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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22화 (122/170)
  • 122.

    자길 구해 줘야 할 놈이 포기하는 소리를 지껄여서, 당황한 은퇴 길마는 버둥거리며 뭐라고 외쳤다.

    ‘안 들린다.’

    그러나 단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설마. 범죄자를 벌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시려는 겁니까? 하지만 어떻게 제가 감히…….”

    “……?!”

    “……?”

    기희윤까지 순간 은퇴 길마를 쳐다봤다.

    단우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영웅이십니다. 그 뜻은 잊지 않겠습니다.”

    동시에 단우는 몸을 은퇴 길마에게 붙였다.

    이단우가 인질 목숨에 관심 없는 미친놈처럼 굴어서, 기희윤은 인질을 버릴지 자기 몸부터 빼낼지 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이 상황의 정답은 ‘인질을 방패로 껴안고 자기 몸은 빼낸다’였으나…….

    ‘실전 한 번 안 뛰니까 그 능력 갖고도 얼타는 거 아니야.’

    단우는 이를 악물고 운동 에너지를 한 점으로 모았다.

    검 끝이 은퇴 길마의 배를 뚫고 그대로 기희윤을 뀄다.

    “헉…….”

    기희윤의 눈이 커졌다.

    ‘급소는 피했다.’

    헌터쯤 되는 인간들이 쇼크사할 부위가 아니다. 은퇴 길마를 정말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단우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검에 몸이 꿰뚫린 놈도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우는 그대로 검을 놓고 팔을 뻗어 기희윤의 얼굴을 잡았다. 도망칠 수 없게 단단히 붙들고 회로를 따라 맹렬하게 돌던 마력을 팔로 모았다. 뼈까지 녹아 버릴 듯한 마력이 압축되고 증폭돼 기희윤의 머리통으로 향했다.

    ‘죽어.’

    피가 번진 입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는 기희윤이 보이더니…….

    쾅!

    이단우는 뒤로 날아갔다.

    “…콜록!”

    ‘이 개새끼, 지 몸 지키려고 얼마를 처바른 거야.’

    먼지 속에서 바닥을 몇 바퀴 구르고 이단우는 벌떡 일어났다. 골이 울렸으나 중심을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차우원 쪽의 마력 반응이 흐트러진 게 더 신경 쓰일 지경이다.

    ‘어딜 한눈파냐.’

    “앞에 봐!”

    “그러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차우원은 그렇게 답했으나 이단우를 쳐다보고 있어 봤자 다 같이 몰살행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듯했다.

    그는 한번 호흡을 잡더니 수비적인 자세를 공세로 바꿨다.

    그의 손에서 <육예>의 형태가 쌍둥이 검 <육영>과 비슷한 가느다란 검신으로 변했다. 그는 상대가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빈틈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푹, 푹, 푹, 푹, 푹!

    ‘……!’

    차우원의 검은 중검이다. 걸음마다 결정타인 놈이 이단우 흉내를 내고 있었다.

    ‘버티면 알아서 터질 걸 왜 상대하고 있냐.’

    단우는 생각했으나 실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못 미덥다는 거 아닌가.

    본인은 <성검>을 상대하고 있으면서 범죄자 하나 못 잡는 이단우가 더 위태로워 보이는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약한 힘을 쥐어짜, 한 점을 공략하는 건 이단우의 특기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짓이 그 정도였으니까.

    차우원은 아니었으나 지금만은 이게 효율적일지도 몰랐다.

    쾅!

    <성검>이 지나간 자리가 다시 깊게 파였다.

    남자는 통증을 못 느끼는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몸이 마력 과포화로 터질 듯 일렁이는데, 죽겠다고 바닥을 구르지 않는 것부터 이미 정상이 아니다.

    공격을 피해 낸 차우원이 남자의 어깨를 후벼 팠다.

    ‘어깨를 끊어 행동불능을 강제한다.’

