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21화 (121/170)
  • 121.

    단우는 움찔했다.

    ‘알아챘나?’

    그는 체내를 도는 피가 이제 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과열된 몸이 쓰리고 아팠다.

    상태를 들켰나 싶었는데 차우원이 말했다.

    “<블링크> 쓸게.”

    ‘아니, 모른다.’

    차우원은 착실한 팀원 상태였다. 과거의 이단우가 그랬던 것처럼.

    팀장이 말하면 일단 따른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적어도 현장에서는.

    ‘세뇌한 보람이 있다.’

    ‘얘가 왜 이렇게 말을 잘 듣지’ 하고, 전부터 미심쩍게 생각했던 부분을 이단우는 확신했다.

    스무 살의 차우원은 순진했다. 이단우를 좋아한다고 착각할 만큼.

    그는 군말 없이 차우원의 목을 끌어안았다. 의심받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이 몸으로 차우원의 이동 속도를 따라잡는 건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차우원의 손이 단우의 몸을 훅 들어 올렸다. 그에게 등과 허벅지가 안긴 채 단우는 주변이 순식간에 바뀌는 광경을 봤다.

    지나온 광경이 뚝뚝 끊기는 필름 영사처럼 되돌아가더니 그들은 다시 건물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건물은 인식 방해 스킬 때문에 외부에서는 층수도 정확히 알기 힘든 구조였다. 안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알기는 힘들었는데,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이동 장치가 역시 인식을 방해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서였다.

    가장 직관적인 이동 수단이 계단이어서, 이단우와 차우원은 취조받던 방에서 경기장으로 내려갈 때 두 발로 달렸다.

    그 과정을 차우원은 역으로 실행했다.

    이단우는 숨이 멎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서 차우원은 사방으로 마력을 뿌리고 있었다. 그의 마력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주변을 엮어 마력 반응을 읽어 냈다. 장애물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달리는 현재 층과 그 아래까지, 그의 마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듯했다. 그가 눈으로 찾는 것을 그의 마력이 보조해 수색하고 있다.

    차우원은 그걸 거의 무의식중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단우처럼 마력을 그대로 뽑아 쓰는 정신 나간 인간은 또 없었으니까.

    이단우는 저런 모습을 예전에도 본 적 있었다. 마력을 마력 자체로 운용하자는 자신의 발상은 미친 것이 맞았으나, 그게 마냥 미친 짓이 아니라는 걸 과거의 이단우는 차우원을 보고 확신했으니까.

    그가 의식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은 일일이 의식해서 계산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찾았다.”

    차우원이 천장 어딘가를 쳐다봤다. 이단우가 눈을 깜빡인 순간, 그들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층에 도달했다.

    차우원의 발이 먼지조차 피어오르지 않게 바닥에 착지하고…….

    가장 먼저 들린 건 소리였다.

    “제발, 제발, 다른 뭐든 좋으니까……. 원하는 걸 말해. 뭐든 준비하겠네. 자네를 쫓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어! 목숨을 걸고, 당장 서약서를 써도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테니까…….”

    “조용히 좀 해봐. 고민하고 있잖아. 내가 요즘 슬픈 일이 많았어. 이렇게 불행해도 되는가 싶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오늘 좀 빛을 보나 했는데 나를 이렇게 실망시키다니.”

    연극적인 말투 끝에 한숨이 들렸다.

    ‘기희윤.’

    차우원과 눈이 마주쳤다. 이단우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고 한 바퀴 돌렸다.

    적이 있는 건 반대편이다.

    계단 층은 문으로 해당 층과 분리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은 계단에서 가장 먼 벽, 끝과 끝이다.

    차우원이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갈게’라는 의미여서 이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동기 하나 없는 이단우가 접근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여기서 기희윤과 인질이 있는 곳까지 바로 접근할 수단도 없었다. <블링크>의 가동 범위가 아니다. 이단우는 그 스킬을 가져 본 적도 없는데도 차우원이 그를 안고 잘도 날아다녀서 거리가 눈에 익을 정도였다.

    방법이 필요하다.

    “빛! 좋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어. 나를 가지고 협상한다면, 천금이 부럽겠는가? 수배령이 두렵다면 물려 줄 수도 있네. 나, 내 가치를 내세워. 그러면 정부에서도 자네들을 쫓지 못할 거야.”

    ‘좀 닥쳐.’

    이단우는 신경이 곤두섰다. 이림 은퇴 길마는 일말의 침착함을 되찾아 협상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겁에 질린 테러리스트 같은 게 아니었다.

    물론 기희윤이야 겁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많은 새끼이긴 했다. 아니고서야 사람 하나 믿지 못하고 주변을 인형으로만 채워 둘 리 있겠는가?

    그러나 기희윤이 겁먹는 부분은 일반인과 다른 지점이었다. 은퇴 길마도 순위를 다퉈 볼 만한 이기적인 새끼였으나, 기희윤 놈이 원하는 바를 읽어 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

    은퇴 길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들린 건 바닥을 긁는 듯한 마찰음뿐이었다.

    ‘아 미친…….’

    이단우는 목덜미까지 땀에 젖었다. 이림 은퇴 길마야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었으나 그는 배지슬의 아버지였다.

    과거에도 은퇴 길마는 죽지 않았다. 이후 공식적으로 어딜 나선 적이 없었으니 사회적으로는 반쯤 죽은 사람이었지만…….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은 배지슬이 느끼는 충격 정도가 다를 터였다.

