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20화 (120/170)

120.

이단우는 차우원이 열어 주는 문을 통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뭔데.’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공간에 그들이 난입한 상황이었다.

주목시킬 필요도 없이 이미 모두가 그들을 돌아보고 있다.

“<성검> 사라졌습니다.”

이단우는 말부터 던졌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그는 질문이 돌아올 걸 예상했으나 헌터들 가운데 있던 다완 검사는 다른 것을 물었다.

“그 일이 현재 발생한 외부의 테러와 관계된 일입니까?”

“무슨 테러요?”

이단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완 검사가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뭘 읽는 것처럼 말했다.

“이동 경로를 따라 피해 발생 지속. 추가 사상자 스물일곱. 범인 신원 추정. S급 범죄 조직.”

“기희윤 팀!”

이림 검사가 외쳤다. 현재 활동 중인 S급 범죄자라면 그들이 정부 헌터들과 공조하게 만든 상대밖에 없다.

‘성검 폭주했다.’

이단우는 깨달았다.

기희윤은 피해를 막을 성격이 아니다. 휘말려서 자기 피부에 생채기라도 나면 그놈이 어떻게 참겠는가?

기희윤은 절대로 자신이 나서서 싸우지 않았는데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다. 그놈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성검이 폭주한 순간 내던지고 가장 먼저 도망쳤을 놈이다.

‘아니.’

신원 추정을 당하고 있을 정도니 아직도 성검에 미련을 못 버린 채 주변을 맴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보신 욕구 이상으로 욕심이 들끓는 놈이라 어느 쪽이든 놀랍지 않았다.

뭐가 됐든 살아 있는 재앙이 밖을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단우는 아찔했다.

이 자리의 모든 헌터는 건물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비밀을 지키도록 서약했으나, 밖에서 일어나는 참극은 그들이 목숨 걸고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었다.

‘밖에서 날뛰는 게 성검이라는 사실은 들킬 수밖에 없다.’

비밀 숨기자고 손 놓은 채 공무원들에게 알아서 수습하라고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성검 주인에 대해 불신을 사는 건 이미 어쩔 수 없고.’

이단우가 할 수 있는 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예. 그 새끼가 가지고 날뛰는 게 성검입니다.”

“잠시만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로 쟁탈전의 진행을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최고 보안 등급으로 보호 중인 성검이 무슨 수로 외부에 유출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감독관이 정부 소속 헌터들을 헤치고 나왔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저도 궁금한데 방법은 상사분께 여쭤보시고요. 전 정부 소속이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아니…….”

항의하려는 감독관의 말을 다완 검사가 끊었다.

“성검 때문에 피해 규모가 커졌군. 근래 가장 악명 높은 조직이라고 해도, 정예들이 막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길드 소속 헌터들은 정부에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하면 ‘그 말이 거짓말이구나’라고 믿는 사람들이어서 단우의 말에 도리어 신빙성이 생겼다.

“그럴 겁니다.”

“성검이 유출되었다는 말을 믿는 겁니까?”

정부 소속 헌터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갈 길이 먼데 사방에서 방해가 들어오고 있다. 이단우는 성질을 죽이고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믿고 말고 할 거 없이 사실이고요. 위층 난리 났는데 다녀오시든가요.”

그러나 이단우의 사교 기술은 통하는 법이 없어서 정부 헌터의 얼굴이 붉어졌다. 일촉즉발로 치닫는 상황을 차우원이 정리했다.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기희윤 팀과 충돌해서 방금 전까지 증언하다 내려오는 길입니다. 정부에서 ‘소란 없이 성검을 회수하겠다’고 약속하셔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망설였지만, 이미 피해가 극심하니까요. 저희가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을 듯해서요.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성물 쟁탈전>의 참가자이시고, 성검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인정받는 분들이시니까요. 성검 도둑에게서 성검을 되찾아올 권리가 있다면 그건 저희 몫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가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를 띄워 줘서 정부 소속 헌터들마저 허파에 잠시 바람이 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완 검사가 앞장섰다.

“그렇지. 그게 힘을 가진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 아닌가?”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현장직이었다. 던전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만히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기 십상이다. 위기 앞에서 ‘누가 안내해 주길 기다리자’는 판단보다 자신이 부딪혀서 정보를 얻는 부류들이어서, 길드 헌터들은 마음을 정했다.

‘나가자.’

뭐가 어찌 됐든 범죄 조직이 외부에서 참극을 빚고 있는데 그들이 이 안에서 노닥거릴 수 있겠는가?

차문경 이후 대부분의 우수한 헌터를 정부에 빼앗기던 관행은 사라졌다. 길드에 인재가 넘쳐 나서 정부에서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곳에는 정부 측과 길드 측의 헌터가 반반 비율로 선발되어 와 있었다.

양측의 수가 비등하다. 정부 소속 헌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길을 가로막는 게 아니고서야 나가려는 헌터들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정부 소속 헌터들도 혼란스러웠다.

‘막아도 되는 건가?’

다완 검사는 경력이 길었다. 오래 현장을 뛰어 온 헌터를 존중하는 건 정부 소속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외부에 말 옮기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조항을 우회한 건 그렇다 치고, 그가 이토록 심각한 일로 거짓 정보를 풀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막아서는 감독관을 뚫고 헌터들은 외부로 향했다. 그들은 건물 밖으로 나서려다 반대 방향으로 들어오는 헌터 관리부 차관과 마주쳤다.

