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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28화 (128/170)
  • 128.

    “잠시만요. 차치원 헌터…… 아니, 아직 길드 수련생 신분이겠군요. 차치원 씨는 괜찮습니까?”

    고청은 속이 타올랐으나 그것부터 확인했다.

    이번 도난 사건의 성물 강탈범은 피부가 녹아내린 채 죽었다. 외상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마력 폭주가 원인이었다.

    “낮에 봤을 때는 멀쩡하던데.”

    청연 길드장이 확인해 줬다.

    “정신은요?”

    “그것도 멀쩡했어. 사고 쳤다는 날 길드 돌아와서도 힐 한 방 안 받았단 말이야.”

    “차치원 헌터를 제압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고청은 이단우와 차우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단우가 대답했다.

    “오 분에서 십 분쯤 걸렸던 것 같은데요.”

    고청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센터장을 돌아봤다.

    “왜 성검에 대한 정보를 알리지 않았습니까? 성검에 의한 폭주가 맞잖아요? 오래 사용할수록 사용자의 마력을 증폭시키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거부 반응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성물 쟁탈전>을 주관하던 정부에서 몰랐을 리가 없는데…….”

    “알려진 정보였대도 성물 강탈범을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겁니다.”

    센터장이 변명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대답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은 동료를 잃었다.

    “제대로 보관도 하지 못해 이 사태를 만들고도…….”

    “그게 센터의 잘못입니까? 그 건물에 길드 헌터가 몇이었습니까? 또 방비를 저희만 한 것도 아닙니다. 건물이 위치한 곳은 이림과 다완의 관할 지역이 아닙니까. 외부 경비는 두 길드의 몫이었습니다.”

    “…….”

    “모든 문제를 센터의 책임으로 몰아가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오래도록 길드 연합에서는 차문경 헌터의 죽음이 정부 탓이라 공격했으나, 실은 길드에서 배신했음이 밝혀진 것처럼…….”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순식간에 회의장은 시장통처럼 변했다.

    ‘개판이구만.’

    옛 동료가 리더 차문경을 배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성물 도난 사건의 참상만큼이나 세간에 빠르게 퍼졌다.

    청연 길드장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정부는 차문경의 죽음을 길드 측이 퍼붓는 공격에 대한 방패막으로 써먹었다. 그딴 소리나 들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청연 길드장은 애제자의 표정을 확인했다. 자신도 환멸이 나는데 제자는 어떻겠는가?

    그러나 차우원은 세상에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턱을 괸 채 기대하는 눈으로 옆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청연 길드장도 그가 보던 것을 발견했다.

    이단우는 강 건너 불 보듯 자신이 불러온 사달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테이블을 손으로 치며 일어났다.

    “너무들 하시는군요. 그만하세요. 이림 전 길드장님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

    이 자리에 있는 몇 명은 이단우가 이림 전 길드장의 목 조르는 꼴을 직접 목격했다.

    그들이 황당해서 입을 다무는데 이단우가 말했다.

    “저도 범죄자의 헛소리에 놀아나 그분께 심한 말씀을 드리긴 했습니다. 그 탓에 잠도 못 자고 괴로워했는데, 이곳에서 그분의 명예가 욕되게 된 까닭이 저인 듯해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

    “영웅의 팀원이고, 세상을 구한 명예로운 분입니다. 다 아실 만한 분들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정부에서는 이미 그분을 배신자로 부르고 있고요. 그분의 명예를 이대로 땅바닥에 처박은 채, 재판까지의 긴 시간을 저희가 기다려도 될지 여쭙고 싶은데요.”

    이단우가 고청을 돌아봤다.

    이림 부길드장 고청은 물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면 안 되겠지요.”

    “예. 그분께 스스로 명예를 지킬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만큼 적절한 자리가 없으리라 생각되는데요.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이단우가 센터장에게 요청했다.

    센터장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배신자인지 아닌지가 사실 중요하지도 않지.’

    어차피 이림 전 길드장을 강제 심문할 방법은 없었다. 귀찮은 재판 절차를 거쳐야 한다. 평범한 범죄자였다면 정부 요원이 자랑하는 정신계 스킬로 자백을 받아 냈겠지만……. 상대는 전대 영웅이라는 명예와 이림 전 길드장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지 않은가.

    지금 구금이나마 할 수 있는 것도 차우원의 요청 덕분이었다. 피해자인 영웅 차문경의 아들이 요구한 내용이니까.

    재판을 질질 끌며 그간 차문경 건으로 입 다물어야 했던 세월을 보상받을 계획이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의 인식은 단순해서 보이는 대로 믿기 마련이었다.

    다수의 앞에서 죄인 취급을 하는 것만으로 이림 전 길드장에게 ‘정말 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박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림의 반대가 유일한 난관이었으나 부길드장이 이미 승낙했다.

