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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51화 (151/170)
  • 151화.

    ‘으으응?’

    “그만 건드리고 서로 맡은 일 하자. 이곳에서 피라도 보면 곤란하잖아. 단우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정도가 아닐걸.”

    그가 일어나더니 먼저 출발했다.

    “아하?”

    기희윤은 즐거워졌다.

    센터 지하에서 차우원에게 느낀 건 살의였다. 이단우의 불같은 적의와 반대로 그는 냉정하게 기희윤을 살해해도 좋을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차우원에게선 조금의 마이너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저 모습이 진심이든 아니든 재미있지 않은가?

    이단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기희윤을 끌어들인 이유는 ‘성검 강탈 사건’ 때 봤던 <인형화>의 파생 효과 때문이었다. 그가 대전략을 말할 때부터 기희윤은 폭소라도 터뜨리고 싶었다.

    그 와중에 사람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이 팀은 너무 재미있다!

    * * *

    문이 활성화되며 활짝 열렸다. 팀원들은 그곳을 통해 서둘러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차우원이 기희윤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들고 튀었다.

    기희윤이 떨어지며 <인형화>의 영향에서 풀린 보스몹은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것이 괴음을 내며 팔을 휘둘렀다. 몸에 달라붙어 있던 돌과 흙더미가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가각!

    멈춰 있던 필드의 시간이 다시 흐르듯, 정지했던 돌거인들이 일시에 움직이며 빠져나가는 침입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문에 도달했다. 그러나 차우원의 몸은 이미 문을 빠져나간 뒤였다.

    쾅!

    문이 닫혔다.

    “……!”

    “이게 되네!”

    팀원들은 바닥을 구르느라 땀에 젖고 더러워진 서로를 돌아봤다. 잡몹 하나하나가 보스몹인 관문을 그들은 제대로 상대하지도 않고 얍삽하게 통과했다. 이게 가장 빠른 공략이다!

    ‘당연하지.’

    단우는 화끈거리는 통증을 참으며 어두운 통로를 쳐다봤다.

    길은 하나뿐이었고 문제는 없었다.

    관문을 깨는 작용이, 이 던전에서는 새로운 길을 연결하는 반작용을 가져온다. 1차 공략 당시 첫 관문을 통과한 <차우원 팀>이 본 건 두 갈래로 갈라진 통로였다.

    그 뒤로 문제는 점점 악화됐다.

    나중에는 관문 하나를 통과하면 통로 수십 개가 나타났다. 그 말은 이 안에 관문만 수십 개라는 소리였으나, 이단우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의욕을 떨어뜨려 놓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연달아 몇 개 깨다 보면 지쳐서 자동적으로 떨어지지 않겠는가?

    지금은 의욕과 체력을 충전해 줄 때다.

    “저 정말 큰일이 나는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유명 헌터들 던전 공략기도 수백 개는 들었는데, 이런 전략은 듣도 보도 못해서요!”

    “듣도 보도 못할 만하지, 이단우같이 미친 사람이 흔할 리 없잖아!”

    “예? 아니, 저는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라…….”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뭐 확인 안 하냐?’

    베테랑 헌터라면 설명창부터 열고 남은 시간 확인부터 했을 텐데, 둘은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하나는 신입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제 경력 2년 차에 수동적인 공략만 했다고 해도 그랬다.

    물론 소서정을 ‘하라’고 하면 하는 놈으로 만들고 싶어 한 건 이단우였기 때문에 그는 별 불만 없었다.

    팀원의 사기 관리는 리더의 책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우는 팀원들이 시계 초침 돌아가는 것에도 관심 끄게 만들 예정이었다.

    ‘던전 내 마력 농도가 낮아졌다.’

    시계가 한 바퀴 돌았다. 이단우에겐 그 변화가 피부로 느껴졌다…….

    이단우가 팀원을 돌아보는데 차우원과 눈이 마주쳤다.

    “…….”

    그는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단우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마주 봤다.

    ‘이 자식 알아차렸다.’

    단우는 확신했다.

    “잠깐 얘기해.”

    “응?”

