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57화 (157/170)
  • 157화.

    차우원은 자신이 본 게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단우는 살아서 <최후의 던전>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최후의 던전>으로, 또 과거로.

    차우원을 만나기 위해서.

    가슴이 벅차서 숨이 가빴다. 차우원은 이단우에게 입 맞추고 싶었다.

    이단우를 끌어안고 체온을 느끼고, 그의 온기를 띤 살결을 만지며 심장 박동을 듣고 싶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건 이단우가 차우원을 처음 봤을 때 했던 행동이었다.

    ‘그랬구나. 단우는 이미 그렇게 했구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차우원은 눈을 떴다. 멍하니 열려 있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본 건, 약병을 들고 있는 이단우였다…….

    “…….”

    “…….”

    “나 안 먹었어.”

    차우원은 변명하는 이단우를 끌어안고 입 맞췄다. 일전에 손톱으로 이단우의 입 안에 상처를 냈던 기억이 있어 선택한 방법이었으나, 아무래도 자신이 뭘 찾는 게 아니라 이단우의 혀를 빠는 데 열중하는 것 같아 멈췄다.

    ‘먹었다고 해도 지금이면 입 안에 남아 있지 않겠지. 그 약 금방 녹던데.’

    돌아온 이성이 차우원의 판단을 긍정했다.

    이런 생각이 왜 눈을 뜬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안 먹었다고! ……약병 부수고 있는 거 봤잖아. 내가 가지고 들어온 거 아니야. 기희윤 놈이 사람 앞에서 혀 날름거리면서 약 처먹고 있는 꼴 못 봤어?”

    이단우가 뺨을 붉히며 씩씩대서 차우원은 사과할 뻔했다. 그런데 무시 못 할 진술이 이단우 말에 있었다.

    “못 본 내가 잘못했네. 그런데 단우는 기희윤이 약 가지고 있는 걸 알았구나. 알고도 말을 안 했어?”

    이단우는 입을 닫더니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바로 변명했다.

    “관문 들어와서 몬스터 달려드는 상황인데, 저 새끼랑 한가하게 싸울 시간이 어디에 있어?”

    “그래……. 작전 설명할 시간은 있지만 기희윤한테 약 빼앗을 시간은 없었구나. 단우가 약속을 잘 지키고 정직한 사람이지. ‘혹시 모르니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나한테 약 숨기자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지.”

    “안 믿을 거면서 묻기는 왜 물어?”

    이단우는 결국 성질이 난 듯 차우원의 가슴팍을 때렸다.

    그 손은 이단우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워져서, 차우원의 허벅지를 쓸고 진저리 치던 상태가 아니다.

    조금 젖어 있을 뿐이다. 차우원은 이단우의 손이 왜 젖었는지도 금방 알아챘다.

    ‘피를 씻었나?’

    가까운 바다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위에 몬스터였던 잔해가 떠다녀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자신이 잠든 사이 이단우가 필드를 정리했다.

    차우원은 의식을 잃은 동안 이단우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 사실에 섬뜩해졌으나, 자신은 꿈속의 차우원이 아니었다. 이단우를 자신의 시야 밖에 둘 수 없어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곁에 묶어 뒀던.

    차우원은 이단우를 믿었다.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았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 자신을 구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을 구하고 있었다.

    “아니야. 믿어. 먹었으면 우린 지금 다른 종류의 대화를 하고 있었을 거잖아.”

    차우원은 이단우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꾹 눌렀다. 그리고 팔을 벌려 이단우를 안았다.

    “잘했어. 착하다.”

    “…….”

    이단우의 눈이 커졌다. 그는 차우원을 더는 밀어내지 않았다.

    마른 몸이 두 팔 안에 갇히고, 조금 높은 듯한 체온이 차우원의 품을 꼭 채웠다.

    정말로, 그는 이단우를 이렇게 다시 안고 싶었다…….

    한숨과 함께 악몽의 잔재가 빠져나갔다.

    긴 꿈이었다.

    -세이렌의 노래는 듣는 상대로 하여금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을 꿈꾸게 합니다.

    그게 차우원의 절망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했고 상대에게 미움받았다.

    스승님은 차우원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다. 그건 이단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차우원은 자신이 이단우를 보호하고 싶은 건지 괴롭히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감정이,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남아 있었다.

    이단우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흰 목과 오목한 귀가 보였다. 꿈속의 차우원은 저 동그란 머리를 끌어안고 잠든 이단우의 부드러운 목과 귀에 연신 입을 맞췄다. 오래 잠 못 드는 이단우가 의식을 놓기를 기다렸다가.

    그 감촉을 차우원은 알았다. 꿈속의 모든 감정이 생생했다. 현실과 뒤섞여 혼동이 올 만큼.

    잠든 이단우의 피멍 든 입술을 안쓰러워하던 자신과, 그 멍을 만들 때의 선명한 악의를 기억했다.

    이단우에게 대한 차우원의 감정은 지독했다. 그를 아끼던 마음도 그 반대도 엉망이었다.

    차우원은 그 모든 감정을 자신에게서 분리해 냈다.

    이단우를 원망하던 건 자신이 아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차우원이다.

    지금의 이단우를 옭아매고 있는 게 이미 죽은 차우원이듯이.

    단우는 이 던전을 깨야만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러나 그 차우원도 자신이어서 둘은 같은 점이 있었다.

    “나가서 할 말이 있어.”

