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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30화 (130/170)
  • 130.

    뭐가 죽인 게 아니라 살리지 못했을 뿐이라는 건가?

    ‘저딴 소리에 공감을 해?’

    이 엘리트 새끼들, 타고난 재능이 넘쳐서 던전 안에서 ‘오늘 죽겠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한 모양이라 단우는 속이 뒤집혔다.

    그는 던전 안에서의 공포심 같은 소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어느 던전에서는 살 만했겠는가? <차우원 팀>에 들어가기 전부터도, 단우는 어느 던전에서나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죽지 않고 살아 나와서 <차우원 팀>에 속한 뒤에도 언제나 죽지 않는 게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차우원이 이단우를 늘 지켜보고 있었으나.

    단우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았던 건 아니다. 그만큼 머리를 썼다면 차우원에게 덤벼들었겠는가?

    ‘이 새끼, 세뇌 잘 들어 먹은 이유가 있었잖아.’

    정신력이 달걀 껍데기보다 약하다. 각오도 없이 차문경 따라 들어갔다가 안에서 멘탈 깨진 게 자랑인가?

    “저희 범죄 자백 들은 것 같은데요. 여기 모인 분들이 한가한 분들도 아닌데, 저 사람 깨워서 계속 변명 들을 건가요?”

    “아닐 것 같군요.”

    센터장이 주위를 둘러보고 대답했다.

    “이림 전 길드장은…… 저희가 신변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속구 착용이 불가피함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림 부길드장.”

    “……예.”

    고청이 창백해진 채 대답했다.

    그러나 센터장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변명하던 이림 전 길마가 갑자기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떨기 시작해서 그는 부하 직원에게 물어본 차였다.

    -왜 저러는 거야?

    -이단우 헌터가 건물 안에서 이림 전 길드장을 강하게 추궁했는데, 그 충격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얼마나 강하게 추궁을 했다고…….

    -목을 졸랐습니다.

    -……?

    이단우가 뭐 하는 헌터인지에 대해 여러 의문이 드는 정보였지만…….

    ‘아무튼 스킬 사용은 없었다는 거지.’

    외부의 강압 없이 이림 전 길드장이 제 입으로 자백을 토해 낸 상황이다.

    목격자가 각 길드의 수뇌부와 정부 요원이라 입을 다물게 할 수도 없다.

    그는 임기 말에 자기 책임도 아닌 일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게 됐다고 내심 생각하던 중이었다. 이걸로 옷 벗게 된다면 그렇게 억울한 일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5대 길드를 돌아봤다.

    “그리고……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이라고 하셨습니까? 정부에서 <성물 쟁탈전>을 공정하게 치르려던 노력이 차문경을 죽게 만들었다고요?”

    그가 기세를 몰아 추궁하려는데 이단우가 인상을 쓰고 끼어들었다.

    “누구 탓해 달라는 건 아니고요. 그럴 때도 아닌 것 같은데요. 한쪽은 성검 관리 못 했고 다른 쪽은 전대 길드장 탓에 연대책임 있다는 거 아닌가요. 시민들이 어느 쪽이든 잘했다고 칭찬해 줄 것 같진 않은데요.”

    “이단우 헌터.”

    센터장이 언성을 높였다. 잘한다 잘한다 놔두니까 선을 넘고 있지 않은가?

    이단우는 왜 부르냐는 얼굴로 “예” 하고 답했다.

    “저랑 우원이는 성검과 싸우고 회복도 못 하고 와서요. 여기 있는 분들 다들 시간 많은 분들이 아니시겠지만 전 좀 죽겠어서요. 계속 싸우실 거 아니면, 시민들 분위기도 안 좋은데 범죄자 둘 목 쳐서 사기 올리고 <성물 쟁탈전>이나 재개했으면 하는데요.”

    “……!”

    성검의 처리는 센터장이 논제로 올리지도 못한 중대 사안이었다. 그런데 성검 향방에 가장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헌터가 <성물 쟁탈전>을 재개하자는 소리를 해 주고 있지 않은가?

    센터장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두 범죄자라는 건…….”

    “성검 강탈자 기희윤이랑 저 가짜 영웅이요.”

