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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18화 (118/170)
  • 118.

    “거기 안 서?”

    이단우가 외쳤다.

    “그렇게 말하면 누가 서겠어? 무섭잖아!”

    기희윤은 살갑게 충고했다. 저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서야!

    그러나 사람 죽이는 법은 잘 아는 모양이어서, 그의 목이 있던 곳으로 검이 날아왔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으학……!’

    잘린 윗머리가 흩날렸다. 기희윤은 입을 닫기로 했다. 죽을 것 같아서는 아니고 할 일이 있어서였다.

    그는 가장 먼저 차우원에게서 몸을 빼낸 <성검>을 밖으로 도피시켰다!

    전대 영웅에게서 훔친, 유용하지만 예상보다 허접한 S급 스킬 <공간 전이>가 펼쳐졌다.

      

    <공간 전이>(S)

    당신의 마음이 닿은 곳이 당신의 자리입니다.

    -인원 제한: 1

    단 한 명을 공간 이동 시키는 스킬이 S급일 리 만무하지 않나? 실제로 스킬의 원주인은 대단위 공간 이동을 몇 번이나 성공시킨 기록이 있었다.

    이동 방해 스킬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였다. 일일이 해당 장소의 경계 장치를 망가뜨려야 작동 가능하지 않은가.

    때문에 기희윤은 <스킬 사냥>(S)의 유용성에 의문이 있었다. 이것도 누구에게서 강탈한 스킬북으로 얻은 스킬이었는데, 역시 스킬북의 옛 주인이 숨겨진 제한 옵션을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은 의혹이…….

    물론 지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성검>을 빼내자마자 그는 스스로를 공간 전이 시켰다. 그를 사랑하는 부하들이 온몸으로 벽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마음 아픈 희생이었지만, 저들도 자신이 <성검>과 교환됐다는 걸 알면 기쁠 터였다.

    그의 몸이 허공에 펼쳐진 스킬진을 통과해 <성검>의 곁으로 향했다.

    “휴, 죽을 뻔했다! 하지만 살아남았으니 내가 이겼지.”

    공터에서 기희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성검>을 얻었다!

    “아하하! 신은 나랑 취향이 비슷한가 봐, 충직한 사람을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

    기희윤은 비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비서가 감격해 몸을 낮췄다.

    “저의 신은 주인님이십니다. 주인님을 위해 저는 무엇이든…… 무엇이든……?”

    비서는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기희윤을 쳐다봤다. 그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이 젊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성검>의 정신계 스킬 저항 능력은, 이미 오래전에 걸려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힌 세뇌에도 균열을 냈다.

    둑이 무너지고, 갇혀 있던 감정에 비서는 속절없이 빠져 버렸다. 눈물의 호수 속에서 비서는 깨달았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언제까지고 소중히 여기고자 한 사람을 잃은 채,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돌려받아야 했다. 자신의 사랑을 앗아 간 자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돌려줘.”

    아내를 간호하던 남자의 손에서 검기가 뻗어나갔다. 손가락 한 뼘 사이로, 검이 기희윤을 지나쳐 바닥을 갈랐다. 갈린 단면이 녹아내려 흔적도 남지 않았다. 기희윤은 목덜미가 쭈뼛 섰다.

    “우와아…….”

    ‘폭주’라는 단어가 그의 머리에 박혔다.

    ‘기지로 데려가면 큰일 나겠는데.’

    신은 충직한 사람을 좋아할지 몰라도 기희윤 자신은 별로 안 예뻐하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모르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고아원에서 태어나, 자신이 영원히 버려졌음을 깨달은 나이부터 기희윤은 스스로를 사랑해 주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면 그의 품을 채워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하는 건 손을 뻗어서 가져야 하는 법이다.

    기희윤은 계산할 것도 없이 남자를 <공간 전이>했다. 위치는 전대 영웅, 다완 전 길마의 저택이었다.

    “휴, 살았다.”

    그는 간만에 달리느라 이마에 밴 땀을 손등으로 닦는 시늉을 했다.

    <성검>이 이성 없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면, 그대로 활용하면 될 일이다.

    전대 영웅들의 저택은 경비가 삼엄해서 직접 들어가기 번거로웠다. 위험을 감수하자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스킬 사냥>의 효용성이 의심되는 시점에서 강행하고픈 계획은 아니다. 얻어 낼 게 <성검> 정도나 된다면 모를까.

    그러나 기껏 쓸 만한 검사들을 잠입시켜도 성검에 손대는 데 성공한 부하는 비서뿐이었다. 그 비서마저 상태가 이상해지고 말았다.

    어차피 못 다룰 성검이 전대 영웅들의 스킬을 가져다준다면 기쁜 일일 터였다.

    “지쳤다, 정말. 운동은 할 게 못 된다니까.”

