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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19화 (119/170)
  • 119.

    이단우는 문으로 다가가서 두드렸다.

    쾅쾅!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방금 전에 긴장하느라 까먹어서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얘기라면 실장님을 부르겠…….”

    턱!

    감시자는 문을 열자마자 이단우에게 입이 막힌 채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쓰러졌다. 고꾸라지는 그를 차우원이 받아 머리를 쳐 기절시켰다.

    또 다른 감시자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잠시 반응이 늦었다. 그 역시 멱살 잡혀 끌려 들어가 순식간에 기절했다.

    두 사람은 이단우와 차우원이 앉아 있던 자리를 각기 차지하게 됐다.

    말이 감시자지 그냥 정부 요원이다. 차우원과 이단우는 <성물 쟁탈전>에 두말없이 뽑힐 정도의 헌터로, 정부 요원 입장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두 헌터가 부탁받은 격리 조치에 자발적으로 응해 줘서 긴장도 않던 상황. 방심한 상대를 해치우기란 손쉬운 일이었다.

    이 방은 감시실도 아니어서 CCTV 따위도 없었다. 완전 범죄를 마치고 이단우는 차우원을 위해 변명도 급조했다.

    “우리가 사라지면 저 사람들도 지킬 사람 없어서 수색 임무에 동참할 수 있을걸. 이 시국에 인력 낭비가 웬 말이야?”

    “그거 맞는 말 같다.”

    차우원이 성실한 얼굴로 맞장구쳤다.

    그가 복도를 둘러보며 외부 마력 반응을 살폈다.

    “나가도 되겠다, 단우야. 아무도 없어. 어디로 갈까?”

    “쟁탈전 경기장.”

    누구보다 <성검> 수색에 앞장설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 * *

    한편 경기장의 헌터들은 자신의 경기가 끝나고도 남아 있었다. 경쟁자를 보기 위함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스스로의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자리를 뜬 헌터는 부상자들 뿐이다. 그 안에는 차우원에게 한 합에 패배한 상대도 있었으나, 그가 남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실례.”

    다완 검사는 이림 1공격대 검사에게 다가갔다. 그는 청연 소속 검사와 대화 중이었는데, 다완 베테랑 검사는 두 사람 모두에게 관심이 있었다.

    대화 중인 두 사람이 다완 검사를 보고 말을 멈췄다. 그들과 길드는 달랐으나, 현역으로 십 년 넘게 활동 중인 선배를 존중하지 않을 헌터는 거의 없을 터였다.

    그 선배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물어보러 왔을지도 그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완 검사의 1차전 탈락은 이곳에 자리한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그만한 명성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선배님.”

    “님자는 빼고 불러. 늙은이 같잖아. 얘기 좀 했으면 하는데. 시간을 빼앗아도 되나?”

    “편하게 말씀하세요.”

    청연 검사가 권했다. 그는 차우원의 활약에는 전혀 놀라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길드 마스터는 ‘내 제자가 차기 영웅이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길드원들은 팔불출이라고 고개를 내저었으나 차우원은 자신이 그럴 만한 실력자라는 걸 헌터 자격을 따기도 전에 증명했다. 못 말리는 스승의 말에 호승심이 동한 검사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것으로.

    패배한 헌터들이 부끄러움을 알았던 데다 차우원 자신이 자랑하지 않아서, 그 사실은 청연 내에서도 소문이 퍼지지는 않았다. 차우원이 헌터로서 명성을 얻은 뒤에야 하나둘 입을 열어서 근래 알려졌을 뿐이다.

    그러나 길드장이 평소 차우원 자랑을 너무 하고 다닌 탓에, ‘청연 놈들은 항상 저 소리지’라는 인식이 박혀 버려서 외부인에게 어필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청연 검사가 놀란 건 이단우였다.

    ‘대인전에 익숙하잖아.’

    검사를 상대하는 법을 아는 검이다.

    이단우가 강한 헌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함께 공략도 뛰어 봤으니까.

    그러나 대몬스터전과 대인전은 조금 다른 종류의 경험을 요구하지 않던가?

    이단우는 각성 이후 팀원들과 함께 2차 공략에 매진했다. 대몬스터전 경험은 짧은 시간 안에 훌륭히 쌓아 올렸으나, 대인전 경험이 압도적으로 적은 것이다.

    그 경험 차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재능과 노력.’

    재능은 그렇다 치고.

    이단우의 대련 상대를 해줄 수 있는 건 같은 팀인 차우원밖에 없었다. 차우원만 한 검사와 쉴 새 없이 검술을 닦았다면 그 노력은 또 얼마나 굉장했겠는가?

    우정으로 절차탁마한 두 사람이 아무래도 <성물 쟁탈전>의 가장 마지막 경쟁에서 붙을 모양이어서 그는 감탄하고 있었다.

    ‘우리 길드장님, 팔불출에 생각 없는 분처럼 보이셔도 안목 한번 훌륭하시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 이림도 마찬가지였다.

    이림 공격대의 분위기는 <리자드맨 밀림> 공략 이후 붕 떠 있었는데, <차우원 팀>의 활약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팀도 그런 식으로는 공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해냈다……. 어떤 공략보다 짧은 시간 내에 놀라운 성과를 거둔 공략이기도 했다.

