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뎅뎅뎅뎅뎅!
“침입자다.”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접근 중입니다.”
“주인님, 지시를…….”
“누가 들어왔대?”
기희윤의 아지트는 외부의 습격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이단우입니다!”
뎅뎅뎅뎅뎅뎅뎅!
건물이 무너질 듯한 경보음이 기희윤의 심장을 울렸다.
‘아.’
“날 죽이러 오나 봐.”
기희윤은 활짝 웃었다.
머리로는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이단우를 다시 만나러 가면 그는 죽지 않겠는가? 목숨을 걸고 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단우가 찾아왔다. 기희윤을 만나러 왔다.
기희윤은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싶었다. 죽은 눈에 일순간 빛이 들어와, 증오와 분노로 타오르던 보석 같은 모습을.
그리고 이단우가 왔다.
그가 자신에게 팀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스스로를 대가로.
“너 가져.”
이단우는 보기보다 더 망가진 인간이었다.
기희윤은 그에게 손을 뻗었다. 이단우는 뺨을 파르르 떨었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매만지지 않은 피부는 거칠고 입술은 말라붙었다. 생기 없는 이파리 같은 얼굴에서 살아 있는 건 눈뿐이다.
“단우야, 너 제정신 아니야. 그거 알아?”
“이름으로 부르지 마.”
이름 부르는 것도 싫어서 치를 떨면서, 잘도 자신을 대가로 제시한다.
이런 게 성검의 주인이라니 기희윤은 너무도 재미있었다.
알고 보니 이단우를 이름으로 부르던 사람은 전대 성검의 주인 차우원이었다.
‘아하.’
더 좋다. 기희윤은 예전부터 충실함을 높게 평가했다. 그건 정말이지 귀한 가치니까.
차우원을 상기시키면 이단우의 눈에는 다시 빛이 들어오고, 그건 아름다웠다.
-주인님.
기희윤은 이단우가 자신의 사랑들처럼 ‘충실해지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그건 역겹고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이단우는 세뇌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것이 되기로 했다.
이단우는 자신을 주어야 했다.
그런 계약이었으니까.
그러나 <최후의 던전>을 깼을 때. 던전이 무너졌을 때…….
발밑이 흔들리고 기둥이 쓰러지고, 천장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희윤은 가장 먼저 이단우를 찾았다. 그가 크게 부상당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탈출 게이트를 무시하고 향한 곳에서 기희윤은 봤다. 이단우가 차치원에게 죽어 주는 모습을.
“내가 죽였어.”
아니, 그건 자살이었다.
이단우는 차치원이 자신을 죽이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차치원은 쓸 만한 패였다. 순진하고 잘 휘둘렸다. 그 정도가 심해서 이단우에게도 금방 물러질 정도였다.
‘안 되지.’
기희윤은 이단우에 대한 그의 의혹과 증오심을 생각날 때마다 건드렸다. 혼란에 빠진 차치원은 ‘리더’라고 이단우를 따르다가도, 곧잘 이단우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
-잘하는데.
-형을 따라 배웠으니까요. ……형이 살아 있었다면 저 같은 건 비교도 되지 않았겠지만요.
이단우는 괴로워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기댈 곳 없이 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의지할 타인을 찾고야 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을 하는 이유가 그것 아닌가?
그러나 그를 지탱하는 차우원이라는 기둥은 너무 단단해서, 이대로라면 흔들릴 성싶지 않았다.
기희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이단우를 흔들고 있었다. 자신에게 시간은 많았다. 이단우의 망가진 몸을 재활시키며, 아프고 외로운 그를 무너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울 시간이.
그러나 이단우에겐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
이단우를 좋아하고 미워하는 나약한 차치원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했다.
기희윤이 그를 마음껏 가지고 놀았던 건, 그가 이단우를 정말로는 해칠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단우는 뛰어난 리더여서 팀원의 선택을 강제할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줄 사람으로 차치원을 선택했다.
차치원이 차우원의 동생이기 때문에.
기희윤은 언제나 충실함을 최고의 가치로 쳤는데, 그 순간은 아니었다. 던전의 천장이 무너져 이단우의 모습을 가렸다. 기희윤은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이단우는 변하지 않는다.
기희윤에게는 처음부터 가족이 없었다. 기억한 순간부터 그는 고아원에 있었다.
절대적인 충실함과 애정은 그가 언제나 갈구해 왔으나 얻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단우는 애초에 그것을 줄 마음이 없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단우가 나한테 빼앗아 간 게 많아, 그렇지?”
기희윤은 옆을 돌아봤다.
죽은 비서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돌려줘.”
‘꿈이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당연히.’
기희윤은 꿈속에 있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가 일 년을 넘도록 꾸던 꿈.
이단우가 그에게서 강탈해 간 기억이었다.
그는 이미 이 모든 일을 겪었다.
“뭘? 네가 죽였잖아. 생명유지장치를 떼어서, 네 손으로.”
“돌려줘…….”
“불쌍해라.”
기희윤은 죽은 비서의 뺨을 만져 줬다. 병원에서 비서를 거뒀을 때 했던 대로.
소중한 걸 빼앗긴 사람은 이 얼마나 비참한가?
“내가 말했잖아. 난 욕심이 많아. 빼앗긴 건 안다니까? ……내게 주기로 했는데, 단우가 먼저 계약을 어겼잖아.”
기희윤의 가슴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양피지가 빠져나왔다.
‘기희윤’과 ‘이단우’의 계약서가 허공에 펼쳐지더니, 그 위에 붉은 줄로 가위표가 그려졌다.
기희윤은 재가 되어 흩어지는 계약서를 쳐다봤다.
“그럼 안 되지. 그럴 순 없는 거야…….”