    그건 이단우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단우에게 검을 가르친 건 과거의 차우원이다.

    스물네 살의 차우원이 가르친 검이, 스무 살의 차우원의 몸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단우는 기분이 이상했으나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를 날려 보낸 건 호신용 아티팩트의 즉발 효과였다. 대상을 정해진 범위 밖으로 튕겨 낸다.

    기희윤이 귀 뚫고 박아 넣은 장신구나 목과 손가락에 주렁주렁 달아 놓은 것들이 다 그따위로 제 몸 살릴 용도였다.

    좀비처럼 살아난 기희윤이 비척이며 일어났다. <육영>에 배가 뚫린 전대 길마를 발로 차 밀어내며 그가 말했다.

    “아……. 세상에. 전대 영웅 죽이고 그 화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네 목숨이나 걱정해.”

    이단우는 시야가 두 겹이었다. 스스로를 한 대 쳐서 눈을 멀쩡하게 돌리고 싶었으나, 기희윤에게 그 꼴을 보일 순 없었다.

    “오늘 되는 일이 없네. 내가 인질을 죽일 리가 없잖아, 쓸모도 없는데. 난 보상 없는 수고는 안 한단 말이야.”

    기희윤은 피 흐르는 복부를 손으로 막았다. 그렇다고 막힐 리 없어서 손아래로 옷이 젖어 들었다.

    “진짜 영웅을 배신해서, 자기 능력도 다 잃은 인간을 내가 뭐 하러 공들여 해치겠어?”

    “뭐?”

    ‘저 새끼 진짜 열받았잖아.’

    이단우는 기희윤이 정색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긴 했다. 그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화를 내고 있었다.

    “이상하다 했어. 사람이 늙는다고 스킬까지 늙는 게 말이 돼? <공간 전이>만 해도 원래 허접한 스킬이 아닌데, 제약이 덕지덕지 붙어서 뭐 쓸 데도 없었다니까! 아, 그래. 단우야. 내가 재미있는 얘기 들려줄까. 너네 능력 너무 허접하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얻는 것도 없다고 내가 슬퍼했더니, 이 사람이 ‘능력 약해진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뒤로 능력치가 반 토막 났다고.”

    기희윤이 은퇴 길마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그게 말이 돼? 더 캐 보니까 말하더라, 사실 차문경 죽이고부터 그랬다고!”

    이단우는 손을 떠난 <육영> 대신 예비 검을 들고 있었다. 그 검으로 누굴 찔러야 할지 순간 결정하지 못했다.

    “이 사람 탓 맞았잖아? 내가 노력해도 원하던 스킬을 못 가진 게. 전대 영웅들도 꽤 한단 말이야, 감탄했어! 팀장 죽이고 나와서 밖에서는 존경받으면서, 그 팀장의 자식에게 뻔뻔하게 보호도 다 받고.”

    “개소리 마.”

    이단우는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그는 차우원에게 말하고 싶었다.

    ‘듣지 마.’

    “내가 이런 거짓말을 왜 해? 나도 피해자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전대 영웅 저택 같은 덴 안 털었지. 위험하잖아. ……정말 이런 걸 살리게?”

    기희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죽여 버리는 게 어때. 나랑 싸우다 휘말렸다고 하면, 다들 믿을걸!”

    기희윤 발밑에서 은퇴 길마가 고개를 저었다. 온 힘으로 버둥거리면서도 눈은 못 마주치고 있다.

    이단우는 직감했다.

    ‘진짜다.’

    기희윤은 어느 때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새끼였으나, 이건 거짓말이 아니어서 이단우는 아찔했다.

    그는 은퇴 길마 개자식이 무슨 짓을 했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용의 눈>을 옛 동료에게 넘기지 않았을 때부터 이단우는 그가 쓰레기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은퇴 길마는, 차우원에게는 부모님의 동료였다. 배지슬과 어릴 적 친구였을 정도로 차우원은 저 집안을 오래 알고 지냈다.

