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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47화 (147/170)
  • 147.

    “어떻게 해, 이단우?”

    소서정의 목소리가 들려서 단우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시계는 신경 꺼. 우리랑 관계없으니까.”

    “관계없는데 왜 우리 눈앞에 뜨니?”

    “알 게 뭐야? 너 낚으려 그러나 보지.”

    ‘이 자식들은 절대 신경 쓰면 안 된다.’

    사실을 깨달으면 전략 수정을 요구할 만큼 좋은 놈들이니까.

    팀원들이 시계에 어그로 안 끌리게 조치한 다음 단우는 전략을 점검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점이다.

    ‘탱커 없는 조합으로 이 던전을 깰 수 있나?’

    물론이다.

    과거 <이단우 팀>은 탱커를 두 명 기용했으나.

    그때의 이단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시야가 좁았다. 겁을 목 끝까지 집어먹고 있으니 머리가 트일 리 없었다.

    지금은 더 효율적으로 공략할 자신이 있었다.

    ‘몸도 더 쌩쌩하다.’

    젊고 중독되지 않은 몸이 좋기는 했다. 마력 회로만 넓히고 <마력 촉진제> 복용을 멈춘 게 결과적으로 괜찮았다.

    이단우가 <마력 촉진제>를 식사처럼 먹어 댄 이유는 몇 가지였다. 부족한 마력을 검에서 끌어 쓴대도 마중물이 될 마력은 필요했다. 검에서 마력을 끌고 올 본신의 마력이.

    그 최소한의 마력을 끌어내기 위해 약이 필요했다. 마력에 익숙해져 약 없이 마력 최적화가 가능하게 되었을 때는, 스킬 없이 마력을 쓰는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약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과거에 돌아와서는 차우원에게 들키고 약을 뺏겼다. 기희윤의 약국이 다 터져나가 약을 구할 곳도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갱생해서, 마력을 쓸 때마다 미친 통증에 계속 시달린 덕에…….

    이제 이단우는 통증을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고통을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몸을 굳게 만들고 컨트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증을 무시하고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꼭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

    성검의 마력은 <육영>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그것이 주는 고통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이단우는 무시했다.

    그런데 시야 끝에서 기희윤이 붉은 혀를 내밀고 있었다. 알사탕이 혀 위에 놓이더니 입 안으로 사라졌다. 뺨이 불룩해진 그가 이단우를 보고 웃었다. 그가 품에 유리병을 넣었다.

    단우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저 개새끼가.’

    “문 열린다.”

    차우원이 말했다.

    1차 관문이 열렸다.

    * * *

    기희윤은 이단우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팍에 닿았다 떨어지는 걸 확인했다.

    -네가 저지른 짓은 네가 책임져야지…….

    ‘아, 정말. 나를 반하게 했으니까 책임져야지.’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 옳지 않은가?

    기희윤의 인생에 이토록 위험을 감수해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저울에 올렸으니, 단우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평생 대가 따위는 지불해 본 적 없는 주제에, 기희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자신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건 자기 자신이다. 기희윤은 자신에게 위해를 끼친 대상을 보아 넘긴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스스로가 제일 아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단우의 태도는 싫지 않았다.

    살아 있는 이단우는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생각일까?’

    기희윤은 궁금했다.

    이단우가 그리웠다. 다시 보니 좋았다. 그가 화내고 자신을 욕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즐거웠다.

    어릴 적 떠나보낸 가족을 다시 만나면 이럴까?

    물론 가족을 상대로 이렇게 아래가 반응하진 않겠지만.

    단우가 가족이었다면 갖기는 쉬웠을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애니까.

    그래서 옆에서 성실한 척, 사심 없는 척하는 저 도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깝다.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이단우가 범상치 않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범상치 않게 망가져 있다는 건, 그를 납치하고 알았지만.

    ‘<최후의 던전> 공략에 날 끌어들인다고?’

    보통 사람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희윤만 한 범죄자를 선택지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기희윤은 그런 면에서는 정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성검의 주인이 보통 사람은 아니었지만.

    센터에서 탈출한 뒤, 기희윤은 세상이 뒤바뀌어 있는 광경을 봤다. 폐허가 된 도시와 사체는 기희윤에게 별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으나 성검의 주인에게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 결과 자신이 이곳에 들어와 있어서 기희윤은 다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사람은 대개 거기서 거기여서 원하는 게 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단우는 정말이지 예측하기 힘들지 않은가?

    이단우가 센터에서 기희윤을 죽이려 했다면 그는 ‘그럴 줄 알았지’ 했을 것이다. 이단우는 생각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문득 생각나서 기희윤은 친근하게 물었다.

    “리더, 우리 전에 언제 본 적 있나?”

    “닥쳐.”

    이단우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기희윤은 속이 찌릿찌릿했다.

    ‘나한테 사실 남다른 성벽이 있었나?’

    이단우는 무시했으나 기희윤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단우는 자신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그는 기희윤을 증오했다. 그렇게 열렬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모르기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자신도 이단우를 알고 있다…….

