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차우원과 눈이 마주쳤다.
“……성검 강탈자를 막다가.”
* * *
단우와 차우원은 병실에 도착했다.
환자복 차림의 강울림은 침대에 기대 있었고 소서정은 작은 의자에 앉은 채였다. 이단우가 병실에 들어서자 그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단우…….”
“팔 치워.”
강울림이 몸을 가렸다가 반사적으로 손을 치웠다.
얼굴부터 가관이었다. 아랫입술과 턱을 가리는 큼직한 거즈가 붙어 있다.
두꺼운 근육 탓에 옷 사이즈가 맞지 않아, 그는 단추를 전부 풀고 있었다. 벌어진 환자복 사이로 가슴과 배를 싸맨 붕대가 보였다. 붕대가 어디까지 감싸고 내려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단우는 강울림의 허벅지를 손으로 누르고 바지를 내리려고 했다.
“야, 야!”
강울림이 기겁하며 바지를 붙잡았다.
차우원이 단우의 손을 잡았다.
“놔 봐.”
“단우야, 상처 보고 싶은 거지. 말로 하자. 울림이 당황하잖아.”
“그래! 말로 물어봐! 허벅지까지만 다쳤어! 아…….”
단우는 화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다가.”
“아니, 무슨 각성자가 병원을 습격했다잖아.”
“그거부터 시작하면 어떡해? 여기 네가 청연에서 임시로 관리권 넘겨받은 데인 거 알아? 근데 경보가 울려서 우리가 출동했거든?”
소서정이 강울림을 타박하고 끼어들었다.
그가 설명한 사건은 이랬다.
강울림과 소서정이 그들의 담당 구역에서 일어난 문제를 알아챈 건 <성검 강탈자>가 구역을 침범하고 30초 만의 일이었다.
청연의 신고 시스템은 훌륭하게 작동했다. 소규모 던전 공략을 막 마치고 아지트로 복귀한 그들에게 즉시 위급 신호를 보냈다.
당시 그들은 상대가 <성검 강탈자>라는 건 알지 못했다. 그러나 폭주하는 마력이 병원 건물을 향하는 순간 깨달았다. 막지 않으면 병원 내 인원은 전멸이다.
“얘도 어쩔 수 없었거든? 상대하는 게 <성검>인 줄도 몰랐어. 그게 힐이 잘 안 드는 공격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신중했을 텐데…….”
“맞아, 맞아.”
‘거짓말이다.’
단우도 성검 강탈자 손에 들어간 성검을 상대했다. 그 흉흉한 마력을 피부로 느끼고도 위험성을 모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소서정은 남을 위해 나서서 변명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가 지금 나서는 건 강울림이 자기변명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 할 때마다 강울림의 뺨이 씰룩거렸다.
‘붕대로 감은 데가 안 아물었다.’
지금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는데 강울림은 못 알아챈 듯했다.
단우는 아찔했다.
“쟤 얼마나 깊게 베였어.”
강울림과 소서정이 시선을 교환했다.
소서정이 재빨리 말했다.
“어, 몇 바늘 꿰맸나?”
“맞아. 별거 아니야.”
뻔한 헛소리가 들려서 단우는 다시 참았다.
“지랄 말고. 벗겨서 확인하기 전에 말해.”
“뼈가 드러났는데 지금은 많이 아물었대.”
강울림이 실토했다.
‘그걸 말하냐?’
입을 벌린 소서정이 변명했다.
“내가 거짓말한 건 아니고. 꿰맨 건 진짜거든? 몇십 바늘이긴 한데…….”
단우는 듣지 않았다.
“왜 안 피했어?”
대답을 바란 말이 아니다.
‘왜 말을 안 들어?’
그가 정말 묻고 싶은 건 그거였다.
그는 강울림이 이해된 적이 없었다. 이 팀의 누구도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 자신을 더 우선시해.’
‘누가 죽을 것 같아도, 그거 막다가 네가 죽을 것 같으면 좀 모른 척해.’
이게 어려운 말인가?
일 년 내내 세뇌를 해도 이단우의 말은 이 팀에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울림이 더듬거렸다.
“너랑 약속했잖아……. 정의로운 일만 하기로.”
“뭐?”
단우는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한발 늦게 계약서가 떠올랐다.
‘……그걸 약속이라고 하나?’
그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강울림은 초조하게 입술을 훑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상처가 벌어진 모양이었다.
“나도 알아. 내가 좀 더 머리가 좋았으면 안 다쳤겠지! 너랑 한 약속도 지키고 우리 팀 명예도 지켰을 텐데,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서……. 나도 네가 쓰지 말라는 스킬 안 쓰려고 했어. 근데 시간이 없었단 말이야.”
그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단우는 그가 말한 ‘팀의 명예’가 무슨 소린지 이해했다. 강울림이 <성검 강탈자>로부터 보호한 곳은 이 병원이었다. 청연에서 이단우가 임시로 관리를 넘겨받은 구역. 이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팀에 불명예가 될 테니까, 강울림은 막았다는 것이다.
은혜를 갚겠다고.
강울림은 그런 성격이었다.
‘나 때문이잖아.’
강울림은 이단우의 말을 들었다. 그가 계약서에 도장 찍게 하려고 추가한, 단우는 기억도 못 하는 조항을 철저하게 지켰고 이 팀을 위해 헌신했다.
“이단우?”
