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기자는 바닥에 으깨져 산산조각 난 자신을 상상했다.
“……컥!”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그의 허리를 낚아챘다!
기자를 잡아챘던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멀어졌다. 그것의 날개 한쪽이 허공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기자는 보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듯한 통증이 느껴졌으나 그는 살았다.
‘이래서 이를 악물라고 했구나!’
반사적으로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혀를 깨물지 않았겠는가?
그는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하려고 했다.
“감, 감사…….”
“입 다물라고.”
“……?!”
인형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이단우가 명령했다.
영상에서만 보던 사람이 눈앞에 있어서 기자는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건 이단우의 성격이었다.
‘아니 고맙다는 사람한테 왜 화를……?’
항의하는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엉덩이 밑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올라타 있는지 깨달았다. 또 다른 몬스터 위였다!
키에에에엑!
몬스터가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기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는 고소공포증이 없었으나, 지금이라면 그게 어떤 기분인지 이해할 것 같았다.
아까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발톱에 채여 있던 때가 떨어지면 목이 꺾여 죽을 위치였다면, 지금은 떨어지면 케첩처럼 터질 위치는 되는 듯했다.
기자는 생각했다.
‘끝이구나!’
이단우가 도망칠 위치를 잘못 잡은 게 분명했다.
애초에 그는 근거리 헌터였다. 자신을 구하러 와준 건 감사한 일이었으나, 살릴 능력이 있는 건 또 별개였다.
그러나 기자는 살고 싶었다. 눈앞의 헌터가 그를 구해 줬으면 했다!
“흐으으으윽!”
마구 몸을 뒤흔들어 대는 몬스터의 등판에 달라붙은 채, 기자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뭘 바라고 그런 게 아니었다. 상공의 차디찬 바람에 눈이 시려, 그의 두 눈에서는 줄줄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흐린 시야로 그는 이단우를 봤다. 이단우는 표정 없이 아래를 둘러보고 있었다.
‘……설마 몬스터 수를 세는 건가?’
이어지는 일은 눈 뜨고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단우가 검을 뽑아 몬스터의 날갯죽지를 찍었다!
키에에에엑!
“……!”
기자는 목 안으로 비명을 질렀다.
‘제정신인가?’
이단우의 팔이 움직이나 싶더니 몬스터의 날개가 뚝 떨어졌다. 날개를 잃은 몬스터는 허공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비틀거렸다. 외날개로 추락하는 몬스터의 정수리를, 이단우는 못을 박듯 꿰뚫었다.
몬스터가 곤두박질치며 기자의 심장도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으아악!”
기자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곧 폐가 찌부러지는 느낌과 함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단우는 이번에는 ‘입 다물라’는 경고도 없이 그를 낚아챘다!
“……억!”
어딘가로 굴러떨어진 그는, 자신이 또 다른 몬스터 위에 떨어졌음을 알았다. 이단우는 하늘에 무리 지은 날개형 몬스터들을 징검다리처럼 사용하며 도륙하고 있었다!
세 번째 몬스터의 목을 따고 네 번째 몬스터 위로 올라탄 순간, 그걸 몬스터들도 알았다.
키야아아아악!
몬스터 중 하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울음을 내질렀다. 그 몬스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걸 신호로,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이단우에게 날아들었다!
“안 돼!”
기자는 경고하려 했다. 이단우는 네 번째 징검다리…… 몬스터…… 아무튼 그들이 굴러떨어진 새의 날개를 따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느라 그에게 발톱을 세우고 날아드는 새 떼를 보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기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는데, 다음 순간 이단우에게 날아든 새 떼가 후두둑 떨어졌다. 몬스터는 인간의 얼굴에 부리가 달린 징그러운 모습이었는데, 언제 찔렸는지 머리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채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한 마리도 예외가 없었다.
‘미쳤…….’
기자는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상황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이단우의 손에 들린 검은 <육영>이었다.
‘왜지?’
그는 이단우의 팬은 아니었으나 <차우원 팀>에는 관심이 있었다. 기자라면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낙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데다, 얼마 전 이단우가 겪은 친척 일이 또 큰 화제가 되지 않았는가?
세상에는 혈육의 정 같은 건 느끼지도 않는 끔찍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하필이면 이단우의 친척이어서 그가 부모님의 유산을 빼앗기고 학대받으며 자라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친척은 현재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했으나, 이사한 곳에서도 신원이 알려졌다. 회사는 휴업 상태였으며 길드 연합이 주도한 소송에 휘말렸다.
길드 연합에서 나선 명분은 ‘젊은 헌터의 보호’였으나, 기자들은 청연 차원에서 압박이 들어갔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청연 자체가 차우원 집안이 지분을 갖고 있는 길드 아닌가. 그리고 <차우원 팀>은 팀원 간에 몹시 우애가 좋았다.
리더인 차우원이 사용하는 <육예>의 쌍둥이 검을 이단우가 사용할 정도로.
그리고 기자는 이런저런 파생 기사를 쓰면서 여러 차례 <차우원 팀>의 자료를 보아 왔다. 이단우의 사진은 드물었으나, 차우원의 사진 자료는 그에 비해 풍부한 편이었다. 그가 착용한 <육예>와 현재 이단우가 사용 중인 검은 놀랍도록 흡사하게 생겼다.
