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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24화 (124/170)
  • 124.

    푹, 푹, 푹, 푹, 푹!

    단우는 기희윤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성검의 마력이 체내 회로를 따라 빠르게 돌고, 단우의 의지에 따라 다시 검으로 모였다.

    통증 때문에 눈앞은 하얗게 번지는데 힘은 넘쳐흘렀다. 단우는 몸에 익은 대로 보이는 빈틈마다 검을 찔러 넣었다. 기희윤은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막았으나, 그걸로 방어가 될 리 없었다.

    얇은 검신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기희윤의 팔을 피해 얼굴과 목과 가슴을 찔러 댔다.

    챙! 쨍그랑!

    성검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치명타였다. 검이 찔러 들어갈 때마다 기희윤의 호신용 아티팩트가 터져 산산이 비산했다.

    ‘몇 개 남았냐.’

    단우는 이제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기희윤의 마력이 갖는 존재감 덕분에 상대의 위치를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른 감각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귀에서는 멍한 이명만 들렸다.

    그를 움직이는 건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였다.

    이 모든 일이 숨을 한 번 들이쉴 사이 일어났다.

    주변의 누구도 개입할 수 없었다. 이단우는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기희윤은 지금 죽여야 한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는 잠시의 틈만 주어져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상에 해만 끼칠 놈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언가 벽을 쳤다.

    탕, 탕, 탕, 탕……!

    총소리 같은 게 연이어 들리더니 벽에 실금이 가고, 이어지는 충격에 벽이 무너졌다.

    와드득……!

    “주인님!”

    기침이 나와서 단우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다. 마력의 운용을 순간 멈추자, 진공 상태 같던 세상에 소리가 돌아왔다.

    기희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콜록, 우웩……. 죽을 뻔했네. 늦었잖아!”

    “죄송합니다! 아아, 주인님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걸로 사죄가 되겠어? 총구 방향을 바꿔 봐.”

    “저희를 쏠까요?”

    “바보 같은 소리 말고. 원하면 다음에 쏴줄 테니까, 그만 실망시킬래? 노려야 할 곳이 거기가 아니잖아.”

    단우의 시야가 흐리게 번졌다가 다시 명료해졌다.

    멀쩡해진 눈에 침입자가 하고 있는 꼴이 보였다. 보호복을 입은 기희윤의 추종자들이 마정석 총의 총구를 이단우에게 겨누고 있었다.

    ‘아니.’

    이단우에게 겨누고 있던 절반마저 직원들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건 민간인들이었다.

    ‘강울림.’

    단우는 반사적으로 탱커를 찾았으나 이곳에는 딜러 둘밖에 없었다.

    그는 발치를 봤다. 기희윤은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먼지투성이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고 이단우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하하, 단우야, 이제 어떻게 할래…….”

    저걸 잡아서 공격 범위로 던지면…….

    ‘안 돼.’

    저 새끼들은 반응 못 한다.

    기희윤이 마정석 총을 들게 하는 건 비각성자들뿐이다. 마정석 총은 사용자를 반드시 파괴했는데, 기희윤에게 각성자의 목숨은 일회용품보다는 값졌다.

    다시 말해 지금 총을 격발하려 드는 건 일반인들이었다. ‘주인님을 방패로 삼다니, 총을 쏘지 말아야겠다’는 반응이 불가능한 상대.

    ‘아 제기랄…….’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단우는 이를 악물고 총구 앞으로 뛰어들었다.

    ‘할 수 있나?’

    식사 대신 마력 촉진제를 까먹던 시절에는 가능한 재주였는데, 지금 가능할지 알 수가 없다.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이단우는 체내의 마력을 일순간 뽑아냈다.

    검신이 과도한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르르 진동했다. 넘치는 마력은 검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못하고 이내 앞으로 폭발하듯 쏘아졌다.

    차우원이 <육예>로 종종 선보이던 재주가 이단우의 몸에서 펼쳐졌다.

    검의 궤적을 따라 날아간 검기는, 쏟아지던 총탄을 녹이고 보호복을 입은 추종자들을 덮쳤다.

    그들은 총을 든 자세 그대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

    ‘이딴 게 가능하면 세상에 원거리 딜러가 왜 필요하냐고.’

    이단우는 성검으로 사기라도 쳤지, 차우원은 대체 뭐란 말인가?

    체내에 남아 있던 일말의 마력까지 전부 뽑아 써서, 단우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지금 뭘 뱉으면 내장까지 쏟을 것 같다.

    먹먹하게 살아 있는 귀만 멀어지는 목소리를 잡아냈다.

    “이게 성검의 진짜 힘이구나? 좋은 걸 봤다. 대가가 아깝지 않네.”

    기희윤은 순수하게 감탄하는 듯했다.

    ‘해충 같은 새끼, 약을 쳐도 죽지를 않아…….’

    지금 말한 대가라는 게 자기 추종자들 목숨 아닌가? 언제 봐도 쓰레기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게 놀랍지도 않은데…….

    “으으음, 어쩔 수 없지. 아깝지만 지금은 포기해야겠다. 단우야, 또 보자!”

    단우는 손도 까딱할 힘이 없었다.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누구에게 들릴 것 같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끼 잡아.”

    가능하리라 기대한 말이 아니었다.

    “응.”

