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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42화 (142/170)
  • 142.

    ‘네가 기다릴 줄 알았다.’

    이단우의 살의는 개인적이고 집요했고, 기희윤은 남의 심리를 읽는 데는 도가 튼 새끼였다.

    이단우가 자신을 만나러 오리라 짐작했을 터였다.

    원하는 물건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데 이 새끼가 무슨 수로 피하겠는가?

    단우가 기희윤 소굴로 쳐들어갔을 때도 이 개자식은 부하들 목숨을 하나씩 던져 주면서 도망은 안 갔다.

    ‘쓰레기.’

    그러나 개똥도 쓸 데는 있어서 이런 새끼도 세상에 태어난 쓸모가 있었다.

    문제는 차우원이었다. 그는 보통 이상의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단우가 그를 별거 아닌 범법에 가담시키는 데도 설득이 필요할 정도였다. 기희윤 같은 폐기물을 팀에 넣는다고 하면 ‘왜’라는 질문이 따라오지 않겠는가?

    ‘왜겠냐?’

    ‘그 새끼가 쓸 만하니까’ 이외의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차우원은 그 외의 이유가 필요한 놈이어서 단우는 입을 열었다.

    -<최후의 던전>을 반드시 깰 수 있는 방법을 알아.

    -어떻게?

    -이미 한 번 깨 봤으니까.

    -……!

    -난 누구도 잃어버릴 생각 없고, 이 지랄 질질 끌 마음도 없어. <최후의 던전> 직행해서 클리어할 거야. ……그러려면 필요한 놈이 있는데.

    -누구?

    -기희윤.

    이게 센터로 이동하던 중의 대화였다.

    단우는 차우원이 무표정하게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는 기희윤을 살피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온화한 얼굴에 거부감은 보이지 않았으나 차우원은 원래도 생각을 읽기 힘든 놈이었다.

    단우는 자신이 기희윤의 이름을 말한 순간 차우원이 잘 짓는 표정을 지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떠오른 차분한 표정을.

    그러나 차우원은 이렇게 말했다.

    -역시 전부터 알던 사이구나.

    -……?

    -그래.

    ‘그래’라고?

    단우는 그게 무슨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센터에는 이미 도착했고 차우원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놈은 아니었다.

    ‘반대 안 하면 됐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속이 뒤틀리는 게 문제였다.

    기희윤과 차우원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맞지 않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돌아가신 스승님을 모시고 나와 안장시킨 차우원이 그 사체를 욕보인 놈과 마주 보고 있다.

    기희윤의 목을 뚫어 차우원의 발치에 던져 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단우는 참아 냈다.

    “탈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슨 수로?”

    “뭐, 다 방법이 있지! 단우한테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사실 알려 주고 싶긴 한데, 내 비장의 무기를 밝혔다간 소중히 여겨 주지도 않고 부숴 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 귓구멍이 틀어 막혔나.’

    단우는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기희윤의 목을 움켜쥐었다.

    “……!”

    ‘경고했던 건 과거였나?’

    그러고 나서야 생각이 미쳤으나 중요한 건 아니었다.

    철컥, 쾅, 하고 무언가 무거운 게 복도에서 연쇄적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이 넘어온 자동문 안에서도 뭐가 돌아갔다.

    차우원이 자동문을 확인하고 문에 달린 창을 통해 복도를 봤다.

    “이 층 폐쇄된 것 같다.”

    “헌터를 가두는 시설은 따로 관리받는 거 알아? 여길 감시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거든. 이상한 짓 하면 카메라로 바로 보이지!”

    기희윤이 콜록거리다 말했다. 그의 검지가 천장을 가리켰다.

    “센터 보호 시스템이 꽤 괜찮다니까. 이 손에 힘주면 다 같이 죽는 거야.”

    ‘자동 방어 시스템.’

    이단우도 정부 기관 털다가 폐에 구멍 뚫린 경험이 있었다. 헌터의 저항까지 무력화하는 독부터 시작해서 정부에는 괜찮은 장치가 많다.

    기희윤이 생글생글 웃었다.

    “이 손 놓고 우리 대화하자. 화기애애하게.”

    그리고 기침했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 시간 주면 어떻게든 살아난다.’

    이래서 이단우는 현장에서 그를 즉살시키고 싶었으나 이미 기희윤은 갇혔다. 그리고 이단우는 기희윤만큼 때를 놓치면 죽이기 힘든 놈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죽이러 온 게 아니니까.

    협박도 직접적인 위협이 닿아 있으면 더 잘 통하지 않겠는가?

    숨통이 잡힌 채로는 이 새끼의 꽉 막힌 귓구멍에도 바람이 통할 터였다.

    단우는 손아귀에 힘을 줬다. ‘헉’ 하고 헐떡이는 기희윤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말했다.

    “네 소굴 위치 알아.”

    “……?”

    “E시 5센터 세 블럭 옆이잖아. 무슨 식품 건물.”

    “……!”

    과거 이단우가 무너뜨린 거처 이전에 기희윤이 쓰던 건물이다.

    단우가 아는 기희윤의 거처는 두 개였는데 둘 다 최후는 비슷했다. 건물 자체가 무너졌다.

    -안타까운 사고 때문에 못 쓰게 됐지.

    ‘부하가 세뇌 풀려서 건물 무너뜨렸다고 했나.’