    그는 차우원의 팔을 당겼다. 뒤로 끌고 가자 차우원은 당기는 대로 따라왔다.

    단우는 방해금지 아티팩트를 사용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음성을 차단했다. 그리고 물었다.

    “너 알았지?”

    “오염이 빠져나가는 조건 말이야?”

    ‘알면서 뭘 묻냐.’

    “말하지 마.”

    이단우는 ‘왜’라는 질문이 돌아올 걸 예상하고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차우원이 말했다.

    “그래.”

    ‘……?’

    단우는 미심쩍어졌다.

    “너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최후의 던전>이 오염의 근원이라고 했지. 이곳에서 ‘일정 조건이 달성될 때마다’ 오염을 던전 밖으로 빼낸다고 했고. 그 조건이 저 시계가 한 바퀴 돌 때라고 짐작했는데.”

    “그런데 왜 막자고 안 해?”

    “막지 말자는 게 단우 계획 아니야?”

    차우원이 침착하게 굴어서 단우는 확신했다.

    “너 저 시계 막는 조건 알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단우가 말해 줘서 알았지. 관문 내 보스몹 잡지 말자고 했잖아. 잡으면 저 시계 멈출 것 같긴 한데……. 관문 하나 깨는 걸로는 시계가 아예 멈추진 않는 거지. 그랬다면 단우가 깨고 가자고 했을 테니까.”

    “…….”

    “관문이 여러 개인 거지? 하나하나 깨고 지나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거야. 오염이 진행되더라도 시간을 세이브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거지. <최후의 던전>을 빨리 깨고, 아예 오염의 근원을 없애 버리는 게 낫다고.”

    추측의 방향은 이상했으나 결론은 맞았다. 이단우는 외부의 오염을 무시하고 <최후의 던전>을 깰 계획이었으니까.

    2차 공략 때도 그는 그렇게 했다. 차우원이 말하는 것처럼 기특한 이유에서는 아니었지만.

    <이단우 팀>의 모두가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으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외부의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단우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게 맞겠지.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동요할 수 있으니까 나도 말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감지 타입은 나랑 단우뿐이니까, 우리가 얘기 안 하면 팀원들도 쉽게 짐작 못 할 거야. 누가 알아채면 그때 설명하자. 그게 낫겠지.”

    “밖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데 내 판단이 맞다고? 누가 더 죽을 줄 알고?”

    단우는 반문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닥쳐.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거야.’

    비난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나?

    쓸데없이 차우원의 도덕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던전 내에서 팀의 내분은 최악이다.

    그런데 차우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단우야, 한계를 알라고 했던 건 너잖아.”

    이단우가 했던 말은 ‘주제를 알고 행동해라’였다. 그러나 차우원은 같은 말도 듣기 좋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었다.

    “네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어. ……그 사람들을 죽이는 건 우리가 아니야. 이 던전이지. 우리가 해야 할 건 이 던전을 깨는 거고.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나?”

    “아니…….”

    차우원의 말은 늘 옳았다. 그가 단우의 판단을 긍정해서 이단우는 혼란스러웠다.

    “또 내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차우원이 다정하게 물었다. 단우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우리가 통과할 관문 스물일곱 개야. 난도 점점 높아지고. 네 말대로 빨리 깨야 해서 휴식 시간 얼마 없어. 팀원들 하나씩 로테이션 돌리면서 한계까지 굴려야 해.”

    “수가 많다. 쉽지 않네.”

    차우원은 이단우의 입술을 잠시 봤다.

    “‘우리가 통과할 관문’이라면, 실제로는 더 있다는 소리야?”

    “어. 루트 잘못 들면 만나는데, 그건 신경 쓰지 마.”

    차우원은 ‘직선형 던전에서 잘못 들 길이 있나’라는 표정이었으나 묻지 않았다.

    “든든하다. 이미 한 번 클리어한 리더가 있어서 믿음직하네.”

    하고 웃더니 그가 이단우를 끌어안았다.

    ‘이 새끼가 사람 놀리나?’