    ‘수가 없다.’

    이단우는 차우원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

    차우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손바닥 아래가 두근거린다 싶더니, 순종적인 팀원 차우원은 단우가 힘을 주는 대로 스르르 뒤로 밀려났다.

    차우원이 완전히 벽에 밀쳐져, 문 뒤에 가려지리라 확신이 든 순간 이단우는 움직였다.

    철컥.

    “……!”

    ‘이쪽 봐라.’

    그가 주목을 끌어야 차우원이 경계받지 않는다.

    단우는 대놓고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벽에 붙어서 경련하는 이림 은퇴 길마와 그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성검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날뛰던 비서는 기희윤 품에 안겨 있었다. 기희윤이 그의 머리를 어린애처럼 가슴팍에 안은 채 이마에 손을 대고 있어서 이단우는 상황을 파악했다.

    ‘<인형화> 파생 효과.’

    쓸 만한 스킬에는 부가 효과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 마련이었는데 기희윤의 정신계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인형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상대에게, 정신계 상태 이상을 강제로 유발하는 파생 효과가 붙어 있는 것이다.

    ‘상대의 머리를 손으로 접촉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다.’

    지속 시간이 짧고 반드시 신체 접촉이 필요하며, 시전 시간도 길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 모든 단점을 상회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저게 이단우가 기희윤을 <최후의 던전>으로 끌고 들어간 이유였다.

    이단우는 머리가 익었다.

    ‘저 새끼, 몸도 잘 쓰잖아.’

    이단우는 재능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놈들을 보면 참을 수 없었는데 상대가 기희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현장 한 번, 전투 훈련 한 번 안 뛰어 본 놈이 최상위 검사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만 해도 어처구니없긴 했다. 그러고서는 이성을 잃은 상태라고는 하나, 결국 <성검>을 든 놈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게 아닌가?

    ‘손 떼면 다시 날뛰겠지만.’

    <성검>의 시험을 통과할 수준의 헌터를 정신계 스킬로 지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희윤은 잘 쓰는 혀로 한번 넘어뜨린 모양이었으나, 이미 풀린 스킬로 다시 상대를 세뇌하기란 낙타를 바늘구멍에 넣는 수준의 일일 터였다.

    ‘성검부터 쳐낸다.’

    화끈거리는 혈관에 <육영>의 마력을 들이붓고, 이단우는 한 바퀴 돌린 마력을 바로 다리로 보냈다.

    발을 박찬 순간 그의 몸은 <성검>에 도달했다.

    그러나 서로 접근해야 하는 거리 자체가 달랐다.

    기희윤이 비서였던 남자를 내던지는 쪽이 먼저였다. 스킬의 영향에서 벗어난 남자는, <성검>을 들고 목표랄 것도 없이 팔을 휘둘렀다. 이단우는 검신이 강화 기둥을 두부처럼 베는 모습을 봤다.

    오싹한 광경이었으나 이단우는 목표를 이뤘다.

    ‘됐다.’

    <성검>은 기희윤에게서 떨어졌다.

    쾅!

    허공에서 나타난 차우원이 <성검>을 막아 냈다. 주고받는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여파가 연신 단우를 강타했다.

    이성을 잃은 남자는 사방에 마력을 뿌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목적이 있다면 파괴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듯한 폭주여서 건물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차우원이 파고드는 남자를 피하자, 남자의 <성검>은 건물의 한쪽 벽면을 날려 버렸다.

    쾅!

    우득, 후드득…….

    “……!”

    무슨 수를 썼는지 비명도 못 지르게 된 은퇴 길마는, 바닥에 붙어서 다 부러진 손톱으로 벽을 긁어 대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질 듯한 공격이긴 했다.

    그러나 성검이 무한히 마력을 증폭시키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이단우가 <마력 촉진제> 따위를 물처럼 먹어 댈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남자의 몸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저건 곧 끝난다.’

    단우는 잴 것도 없이 기희윤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성검>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을 때.’

    죽여 버린다.

    푹!

    “……!”

    단우의 검이 벽을 뚫었다. 마지막에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은퇴 길마까지 뚫렸다.

    “휴!”

    ‘이 새끼가…….’

    단우는 눈이 돌아갔다. 은퇴 길마 뒤에 숨은 기희윤이 말했다.

    “단우야, 단우야! 우리 협상하자. 나 이 사람과 상성이 안 좋아. 너 줄게! 인질 데려가고, 난 놓아주면 되겠다!”

    ‘S급 범죄자가 지랄한다.’

    “협상의 기본도 안 된 소리 하고 있네. 조건이 안 맞잖아…….”

    “무슨 말씀. 이쪽은 전대 영웅이야, 저울이 더 무겁지!”

    기희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껄였다. 그러면서 이단우의 공격 방향으로 은퇴 길마를 끌어당겼다.

    “……!”

    살아 있는 방패 효과가 좋아서 이단우는 공격 범위가 제한됐다. 검이 겨드랑이 아래를 스쳐 지나가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변한 은퇴 길마가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아, 이런. 조심해야지. 죽일 뻔했네!”

    기희윤이 탄성을 냈다.

    이 새끼가 개같이 굴어서 이단우는 마음을 정했다.

    ‘그냥 같이 뚫자.’

    단우는 표정을 바꿔 외쳤다.

    “제기랄, 이림 전 길드장님. 구해 드리고 싶었는데 제 능력으로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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