    과거 단우가 그 얘기를 듣고 궁금해한 점은 ‘그놈이 기희윤 스킬에서 무슨 수로 자력 탈출했는지’였으나…….

    성검 강탈 사건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없던 일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기희윤 추종자 중에 성검에 손댈 수 있는 놈도 없었다.

    약간의 계기만 주어져도 세뇌를 풀 수 있을 정도로 <저항>이 강한 놈이 기희윤 아래 있었던 것이다.

    이단우는 기희윤 아래 그만큼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이 둘이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그 부하가 성검 강탈자였나?’

    그렇다면 기희윤의 이전 거처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직 사용 중일 터였다.

    그리고 기희윤은 거처는, 그의 수집 창고이기도 했다. 기희윤이 가장 탐내는 건 그가 아직 갖지 못한 것이었으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기희윤이 아끼는 물건이라면 얼마든 있다.

    “그 안에 네가 끔찍하게 아끼는 그 발명가나 기타 쓸데없는 새끼들 모여 있지.”

    “으응,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그럼 나중에 알든가.”

    이단우는 손을 놓고 일어났다.

    ‘나중에 거점 털리고 추종자 세뇌 다 풀리고 나서 알아라’라는 뜻을 기희윤은 알아들었다. 이단우가 그를 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까닭에 그 말은 단순한 협박으로 들리지 않을 터였다.

    ‘단순한 협박 맞지만.’

    실체 없는 협박이다. 밖이 난리인데 그가 무슨 수로 기희윤 소굴을 치겠는가? 그러나 이단우 표정에 동요가 없어서 기희윤은 넘어왔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아, 정말. 의문이란 말이야. 누가 단우 정보원일까? 정부 기관에서도 모르는 걸 알고 있잖아. 내가 배신에는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랑 무슨 협상을 하려고?”

    기희윤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마력 구속구를 차고도 잘도 지껄인다 싶더니 한순간에 중심이 무너졌다.

    그가 일어나지도 못하는 모양이라 단우는 쪼그려 앉았다.

    몸이 고단하면 판단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단우는 그가 생각할 시간을 줄 마음이 없었다.

    “누가 너랑 협상하재?”

    ‘……?’

    “그럼?”

    “내가 하는 건 협박이고.”

    “…….”

    “네가 애지중지하는 새끼들 단체로 입 맞추는 꼴 볼래, 아니면 나랑 뭐 하나 할래.”

    ‘대체할 수 없이 귀한 걸 틀어쥐지 않으면 이 새끼 협박은 못 한다.’

    성검을 다룰 수 있는 이단우. 혹은 기희윤의 호신 아티팩트와 ‘등가 교환기’를 만든 각성자쯤은 쥐고 흔들어야 이놈 고개가 재깍재깍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희윤이 심각해지더니 개소리를 했다.

    “그 입맞춤 단우가 해?”

    ‘그게 왜 중요해, 새끼야.’

    단우는 철창을 걷어찼다.

    쾅!

    천장에서 쏘아진 레이저 빛이 단우의 이마부터 다리까지 빼곡하게 점으로 물들였다. 차우원이 움직이려는 걸 단우는 제지했다.

    ‘이 새끼 수락한다.’

    이단우는 기희윤을 알았다.

    “아하하! 아, 아파. 웃을 힘도 없네. 단우 입술을 빼앗길 수 없으니 내가 협조해야겠다. 무슨 도움이 필요해?”

    “<최후의 던전> 클리어.”

    “바라는 게 과한데.”

    ‘삽소리 한다.’

    “응하면 네가 얻는 건 네 멀쩡한 모가지랑 부하들이고, 거절하면 다 잃는데 과하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 목 날리면 다 같이 죽는다고 했지. 시험해 볼까. 난 몰라도 넌 확실히 죽을 텐데.”

    ‘날 해치면 너도 죽는다’니, 그게 협박인가?

    기희윤의 협박은 조건부터 글러 먹었다. 기희윤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목숨과 이단우가 생각하는 자기 목숨의 가치는 비교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 자리에 차우원이 있어서 이단우의 말은 허세가 됐다.

    ‘차우원을 두고 왔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기희윤을 만나는 자리에 함께하겠다는 게 차우원의 조건이었으니까.

    ‘그리고 기희윤 놈에겐 어찌 됐든 통한다.’

    이 새끼는 천만 명의 목숨보다 자기 목이 귀한 놈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미끼도 기희윤에겐 걸려 있었다.

    “그러면 또 내가 거절 못 하지…….”

    기희윤이 황홀하다는 듯 올려다봐서 단우는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탐나는 걸 보라고 이 새끼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들은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계약의 요지는 이랬다.

    ‘기희윤’은 <최후의 던전> 공략 완료까지 ‘이단우’의 명령에 따르며 <종말> 종식에 협조한다. ‘이단우’는 <최후의 던전> 공략 완료까지 ‘기희윤’의 목숨에 위해를 끼치지 않으며 ‘기희윤 협력자’를 주인에게서 해방시키지 않는다.

    “……계약을 어길 시 대가는 서로의 목숨으로 한다. 좋아, 확인했어, 서명했다. 휴…….”

    하고 기희윤은 천장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단우의 피부를 기어 다니던 레이저가 사라지고……. 금속음과 함께 자동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됐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단우는 기희윤의 머리를 후려쳤다.

    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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