    차우원에게 별소리를 다 듣고 있다. 말도 행동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가 가지고 노는 대로 이단우의 속은 잘도 놀아났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팀원들이 우리 대화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이 지랄을 하고 있으면 더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이단우는 차우원을 밀치고 아티팩트 작동을 멈췄다. 돌아보니 팀원들은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관심은커녕 저들끼리 얘기하느라 바쁜 모양새다. 그러더니 갑자기 권준홍이 기겁했다.

    “기, 기희윤!”

    ‘이제 봤냐?’

    떠드는 동안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유명해지니까 맨얼굴로 다니기 힘드네. 이게 인기인의 삶인가 봐.”

    “이, 이, 이단우 헌터! 저 사람 성검 강탈자예요!”

    기희윤이 개소리를 해서 사태는 수습이 되질 않았다.

    “알아.”

    “제, 제가 얼굴을 봤어요! 병원을 공격할 때, 저 사람이 뒤에서……. 네?!”

    기희윤이 ‘어떻게 수습할래’라는 얼굴로 생글거려서 단우는 속이 뒤틀렸다. 그러나 깜짝 등장한 범죄자가 어그로를 끌어서 오히려 이단우와 차우원의 작당 모의는 덮였다.

    단우는 기세를 몰아 헛소리했다.

    “저 새끼 속죄하러 들어온 거야.”

    “네?!”

    “능력 쓸 만하잖아. 목숨 걸고 죄과 갚은 뒤에 감옥에 다시 처박혀서 처분 기다릴 거야.”

    “정말?”

    기희윤이 놀라워했다.

    ‘닥쳐.’

    단우는 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계약에서 기희윤의 의무는 <최후의 던전> 공략 협조였다. 헌터 계약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계약서는 세부 내용이 중요한 법인데, 이 계약에는 ‘공략을 위해 이단우 명령을 듣는다’는 세부 의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팀에 분란 일으키지 마라.’

    이단우의 명령을 기희윤은 알아들었다.

    그는 원한다면 언제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미안해. 나도 <성검>이 폭주를 일으킬 줄은 몰랐어. 난 도둑질은 하지만 강도는 안 해. 사람은 살아 있어야 나한테 이용도 당해 주고 내 가게 손님도 되어 줄 수 있잖아? 잘못을 저질렀으니 죄를 갚아야지. 최선을 다해 협조할게, 맹세해. 나 리더랑 계약서도 썼어.”

    기희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어조가 진솔한데 내용이 쓰레기 같아서 그 말은 진실하게 들렸다. 이 쓰레기가 갑자기 개과천선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헌터 계약의 대가는 절대적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걸 잘 아는 권준홍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됐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어떻게 동료로 믿고…….”

    ‘저 새끼를 왜 믿냐.’

    “믿지 말고 의심하고 있어. 개짓하면 바로 일러라.”

    “……?!”

    “지금은 자고.”

    “……!”

    단우는 던전용 캠핑용품을 권준홍에게 던져 주고 그의 얼굴까지 모포를 덮었다. 버둥거리는 권준홍에게 “빨리 자라.”고 권해 준 뒤 헛구역질 나는 입을 닫았다.

    헌터의 체력과 마력은 소모성 자원이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그들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이단우는 알뜰살뜰하게 한 명씩 쥐어짜야 했다.

    첫 관문은 몸풀기였다. 이단우가 지친 건 원하던 일이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었고…….

    ‘다음 타자는 권준홍이다.’

    * * *

    그들은 짧은 휴식 후에 다음 관문으로 이동했다.

    1차 관문과 비슷하게 생긴 문이 통로를 가로막고 있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양옆으로 열렸다.

    “자동문이야?”

    소서정의 투덜거림과 함께 그들은 문을 넘었다. 그리고 몸이 아래로 쑥 꺼지는 감각을 느꼈다.

    ㅡ 띠링!


    〔 제라늄 늪 〕 (S)

     악어와 모기들의 낙원인 이 늪은 과거 수많은 종족이 어울려 살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물길은 말라 가고 친구들은 떠나, 남아 있는 종족들은 갈 길 없는 원망을 마음에 품은 채 굶주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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