    “대화쯤이야 뭐가 어렵겠습니까? 모든 분들이 동의하신다면 이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걸 노린 건가?’

    청연 길드장은 생각했다. 이상하게 장작을 던진다 싶더니 원하던 게 따로 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청연 길드장도 원하던 바였다.

    이 회의가 대단히 건설적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부길드장을 대리로 보내고 자신은 길드 수습에 전념해도 되었을 터였다. 이림이 하는 것처럼.

    그러지 않았던 건,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더를 배신했다는 옛 동료를 볼 기회가.

    “동의합니다. 반대 없지? 성물 도난 사건 지근거리 목격자인데 증언도 듣고 좋네.”

    청연 길드장이 바로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차문경의 옛 동료가 그러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잠시의 기다림 끝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이림 전 길드장이 들어왔다.

    * * *

    ‘됐다.’

    끌려 들어오는 은퇴 길마를 보며 단우는 생각했다.

    단우는 과거 차우원의 배경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잘난 놈이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타고난 재능과 외모로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그놈이 생각 이상으로 잘난 바람에, 금방 배경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기도 했다. 차문경의 아들이라는 배경보다 차우원 자신의 존재감이 더 대단했으니까.

    그렇다 해도 차우원은 배경까지 완벽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저 개새끼가 흠집을 냈잖아.’

    차우원은 준법 시민이라 재판까지 기다리자는 의견을 낼지 몰라도 이단우는 아니었다.

    그는 은퇴 길마가 재판까지 한가롭게 의혹이나 받는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명예 운운하면 고청은 넘어온다.’

    고청은 고지식한 성격이었다.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놈이라 과거 단우의 팀원이었을 때도 이단우를 싫어했다.

    ‘범죄자 새끼를 감싸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 강하게 방어 못 한다.’

    ‘짚고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면 흔들릴 터였다.

    그렇게 해서 은퇴 길마가 들어왔다.

    그는 씻고 넝마가 된 옷을 갈아입은 듯했다. 그러나 안색이 검어서 며칠은 못 잔 사람 같았다.

    그의 옆에는 두 명의 정부 요원이 붙어 있었는데 팔다리의 구속은 없었다. 은퇴한 헌터가 정부 요원들을 뚫고 센터를 탈출할 확률은 없다. 은퇴 길마의 신분이 부담스러운 탓도 있을 터였다. 특히나 마력 구속구는 각성자를 행동 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물건이라 위험한 범죄자 외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단우도 머리로는 이해했다.

    ‘범죄자 새끼가 자유를 만끽하고 있네…….’

    은퇴 길마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멈췄다.

    “고, 고청 헌터.”

    “길드장님.”

    “이림에서 나섰군. 당연히 그래야지. 성물 강탈자가 오래도록 나를 노려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그 범죄자가 습격을 예고해서 내가 이림에 경호를 요청했잖아!”

    “길드장님, 기밀 서약을 한 작전은 제가 언급할 수 없습니다.”

    고청이 난처해했다.

    “그 범죄자가 정신계 헌터인 것도 알고 있잖아? 그자가 나를 홀렸어!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밖에 원인이 없지 않나?”

    은퇴 길마가 침을 삼켰다.

    “나는 그런 끔찍한……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내게 원한이 있는 범죄자야. 범죄자들은 세상에 불만이 많지 않나. 세상을 구해 칭송받는 전대 영웅들에게 질시를 품은 거지. 그래서 우리를 노린 거야. 당연한 일인데, 정부 놈들은 들은 척도 않더군!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거겠지. 리더를 습격했듯이 나를 공격해서 위신을 세우려고…….”

    ‘지랄한다.’

    단우는 생각했다.

    주변을 수차례 돌아보면서도 차우원과 스승님의 눈을 못 마주친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죽은 리더의 자식과 옛 동료부터 생각하지 않겠는가?

    범죄자라고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그 새끼 재판 넘기지 말자. 변호사 앞세워서 변명할 건데, 그 소리 들으며 시간 낭비할 수 없지.

    -어떻게 하게?

    -끌어내서 변명 들어야지.

    -변호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하는 변명을 들으면 뭐가 다른가? 그분의 인품과 관계없이, 이림 전 길드장님은 전대 영웅이라 존경하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직접 변명하는 모습을 보면 설득될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럴 일 없어. 그 새끼 자기 입으로 잘못 빌 거야.

    회의에 끌려 들어오기 전 단우는 차우원에게 약속했다.

    그가 은퇴 길마 놈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건 혹시 모를 일 때문이었다.

    저 개새끼가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사죄라도 한다면 차우원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지 않겠는가?

    이단우가 이 회의에 참석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서 쓰레기는 여전히 쓰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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