강울림의 목소리가 멀었다. 차우원의 손이 어깨를 잡아서 단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울림아, 아직 말하기 불편하지. 몸도 안 좋은데 우리가 오래 있었던 것 같다. 쉬어. 나머지 얘기는 서정이한테 들을게.”
“어? 어. 이단우 괜찮은 거야?”
“괜찮아질 거야.”
차우원이 침착하게 말했다.
단우는 괜찮지 않았다.
차우원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나가며 단우는 생각했다.
과거 강울림은 헌터 생활을 조기 은퇴당할 만한 부상 같은 건 입은 적 없다. 성검 도난 사건 같은 건 과거에 없었다…….
‘뭐가 달라졌지?’
왜 이렇게 된 거지?
아니, 이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게 달라졌다.
‘생각해.’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단우가 바지를 내리려 할 때 강울림의 하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걸을 수 없나?’
단우는 추웠다.
머리를 울리는 목소리가 성검의 것인지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차우원이 병실 문을 연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어머. ……차우원 헌터!”
꽃다발을 든 배지슬이 서 있었다.
그녀는 힐러였다.
“죄, 죄송해요. 여기 계실 줄 모르고……. 아니, 제가 감히 찾아와서……. 강, 강울림 헌터가 저희를 살려 주셨는데,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죄송해요.”
허둥지둥하는 그녀의 손을 단우는 덥석 잡았다.
“……?!”
펄떡펄떡 뛰던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각성 못 했어.’
부드러운 손에서 조금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우는 미칠 것 같았다. 과거의 그녀와 지금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려 했으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은퇴 길마의 능력 상실이 각성 계기였나?’
그러나 이제 와서 기희윤에게 은퇴 길마를 던져 줄 수도 없었다. 아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성검 보관자인 이단우는 은퇴 길마와 기희윤 양쪽에 접근을 허락받을 수 있을 것이다.
‘헛생각하지 마.’
아니, 아니다. 배지슬은 과거와 달라진 게 너무 많았다…….
단우는 계속 심장이 뛰었다.
‘차우원이랑 약혼도 안 했잖아.’
그리고 그 모든 걸 바꾼 건 이단우였다.
“이, 이단우 헌터?”
배지슬이 어쩔 줄 모르고 불렀다.
단우를 부르는 호칭이 남을 부르는 듯했다. 그녀는 이단우를 ‘단우 씨’라고 불렀고 차우원을 ‘리더’라고 불렀는데.
“만나서 반가워서요. 들어가세요.”
단우는 그녀의 손을 버리고 복도를 걸어갔다. 그러다 과일 바구니를 안고 오는 권준홍의 어깨를 쳤으나 멈추지 않았다.
“어, 어?”
권준홍이 균형을 잃고 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군가 “달리시면 안 돼요.” 하고 말했다. 단우는 모든 소리를 지나쳐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일순간 소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속이 계속 메슥거렸다. <성검>이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닥쳐.’
쿵, 쿵.
단우는 계단에 쪼그려 앉은 채 찬 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과거에도 배지슬이 지금까지 각성 못 했나?’
그녀가 각성했다면 강울림은 회복될 수도 있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특수한 유형의 힐러였다.
‘아니야. 괜찮아. 회복할 수 있어.’
강울림의 재생력은 경이적인 수준이다. 덕분에 성검에 중상을 입었는데도 죽지 않았다.
강울림은 죽을 수도 있었다…….
단우는 뭐가 계속 쿵쿵거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우야, 그만해.”
차우원의 손이 그의 이마를 감쌌다. 그 손이 따듯했다. 단우는 자신이 떨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곳이 너무 추웠다. 차우원이 언제부터 계단 아래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네가 성검 가져야 하는 거였어.”
“……?”
단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달려서 차우원은 그를 붙잡았다.
“내가 나서면 안 됐어. 던전에서부터 뭐가 틀어진 거야. 전에는 이런 일 없었는데. 아무 문제도 없을 거였는데…….”
단우가 횡설수설했다.
‘전에는?’
계단에 앉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어서 단우는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했다.
단우의 겨드랑이를 잡고, 그가 앞으로 쏟아지지 않게 끌어안은 채 차우원은 침착하게 물었다.
“던전에서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단우야. 네가 말하는 던전이 <리자드맨 밀림>이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리자드맨 밀림>에서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1차 공략을 말하는 건가?’
이단우는 그때 부모님을 잃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려는 건 그런 얘기가 아닌 듯했다.
“네가 성검의 주인이었을 때. 전부 완전했을 때.”
단우는 왜 모르냐는 듯 말했다. 길 잃은 어린애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차우원은 성검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단우는 마치 있었던 일처럼 말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성검의 주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지.’
그게 단우가 원한 역할이었다.
이단우는 생각이 많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생각에 잠겨 멍해지거나 인상을 쓰거나 해서, 차우원은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잘 갔다.
‘단우 머릿속에서는 내가 반드시 성검의 주인이었어야 했나?’
그 역할이 어그러져서 강울림이 다쳤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차우원의 탓을 해서 단우의 마음이 풀린다면 그는 받아 줄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다르다.
이건 단우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직감이 들어서, 차우원은 다시 물으려고 했다.
그때 건물이 흔들렸다.
차우원은 반사적으로 이단우를 감싸 안았다. 생각에 잠긴 이단우는 자주 주변을 잊는다.
그러나 이단우가 차우원의 가슴팍에서 몸을 빼냈다. 겁먹은 표정이 씻은 듯이 사라진 그는, 평소의 예민한 얼굴로 돌아가서 대뜸 창을 열고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