덕분에 기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성검이 아니었다.
쿵!
날개 하나 남은 네 번째 몬스터는, 이단우가 동족을 몰살하고 다시 자신 위에 올라타자 더는 버티지 못했다.
몬스터가 비틀거리다 바닥으로 애처롭게 고꾸라졌다.
추락하는 몬스터 위에서, 기자는 지상의 풍경을 봤다.
거대 바퀴벌레 떼 같은, 대규모 몬스터 무리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손만 닿아도 익을 듯한 그 불길을 조종하는 건 <차우원 팀>의 원거리 딜러 소서정이었다. 그가 옥상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스태프를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불길 속에서도 몬스터 떼를 조종하던 보스몹은 차우원의 일검에 잘렸다.
그리고 기자의 옆에는 상공을 혼자 정리한 이단우가 있었다.
기자는 소름이 돋고 입이 말랐다.
그는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다. 그는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다…….
이 그림에서 부족한 건 하나였다.
퍽!
기자는 바닥에 굴러떨어졌으나 오뚜기처럼 금방 일어났다.
그가 이단우에게 물었다.
“왜 성검은 안 쓰세요?”
“그걸 내가 왜 써요?”
“……?”
* * *
‘마력 낭비했잖아.’
헛소리하는 민간인을 건물 안으로 던져 놓고 단우는 차우원에게 다가갔다.
보통 날개형 몬스터의 처치는 원거리 딜러의 몫이다. 그러나 민간인이 잡혀가서 소서정은 공격할 수 없게 됐다.
‘컨트롤 연습을 안 하니까 민간인 피해서 공격하라는 것도 못하는 거 아니야.’
소서정이 몇 방 쏘면 정리될 놈들을 기를 쓰고 곡예해서 처치하고 오느라 이단우는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덕분에 확인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지하에서 계속 기어올라 오고 있어. 3차 웨이브 온다.”
“우리 뭐 좌표 찍혔어?! 왜 다 이리 몰려오고 난리야!”
소서정이 <플라이>로 옥상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목소리는 멀쩡한데 이마가 땀에 젖어 있었다.
‘이 자식도 <성검 강탈자> 상대하고 바로 또 마법 썼잖아.’
단우는 문제를 깨달았다.
차우원이 전력을 확인했다.
“서정아, 마력 괜찮아?”
“나 오 분은 회복해야 할 것 같은데…….”
오 분도 최소 시간일 터였다. 그러나 차우원은 더 묻지 않고 단우를 돌아봤다.
“3차 웨이브 규모가 서정이 없이 처치할 만한가?”
“2차는 너 혼자 할 만했어?”
“그건 아니지. 규모 비슷하구나. 오 분 버텨보자.”
차우원이 정리했다. 그러더니 그가 단우와 눈을 마주치고 물었다.
“괜찮아?”
이단우의 마력은 늘 안 괜찮았다…….
“어.”
‘4차까진 버틴다.’
일반적인 던전 브레이크라면 그랬다. 단우는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사태에 대해 생각하는 건 전투력 저하만 가져온다.
-전투 상황에서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네가 생각하라며!
이단우는 좋은 학생이 아니었으나 차우원은 훌륭한 선생이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뒤를 돌아봤다.
“저……. 이단우 헌터. 차우원 헌터. 저희도 돕겠습니다.”
“아가씨께서 두 분을 지원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양복 입은 남자 둘이 다가왔다. 그냥 봐도 헌터여서 단우는 그들이 배지슬의 경호원임을 알았다.
‘대피를 도운 게 저 둘이었나.’
거리 정리가 빠르다 했다.
단우는 예의상 거절도 없이 물었다.
“포지션 뭔가요.”
“둘 다 탱커입니다.”
“<도발> 가능하죠.”
“네? 네. 물론입니다.”
<도발>이라면 탱커의 기본 스킬이다. 은퇴 길마가 외동딸에게 붙인 헌터가 사이비일 리도 없어서 그들은 물론 <도발>이 가능했다.
단우는 결정했다.
“반으로 나누자.”
“그래.”
차우원은 이해했다.
“내가 우측으로 갈게. 병원과 은행이 가장 대피자가 많던데. 두 건물 피해서 우리가 아예 반대 방향으로 찢어지는 게 나을 것 같지.”
“어. 두 분 거기 서실래요.”
단우가 몬스터 떼가 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예?”
차우원은 한마디만 해도 알아듣는 걸, 이 인간들은 왜 차우원 설명을 듣고도 못 알아듣는단 말인가?
‘경호 업무만 하다 뇌가 굳었나.’
“거기서 <도발> 쓰고 갈림길에서 도망치시라고요.”
“……!”
‘이게 무슨 작전이야?’
경호원들은 생각했다.
탱커란 벽처럼 한 곳에 굳건히 버티는 직군이 아니던가? 그들이 왜 미끼가 되어야 하지?
그러나 몬스터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경호원들은 하는 수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도발>!”
몬스터 떼의 살기가 그들을 향했다.
그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갈림길에서, 양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