    이단우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 차우원은 말했다. 그 차우원이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안 된다. 이 던전을 깨고 나간 뒤에.

    이단우가 모든 죄책감을 내려놓은 뒤에 해야만 했다.

    ‘그럼 지금 운을 뗄 필요도 없지 않나.’

    그러나 뚜껑을 닫아 둔 마음이 넘쳐흘렀다. 벅차올라서, 멋대로 입을 열고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네가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야.”

    “하지 마. 지금 해. 너넨 뭐 플래그 세우는 게 취미야? 센터에선 뭘 가르치는 거야?”

    그런데 이단우가 질색했다.

    “하하! 이것도 금지어야? 그렇네. 내가 잘못했다. 그러면 말을 바꿀게.”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단우는 차우원을 웃게 했다.

    “우리 꼭 <최후의 던전> 깨자.”

    이단우는 약을 먹지 않았다. 차우원과의 약속을 지켰다.

    죽은 차우원을 위해 자신을 망치지 않았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

    .

    .

    그러나 기희윤은 그렇지 않았다.

    악몽에서 깨어난 기희윤이 두 사람을 봤다.

    * * *

    기희윤은 어두운 곳에 있었다.

    밤하늘 아래다. 그의 부하들은 경보 장치를 무력화시키라고 보내 놓아서, 그곳에는 기희윤밖에 없었다.

    기희윤은 지쳤다. 육체노동은 취향이 아니다. 익숙하지도 않은 삽을 들고 땅을 팠더니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어휴, 한 명은 데려올걸.’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차우원이 죽고 없는 청연이라도, 5대 길드의 명성은 함부로 볼 게 아니었으니까. 본단에 침입할 인원은 최소화해야 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그는 찾던 것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성검>이 꽂혀 있는 앞마당으로 향했다.

    <성검>은 아름다웠다.

    검집도 없이 바닥에 꽂혀 있어, 흠 없이 매끄러운 날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기희윤이 아름답기 때문에 <성검>을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것은 좋았다. 고아 기희윤은 탐낼 수도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도 <종말>을 바라지는 않았다. 이 세상은 불공평했으나 유지되는 것이 나았다. 아예 망해 버리면 기희윤이 약탈할 것만 줄어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답이 없던데.’

    차우원은 죽었고 <성검>의 차기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이번 대에서야말로 망할 모양이었다.

    기희윤은 오래 참았다.

    정말로, 드물게도 욕심을 내려놓고 이 세상을 위해 희생했다! <성검>의 위치를 알면서도 노리지 않았다. 차기 영웅에게 세상을 구할 기회를 줬다.

    그러나 이대로 망할 세상이라면 그가 <성검>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그는 망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처럼 평안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그는 풍족하고 행복할 터였다.

    <성검>을 갖는다면 더더욱.

    “그거 누구 손이야.”

    그곳에서 기희윤은 이단우를 만났다.

    ‘팀원을 다 죽이고 <최후의 던전>을 나왔다는’ 이단우.

    “……이미 주인이 있는 물건인 줄 알았다면 안 건드렸을 텐데! 난 네 잘못도 있다고 봐.”

    그가 성검의 주인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창백하게 빛나는 성검의 날이 이단우의 뺨을 비췄다.

    시체 같던 이단우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그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기희윤은 인형이 생명을 얻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한 듯했다.

    아지트로 도망친 뒤 기희윤은 한참을 끙끙 앓았다. 아티팩트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른 몸이 아파서는 아니었고, 마음의 병 때문이었다.

    이단우는 강적이었다. 성검이 주인으로 선택할 만한 실력과 성품이니 그야 오죽하겠는가?

    동체시력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데 기희윤은 뭐 수가 없었다. 최상위 랭크 헌터와는 이래서 겨루는 게 아니다.

    애초에 기희윤의 무기는 신체 능력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이단우는 폐인 같은 상태로도 기희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과 강한 자아.

    기희윤은 완전한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겐 도통 호감이 가질 않는다.

    ‘건드릴 데도 없고 말이야.’

    그러나 이단우는 이미 망가진 사람이었다.

    이단우는 눈 밑이 검어서 일주일은 못 잔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 원인이 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동료를 버리고 혼자 살아나온 이단우.

    동료를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이단우…….

    ‘참, 소문이란 게 무섭다니까.’

    “가장 마음 아픈 건 이단우일 텐데 말이야. 주변에서 다들 ‘죽어라, 죽어라’ 하면 죽고 싶어지지 않겠어? 그건 곤란해. 외로운 사람은 잘 죽는단 말이야.”

    “이단우를 납치해 올까요?”

    “평상시 청연의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식사도 안 하고 잠만 잔다는데요.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데려올 수 있을 듯합니다.”

    부하들은 의욕을 잃고 늘어져 있던 기희윤이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나섰다.

    “으응? 잠만 잔다고? 미인은 잠꾸러기라지만, 별로 잘 잔 안색은 아니던데.”

    “정보가 잘못된 듯합니다.”

    “주인님께서 보자마자 알아보신 걸, 정보 수집을 하고도 못 알아챈 저 무능한 놈을 처형할까요?”

    “뭘 그렇게까지. 그만둬, 너희를 잃고 싶은 생각은 없는걸. 이단우가 <최후의 던전>에서 사지 하나라도 잃고 나왔으면 모를까. 온전한 채로 손에 넣는 건 무리…….”

    그 순간 경보가 울렸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