸데없이 확신에 찬 어조로 상황을 특정했다.
단우가 아무래도 ‘차우원이 과거를 알게 됐다 설’ 같은 걸 떠올리게 된 것 같아서 차우원은 곤란해졌다. 그는 사실 이단우와 과거의 차우원이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 같은 건 주선하고 싶지 않았다.
그 차우원은 죽었다.
그 관계는 그들의 관계가 아니다. 차우원의 감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았다.
사랑하든 거절하든, 이단우는 자신의 감정에 답해야 했다. 죽은 차우원이 아니라.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은데. 적당히 둘러댈까…….’
“본질 호도하는 소리 하지 마. 무슨 상황인지가 뭐가 중요해? 요지는 네가 던전 안에서 리더 명령에 불복종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런데 이단우가 다른 사안을 추궁했다.
“단우야. 너한테 칭찬 듣기 정말 어렵다. 나 안 위험했다니까.”
“그런데 팀원이 죽을 위기여도 리더가 ‘돕지 말라’고 했다면 따라야 하나요?”
필드 정리를 마치고 모이던 권준홍이 의아한 듯 물었다.
“넌 토 달지 말고.”
“……?!”
차우원이 대신 대답했다.
“당연히 단우 명령에 복종해야지. 우리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말자.”
“난 절대 토 다는 게 아니고 궁금해서 묻는 건데, 우리 범죄자 팀원 한 명 빠졌잖아. 우리가 안전할 수 있어? 걔가 키 플레이어였잖아. 우리가 쓰던 전략도 다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소서정은 태연한 듯 말했으나 목소리에서 불안이 느껴졌다. 그 불안이 단우에게 전염되기 전에 차우원은 답했다.
“괜찮아. 내가 2인분 해 볼게.”
“…….”
“쉬는 시간 가지면서 전략 다시 짜고, 내가 머릿수 맞추는 걸로 가자.”
차우원이 침착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특별히 허세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관문을 통과하면서 마력과 체력, 어느 쪽도 고갈되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할 만할 것 같은데.’
차우원은 단우를 돌아봤다.
“할 수 있어. 이미 해 봤잖아.”
자신이 두 사람을 몫을 해 봤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단우에게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이 던전을 깨 봤다.
단우가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에게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었으니까.
“아닌가? 우리 위험해지나?”
가볍게 웃으며 도발하자, 이단우의 표정은 평소대로 냉정해졌다.
“아니. 그렇게는 안 두지.”
“하하! 그렇대.”
그리고 이단우가 확신하면 팀은 안정을 찾았다. 그는 절대적인 리더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