    이단우가 경멸 어린 눈으로 쓰러진 전대 영웅을 봤다.

    차우원이 그의 손을 잡고서야 미간에 힘이 풀렸다.

    센터장은 새삼 깨달았다.

    ‘둘 다 스무 살이지.’

    어려서 순진한 데가 있다.

    가짜 영웅의 처벌과 <성검>의 소유권은 그 무게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림 전 길드장이 죄를 실토했으니 이림은 그를 버릴 터였다. 당연히 처벌될 사람을 좀 더 일찍 벌하자고 <성검>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린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다.

    “아니, 이림 전 길드장을 그냥 사형한다고…….”

    “즉결 처분 요건에 어긋나잖습니까.”

    “그럼 영웅 살해자를 살려 둡니까?”

    시끄러워진 주변을 무시하고 어린 이단우가 말했다.

    “성검 주인 정해지고 길드와 정부가 협력해서 방어전 준비나 하는 게 욕도 덜 먹고 소모적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성검 처리 때문에 저 부르신 거 아닌가요.”

    내가 성검의 주인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겠다. 차문경처럼 정부의 권위를 무시하는 짓은 안 할 테니 이림 전 길드장을 처벌해라.

    그 소리 아닌가?

    물론 이단우의 말하는 태도가 딱히 정부를 존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회의장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이단우가 몹시 싸가지 없는 데다 복수심에 불타고 있어서 회의장을 지배하던 막연한 공포가 사라졌다. 그 위에 목표가 제시되자, 거기에 대해 논의할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헌터들은 눈앞에 주어진 상황을 해치우는 건 잘했다.

    무엇보다도…….

    ‘협력하자는 거잖아.’

    청연 길드장은 생각했다. 이단우의 표정과 말투 때문에 ‘한가하면 계속 시간 낭비해라’쯤으로 들리긴 했으나 요지는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까 리더도 강압적인 데가 있긴 했지.’

    남이 반발할 생각도 못 하게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따를 사람이 없었다. 통솔력으로 포장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정도 사람이 이끌지 않으면 <최후의 던전> 공략은 불가능할 터였다.

    방금 증거를 보지 않았는가.

    순수하게 의문이 생겨서 그는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무슨 쟁탈전을 또 합니까? 성검 주인 이미 정해진 거 아니에요? 애초에 성검을 다른 사람이 잡을 수 있기나 한지 모르겠는데.”

    이단우가 정색했다.

    “……차치원이나 성물 강탈자도 성검 잡았었는데요. 전 그냥 옮겨 놓은 거고요. 저거 누구 한 명이 잡았다고 다른 사람이 못 잡는 물건 아닙니다.”

    ‘……?’

    “아니, 그 둘은 논외지. 뭐 치원이가 잡았다느니 해도 걔도 이성 잃고 다 죽으라고 덤벼들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성검 잡았다고 치나? 시험 통과했어? 그냥 다 자격 없었던 거지.”

    “전 스킬빨로 잡은 건데요.”

    이단우가 또 반박했다.

    청연 길드장은 혼란스러웠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스킬로 성검 다뤘으면 그건 본인 능력이 아닌가?

    “무슨 스킬?”

    “그건 프라이버시고요.”

    “아니, 그렇겠지.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나도 헛소리를 하게 되잖아! 아무튼 지금 이단우 헌터 외에 성검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 아니에요? 이단우 헌터는, 성검을 정부에 믿고 맡길 수 있어요? 이미 한번 도난당했는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센터장이 항의했다.

    그러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요. 정부 보관 허술하고 못 미더우니까 성검 주인 빨리 정하자고요. <성물 쟁탈전> 내일이라도 재개해서 일정 축약하고, 재빨리 누구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럼 도난 위험도 사라지고요.”

    “……?”

    이번에는 다른 헌터들도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근데 도난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그냥 이단우 헌터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다완 베테랑 검사가 물었다.

    정부 신뢰도가 바닥을 쳐서, 길드들은 <성물 쟁탈전>의 주관과 진행 방식에도 유감이 많아졌다. 관련 사항으로 논쟁을 시작하면 한 달은 우습게 쓸 자신이 있다.