    ‘뒤로 빼자.’

    이단우는 차우원을 돌아봤다. 동요하는 그를 커버하러 달려들 셈이었으나 차우원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

    “이상한데. 단우야, 잠깐만 비켜 봐.”

    그가 말했다.

    여러 차례의 충돌로 기둥이 다 사라진 층은, 온전히 강화벽의 힘만으로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모든 게 무너진 폐허 같은 광경을 뚫고 <성검>을 든 마력 덩어리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건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과도한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망가져, 남자의 몸은 반쯤 녹은 양초 같았다. 주변의 공기가 남자의 마력으로 인해 일그러졌다.

    ‘막지 않으면 베인다.’

    이단우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차우원은 비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면 이단우는 따랐다.

    솜털이 곤두설 만큼 강력한 마력이 그의 옆을 총알처럼 스쳐 지나갔다.

    “……!”

    <성검>을 기희윤에게서 갈라놓기 위해, 차우원과 이단우는 둘 사이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비켜서서 남자는 시야가 트였다.

    그는 목표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목표물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던 것이다.

    방해물이 사라지자 남자의 살의는 한곳으로 모였다.

    그는 한 걸음 옆의 이단우를 돌아보지도 않고 기희윤에게 달려들었다.

    “아 이런.”

    ‘영웅 기질 있는 도련님 같은 게 아니었잖아.’

    기희윤은 깨달았다.

    그가 차문경을 입에 담았을 때 차우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흐트러진 건 이단우였다.

    그러나 차문경의 아들은 차우원 도련님 아닌가?

    그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읽어 내서, 기희윤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와, 뭐 저런 게…….’

    부모의 죽음에 얽힌 비사를 들은 착하고 정의로운 아들이 동요하지 않을 수 있나?

    성실한 얼굴로 대외 활동을 잘하고 있어서 깜빡 속았다. 저건 그가 생각하던 종류의 도련님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속고 있겠지만.

    기희윤은 차우원이 부모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바로 이단우를 쳐다봤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단우가 동요할 걸 알고 그는 가장 먼저 팀원을 챙겼다…….

    ‘아니.’

    이 팀은 확실히 끈적끈적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마력이 자신을 노리고 날아들어서 그는 더 흥미진진해할 시간이 없었다.

    심장 쫄깃한 공포를 느끼며 기희윤은 <공간 전이>를 시전했다. 정신계 헌터인 그와 애초에 상성이 안 맞는 데다, 원본의 품질이 몹시 망가진 상태로 카피된 이 스킬은 이번에도 그의 목숨을 살리기는 했다.

    그러나 정말이지 제약이 많은 스킬이었다. 주변에 마력 간섭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거리 조절도 잘못되지 않았는가?

    쿠구궁……!

    <성검>이 가른 벽이 무너졌다. 마정석을 박아 넣은 강화벽은 연이은 마력의 충돌을 버텨 냈다. 그러나 자신을 직접 노린 공격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뻥 뚫린 벽으로 허공이 보였다. 살이 에일 만큼 차가운 바람이 차우원과 이단우를 때렸다.

    ‘이 건물 오래 못 버틴다.’

    건물에는 자가 복구 스킬진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나, 복구할 시간도 없이 <성검>이 다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 번 더 치면 중심 잃은 젠가처럼 건물 자체가 주저앉으리라는 확신이 드는데…….

    “아야야…….”

    아래층에서 얼빠진 신음이 들렸다.

    ‘저 미친놈이.’

    단우는 핏줄이 섰다.

    “돌려줘!”

    녹아내리는 남자가 외쳤다. 그가 아래층을 무너뜨리고 기희윤을 쫓아 내려갔다.

    이단우와 차우원은 눈을 마주쳤다.

    ‘죽겠다…….’

    그러나 별수 있겠는가?

    <육영>을 회수하고, 그들은 즉시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이 건물의 이상을 안팎에서도 알아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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