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가장 먼저 이상을 알아챈 사람들은 건물 안의 고용인들이었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건물이라고 일하는 사람이 전부 헌터일 리 없다. 관리인부터 시작해서 요리와 청소, 잡무를 맡아 보는 인원은 죄다 비각성자였다.
건물 자체가 튼튼한 데다 한 층의 충격을 다른 층으로 전달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쿵!
‘……?’
쿵……!
‘……지진?’
다음 식사를 준비하던 주방 직원이 말했다.
“바닥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정부 청사는 지진이 나도 안 흔들린다잖아.”
이 건물이 정부 청사는 아니었으나 민간인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정부 주요 시설이면 뭐 비슷한 거 아니겠는가?
그들은 비밀 보호 서약을 하고 헌터들과 함께 건물에 갇힌 처지였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사명감도 갖고 있었다.
<성물 쟁탈전>을 치르는 예비 영웅들이 모인 자리다. 최상위 헌터들을 보호하는 건물에 내진 설비조차 되어 있지 않을 리 없었다.
대포로 쏴도 안 무너질 건물이 울리고 있었으나 그들은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이 건물에 문제가 생길 리 없다. 설령 생긴다 해도, 누군가 그들에게 알려 주지 않을 리 없다.
그들은 이 건물에 있던 헌터들이 다 빠져나간 상태라는 걸 몰랐다. 그들에게는 <성검>이 실종됐다는 정보조차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쿵!
“꺄아아악!”
천장이 무너지고 위에서 파편과 함께 쏟아진 사람을 보고서야 그들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발딱 일어난 남자는 머리를 털고 얼굴을 소매로 닦았다.
“아, 죄송해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서 주방 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던 걸 멈췄다.
‘침입자가 아닌가?’
남자가 두 손을 모았다.
“나쁜 사람이 절 쫓고 있어요. 살려 주세요.”
“……?”
“아, 왔다.”
쿵!
“돌려줘!”
“꺄아아아악!”
붉은 피부가 찰흙처럼 뭉개진, 괴물 같은 침입자가 직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직원들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으나 갈 곳이 없었다. 냄비가 엎어지고 가스레인지에 누군가의 위생 모자가 걸려 불이 붙었다. 아비규환 속에서, 이미 남자가 그들 뒤로 숨어 버린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돌려줘!”
침입자가 외쳤다. 그가 든 검에 불길한 빛이 모여들었다. 검신이 피처럼 붉었다. 침입자의 두 눈도 핏줄이 터져 새빨갛게 번들거렸다.
직원들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마력도, 타인의 살기도 느낄 수도 없었으나 남자가 그들을 죽이리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을 것이다. 공포에 다리가 풀리고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그때 누군가 침입자 위로 떨어졌다.
“엎드리세요.”
“……!”
‘차우원!’
그 차분한 목소리와 얼굴이 직원들에겐 익숙했다.
그들은 <성검 쟁탈전>이 열리는 건물에서의 한 달 넘는 감금을 수락하고 제 발로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다른 방법으로 <종말> 막기에 동참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그들이 영웅 후보의 신상을 모를 리 없다.
직원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몸을 숙인 순간, 차우원의 검이 침입자를 날렸다.
“……!”
직원들은 헌터의 활약을 눈앞에서 볼 일이 없었다. 미디어에서 보여 주는 영상이나 훈련 영상 등으로 헌터의 힘을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간혹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린 사람들이나 목격할 수 있을까.
헌터가 그들을 보호하고 세상을 지킨다는 말은, 머리로만 알고 있는 말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들은 피부로 체감했다.
쾅!
침입자의 검이 차우원을 막아 냈다. 검과 검이 부딪쳤을 뿐인데 직원들은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몸이 의지와는 관계없이 부들부들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눈을 깜빡일 수조차 없다. 시야에서 움직임을 놓친 순간 목이 남아날 것 같지 않다.
쾅, 쾅, 쾅!
연이어 두 사람이 격돌했다. 그사이 두 사람은 위치를 바꿔 차우원이 직원들을 등지고 있었다.
그가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차우원의 검이 부르르 떨리며 공명하는 소리가, 벽에 붙어 있던 직원들에게도 들렸다. 귀가 아닌 몸으로 들리는 듯한 소리였다.
맞은편의 침입자는 검에서 줄기줄기 붉은 아지랑이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의 붉은 검도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서, 직원들은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이토록 누군가를 마음 깊이 응원해 본 적이 없다.
‘제발.’
차우원과 침입자가 격돌한 순간…….
푹!
현장의 모두는 꿰뚫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낄 만큼 강렬한 장면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누군가가 침입자의 어깨를 뚫었다!
침입자를 찌른 헌터가 바닥에 구르듯 착지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날려 흰 이마를 드러냈다.
섬세한 인상을 주는 입술은 꾹 다물려 있고 대조적으로 강렬한 눈은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다.
‘이단우 헌터!’
직원들은 심장이 뛰었다.
차우원 헌터가 있는 곳에 이단우 헌터가 함께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은 살았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으아아아악!”
이단우 헌터의 검에 정확히 꿰뚫려서, 침입자는 어깨 아래 팔을 잃었다.
처음으로 침입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팔과 함께 붉은 검이 날아갔다!
이단우가 돌아보고 있던 건 그것이었다. 그가 경고했다.
“피해!”
낙하지점에 있던 직원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러나 한 명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맨 처음 천장에서 떨어졌던 남자였다. 옆에 있던 영양사가 놀라서 남자의 손목을 잡아채 함께 도망가려 했지만, 손은 허공을 스쳤을 뿐이다.
쾅!
