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얼굴 가리면 경보가 안 가겠냐?’
단우는 생각했으나 소서정을 안심시켰다.
“어. 괜찮아. 작전 회의 할 거니까 다들 모여.”
실제로 이단우는 경보가 가든 말든 상관없었다. 누가 막기 전에 그들은 들어갈 예정이었으니까.
팀원들의 이목이 이단우에게 모였다.
‘얘넨 긴장 안 하나.’
단우는 의아했다. 과거 <차우원 팀>도 긴장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임무 실패를 해본 적 없는 대단한 엘리트팀이었다. 무엇보다 그 팀의 리더는 차우원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차분해지는 놈이 앞장서는데 누가 긴장 같은 걸 했을 리 없다.
<이단우 팀>은 완전히 다른 이유로 긴장을 안 했다. ‘죽으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지금은 상황이 달랐는데…….
권준홍 정도가 정상적인 긴장 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어리둥절한 신입 상태에 가까웠다.
‘됐다.’
단우는 긴장을 잘라 주기 위해 하려던 잡다한 멘트를 폐기했다. 그리고 용건부터 말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절대적인 거야. 안에 들어가면 뭐 하나는 절대 하지 마. 그거 빼고 다 해도 되니까.”
“뭔데?”
“보스 죽이는 거.”
“……?”
소서정이 손을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보스몹을 죽여야 던전 클리어되는 거 아니에요?”
권준홍이 순진하게 물었다.
그러나 한가하게 답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단우야, 뭐 온다. 우리 들어가서 회의해야겠다.”
차우원이 먼 곳을 보고 말했다. 감지 타입인 그는 마력을 읽을 수 있어서, <감지> 없이도 비슷한 효율을 냈다.
경보를 들은 헌터들이 <최후의 던전>에 접근한 수상한 인간을 쫓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거기 서!”
“영웅팀이 아니라 강도라도 된 것 같은데.”
기희윤이 감탄했다.
뭐 어쨌든…….
성검의 주인이 포함된 영웅팀은 게이트를 넘어갔다.
띠링!
<최후의 던전>(S)
이곳은 ‘오염’의 진원지입니다. 던전이 품고 있는 마력은 조건이 충족될 때마다 외부로 흘러나가, 외부의 환경을 던전과 비슷하게 바꿀 것입니다.
축축하고 어두운 바위 동굴에 떨어진 그들을 환영한 건, 눈앞을 가득 채운 안내창과 시계였다.
빛으로 이루어진 원형 시계가 돌아갔다. 분을 나타내는 숫자는 보이지 않는다.
째깍재깍…….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시계에 달린 단 하나의 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시간 제한이 있어?”
‘이것 때문에 1차 공략은 실패했다.’
* * *
“어……. 일 분에 작은 한 칸씩 움직이는 것 같아요. 그냥 시계 분침이랑 똑같아요.”
권준홍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제한 시간은 직관적으로 60분이다.
소서정이 경악했다.
“지금 우리보고 한 시간 안에 <최후의 던전>을 깨라는 거야? 일반 던전도 그렇게는 못 깨겠다!”
“다른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 해당 조건을 충족하면 분침이 멈추거나 할 것 같다. 초조해하지 말자.”
-괜찮으니까 침착하게 가자.
이곳에서 차우원은 과거에도 저 말을 했다.
그리고 이 던전의 첫 관문을 깨며 그는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이 첫 관문을 깨기 전까지는 어떤 조건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계 분침이 한 바퀴 돌아 원점에 도달했을 때…….
-으아악, 이거 괜찮은 거야?!
-아, 소서정. 시끄러워!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던전 안에서 숨쉬기가 편해졌다.
모든 던전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공간이다. 일반인에 비할 바 없이 튼튼한 헌터라도, 던전 안에서 생존하는 것은 막대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숨을 쉬는 것부터 저항을 받았으니까.
그게 쉬워졌다는 건 무언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단우는 관문 안 마력 농도가 옅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몸은 마력에 예민했다. 그렇다 해도 던전 내 공기처럼 깔린 마력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는 않았으나, 던전 내에서 끊임없는 압박을 느끼기는 했다. 바닷속에서 물의 저항을 느끼는 것처럼.
-……?
차우원이 그의 감각을 긍정했다.
-몬스터가 약화됐어.
-우리가 시간 초과했는데, 오히려 공략이 쉬워졌다고?
-우리가 뭘 해서는 아니겠지. 뭘 못 해서 던전 내 환경이 바뀐 거야. ……<최후의 던전>은 침략하는 던전이지. 게이트 너머의 던전이 어떻게 외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의아했거든. 던전 안 마력이 외부로 빠져나간 것 같다. 저 시계가 돌아갈 때마다, 던전 내부의 오염을 밖으로 빼내는 거야.
-……!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죠?
-관문부터 깨자. 속도 내서.
그들은 첫 관문을 깼다. 그리고 종말 시계의 분침이 거꾸로 돌아가는 광경을 봤다.
-……!
