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컥……!”
헌터의 두개골은 단단해서 이단우가 좀 친다고 기희윤이 목숨의 위협 따위는 느끼지 않을 터였다. 기분이 더럽고 잘못하면 혀를 씹게 될 뿐이다.
단우는 기희윤의 멱살을 잡았다.
“넌 지금부터 내 팀 들어오는 거야. 내 팀에선 내 이름 부를 때마다 머리 날아가는 거고.”
“살벌해라…….”
‘미친놈.’
“너 때문에 헌터가 몇이나 죽었는지 알아? 네가 저지른 짓은 네가 책임져야지…….”
인원 부족이 주원인은 아니었으나 막을 수 있는 저지선이 몇 개나 무너졌다.
이단우는 기희윤이 종말의 주원인이든 아니든 관심 없었다. 그는 목숨으로 죄를 갚아야 한다.
이단우가 그랬듯이.
기희윤을 버리고 단우는 몸을 일으켰다.
‘죽겠다.’
<성검>의 마력은 강대했다. 끌어 쓸 수 있는 양이 <육영>과 비교되지 않아서 화력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문제는 이단우의 몸이었다.
성검의 마력이 지나간 회로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짓밟혔다. 화끈거리고 쓰리고, 핏줄을 따라 열이 올라서 그는 당장이라도 졸도할 듯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비틀거릴 수는 없다.
“근데 어디 가? 나 풀어 줘야지. 팀원 버리고 가는 팀장이 어디 있어? 성검의 주인이면서 범죄자도 팀으로 끌어들이고, 팀원 홀대하고, 우리 리더 실체를 사람들은 아는지 몰라.”
‘저 개같은 호칭은 뭐지.’
“알아서 나와. 협력자 많다며. 내 손으로 너 빼내면 기록 남아. 지금 말고, 우리 가고 두 시간은 있다가 탈출해라. 나 찾아와.”
“우와.”
‘이 새끼 지금 죽이면 안 된다.’
단우는 참았다.
이단우는 당장이라도 기희윤의 목을 따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우선되는 게 있다.
천근 같은 다리를 끌고 단우는 자동문 앞에 섰다. 복도로 나가는데 차우원이 따라 나오지 않았다.
“……?”
차우원은 철창 앞에 있었다. 그가 몸을 낮추더니 기희윤에게 뭐라고 말했다.
단우는 이명 때문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단우가 있는 자리에서는 차우원의 등만 보였다.
차우원이 몸을 일으켰을 때, 기희윤은 좋아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자동문이 닫혔다.
단우는 차우원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어?”
‘뭐라고 먹이를 줬냐.’
“별말 아니야.”
“정신계 각성자가 스킬만으로 사람 조종하는 건 아니야. 남 이간질하는 데 소질 있는 새끼니까 저게 뭐라고 지껄이든 듣지 마.”
단우는 문득 떠올라서 충고했다.
“하하. 내가 세뇌라도 됐을까 봐? 걱정하지 마.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어.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무슨 말인데?”
차우원은 눈을 깜빡이더니 단우를 봤다.
“그런 눈으로 널 보지 말라고.”
“…….”
이단우는 ‘그런 눈’이 뭔지 묻지 않았다.
차우원은 무슨 의미가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시선이 사람을 죽일 것도 아닌데 왜 남에게 닿는 시선까지 신경 쓰지.’
그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는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해야 할 일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 * *
소서정은 반나절 만에 권준홍이 <차우원 팀>의 인기 순위 3위에 오르는 꼴을 봤다.
“……저,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요?”
주변 환경은 급격하게 인간에게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힐러는 평소에도 존경받는 직군이었으나, 지금은 누구보다 중요한 클래스로 인식되는 듯했다. 권준홍의 광역힐이 대규모 중독 사태를 몇 번이나 치유해서, 그는 현재 거의 성자 취급을 받았다.
소서정은 그래서 권준홍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그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강울림이 쓰러지자마자 새 팀원을 영입하다니, 뭐 하는 짓이야? 강울림은 그걸 또 ‘그렇구나’ 하고 곧바로 수긍하냐? 네 자리 굴러온 돌이 차지했잖아!’
이단우가 아무리 매정하다지만 너무한 처사 아닌가?
그래서 소서정은 권준홍을 굴렸다. 그는 그럴 권리가 있었다!
팀의 선배 아닌가? 헌터 경력 선배로서도 이 팀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팀에 민폐가 안 되려면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고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일단 이단우의 눈에 든 이상 게으름을 부리는 건 말도 안 될 일이니까.
-저 사람 부상자 같은데요.
-아. 치료하겠습니다! 괜찮으세요?
-예? 저도 힐러인데……. 제가 치료가 가능…….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른 힐러가 담당해도 될 일을 맡겨도 권준홍은 불평이 없었다.
챙기는 척 한마디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팀에 A급 이하는 없어서요. 적응하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차우원 팀> 팬이어서요! 그런데 이단우 헌터는 제가 A급이라고 착각하신 걸까요?
‘넌 누가 봐도 A급 이상이잖아.’
권준홍이 순진한 척 대답하는데, 소서정은 얘가 자길 먹이는 건가 헷갈렸다!
