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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49화 (149/170)
  • 149화.

    단우는 넋 나간 권준홍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권준홍의 머리가 여전히 그의 배를 깔아뭉갠 채여서 구도는 좀 이상했다.

    “넌 내가 챙길 테니까 긴장하지 마. 죽기 전엔 구할 테니까. 네 몸 생각보다 튼튼해서 한 대 맞는다고 안 죽어. 대범하게 움직여.”

    “네?!”

    권준홍은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펄떡거리는 게 이단우의 말 때문인지 거인의 그림자 때문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일단 목격한 사실부터 말했다. 누워 있던 권준홍은 거인의 정수리가 가까워지는 게 잘 보였다.

    “저, 저기……. 저희 지금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느새 고개를 기웃거리며 다가온 거인이 삼 미터 앞에 도달해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은 이 팀의 모든 사람이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이단우가 바위에 등을 붙인 채 몸을 일으켰다.

    “나 먼저 갈 테니까 알아서 흩어져라. 순서는 알지.”

    “그래. 내가 챙길게. 다녀와.”

    차우원이 배웅했다.

    이단우는 그를 잠깐 보고 바위를 밟았다. 발 구르기로 단번에 돌거인의 머리를 넘어 뒤를 잡았다.

    퍽!

    첫 일격에 돌거인의 뒷목에 홈이 파였다.

    단우는 입술을 물었다.

    이만한 강도가 돌인 게 말이 되는가? 강철보다 단단하다.

    그러나 불평할 시간은 없었다. 단우는 자세를 고쳐 잡고 스스로 만들어 낸 흠에 검 끝을 찔러 넣었다.

    푹, 푹, 푹, 푹, 푹!

    정확한 지점을 찍어 낼 때마다 검신이 한 마디씩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윽고 검고 단단한 돌거인의 목이 꿰뚫리고…….

    화악!

    검에 찔린 몸체 안에서부터 성검의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

    다음 순간 팀원들은 필드 전체를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쿵, 쿵, 쿵!

    수십 마리의 집채만 한 바위가 사방에서 이단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 * *

    “지금이에요.”

    “네?!”

    권준홍을 입을 딱 벌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손짓에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 손의 주인인 차우원 헌터가 자신을 밀었다. 권준홍은 바위 그림자 밖에 서게 됐다!

    “……어?”

    그림자 진 곳에서 나오니 햇살이 눈 부시고 시야가 트였다. 멀리서 달려오느라 아직 이단우 헌터 쫓기에 합류 못 한 거인들이 눈을 굴려 권준홍을 쳐다봤다.

    ‘어?’

    권준홍은 소름이 돋았다!

    “단우가 붙잡고 있어서 지금은 괜찮아요. 어그로 끌린 곳의 역방향으로 달리세요. 서정이가 도망친 방향 보이시죠. 세 사람이 삼각형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서정이가 어그로 끌 타이밍을 알려 줄 거예요.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스킬 쓰실 필요도 없고, 잠깐 모습만 드러내고 숨으시면 돼요.”

    “…….”

    “달리세요.”

    차우원은 친절하고 다정한 어투로 정상적으로 들리는 듯한 말을 했는데, 권준홍은 왜 이단우 헌터의 말을 듣고 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권준홍은 달렸다. 긴장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보이는 바위마다 몸을 숨기며 이단우의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허공에서 번쩍이는 빛줄기를 볼 때마다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지슬이를 위해 종말을 끝내야 한다’는 말에 넘어가긴 했으나, 그는 각성하자마자 <최후의 던전>에 들어오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슬이는 괜찮겠지?’

    권준홍은 가쁜 숨과 터질 듯 뛰는 심장을 느끼며 바위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안전한 피난처에 있을 배지슬을 생각했다.

    -우리가 빨리 클리어하고 나오면 살아 있겠지.

    이단우 헌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각오가 섰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권준홍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도망만 치고 있었다.

    ‘내가 뭘 해야 한다고 했지?’

    들은 말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른 훌륭한 헌터들이었다면 작전을 듣자마자 이해하고 바로 수행했을 텐데.

    그는 이단우가 왜 자신을 팀에 넣어 데리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광역힐을 써본 행렬은 청연 지원팀이 이끌고 있었는데, 그 팀의 리더도 힐러였다. 그 지원팀은 <차우원 팀>과 멋지게 손발을 맞춰 4차 웨이브를 막은 뒤, 밀려드는 습격을 피해 그들을 안전하게 피난처로 이동시켰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도움이 됐을 텐데.’

    권준홍 자신은 헌터계와 연관이 없었으나, 배지슬은 아니었다. 그는 배지슬 곁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술 취한 ‘아저씨’에게서 ‘우수한 헌터가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듣곤 했다.

    배지슬은 ‘아버지 술주정에 맞장구쳐 주지 마’라고 말했으나, 권준홍은 덕분에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 초반에 대중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던 이단우라는 헌터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차우원 팀> 참모 이단우가 뛰어난 기획력과 작전수행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성검의 주인이 될 만한 헌터는 처음부터 작전 이해도가 월등했다.

    권준홍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안 돼!”