검이 떨어진 곳이 깊게 파였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했다.
영양사는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남자는 아슬아슬하게 피한 듯했다. 크레이터 옆에 얌전히 서 있던 남자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바빠도 챙길 건 챙겨야지. 놓칠 뻔했다.”
남자는 몸을 숙이더니, 발치에 떨어진 팔목을 밟고 검만 손으로 잡았다.
여전히 검은 침입자의 팔이 쥐고 있는 상황.
검을 빼내기 위해 남자가 손에 힘을 줬다.
파지직!
소름 끼치는 광경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순간 영양사는 검이 거부하는 것을 봤다. 남자는 감전이라도 당한 듯 진저리 치다가 검을 놓쳤다.
“악!”
선택받지 못했다.
영양사는 헌터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저게 뭔지 모를 수는 없었을 터였다.
‘아티팩트가 사용자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곳은 <성검 쟁탈전>이 열리는 건물이었다. 저런 악랄한 침입자들이 쳐들어와 강탈하려는 아티팩트를, 그녀는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성검?”
영양사는 무심코 말했다.
그리고 머리로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 성검이 저렇게 불길한 물건일 리가…….
그러나 다음 순간 이단우가 뛰어들었다.
그가 검을 쥐었다.
“……!”
영양사는 무심코 ‘안 돼’라고 외칠 뻔했다. 남자의 몸이 지져지던 모습이 망막에 남아서였다.
그러나 거부 반응은 없었다. 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단우의 손에 안착했다.
침입자의 손에서, 그 검은 불길하고 끔찍한 무언가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사방에 피를 뿌리는 듯한 흉흉한 기운이 한순간 빨려 들어가듯 사그라들더니, 검은 찬란한 빛을 뿌렸다.
직원들은 전율을 느꼈다.
푸른 검에 신성한 빛이 모여들었다.
검이 힘을 못 이기고 공명하는 광경은 이전과 같았는데도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지 않았다.
<성검>의 주인이 그들을 해칠 리 없었으니까.
* * *
도주한 기희윤을 따라 <성검>을 든 남자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를 쫓다가 주방 층에 다다랐을 때 이단우는 선택해야 했다.
기희윤은 사람들 사이로 숨었다.
그를 찾거나 <성검>을 회수하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남자가 눈앞의 모두를 베어 버리려 들어서 실은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기희윤을 버리자.’
단우는 눈을 깜빡이는 동안 결정했다. 그리고 차우원에게 말했다.
“내가 붙들 테니까, 넌 <성검> 빼앗아.”
‘소유권을 가져와야 한다.’
차치원이 이번에도 사고를 쳐서 이단우는 확신했다.
성검의 주인이 되는 것과 성검의 시험을 통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성검이 누군가를 주인으로 인정했을 때, 성검은 누가 자신을 만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차우원이 성검의 주인이었을 때.
그때는 상대가 성검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성검은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온전히 차우원의 것이었다.
성검은, 그가 죽을 때까지 신의를 바쳤다. 그가 스스로 죽기로 결정했을 때는 그가 선택한 상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인이 정해지면 누구든 성검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차우원이 성검을 잡기만 한다면.
단우는 대답도 듣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두 걸음도 가기 전에 뒤에서 잡혔다.
차우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단우야, 내 말은 너한테 비중이 없지.”
‘뭐…….’
차우원이 이단우를 앞질러 갔다.
“반대로 가자. 네가 해. 틈 만들게.”
차우원이 주방으로 뛰어들었다!
‘이 자식은 왜 세뇌가 안 되지?’
단우는 속이 탔다!
이단우는 과거 차우원 명령에 말로만 반발했는데, 차우원은 아직도 말을 반만 들어 먹고 있다.
그러나 역할은 주어졌다. 작전 수행 중에 엇나가는 법을 이단우는 배우지 못했다.
남자에게는 차치원처럼 뻔한 약점이 없었으나, 차우원은 없는 약점도 만들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가 틈을 만들겠다고 하면 틈은 생긴다.
‘지금.’
차우원이 마력을 끌어모았다. 생명체라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강대한 마력이 모여 단우는 피부까지 찌릿찌릿했다.
<성검>을 든 남자가 본능적으로 공격을 받아쳤다.
그러나 막을 수 있는 궤도가 뻔했다. 창의력을 발휘하기엔 차우원의 검이 너무 빨랐다.
‘……이 새끼 어깨 반 잘렸잖아.’
차우원이 이단우 흉내 내면서 썰어 둔 어깨는 이미 반쯤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단우는 남자의 어깨를 날려 버렸다!
성검이 날아간 방향은 좋지 않았으나, 단우는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기희윤이 성검의 시험을 통과할 리가 없다. 기준이 발바닥에 가 있는 검이라도 최소한의 쓰레기는 걸러 낼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기희윤이 성검에 손을 뻗는 광경은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스승님의 무덤을 도굴해, 역겨운 짓을 저지른 그날을…….
단우는 성검을 쥐었다. 한때 몸의 일부분 같던 검은, 그의 손에 들어온 순간 가공할 마력을 그에게 다시 제공했다.
피를 따라 빠르게 도는 마력과, 그 마력이 주는 고통이 단우는 익숙했다.
“아, 세상에, 단우야…….”
성검에 모여든 가공할 마력이 제힘을 못 이기고 스스로 빛을 뿜어내, 그 앞에 쓰러져 있던 기희윤의 얼굴까지 밝게 비췄다.
기희윤은 희열에 들떠 웃고 있었다.
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탐나는 걸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이단우는 그가 영원히 정신을 못 차리게 해줄 계획이었다.
‘미친놈.’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