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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29화 (129/170)
  • 129.

    “……이렇게 현재 의혹을 부정하고 계시지만, 이림 전 길드장님이 하신 말씀을 현장에 있던 모든 헌터가 들었습니다. 현재 받고 계시는 의혹은…….”

    정부 요원이 의혹을 설명하려 했다. 은퇴 길마는 큰소리로 끊었다.

    “하는 짓을 보게! 내가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줘도,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말을 증언이랍시고 저렇게 우기고 있지 않나!”

    “이림 전 길드장님.”

    단우가 불렀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은퇴 길마의 얼굴에 짧게 후회가 스쳤다. 그러나 길드장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어서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단우 헌터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성검 강탈자가 나를 붙잡고 있지 않았나!”

    ‘여기서는 못 팰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단우는 수십 명의 헌터를 뚫고 은퇴 길마의 목 정도는 딸 자신이 있었으나 티 내지 않았다. 그 짓을 하려면 성검을 뽑아야 할 테니까.

    그보다 좋은 방법이 있다.

    “……내 저택에서도, 그자에게 홀린 헌터들을 보지 않았나? 그 헌터들, 정신계 스킬을 깨 놓기 전까지는 멀쩡해 보였다지.”

    “예. 그랬습니다.”

    단우가 대답해 주자, 그럴 줄 몰랐는지 은퇴 길마는 깜짝 놀랐다.

    “……그, 그놈들도 그랬는데 나는 어떻겠는가? 평소 타의 모범이 되게 행동한다고 자부하는 만큼, 언제고 제정신으로 보였을 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했던 기억이 없네. 그거야말로 정신계 스킬에 당했다는 증거 아닌가!”

    “그건 됐고요.”

    “…….”

    단우는 어조를 바꿨다.

    “왜 차문경을 죽였어?”

    <성검 쟁탈전> 건물에서처럼 묻자, 은퇴 길마는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마력이 실렸다.

    자리에 앉아 있던 헌터 전원이 반사적으로 무기에 손을 올렸다. 그럴 만큼 위협적인 무언가가 방금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몸에 이상은 없었고 신경이 곤두선 것도 순간이었다.

    ‘뭐였지?’

    마치 목소리 자체가 위협이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자신들을 향한 게 아니었다. 이림 전 길드장을 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림 전 길드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혼이 빠진 것처럼 떨고 있는 전대 영웅을 발견했다.

    “흐으, 흐으으…….”

    단우가 은퇴 길마를 직접 봐야 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단우가 내 사랑들을 너무 많이 죽였잖아. 벌충하느라 나 잠도 못 자고 있다니까.

    -손 까딱하면 사람 세뇌할 수 있는 새끼가 땀 흘려 노동하는 것처럼 지껄이지 마…….

    -사람들이 이래. 정신계 헌터의 노동은 노동으로 보지 않잖아. 평탄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렴 정신계 스킬 같은 거에 깜빡 넘어올 것 같아? 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단 말이야.

    기희윤이 ‘사람 멘탈 깨려고 나도 열심히 한다’ 소리를 지껄일 때에는 그놈 입을 꿰매고 싶었으나, 참은 보람이 있었다.

    ‘정신계 스킬 작동 원리가 기본적으로 약해진 사람 파고드는 거란 소리 아니야.’

    단우가 뭐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으나, 누구 멘탈 깨고 마력으로 건드리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정신은 쉽게 흔들린다. 기희윤의 말대로. 자신도 기희윤처럼 <매혹> 같은 걸로 3초 만에 사람을 홀릴 수 있다면 편했겠으나, 그게 아니라도 방법은 많았다.

    자기를 죽일 뻔한 놈을 다시 만나, 그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할 만한 소리를 듣는 것도 그중 하나일 터였다.

    은퇴 길마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공포를 잊을 만큼 긴 시간이 아니다.

    ‘영웅 대접 받던 놈이 살해 위협 당하며 질질 끌려다니다,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목까지 졸렸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정신을 이단우의 마력이 후려쳐서 은퇴 길마는 금방 공황 상태에 빠졌다.

    “왜 배신했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C급 미만 던전이라도, 공략 중 하극상 따위를 벌였다간 목숨이 위험해진다. 본인 능력이 던전 난도에 비해 월등히 높지 않으면 목숨을 내다 버리는 짓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최후의 던전>에서 성창의 주인을 죽이겠다는 발상을 누가 한단 말인가? 어린애라도 그런 판단은 하지 않을 터였다. 이단우는 기희윤의 폭로를 들었을 때부터 그게 의문이었다.

    은퇴 길마는 파랗게 질려서는 어린애처럼 속삭였다.

    “내가 배신한 게 아니야.”

    “지랄 말고…….”

    “정말이야. 배신이 아니야. 우리는 리더에게 충실했어. 리더가 갑자기 팀 해산하자고 할 때도, 그리고 갑자기 또 팀 재결합하자고 할 때도 따랐다고. 우리는 그때 길드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는데, 지위도 다 버리고 응한 거란 말이야. 리더는 거기 관심도 없었지만…….”

    그는 벌벌 떨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성물을 찾겠다고 휴식도 없이 우리를 던전에 집어넣었다니까?”