    자책하던 권준홍은 소스라쳤다. 아슬아슬하게 어그로를 끌고 몸을 피하던 이단우가 완전히 돌거인에게 둘러싸였다. 돌거인들은 서로의 몸을 ‘쿵’ 부딪히며 잡은 술래를 배 아래 깔아뭉갰다!

    ‘여기까지 도망치지 말았어야지!’

    권준홍은 이단우 헌터의 근처에 있어야 했다! 저기서 힐을 해야 했다. 그게 자신의 역할이었다! 생각 없이 ‘멀리, 더 멀리’하고 중얼거리며 넋을 놓고 달리는 게 아니라!

    권준홍은 이단우에게로 다가가려고 했다. 이성이 내린 판단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거인들이 고개를 기웃기웃하며 팔을 휘젓고 있었다. 이미 엎어진 돌거인이 몸을 일으키려다, 뒤에서 다이빙하던 돌거인과 부딪혀 휘적거리며 넘어졌다.

    쿵! 쿠웅!

    거구가 부딪히며 내는 소음이 필드를 울렸다.

    “……?”

    “<보이지 않는 눈>!”

    이어서 들린 목소리는 소서정 헌터의 것이었다.

    “……!”

    권준홍은 허공에서 낙하하던 이단우의 몸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광경을 봤다.

    ‘돌거인들이 덮쳐든 순간 위로 피한 거구나!’

    그리고 소서정의 마법이 그의 모습을 투명화했다.

    ‘어? 그러면 소서정 헌터가 위험한 거 아닌가?’

    스킬진의 영롱한 빛은 푸른 하늘 아래에서도 눈에 띄었다.

    덩치에 믿기지 않게 발이 빠른 데다 눈도 빠른 돌거인들은, 고개를 휙 돌려 소서정이 숨은 방향을 바라봤다.

    권준홍은 돌거인들이 돌아봐서 그곳에 소서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눈으로 누굴 찾기엔 이곳에 시야를 방해하는 구조물이 너무 많았다.

    쿵, 쿵, 쿵, 쿵, 쿵!

    돌거인들이 풀숲을 짓밟고 바위를 날려 버리며 탱크처럼 돌진했다. 지축이 흔들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권준홍은 자신의 내장이 밟히는 기분이었다.

    “아이씨!”

    어디서 튀어나온 소서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러며 비명처럼 외쳤다.

    “권준홍!”

    “여, 여기다!”

    권준홍은 달려 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기라니까!”

    권준홍은 다급했다. 그는 순수 힐러였다. 공격 스킬이 없었다.

    그가 급하게 사용한 <정화>가 거인의 머리 위에서 꽃피었다. 덧없는 빛의 꽃을 매달고 거인이 멀어졌다…….

    “안 돼!”

    “<보이지 않는 눈>! 아악! 얘네 왜 안 가!”

    ‘어…….’

    그 이후 벌어진 일은 권준홍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거인들의 고개가 일제히 자신에게 향했다는 것만 인지했을 뿐이다.

    태산 같은 바위가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바닥은 파도치듯 흔들리고 다리는 풀려서, 권준홍은 자신이 언제 쓰러졌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머리는 비상 신호를 보냈다.

    권준홍은 몰랐으나 그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냉정해지는 유형이었다.

    그는 헌터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른다. 빈 선택지를 채우기 위해 머리가 돌아갔다.

    그는 이단우 헌터의 말에 홀려 ‘팀에 들어가겠다’고 약속을 한 뒤, 강울림의 휠체어를 끌고 병원을 빠져나오면서도 계속 멍해 있었다.

    ‘내가 정말 <이단우 팀>에? 아니, <차우원 팀>에?’

    팀 이름이 헷갈릴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뭘 할 수나 있을까?

    걱정하는 그에게 강울림이 말했다.

    -이단우가 너보고 들어오라고 했잖아? 그러면 괜찮아.

    -예? 하지만 전 헌터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나도 그래. 이단우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문제없으니까.

    이단우 헌터가 그에게 뭐라고 했던가?

    ‘어그로를 끌고, 도망치라고.’

    이미 어그로는 끌려 있었다. 권준홍은 당장이라도 짓밟힐 듯했다.

    ‘도망칠 때는, 삼각형을 유지하고.’

    이단우 헌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위치는 기억하고 있었다. 소서정이 도망친 위치도.

    권준홍은 자신이 맡은 위치로 뒤돌아 달렸다.

    그의 뒤로 그림자가 졌다. 거인들이 그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는 진땀이 났다. 거인 하나가 팔을 휘저었다.

    ‘멈추지 마!’

    -한 대 맞아도 안 죽으니까.

    권준홍의 다리가 흔들렸으나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스킬 중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게 있는지.

    그러나 그는 정말로 힐밖에 할 줄 몰랐다!

    ‘맞는 순간 내 몸에 힐을 쓰면…….’

    -넌 내가 챙길 테니까 긴장하지 마.

    권준홍은 자신을 덮은 돌거인의 거대한 그림자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돌거인의 정수리를 찍어 내린 성검에서 폭발하듯 빛이 터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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