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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44화 (144/170)
  • 144.

    어쨌든 소서정이 열심히 닦은 <차우원 팀> 이미지를 이단우가 나락으로 보내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영웅팀 인성 쓰레기 아냐?’

    ‘이단우 헌터 그렇게 안 봤는데.’

    ‘나는 이 팀을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등등, 주변에서 할 법한 생각이 소서정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농담도! 쟤가 재미없는 농담을 잘해.”

    소서정이 웃는 얼굴로 수습했다.

    권준홍의 눈에 깨달음이 지나갔다.

    “혹시 훈련받다가 죽는 사람도 있나요?”

    ‘안 통하잖아?’

    역시 저 힐러는 눈치가 빠른데 자신을 물 먹이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단우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소서정이 더 잘 알았다. 그는 이 신입 힐러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물론 그는 괴롭히고 있던 게 아니었지만!

    ‘학대 담당은 이단우인데 내가 나댔구나. 그만두자.’

    이단우는 소서정의 회개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그가 턱짓했다.

    “나와. 얘기 좀 하자.”

    “뭔데?”

    이단우는 말없이 앞장섰다. 그 뒤를 차우원과 소서정이 따랐다.

    소서정은 청연 길드 건물을 이단우가 왜 이렇게 잘 아는지 의문이었다. 이 건물의 차기 주인 내정자나 다름없던 차우원보다 더 익숙한 듯 걷고 있다.

    이단우가 아무 문이나 열더니 말했다.

    “들어가.”

    ‘그래도 되는 거 맞나?’

    차우원이 고개를 끄덕여서 소서정은 안심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불길함을 느꼈다.

    “<최후의 던전> 위치 숙지됐지.”

    “그래. 거리는 좀 있는데 가기 어려울 것 같진 않다. 이동 수단 확보했어.”

    “헬기?”

    “헬기는 내가 자격증이 없네. 나중에 따 둘게. 스승님 금고에서 단체 이동 스킬진 빌렸어.”

    “뭘 빌렸다고?”

    소서정이 끼어들었다.

    그는 두 사람의 대화가 수상쩍었다. 비밀 접선 하는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은밀하게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게다가 ‘빌린다’는 표현은 다시 돌려줄 수 있을 때 사용하는 게 아닌가. 단체 이동 스킬진이라면 가치가 천문학적이다. 웬만한 상위 던전에서는 던전 내 마력 흐름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지만, 현실에서도 목숨이 위험할 일은 언제든 있었다. 청연 길드장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리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도 않을 아이템을 차우원이 유출했다는 소리인데…….

    차우원은 누구나 믿을 만큼 성실한 얼굴로 말했다.

    “스승님께 아이템 좀 빌린다고 말씀드렸더니 금고 열쇠를 내주셔서.”

    “좋은 일에 사용된 거니까 네 스승님도 좋아하시겠지. 회의 시간 언제야? 길드 간부들 다 도착했어?”

    성의 없이 화제를 정리한 이단우가 소서정을 돌아봤다.

    소서정은 수상쩍은 일에 끌려들어 가는 느낌을 받으며 일단 대답했다.

    “거대 길드에서는 한 명 빼고 도착했어. 그쪽도 서두른다니까, 두세 시간 안에는 시작할 것 같던데. 너랑 차우원도 참석하라고 부를걸?”

    이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은 방해 없겠네. 좋아. 진입하자.”

    “그래.”

    차우원이 동의했다.

    ‘어딜?’

    소서정은 불길했다.

    “너네 뭐 털러 가니?”

    이단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뭐가 ‘너네’야? 너도 가야지. 우리 <최후의 던전> 들어간다.”

    “……?”

    “팀원 다 모았어.”

    소서정은 어지러웠다.

    물론 그도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고 싶긴 했다! 방금 전까지 헌터들에게 둘러싸여 망상하던 내용이 그거였으니까.

    그러나 그가 예상한 ‘세상을 구하러 들어가는 나’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

    왜 다른 길드 간부들의 눈을 피해 던전 진입 시간을 잡아야 한단 말인가?

    “네 명으로 팀 완성이야? 아니, 근데 우리 회의도 안 들었잖아? 회의 결과 듣고 출발한다는 거지?”

    이단우가 미간을 모았다.

    “무슨 소리야. 회의가 왜 필요해? 그 회의 어차피 <최후의 던전> 클리어할 팀 정하려고 하는 거 아냐.”

    ‘……?’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러니까 해야지?”

    “왜? 어차피 우리가 깰 건데. 거기 앉아서 낭비할 시간 없어.”

    “…….”

    소서정은 이단우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사람인지 익히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신이 거만했던 모양이었다.

    왜 이동 수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단체 이동 스크롤로 <최후의 던전> 잠입하겠다는 거였냐?’

    이 미친 소리를 자신이 듣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곧 함께 실행해야 할 입장이라는 게 정말이지 놀라웠다…….

    소서정은 어릴 적 받았던 토론 교육을 떠올리며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해 봤다.

    “…나는 만인의 축복 속에 당당하게 입장하고 싶은데? 영웅팀이 왜 담 넘어 도둑질하듯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거 못 해. 마지막 팀원 때문에.”