1차 공략팀은 이 던전을 빠르게 깨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고, 그렇게 했다. 어떤 팀도 불가능한 속도로 던전을 공략했다.
오염을 막기 위해서.
<최후의 던전>이 오염시킨 땅에서 민간인은 버틸 수 없다. 마력으로 오염된 땅은 몬스터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오염이 진행될수록 <종말 방어전>의 전선이 막아 내야 할 몬스터 웨이브는 강력해졌다.
<차우원 팀>은 그 모든 비극을 막고자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지.’
이 훌륭한 결심 때문에 그들은 죽었다.
잡다한 마법을 수도 없이 익힌 ‘만 개의’ 소서정은 모든 던전 공략에 앞서 <탐사>를 사용했다. 척후팀의 도움 없이도 던전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용한 스킬이었다.
<최후의 던전>은 직선형 구조였다. 1차 관문, 2차 관문을 순서대로 깨서 보스룸에 도달하는 구조다.
길을 헤맬 곳도, 우회할 곳도 없다. 모든 관문을 클리어하고 위험에 맞서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수한 강함을 시험하는 던전은 <차우원 팀>이 가장 좋아하는 던전이었다.
그러나…….
-왜 길이 또 있지?
-첫 관문을 깨고 나왔을 때 길이 두 갈래였지. …지금은 열두 갈래네.
-저희 아까부터, 길을 헤매고 있는 기분인데요…….
-이 던전 미로형이잖아?
아니, <최후의 던전>은 직선형이었다.
나중에 미로형으로 구조가 뒤바뀐 것이다.
이단우는 소서정의 능력은 의심하지 않았다. 거만한 데다 조용할 때가 없는 놈이었으나 소서정의 능력은 훌륭했다. 개같이 구는 것과 별개로 바탕이 괜찮은 놈이었다. 팀원들 목숨 가지고 장난칠 리도 없었다.
그가 탐지했을 때 던전이 직선형이라고 말했다면, 그들이 게이트를 넘어간 시점에 <최후의 던전>은 직선형이 맞았다는 것이다.
혼자 살아 나와서, 청연에 틀어박혀서.
이단우는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벽에 머리를 처박고 차우원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때면, 이단우는 그 공략을 되풀이해서 생각했다.
‘뭐가 문제였지?’
능력만은 뛰어난 소서정이, 그곳의 구조를 확신했다.
던전 안 환경은 그냥 바뀌지 않는다. 모든 일은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그들이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단우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종말 시계를 되돌린 ‘작용’.
그들은 관문을 클리어하지 않았는가?
관문 보스몹을 처치하고 닫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가자…….
길이 나뉘어 있었다.
본래라면 하나여야 했던 길이.
그들이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몇 갈래로 나뉘어, 나중에는 백수십 개의 길로 갈라졌다.
‘관문 클리어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
모든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똑같다. 보스몹을 죽이거나 혹은 던전핵을 파괴하는 것이다.
중간 보스(엘리트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잡몹을 몰살해야 하는 것 따위가 조건인 던전은 없다.
<최후의 던전>이라고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이 조건은 던전에 처음 들어간 사람은 깨달을 수 없었다.
오염의 진행도를 종말의 시계가 알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곳에 들어올 만큼 인성 좋고 훌륭한 놈들을 초조하게 밀어붙여서…….
팀원들은 길을 찾기 위해 여러 갈래 길로 흩어졌다. 관문마다 그렇게 했다.
그건 위험한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관문은 닫혀 있었고 모든 통로는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소서정에겐 <통신> 스킬이 있었다. 던전 안에서 흩어진 동료들의 정신을 그가 하나로 연결했다. 그들은 서로의 위치를 알았고 서로가 보는 것을 언어로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통신>에서 배지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무슨 일이야?
혼란이 발생했다.
<통신>으로 그들을 엮던 소서정이 조용해졌다. 이어서 <통신>이 끊겼다.
그때부터 이단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팀원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몸이 타오를 듯한 마력 반응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그곳에서 강울림을 찾았다. 강울림은 배지슬을 감싼 채 죽어 있었다. 그들이 죽은 뒤에도 배지슬의 거대한 마력 반응이 현장에 남아 있어, 이단우의 몸은 솜털까지 곤두섰다. 그건 강울림을 위해 생명력까지 깎아서 힐을 쏟아부은 흔적이었다.
그리고 몬스터들.
어디선가 관문이 열렸다.
계속해서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단우는 팀원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이단우의 마력은 바닥났고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단우는 자신의 다리가 언제 부러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차우원이 눈앞에 있었다. 뺨이 화끈거렸다. 그가 이단우의 따귀를 갈겨 현실로 끌어내렸다.
차우원은 몸으로 몬스터의 진입 루트를 막고 있었다. 그가 명령했다.
-이단우, 나가.
……팀원들은 모조리 좋은 놈들이고, 리더는 책임감이 넘쳐서 1차 공략은 실패했지만.
‘공격대 역할은 던전 공략이지. 무슨 자신감이 넘쳐서 던전 밖의 오염까지 막겠다고 지랄이야.’
이단우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이 팀은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