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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45화 (145/170)
  • 145.

    ‘이래서야 기희윤한테 경고한 의미가 없지 않나.’

    차우원은 스스로의 도덕성에 대해 더 놀랄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단우의 명령을 듣고 행동하고 있을 때는 괜찮았다. 차우원은 잘 교육받은 헌터였고 우수한 팀원이 될 모든 자질을 갖췄다. 작전 수행 중에 잡다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투 상황이 끝나고 한숨을 돌릴 때면 불쑥 잡념이 끼어드는 것이다.

    나를 살리러 돌아왔다며, 단우야.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말하지 마.’

    상대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멋대로 진심을 오독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차우원은 미련 넘치고 질척거리는 마음을 접어 먼 구석에 묻었다.

    이단우는 간절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다. 팀원들과, 아마도 스승님을 되살리기 위해. 그가 자신과 마주쳤을 때 울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고 있었다.

    차우원은 다시 이단우를 외롭게 두지 않을 터였다.

    이단우가 <최후의 던전>을 닫기를 원한다면 차우원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단우가 누굴 팀원으로 받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팀원을 끌어들인 이단우의 방식이다.

    그리고 소서정은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기희윤이 이단우를 노린다고?’

    어감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이단우, 그 범죄자 사업장에서 죽다 살아난 꼴로 구조됐잖아.’

    당시에는 상황이 급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단우가 시간 없다고 단독 작전했나?’ 정도의 의문만 품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기희윤이 무슨 짓을 했던 건가?

    차우원이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단우가 기희윤을 협박한 줄 알았는데, 자기 자신을 미끼로 유혹하고 있었구나.”

    “뭐가 문제야? 걔 나한테 손도 못 대.”

    “그래야지.”

    차우원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나 내용이 ‘그렇구나’가 아니다.

    “…….”

    소서정은 갑자기 펼쳐진 치정 사건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이 두 사람 연애사에 얽혀서 좋은 꼴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등 돌려 나가기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단우가 그 사람을 정말 잘 아는 것 같다. 둘이 안 지 얼마나 됐어?”

    ‘심지어 원래 알던 사이였다고?’

    소서정은 흥미진진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침이 넘어갔다.

    심지어 이단우는 어쩐지 켕기는 게 있는 얼굴이었다! 그가 변명했다.

    “일 년은 안 됐어.”

    “나보다 짧구나. 다행이다.”

    차우원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단우는 시선을 피했다…….

    소서정은 벌어지려는 입을 다물었다.

    ‘이단우 너 진짜 뭐 했냐?’

    과거에 정말로 범죄자와 연애라도 했단 말인가? ‘일 년은 안 됐다’니, 언제부터 일 년을 만났다는 거지?

    미성년자 시절부터 만났다면 아슬아슬하게 바람은 아닌가?

    차우원은 ‘나보다 짧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단우와 차우원은 거의 만나자마자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는 소리였다.

    물어보고 싶은 적은 없었으나 알고 싶기는 했던 놀라운 정보가 눈앞에서 술술 풀리고 있어서 소서정은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잠깐, 그럼 나 스카우트하러 왔을 때부터 둘이 그런 관계였다는 거잖아?’

    어쩐지 죽이 잘 맞더라!

    이단우는 그때도 헌터계 정보가 빠삭했다. 소서정은 헌터 교육도 안 받은 이단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전 애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잠깐, 이 팀 괜찮나?’

    문명사회에서 연좌제는 폐지된 지 오래다. 팀원이 범죄자 애인에게 기밀 정보 얻어서 활용했다고 팀 자체를 처벌하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루머가 풀리면 팀의 사회적 평판은 박살 나지 않겠는가?

    아니, 이단우와 차우원은 이미지가 훌륭해서 그 지경까지는 안 갈지도…….

    소서정은 머리가 터질 듯했다!

    아니, 그런데…….

    ‘이단우 지금 현 애인이 있는 팀에 전 애인을 끌어들이고 있는 거야?’

    그때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저, 여기에 이단우 헌터 계신가요? 손님이 오셨는데요! 이단우 헌터? ……으음, 이쪽이 아닌가? 여기도 아닌가 봐요. 죄송합니다.”

    “천천히 하세요. 이미 약속이 잡혀 있어서, 제가 왔다는 것만 아시면 찾아오실 거예요.”

    이단우를 애타게 부르던 권준홍이 누군가에게 사과했다. 이어지는 목소리는 쾌활하고 붙임성 있었다.

    이단우가 문을 열었다.

    “들어와.”

    권준홍이 반색했다.

    “아! 네! 여기 계셨군요. 손님 오셨어요! 만나기로 약속한 분이 맞나요?”

    “어.”

    이단우는 낯선 남자를 일별하고 두 사람을 방 안으로 들였다.

    ‘누구지?’

    소서정은 손님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러나 이단우는 소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권준홍에게 물었다.

    “마력 회복 얼마나 됐어?”

    “어, 스킬 한 번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확실하지 않아서…….”

    “체력은. 달릴 수는 있어?”

    “네, 넵. 최선을 다해 달려 보겠습니다!”