    저 공격대는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최후의 던전>을 공략할 공격대는 저러할 터였다…….

    팀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이림 검사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가 그랬으니까.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들이 너무 젊은 게 문제였다. 재능은 질시를 불러오기 쉬웠는데, 이단우의 성격은 거기에 불을 끼얹었다.

    영웅팀의 역할은 <최후의 던전>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다. 인류의 희망이 되어 다른 헌터들이 스스로를 희생해 <종말 방어전>에 참전하게끔 이끌고, 시민들이 그들을 돕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차우원과 이단우가 숙소로 들어가지 못하게 잡았어야 하는걸.’

    그는 내심 혀를 찼다.

    이 자리에 두었다면 위광이라도 생기지 않았겠는가? 아니, 아니다. 오히려 시비가 붙어서 적만 만들었을지도…….

    다완의 베테랑 선배가 ‘이단우 걔는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느냐, 너희는 걔한테 예의범절도 가르치지 않느냐?’라고 말하면 뭐라고 변명해 줘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 선배는 사명감 있고 훌륭한 사람이었으나, 후배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악명이 돌았던 것이다.

    ‘잔소리가 많다고…….’

    그런데 다완 선배가 점잖게 말했다.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예, 선배.”

    “아무래도 성검의 주인은 그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지.”

    “예?”

    “다른 검사들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야. 나를 띄우려는 것도 아니고. 그런 졸전을 펼치고 스스로를 높이면 비웃음만 사겠지. 하지만 이단우 헌터는 훌륭하잖아. 이곳에서 나를 오 분 안에 패퇴시킬 검사가 더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오 분.’

    그렇게 짧았나? 시간을 잰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보다 길게 느껴졌는데…….

    생각한 이림의 검사는 이유를 깨달았다. 애초에 둘의 대결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쾌검으로 이어져서, 그들은 숨도 멈춘 채 검로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단우는 단순히 뛰어난 재기를 지닌 헌터가 아니라 훌륭한 검사였다.

    알고 있었는데도 이림 검사는 새삼 놀랐다. <차우원 팀>의 두 사람은 모두 오 분 안에 상대를 무릎 꿇린 것이다.

    “나는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대 성물의 주인들은 어떻게 반발 없이 스스로의 위치를 확고히 했는지 의문이었거든. 영웅 후보로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한 헌터들이, 그 자존심을 꺾기 쉽지 않았을 텐데. 차문경 헌터 이전에는 정부 공무원들이라 상사 명령에 입 다물었다고 생각했지.”

    이림 검사는 ‘그 공무원들이 이쪽 보고 있는데요’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범죄 조직 색출 때문에 협력 중이라고는 해도, 정부 소속 헌터를 챙길 의리는 없었다.

    “아니었을지도 몰라.”

    다완 선배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차문경 헌터만 해도 길드 연합에서는 다른 이름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지지를 받았지. 당시의 선배들……. 청연 길드장님이라거나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그렇잖아. 성물의 주인이란 압도적인 자질로 스스로를 증명해 냈는지도 몰라.”

    “하지만 두 사람은 어려요. 다른 자질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이림 검사는 자신이 이미 성물의 주인을 두 사람으로 좁혔다는 자각도 없이 대답했다.

    청연 검사가 헛웃음 지었다.

    “더 뭘 증명합니까? <리자드맨 밀림>을 클리어했는데. 독립팀이 이림이 다 한 일에 숟가락 얹었다고 말하려고요?”

    “누가 그렇다고 했습니까? 압도적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기에는 두 사람의 나이와 그에 따른 짧은 경력이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완의 베타랑 검사는 이단우의 짧은 경험을 채워 주겠다고 생각했던 멀지 않은 과거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두 사람에게 뭐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지?”

    “보이는 활약상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차문경 헌터처럼, 누구나 목격하고 피부로 경험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그때 다완 검사의 가슴팍이 울렸다.

    “실례.”

    ‘이 선배 전자기기 반입 금지 조항을 어겼잖아.’라고 생각했던 두 검사는 다완 검사의 품속에서 나온 게 휴대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보다 훨씬 조악한, 그들도 역사로만 알고 있는…….

    ‘삐삐?’

    저걸 전자기기라고 쳐야 할지 그들이 의문을 느끼고 있는데, 다완 베테랑 검사의 표정이 굳었다.

    “전 길드장님이 돌아가셨어.”

    “예?”

    다완 전 길마라면 전대 영웅 아닌가?

    그들이 위로의 말을 하려는데 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습격으로.”

    “……?!”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입을 다물고 다완 검사를 돌아봤다.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 경기장에서 다완 검사가 말했다.

    “사망자 서른두 명 확인. 현재 이림 전 길드장 저택 화재 확인.”

    “……!”

    이림 검사가 참지 못하고 조악한 기계를 잡아채려는데 경기장 계단 층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얼마 전 위층으로 올라갔던 젊은 두 검사가 그곳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이단우가 다짜고짜 말했다.

    “<성검>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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