    팀의 마법사 소서정이 ‘작전 회의 중에 수작을’이라는 눈으로 기희윤을 쳐다봤다. 그가 자신을 혐오하는 게 분명해서 기희윤은 웃어 줬다.

    그는 원한다면 어느 집단에든 섞여 들 수 있었다. 집단 구성원들이 선량한 영웅 지망생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하는 상냥한 사람들 아닌가.

    소서정은 움찔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랑받는 리더잖아.’

    팀에 속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기희윤은 관계도를 파악했다.

    이 팀의 실질적 리더는 이단우고 그는 절대적인 신뢰를 팀원들에게 얻고 있다.

    그중에서 차우원 도련님의 감정은 각별했다.

    저 도련님은 이단우가 중독자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모른대도 그 사실로 동요할 것 같은 사람이 아니다.

    건드릴 구석이 많게 망가져 있는데도 이단우는 무너지지 않았다. 저 도련님 때문에.

    그러나 저 도련님의 약점 역시 이단우라는 게 명백해서 기희윤은 즐거웠다. 이 팀은 정말이지 재미있다.

    중독자 리더를 믿는 팀원들과, 그 리더가 의지하는 도련님. 그 도련님의 약점까지 모든 재료가 갖춰져 있지 않은가?

    사람의 마음은 약하기 때문에, 서로를 더없이 믿는 관계라고 해도 작은 금 하나만으로 파열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난 <최후의 던전>에서 팀원들이 존경받던 리더를 죽였던 것처럼.

    기희윤은 중독자가 약 끊는다는 말 같은 건 믿지 않았다.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다니까.’

    그가 방긋 웃었다.

    그는 이곳에서도 원하는 것을 가질 것이다.

    * * *

    그들은 1차 관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들이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던전 환경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길드에서 왜 척후대 따위를 보내 지형과 환경, 출몰 몬스터 흔적을 확인하겠는가.

    해당 환경에 걸맞은 몬스터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바위 동굴이면 ‘암석형’ 혹은 드래곤 등의 최상위 몬스터가 서식한다고 예측할 수 있다.

    <최후의 던전>의 필드는 바위 동굴이었다.

    그러나 문 하나를 두고 차원이 달라진 듯했다. 파릇파릇한 평원이 펼쳐지고 그 위를 거대한 바위들이 장식했다. 작은 바위도 사람 키의 두 배 이상은 돼서,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바위 모양은 기괴했다. 안에 구멍이 뚫렸거나 바위 자체가 하나의 조각 같은 모양새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럴 리 없었다.

    “바위 그림자로 숨어.”

    단우가 지시했다. 동시에 그는 바위 뒤에 몸을 붙였다. 한 손으로는 권준홍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당겼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무겁냐.’

    “흐억?!”

    다음 순간 그들이 들어온 관문이 사라졌다. 바위 하나가 기우뚱하더니 눈을 떴다.

    이어서 다른 바위들도 눈을 끔뻑거리거나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바위 그림자가 벌어지는 입을 따라 쭉 길어졌다 짧아졌다.

    “……!”

    띠링!

    <돌거인>(B)

    이 인내심 많은 거인들은 자연과 평화를 사랑합니다.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놀이는 술래잡기입니다. 이들은 지치지 않으며, 언제까지고 침입자들과 어울려 놀고자 할 것입니다.

    ‘바뀌지 않았다.’

    단우는 확신했다.

    변한 건 시간대뿐이다. 모든 사건의 세부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최후의 던전>도 마찬가지다.

    이단우는 이 던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B랭크 몬스터면 상위 던전의 보스 몬스터다. 그따위 걸 일반몹이라고 내보내는 양심 없는 짓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처음 <차우원 팀>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바뀐 환경에 당황했다. 바위처럼 박혀 있던 것들이 그 와중에 달려들어서, 강울림은 돌거인 열두 마리의 어그로를 끌고 도망치다 잡혀서 깔렸다.

    그러고도 살아서 기어 나오긴 했다.

    그러나 그런 건 강울림이나 할 수 있는 짓이고…….

    고청과 차치원도 뛰어난 탱커였으나 그런 재주는 흉내 내지 못했다.

    ‘해서도 안 되고.’

    저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여럿이 하나의 목표를 쫓는다. 말 그대로 술래잡기다. 빠져나갈 길 없는 덩치가 타깃을 사방에서 둘러싼 채, 한 놈 잡겠다고 포위망을 좁히는 것이다.

    ‘걸리면 못 빠져나간다.’

    아니면 강울림처럼 돌무덤 한 번 만들었다가 팀원들이 필드 몰살시킨 뒤에야 빠져나가든가.

    그러나 이 팀 멤버들은 돌거인 손바닥에만 스쳐도 뼈가 부러질 직종만 모여 있었다. 차우원을 제외하고. 아니라도 이단우는 팀원 내구도 테스트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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