아무튼 대피는 성공했고 그들은 청연 보호구역 내 대피소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소서정은 강울림이 기절해서 정신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분하게 들었다.
대피하던 모든 사람이 목격한 그 신성한 빛은, 이단우가 <성검>으로 만들어 낸 것이 맞았다!
차치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이단우 헌터는 ‘성검 보관자’의 의무를 지게 되셨다고 합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모든 분들이 내심 성검을 욕심내고 계실 때, 이단우 헌터는 정말이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이단우 헌터가 성물 발견자가 되었던 것도 상징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넌 속은 거야.’
소서정은 생각했으나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단우가 그런 애죠.”
“와아아…….”
“역시.”
교대로 휴식하러 온 헌터들까지 합세해서 소서정 주변에는 작은 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저 사람이 <차우원 팀>의 마법사 소서정’이라거나 ‘성검 주인의 동료’, ‘영웅팀의 원거리 딜러’ 같은 선망의 눈길이 쏟아져서 소서정은 혈색이 돌고 어깨가 으쓱거렸다.
‘차우원 라이벌로 안 살길 잘했다!’
이림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이 원 가장자리에 있었을 게 아닌가?
이단우는 놀랍게도 그 자신의 야심과 도덕 없음을 숨기고 합법적으로 성검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를 같은 편으로 둬서 소서정은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의 다른 헌터가 물었다.
“그런데 이단우 헌터와 차우원 헌터 두 분은 급히 어디로 가신 걸까요?”
소서정이 알겠는가?
그러나 그는 예쁘게 포장했다.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이 보였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하기야 일대 전선이 완전히 밀렸으니까요.”
“세상에.”
“두 분도 지치셨을 텐데.”
감탄을 받으며 소서정은 청연 길드장이 자리한 건물로 이림의 부길드장이 들어가는 모습을 곁눈질했다.
청연 길드장은 영웅 차문경의 동료이자 이전 <종말 방어전>을 지휘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당시 활동하던 헌터 중 남은 사람은 청연 길드장뿐이다. ‘그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길드 수뇌부들은, 청연 길드장이 위치한 곳을 지휘본으로 삼아 이곳에 집결하고 있었다.
방어전 전략 회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소서정은 알았다.
‘성검의 거취가 논의되지 않을 리 없지.’
청연 길드장이 지원팀을 통해 ‘이단우 헌터 빨리 와라’ 소리를 괜히 했겠는가?
……그 이단우가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소서정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이단우는 거만한 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대였으나, 어쨌든 자신이 뱉은 말은 이뤄 냈다.
이 팀을 영웅팀으로 만들겠다는 말을 정말로 이뤄 내지 않았는가?
아직 성검의 소유권을 정식으로 인정받은 게 아닌데도 이단우는 ‘성검의 주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 팀은 영웅팀으로 불렸다!
틀림없이 이번 회의에서 이단우는 성검의 소유권을 확정 지을 터였다.
‘……그러면 역시 팀원 보충은 어쩔 수 없는데.’
“많이 마셔요.”
소서정은 살갑게 말하며 권준홍 앞에 마력 포션을 더 꺼내 줬다.
그는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스킬을 쓰다가 얼마 전에 앉은 차였다. 휴식을 취하며 이단우가 준 포션을 마시느라 빈 병이 그의 발치에 쌓여 있었다.
“저 이제 배가 불…….”
“마력 고갈이 신체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데요. 지쳐서 아무것도 먹기 싫어도 열심히 마시고 회복해야죠.”
‘회복하고 또 일해라.’
이단우가 ‘죽지 않을 만큼 굴리라’고 했으니 소서정은 딱히 부당한 짓을 하는 게 아니다.
권준홍은 이단우 밑에서 구른 기간도 없이 단번에 영웅팀 힐러가 되지 않았는가?
물론 소서정은 그게 배알이 꼬여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훌륭한 헌터가 되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하는 법이다.
권준홍은 순진하게 수긍했다.
“그, 그렇군요. 마시겠습니다.”
‘한 다섯 시간 쉬게 하고 내보내야지.’
소서정은 사악한 생각을 하며 마주 웃었다.
그런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형. 이단우 헌터!”
차치원이 벌떡 일어났다.
‘이단우!’
소서정은 뒤를 돌아봤다. 이단우와 차우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겉에 두른 로브에 핏자국이나 먼지조차 묻어 있지 않아서 그들은 지치고 더러워진 헌터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주변 모든 사람이 일어났다.
“……?”
뭐냐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 이단우는, 금방 신경을 끄고 소서정에게 물었다.
“쟤 왜 멀쩡해?”
“예? 저요?”
권준홍이 물었다.
“마력 고갈 안 왔어? 마력 포션 물처럼 마시며 힐해도 어느 순간 바닥칠 텐데?”
“예?”
“왜 기절 안 했어? 한번 쓰러져 봐야 자기 한계를 알 거 아냐.”
“예?!”
“와악, 와악! 잠깐만!”
소서정이 두 손을 흔들었다. 혼절할 것 같은 권준홍 옆으로 다른 헌터들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죽지 않을 만큼 굴리라는 게 그 뜻이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