    권준홍은 기합이 잡힌 채 말했다. ‘확실하지 않다’ 따위의 불분명한 대답이 이단우 마음에 안 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쟨 혼난다.’

    소서정은 생각했다. 이단우는 자기 능력도 파악 못 하고 나대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으니까.

    그러나 이단우는 권준홍을 훑어보더니 놀랍게도 친절하게 말했다.

    “아니. 뛸 필요는 없고. 초반에 네가 힘쓸 일은 없을 테니까 넌 체력 비축해 둬. 필요하면 나한테 업어 달라고 하고.”

    “……?”

    권준홍은 이단우보다 덩치가 더 컸다.

    “너 죽겠는 상황 아니면 헛짓하지 말고 스킬도 봉인해. 네 한계를 스스로는 지금 모르지. 내가 체크할 테니까 넌 내가 쓰라는 스킬만 써라.”

    “예?”

    “출발하자.”

    “어, 어디로요?”

    권준홍이 물었다. 단우는 그를 잠시 봤다. 권준홍은 일단 밀어붙이면 끌려오는 성격이어서, 단우는 그를 설득하는 시간도 배정해 놓지 않았다.

    ‘배지슬 살릴 방법이 이거라는데 권준홍이 왜 거절하냐.’

    “최후의 던전.”

    “예?!”

    “<종말 방어전> 회의 준비한다고 길드 수뇌부들 정신 팔려 있는 지금이 적기야. 몰래 들어가자. 이의 있는 사람?”

    “……?!”

    권준홍은 거절할 의사가 없었으나 얼이 빠지긴 했다.

    ‘이게 맞나?’

    그는 주변을 둘러봤으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차우원 헌터는 자신이 모셔 온 손님을 보는 듯했고 손님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런데 소서정이 손을 들었다.

    ‘소서정 헌터가 나를 괴롭히고 괜히 텃세 부리시긴 하지만, 할 말은 하는 분이구나!’

    권준홍은 생각했다.

    그러나 소서정 입에서 나온 건 그가 짐작한 종류의 질문이 아니었다.

    “강울림 진짜 두고 가?”

    “두고 가야지. 끌고 가서 죽일 거야?”

    “안 데려가도 죽는다며? 방어전 중에 가장 죽을 놈이라느니 뭐라느니 악담을 퍼부어 놓고…….”

    “우리가 빨리 클리어하고 나오면 살아 있겠지.”

    단우가 대꾸했다.

    강울림은 탑 위의 공주 역으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선이었으나, 이단우는 역할을 정했다.

    차우원이 정리했다.

    “<최후의 던전> 닫자.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지.”

    차우원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있어서 소서정은 입을 닫았다. 어수선하게 굴던 권준홍도 차분해졌다.

    이단우와 비슷한 소리를 해도 반응이 다르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인성 좋은 두 놈은 각오가 섰다. 남은 하나는 각오 따위가 필요 없는 놈이었다.

    ‘후.’

    이단우는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 * *

    단체 이동 스크롤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다섯 명의 인원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켰다.

    눈 쌓인 황량한 땅이 보였다. 풀도 무엇도 없는 평야는 황무지 같았다. 그 위로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불길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곳이 본래 평범한 주택 지대였다는 걸 이단우는 알고 있었다.

    본래 게이트가 생성된다 해도 주변의 시설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바뀌는 건 전혀 없이, 게이트의 불길한 마력 파동만이 허공에서 일렁일 뿐이다.

    그러나 <최후의 던전>은 침략하는 던전이었다. 주변의 환경부터 바꾸어 버린다.

    땅은 마력에 오염돼 무엇을 심어도 자라지 않게 되고, 공기는 독성을 품는다.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일대는 이제 몬스터를 위한 공간이다.

    게이트 너머처럼.

    <최후의 던전>을 감시하기 위해 심어 놓은 드론이 생체 반응을 감지하고 일제히 날아올랐다.

    이 구도가 익숙했다. 이단우의 기억에 남아 수없이 악몽에 등장하던 광경이었다.

    피가 빠르게 돌고 신경이 곤두섰다. 모든 것을 망쳐 버릴 듯한 공포가 찾아왔다…….

    단우는 가볍게 뺨을 쳤다.

    ‘긴장하지 마. 될 것도 망한다.’

    “뭐 해?!”

    그런 이단우에게 소서정이 다가왔다.

    ‘넌 뭐 하냐.’

    소서정이 로브로 얼굴을 가리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근데 저거 기희윤 맞지? 얼굴 왜 저래?”

    기희윤의 양아치 같은 얼굴은 세간에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것과 다른 평범한 인상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자주 쓰는 변장 아이템 효과 때문이었다.

    범죄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청연 건물로 기어들어 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아이템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단우는 대충 대답했다.

    “몰라. 너 좋으라고 뭐 뒤집어썼나 보지. 범죄자랑 같은 편 같은 기분 안 들고 좋겠네.”

    “아니……. 우리도 지금 범죄 저지르는 중이잖아? 영상 찍혀도 돼? 저거 뭐 신호 가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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