    차분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

    목소리의 주인이 이단우의 옆을 지나쳤다. 도주하던 기희윤을 대검으로 내리찍은 차우원이 말했다.

    “잡았다.”

    쾅!

    그 일격으로 기희윤을 보호하던 마지막 호신 아티팩트가 깨졌다.

    검붉은 마정석 조각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뺨에 생채기가 생겼는데도 차우원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벽이 무너지고, 그곳에서 나타난 추종자들이 총구를 민간인에게 겨눈 순간.

    그는 이단우가 사람들을 보호하리라는 걸 알았다. ‘민간인 서른 명보다 헌터 한 명의 목숨이 가치 있다’느니 운운하던 소리가 이단우 자신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라는 걸 안다.

    차우원은 판단했다.

    ‘내가 잡자.’

    그는 이 범죄자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이단우의 문제를 알고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도, 그는 이단우가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이 범죄자는 이곳에서 잡혀야 한다.

    * * *

    한편 외부에서도 건물의 이상이 목격됐다.

    “지진……?”

    도주한 범죄자를 추적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깔아 둔 감시망에 건물의 흔들림이 걸렸다. 그걸 목격한 다완 길드원은 폭발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보고할 만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지진도 아닌데 건물이 떨리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연락을 돌리고 살펴보니 또 수상한 정황이 잡혔다.

    “<성물 쟁탈전> 경기장으로 소규모 집단 다수 접근 중…….”

    “어떻게 할까요?”

    “잡아들여.”

    다완 검사가 말했다.

    정부에서 준비한 건물이다.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할 수십 개의 방법이 동원되어 있을 터였다.

    헌터들이 수색망을 짜서 돌아다니는 이 흉흉한 시점에 평범한 사람이 접근할 리 있겠는가?

    길드 헌터들은 공무원 일 처리에 불만이 많았으나, 정부의 기밀 처리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헌터들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그중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서약’은, 정부 같은 곳에서는 계약서 형식으로 남발되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비밀 유지 각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기면 목이 날아가는 헌터 간의 서약인 것이다. 물론 이 서약도 뭉갤 수 있는 우회로가 있기는 했지만…….

    ‘<성물 쟁탈전> 진행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쟁탈전 진행 중 전자 기기 등 기타 연락망으로 외부에 정보를 옮기지 않는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 ‘서약’ 조건은 세부적이기 마련이지. 그러니까 정보를 송신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 아니야.’

    다완 검사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수신하는 건 괜찮다는 소리 아닌가?

    그만 해도 비밀 유지 서약을 했으나 간단한 수신용 기기를 품에 소지했다. 덕분에 외부의 비상을 알았으니 그의 준비는 훌륭했다. 헌터라면 모름지기 모든 일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는 ‘외부와 연락이 일절 단절된’ <성물 쟁탈전>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

    이 실용적인 발상은 기희윤도 잘하는 짓이었으나 다완 검사가 알 길은 없었다.

    그와 몇몇 길드원들은 소규모 집단의 뒤를 밟았다.

    “정부 요원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는군.”

    정장도 아닌 데다 공무원 특유의 분위기가 없다. 그들은 두말할 것 없이 침입자를 덮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들은 각성자 집단이었다.

    “주인님께 가는 길을 막는 놈들이다. 죽여도 돼.”

    “죽어라!”

    ‘<기희윤 팀>!’

    다완 검사는 내심 혀를 찼다.

    ‘더 데려왔어야 했는데.’

    이 조무래기들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다완 1공격대의 우수함을 믿었다. 그러나 이들이 건물로 모여들었다는 건, 이곳에 성검 강탈자 기희윤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게다가 첫 보고에서, 길드원은 ‘건물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성물 강탈자가 얌전히 있다면 그런 반응이 있었을 리 없지 않은가. 범인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같은 학살을.

    다완 검사는 입이 말랐다.

    건물 안에 남아 있는 건…….

    ‘민간인들.’

    ……남아 있는 요원이 있나?

    있을 리 없다. <성검>이 사라졌다. 한 손이 급한 시점에 헌터라는 귀한 자원을 낭비할 리 없다. 자신이라도 그럴 터였다.

    “생포해. ……최대한 빠르게. 불가능하면 죽여도 좋아.”

    “예, 리더.”

    팀원들이 적을 제압하는 동안 다완 검사는 연락망의 모든 헌터에게 위치를 쏘아 보냈다.

    평범한 작전이라면 이들이 오기를 기다렸겠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지원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

    적들을 거꾸로 묶어 두고 그들은 위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이미 외부의 침입을 허용한 건물이다. 혹시나 해서 <추적>을 시도하자, 스킬은 발동됐다. 스킬을 사용한 팀원이 앞장섰다.

    ‘반응이 있다.’

    성검은 이곳에 있다. 확실해졌다.

    범인은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제발.’

    시체라면 걸어오는 길에 지긋지긋하게 봤다. 그들은 늦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부엌 층에 도달한 순간…….

    앞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벽이 무너졌다! 보호복을 입은 누가 봐도 수상한 놈들이 어딘가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총구 앞에 있는 건 흰옷을 입은 주방 직원들이었다.

    다완 검사는 ‘기희윤 팀’의 무기로 제출된 마정석 총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격발 장치가 눌리면 늦는다.

    그들은 늦었다.

    이미 총은 쏘아졌고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이단우가 총구 앞으로 뛰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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