    그러나 이단우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시간이 없었다. 길드원이 죽었다. 그 외에도 수습할 일이 산더미라 주요 인물들이 한곳에 묶여 있을 수가 없다.

    이단우가 창백한 얼굴로 다완 검사를 노려봤다. ‘일 시키지 말고 닥쳐’라는 얼굴이었다.

    ‘…….’

    성격은 그렇다 치고…….

    성검을 사심으로 탐내지도 않고 도덕적이지 않은가? 사실 그들은 자신의 손에 <성검>이 들어오면 아무런 갈등 없이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 헌터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서 <성물 쟁탈전>의 룰이 생긴 게 아닌가.

    ‘성물을 발견한 즉시 공개’라는.

    이단우는 성검을 손에 넣은 두 번 모두 망설임 없이 공개한 사람이었다.

    다른 헌터들이 차우원과 이단우의 실랑이를 몰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성물 보관자로는 최적의 조건 아닌가?’

    사실 그 정도가 아니어서 회의실 분위기는 이상해졌다. 그들은 청연 길드장 입에서 ‘성검 주인’ 얘기가 나온 순간 반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청연 길드장은 확신했다.

    ‘이단우가 성검의 주인이다.’

    * * *

    이림 길드장은 증언을 마치자마자 구속됐고 <성검>의 임시 보관은 이단우에게 맡겨졌다.

    그 과정에 반론이 없었다.

    사태 수습을 마치고 다시 모이는 것을 전제로 회의가 파했다.

    회의실을 떠나며 단우는 두통을 느꼈다. 누가 붙잡아도 돌아보지 않았다. 인벤토리에 들어온 성검이 지껄여 댔다.

    ‘시끄러워.’

    입도 없는 철 덩어리가 사념을 쏘아 댄다. 단우는 무시하려 애쓰며 빠르게 걸었다. 차우원은 무리 없이 뒤따라왔다.

    1센터 내의 수많은 사람이 그들이 지나칠 때마다 돌아봤다.

    “저기 봐, 이단우 헌터…….”

    “……성검의 주인…….”

    ‘아니야.’

    시선을 받고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 차우원이다.

    단우는 속이 메슥거렸다. 한참 걷다 모퉁이로 빠지자 인적이 드물어졌다.

    “단우야, 좀 천천히 걸어. 누가 안 잡아가.”

    차우원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있었다. 단우는 갈비뼈 안이 뻐근한 게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빼앗은 게 아니야.’

    그는 멈춰서 차우원의 옷자락을 잡았다.

    “<성물 쟁탈전>은 금방 재개될 거야. 차문경 시즌 2 찍으라고 레드카펫 깔아 주는 것도 아니고, 개인한테 계속 맡겨 둘 리 없어.”

    차우원은 단우가 잡고 있는 곳이 간지러웠다.

    그는 단우가 이림 전 길드장을 처리한 방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화를 내 줬잖아.’라고 말한 뒤 단우를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이단우가 일 얘기를 꺼내서 차우원은 이성을 찾았다.

    ‘단우가 원하지도 않는데 고백한 사람이 멋대로 끌어안으려 들면 안 되지.’

    그는 마음대로 움직이려던 두 손을 팔짱 끼었다. 몸이 생각을 배신해서 그는 늘 곤란했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면 곤란하겠다. 단우가 시즌 2 찍어야 하는데 말이야.”

    ‘……?’

    단우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시즌 2를 찍어?”

    영문을 알 수 없기는 차우원도 마찬가지였다.

    “<성검 쟁탈전> 이전에 여론 재판에서 성물 주인 인정 받자는 게 단우 계획 아니었나.”

    성물 도난 사건 전까지는 위험한 작전이었으나, 이번 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단우가 복수부터 성검 차지하기까지 계획을 잘 짜 놔서 차우원은 듬직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놓친 게 있나?

    “……?”

    “……?”

    그들이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데 단우의 가슴팍이 울렸다. 돌려받은 휴대폰이다.

    모르는 번호라 단우는 끊었다. 그러자 차우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차우원이 전화를 받았다.

    “예. 가겠습니다.”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단우는 심장이 떨어졌다.

    “단우야. 우리 병원 가야겠다. 울림이 다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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