차관도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차렸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상황 브리핑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다완 검사는 지나쳤다.

“믿을 수 없어.”

* * *

각종 통신 장애, 전파 방해, 이동 스킬 방어 등의 간섭 장치가 깔린 건물을 나서자 헌터들이 밀반입한 통신 기계들도 작동됐다.

그들은 피해 상황을 들으며 현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통화로 들을 것도 없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열 대가 넘는 구급차가 줄지어 지나갔다. 지나가는 길마다 무너진 건물과 분주한 힐러들이 보였다.

합계해 백 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숫자로 볼 때와는 달랐다. <종말>이 시작된 때로 돌아온 것 같다. 이단우는 어지러웠다.

앞장서서 이동 중이던 다완 검사가 연락을 받고 상황을 공유했다.

“이림 전대 길드장 행방불명. 범인들 도주.”

“…….”

이림 검사가 신음했다.

“……현장을 떠났다는군. 범인에게 이동 스킬이 있어. 이걸로 성검을 훔치고 탈출한 건가? 하지만 쟁탈전이 치러진 건물에 방비가 안 되어 있었을 리가…….”

“그거 망가졌어요.”

단우가 알렸다. 기희윤이 괜히 범죄 현장마다 추종자를 곰팡이처럼 늘리는 게 아니다.

제 신상에 조금도 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놈이, 남의 건물에 잠입하기 전에 무슨 짓을 하겠는가?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든다.’

내부인을 인형으로 만들어 이동 스킬 방어진부터 파괴한다.

다완 검사는 ‘공무원 새끼들,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은 이단우였고…….

이동 스킬까지 가진 범인을 근거리 딜러인 그들이 당장 추적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현장에 합류해 추적 스킬 보유자와 함께 범인을 쫓는 것이다.

“우리는 이대로 현장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각자 길드에 합류해 추적합시다.”

그가 순식간에 합의를 이끌어 내서 헌터들의 이동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각기 소속이 달라서 이들을 누구 한 명이 통솔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자기 길드를 대표하는 검사들인데 누구 말을 듣겠는가? 길드 차원에서 협력하는 게 옳은 상황.

‘안 돼, 늦어.’

그러나 이단우는 차우원의 팔을 잡았다. 차우원은 두말없이 속도를 늦췄다.

뒤로 완전히 빠진 그들을 헌터들이 지나치며 쳐다봤다. 이단우는 시선을 무시했다.

<성검>에 회로가 상한 채로 휴식 없이 <육영>의 마력을 돌려 댔더니 눈앞이 깜빡댔다. 속은 메슥거리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차우원이 잡힌 손을 쑥 빼내서 이단우는 넘어질 뻔했다. 그러나 차우원의 손이 반대로 이단우의 겨드랑이 밑을 잡고 그를 세웠다.

“괜찮아?”

“어.”

‘……안 이상해 보였어.’

이단우는 눈을 깜빡여 시야를 되찾았다. 그는 멀쩡히 서 있었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쥐꼬리만 한 마력을 잘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놈으로 알고 있다. 강울림의 신체 단련도 ‘저러다 울림이 잡겠다’고 한마디 하던 놈인데, 이단우가 어떤 기괴한 방식으로 마력 활용을 하고 있는지 들으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차우원이 몰라야 하는 사실이 한둘은 아니었으나, 이것만은 들킬 수 없었다. 이단우가 성적으로 쓰레기라는 것과 이단우의 몸이 쓰레기인 건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차우원이 의문을 느끼기 전에 단우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스킬로 추적하면 늦어.”

“이동 스킬로 거리를 뛰어넘으면 흔적이 안 남지. 추적 방향을 찾는 것부터 힘들다는 건 배운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있어?”

차우원은 알아들었다.

이림 전대 길마 저택 주변은 이미 헌터들이 그물처럼 깔려 있었다. 현장을 중심으로 추적망이 뻗어 나갈 건 자명했다.

그게 아니라도 이미 거리의 주요 거점마다 헌터들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떠나고 뒤에서 정부 요원들도 현장에 투입됐으니 일대는 숨을 곳이 없다.

과거 기희윤은 훔친 전대 영웅들의 스킬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비효율적이야.

‘인원 제한이 있다.’

이단우는 확신했다. 기희윤이 번거롭게 스킬 쓰는 꼴을 그는 눈앞에서 봤다.

그리고 아마도…….

‘거리 제한이 있거나 마력 가성비가 나쁘다는 거지.’

그렇다면 도주 범위는 좁혀진다.

기희윤 놈이 생각하는 방식이야 거기서 거기였다.

“방법은 모르겠고, 튈 만한 곳 하나 있잖아. 다들 방심해서 경계 안 돌고, 지금 헌터도 빠져나가서 텅 비었고, 지한테 한 번 뚫려서 다시 기어들어 가기도 쉬운 데.”

“설마 그거 <성물 쟁탈전> 건물이야?”

차우원이 탄식하듯 물었다.

‘다 알아들어 놓고 뭘 묻냐.’

“그런 데 또 있으면 말하고.”

“아니, 그럴듯하다. 단우가 그 사람을 잘 아네.”

‘뭐라는 거야.’

차우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니 팔을 벌렸다.

“단우야,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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