    ‘던전 연속 공략 얘기다.’

    단우는 소서정이 질색하던 꼴이 떠올랐다. 그 짓이 싫은 게 소서정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정신 나간 고집도 따랐다고! 우리는 리더에게 언제나 충실했어. 그랬는데…….”

    이단우가 한번 찔렀을 뿐인데 이림 전 길드장이 미친 사람처럼 변명해서 헌터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듣고만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청연 길드장이 끼어들었다.

    “그게 언제부터 정신 나간 짓이고 리더 고집이었어? 우리가 합의한 거잖아. 해야 할 일이라고 의견을 모아서…….”

    은퇴 길마는 공포에 질려 말했다.

    “넌 그 안이 어떤지 모르잖아!”

    “…….”

    “우리는…… 이겨 내지 못했을 뿐이야. <최후의 던전>을……. 애초에 그릇이 아니었다고. 아니, 누구나 그 안에서는 그랬을 거야. 우리가 비겁해서, 서로에게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고.”

    “……?”

    헌터들은 어리둥절했다. <최후의 던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청연 길드장이 물었다. 적개감이 한풀 꺾였다. 그는 거만한 옛 동료가 이렇게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나도 찔렸어! ……우리가 서로를 찔렀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아니, 입구로 도망치기 위해서……. 방법이 없었어. 아니었다면 내가 죽을 상황이었단 말이야! 앞으로 갈 수가 없었어. 거길 공략하겠다는 건 미친 짓이었는데, 리더가 등을 떠밀지 않았으면 애초에 공략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은퇴 길마가 패닉에 빠져 말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단우는 그게 충격적인 고백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하냐.’

    배신자 새끼의 공포에 동조하고 앉아 있다.

    지껄이는 말마다 변명이었으나 저 새끼는 전대 영웅이었다. <최후의 던전>을 깬 놈이 ‘우린 거기서 도망치려 했고 그 안은 지옥이었다. 거기 공략은 미친 짓이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사기가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단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그 안이 천국 같을 줄 알았냐?’

    목숨 두세 개 챙겨 가도 클리어하기 어려운 구덩인 걸 모르는 놈이 멍청한 것 같은데…….

    “그…… 그 관문을 넘어갔는데. 우리도 실수한 걸 알았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 실수였다고! 하지만 리더는 그런 걸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었잖아?”

    “…….”

    “우리는 <최후의 던전>을 깨기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죽지 않은 게 기적이란 말이야. ……그래도 리더는 용서하지 않았어. 그래서……. 보스를 죽였는데…….”

    “…….”

    “우리가 리더를 죽이지 않았어. ……살리지 못했을 뿐이야.”

    은퇴 길마가 벌벌 떨며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웩, 웩…….”

    그는 구토를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죄책감과 두려움을 못 이기고 혼절한 모양새였다.

    헌터들은 잠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추한 모습이었으나 그의 두려움은 진심이었다. 그걸 모든 헌터가 알았다.

    성물 도난 사건의 해결을 위해 모였다고는 하나, 사실 그들이 정말로 해내야 하는 일은 곧 다가올 <종말>을 막는 것이 아닌가.

    전대 영웅들은 상징이었다. <최후의 던전>에 대해 ‘두려운 곳이었으나, 서로를 의지하며 용기를 내어 공략해 냈다’고 말하던 전대 영웅들의 교과서적인 인터뷰를, 엘리트 헌터들은 물론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반만 믿었을 뿐이다.

    어쨌든 그들은 공략을 성공해 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던전 안에서 팀원들이 협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림 전 길드장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해서 헌터들은 의심하게 됐다.

    ‘우리가 <최후의 던전>을 깰 수 있나?’

    그리고 그건 청연 길드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딱히 머리가 잘 굴러가거나 계략을 잘 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현역에서 뛸 수 있는 건, 그가 ‘사기를 유지하게 만드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우리 길드 애들이 나를 존경해 마지않지.’

    그 잘난 척이 사실이어서, 청연 길드원들은 그가 앞장서면 겁에 질리는 법이 없었다.

    사기 유지의 중요성은 현장 헌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던전은 적진이다. 어떤 베테랑 헌터에게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라는 건 그것만으로 희망이었다. 깰 수 없는 던전을 깨게 만들고, 죽을 헌터를 살아 돌아오게 만든다.

    ‘그리고 리더…… 차문경은 통솔력에서 따를 사람이 없었다.’

    청연 길드장은 차문경을 알았다.

    길드 요직을 맡고 있던 팀원들을 다시 독립팀으로 불러내, <던전 연속 공략>을 하게끔 만든 리더다. 그의 옛 동료는 그게 불만이었다는 듯 말했으나 결국 군말 없이 해냈다.

    그녀를 배신하게 만든 던전이라는 건 어떤 공간이란 말인가?

    공포가 전염돼서 엘리트 헌터들은 압도당했다.

    그러나 이단우는 아니었다.

    “개소리 말고.”

    “……!”

    ‘그러니까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서로 동료 찌르기도 하고 지랄했는데, 보스 물리친 뒤 보니까 차문경이 나가서 그 지랄 처벌할까 봐 배신했다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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