기희윤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입 맞추는 이단우와 차우원을 봤다.
그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남에게 내어 줄 만큼 관대한 주인인 적이 없었다.
* * *
“으음…….”
“이게 뭐…….”
팀원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이단우는 차우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차우원이 걸려들 만한 멘탈 공격이 뭐지.’
뭘 봤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팀원들의 상황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차 공략 때 자력으로 세이렌의 공격을 이겨 낸 사람은 기희윤뿐이었다.
‘그 새끼는 정신계로는 최상위 능력치를 찍었고.’
권준홍은 “지슬아” 하고 줄줄 울다가 이단우가 뺨을 몇 번을 갈긴 뒤에야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 권준홍이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어……? 붉은 바다가, 아니 호수가……? 이거 피인가요?!”
“너 무슨 꿈 꿨어?”
“예? 아, 그거 역시 꿈이군요! 갑자기 이단우 헌터가 저를 막 패서 맞아 죽는 줄 알았는데…….”
권준홍이 안도했다.
“……?”
‘그딴 게 저 새끼 절망이라고?’
배지슬은 어디로 가고?
소서정이 머리를 헝클였다.
“내 꿈에선 이단우 맞고 있던데?”
“그건…… 그것대로 무섭네요.”
“내 말이. 별 재수 없는 악몽을 다 꾸고 있어.”
하더니 소서정은 찝찝한 듯 이단우를 돌아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우가 재능 없는 인간을 팀에 넣었을 리 없지. 난 대마법사 될 거야.”
이 새끼는 또 무슨 꿈을 꾼 걸까?
아무튼 대체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정신계 공격은 육체적 상처와 다른 후유증을 남긴다.
신체 능력은 아직 현역을 뛸 만한 헌터가, 트라우마와 우울증 따위로 은퇴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단우는 소서정의 잡생각을 잘라 냈다.
“그건 지금도 거의 그렇고. 심리 상담 필요한 사람 있으면 지금 말해. 혼자 끙끙대며 앓다가 나중에 트라우마 반응 보이지 말고.”
“든든하다. 그런데 단우가 상담 자격증이 있던가?”
“넌 왜 바라는 게 그렇게 많아?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도 몰라?”
“그 둘이 용도가 비슷하긴 하지…….”
“지금 난 상담 비슷한 것도 못할 거라는 소리야?”
“하하!”
차우원이 웃다가 말고 고개를 돌렸다.
“기희윤 헌터는 어때?”
“뭐야, 뭐 봤는지 다 말하고 가는 분위기야? 이 팀 참 사이가 좋네. 프라이버시가 없어.”
‘저 새끼가 말할 리 없지.’
단우는 작은 섬을 돌아봤다.
2차 공략 때 이 필드의 분위기는 이렇지 못했다. 애초에 팀원끼리 화기애애한 사이가 아니었던 데다, 차치원이 미쳐서 덤벼든 바람에 세이렌과 후방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전투가 끝났을 때는 만신창이였다. 힐링 포션으로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 그 꼴로 나머지 팀원들을 두들겨 깨우고 다음 관문으로 넘어갔다.
누구도 자신이 무슨 악몽에 갇혔는지 말하지 않았으나, 혼자 깨어 있던 이단우는 짐작 가능했다.
그 악몽이 팀원의 가장 깊숙한 부분과 맞닿아 있어서, 팀원들은 필드를 벗어난 뒤에도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기희윤이 자신의 약점을 제 입으로 말할 리 없다.
‘소서정이 자기 재능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나?’
항상 턱이 코까지 올라가 있는 놈인 줄 알았는데 놀라운 일이다. 단우가 앞으로의 멘탈 케어 방향을 잡고 있는데 기희윤이 말했다.
“우리 팀이 그런 분위기면 내가 맞춰 가야지. 엄청 탐나는 게 있었는데 그걸 영원히 못 갖게 되는 꿈이었지 뭐야. 악몽이었어. …하지만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잖아? 그래서 금방 깨어났지.”
그가 빙긋 웃었다.
‘꼭 저 같은 걸 악몽이라고 꾸네.’
하기야 저놈이 무슨 절망을 해 봤겠는가?
“나 사실 공략에 그렇게 의욕이 있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오히려 꿈을 꾸고 나니까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서네.”
이단우는 기희윤의 결심에는 관심 없었다.
“잘됐네. 꿈대로 이루어질 일 없어. 잡생각은 공략에 도움 안 되니까 지워 버리고, 관문이나 통과하자.”
그리고 단우는 주저앉았다.
“……?!”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그가 이 관문에서 할 역할은 끝나기도 했다.
이단우가 ‘작전 지시대로 해라’ 소리 하고 자신은 뒤로 빠져 있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어서, 다른 팀원들은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들이 눈 뜨고 잠든 동안 이단우 혼자 필드 정리를 다 해 놓기도 했다.
‘세상에…….’
자신의 재능에 대해 영 껄쩍지근한 불신을 갖게 된 채 잠에서 깬 소서정은, 몬스터 잔해가 떠다니는 바다를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이단우 같은 거랑은 비교하는 게 아니야.’
인간의 범주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법이다.
이단우와 차우원의 능력은 세간에서도 논외로 쳤기 때문에, 비교 대상에서 제거하기는 쉬웠다.
그들은 짧고 격렬한 낚시 끝에 보스몹을 세뇌했다.
그리고 필드를 통과했다.
그 뒤는 문제없었다.
비슷한 과정이 셀 수 없이 반복되고, 시계가 여든여섯 바퀴를 돌았을 때…….
녹초가 된 팀원들은 마지막 관문에 도착했다.
‘여기만 넘기면 보스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