    “권준홍 말고 또 누구 들였니? …누군데?”

    말 잘하던 이단우가 갑자기 침묵했다. 소서정은 더욱 불길해졌다.

    차우원이 대신 답했다.

    “기희윤이래.”

    “누구?”

    “성검 강탈자.”

    “얘 진짜 미쳤니?”

    소서정은 소리 죽여 경악했다. 밖에 들릴까 두려워서 소리도 못 높였다. 어디서든 입 다물 일 없을 이단우가 조용해진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단우가 눈을 새파랗게 뜨고 말했다.

    “미친 건 한가하게 회의 따위나 하겠다는 발상이지. 지금까지야 전선 물릴 여유도 있고 시민들 대피시키면서 운 좋게 사망자도 안 냈지. 근데 그거 얼마나 가겠어? 방어전에서 가장 먼저 죽는 게 약자고 부상자인데, 강울림처럼 생각 없는 게 또 이 난리 통에서 ‘내 몸만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겠어? 사태가 눈덩이 굴러가듯 악화되는데 송장 얼마나 치우려고. 다 죽고 시체 위에서 ‘내가 영웅인데’ 소리 할래?”

    소서정은 입을 닫았다. 이단우의 말이 설득력 넘쳐서가 아니라, 그의 표정 때문이었다.

    ‘두려워하는 듯한…….’

    그러나 이단우는 공포심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남의 공포의 대상이 되면 모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서정은 한걸음 물러났다.

    “누가 그러재? 아니……. 네 말이 다 맞다 치자. 근데 범죄자를 어떻게 팀에 넣니? S급 범죄자잖아? 센터 지하에서 엄중하게 감시되고 있을걸. 우리가 탈옥시켜? 무슨 수로?”

    “이미 탈옥했어.”

    “뭐?!”

    “팀에 범죄자 넣은 영웅팀 되는 것보다 그냥 몰래 들어가는 게 덜 욕 먹을걸. 어차피 던전 깨고 나오면 다들 찬양할 테니까 네 평판에 문제없어.”

    ‘아니…….’

    소서정은 지금 그것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었다!

    아니, 진짜로 이걸 말로 해야 하냐?

    “그 두 개가 같냐? 사안의 경중이 완전히 다르잖아! 성검 강탈자가 죽인 사람이 몇인지 잊었어? 강울림 죽을 뻔한 것도 그 사건 때문이잖아!”

    소서정은 속이 터졌다!

    강울림과 다정한 사이였던 적도 없는데, 왜 자신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한 매정 하는 소서정이 봐도 이단우는 지독했다.

    그런데 이단우가 말했다.

    “어. 그러니까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센터 지하에서 기희윤을 대면했을 때 이단우는 다시 깨달았다. 기희윤은 살아날 구멍을 수십 수백 개를 파 놓고 사는 새끼다. 어디서든 자신이 정말로 위험해질 일이 없는데, 그 새끼가 진지해질 필요가 있겠는가?

    이 벌레 같은 새끼를 죽이려면, 파 놓은 구멍 하나 없는 곳에서 단번에 숨을 끊어 버려야 했다.

    ‘<최후의 던전> 속, 클리어 직후 같은 때에.’

    소서정은 이단우의 생각을 몰랐으나 그의 살의는 느낄 수 있었다.

    분개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단우가 보복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살아남는 상대를 소서정은 상상할 수 없었다.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차우원이 물었다.

    “그런데 단우야, 기희윤이 네 생각을 모를까?”

    “알겠지.”

    “…….”

    “알든 말든 관계없어. 그 새끼한테 중요한 건 내 몸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야 <인형화> 쓸 틈이 나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내 몸을 가질 가능성?’

    소서정은 귀를 의심했으나 이단우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난 <성검>을 가지고 있고, 아지트 방어나 이 팀 팀원 뚫고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 스토커 새끼가 어떻게 해도 접근이 힘든데 내가 알아서 옆자리 잡고 표까지 끊어 줬잖아. 그 새끼가 무슨 수로 빼. 걘 못 해.”

    가치 있는 추종자를 잃을 공포와 ‘성검의 주인’을 가질 기회가 눈앞에서 흔들거리는데, 기희윤은 그걸 참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단우는 기희윤을 알고 있었다.

    “…….”

    자신을 미끼로 거는 놀라운 발상에 차우원은 단우를 쳐다봤다.

    S급 범죄자 기희윤에 대해서라면 잘 알려진 사실이 있다. 극히 드문 정신계 각성자(세뇌 능력자)이며 타인의 스킬을 빼앗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타인의 능력과 신체까지 빼앗을 수 있는, 말 그대로 강탈에 특화된 범죄자였다. 그가 성검 강탈자라는 이명을 얻게 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범죄자가 그렇듯 기희윤이 욕망에 약하리라는 것도 짐작 가능했다. 도덕과 규율보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지 않고서야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기희윤이 단우를 보던 시선은 단순히 ‘세뇌하고 싶은 강자’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단우는 마치 그렇다는 듯 말하고 있었으나…….

    단우가 그런 종류의 감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건 더 질 낮은 욕망에 젖은 눈이다.

    차우원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간혹 단우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웠으니까.

    그러나 단우는 그런 시선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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