    그는 인벤토리에서 따듯한 코코아와 쿠키를 꺼내 먹고 휴식도 취했다. 살아남은 그의 사랑들에게 연락도 돌렸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숨을 가다듬다가 생각했다.

    …근데 전대 영웅이 죽어 버리면 어쩌지?

    곤란했다. 그에게 능력은 넘기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휴!’

    남을 강탈하는 삶도 이토록 힘든 법이다.

    기희윤은 드물게 부지런히 또 일어났다. <공간 전이>가 펼쳐지고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이단우는 작은 방에 앉아 있었다.

    ‘초조해하지 마.’

    기희윤은 성검 못 쓴다.

    그가 성검을 가져간 건 과거에 없던 사건이었다. 차우원이 주인이었을 때는 꿈도 못 꿨고, 그가 죽은 뒤에야 청연 앞에서 뽑아 가려 했으니까.

    그러나 당시 이름 있는 검사 누구도 성검을 뽑지 못했다. 기희윤의 세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놈 따르는 쓰레기들이 거기서 거기였을 테니까.

    기희윤의 비서는, 이단우가 과거 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성검의 시험을 통과한 건 뜻밖이었으나…….

    ‘애초에 그건 무슨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거야.’

    이단우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손은 단단한 나무판을 치는 대신 남의 손바닥을 때렸다.

    그대로 이단우의 주먹을 잡은 차우원이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 잘못 아니야.”

    “알아. 우리가 여기 경비 담당자야? 당연히 무능한 공무원 새끼들 잘못이지.”

    차우원에게 잡힌 손이 두근두근 뛰었다.

    “알면서 자해는 왜 해? 손 상하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가?

    사라진 건 성검이었다. 이단우의 손이 아니라.

    그러나 차우원이 말도 안 되게 차분해서 이단우도 심박이 떨어졌다.

    ‘괜찮아.’

    위험한 던전 안에서도 차우원을 보면 팀원들은 모두 그렇게 믿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길은 있고 차우원은 그걸 찾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리더는 이단우였다.

    ‘찾을 수 있어.’

    <성검>은 알 수 없는 기준으로 검사를 시험했으나 확고한 기준은 하나였다. 상대가 종말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 만한 인간일 것.

    어리고 멍청한 차치원도 <최후의 던전> 공략에 자원했다. 당시 이단우는 차우원과 팀원들을 죽인 놈으로 취급받고 있었는데도, 성검의 주인만이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대개 그런 인간은 기희윤과 상성이 나쁘기 마련이었다.

    기희윤은 종말을 반기는 드문 쓰레기 중 하나였으니까.

    ‘사람도 안 믿어서 <인형화> 안 걸린 놈은 곁에 두지도 않는다.’

    그의 기분 나쁜 인형 소굴로 기어들어 가던 때가 떠올랐다. 이단우는 확신했다. 그 비서는 인형이다.

    그리고 <인형화>에 걸린 상태라면, 성검은 정신계 상태 이상을 해제할 터였다.

    ‘기희윤은 못 다뤄.’

    틀림없이 소란이 생긴다.

    이단우가 냉정을 되찾았을 때 문이 열렸다. 실장급 정부 요원이 취조실에 들어오는 형사처럼 앉더니 물었다.

    “두 분이 목격한 범인이 S급 범죄자 기희윤이 맞습니까?”

    ‘목격 정도가 아니라 한 대 팼다.’

    이단우는 상대가 왜 추궁을 하고 앉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시간 낭비를 할 때인가?

    차우원이 대답했다.

    “네.”

    “어떻게 상대가 범죄자임을 확인하셨습니까? 경계망과 CCTV까지 모든 감시 수단을 활용해도 신원이 잡히지 않았는데요.”

    “이림과 센터에서 함께한 소탕 작전에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희윤이 운영하던 약국에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을 텐데요.”

    “저희도 해당 사건은 확인했습니다. 차우원 헌터의 공헌을 알고 있으나, 그게 상대의 신원을 확신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별 쓸데없는 걸 묻고 있어.’

    이단우는 미간을 좁히고 요원을 쳐다봤다.

    설령 오인으로 인한 공격이었다 해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쨌든 성검 도난은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공무원들은 어느 쪽이든 책임 회피할 구석을 찾고 있는 것이다.

    멀쩡한 얼굴로 속은 애가 타서 어쩔 줄 모르는 게 티가 났다. 이단우는 안 보고도 센터에 걸렸을 비상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말했다.

    “제가 감지 타입이어서요.”

    “……!”

    정부 요원은 ‘그랬지’라는 표정이었다. 눈앞의 헌터가 다방면으로 재주 넘친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했다.

    “마주친 순간 마력 반응을 확인했고, 신원을 특정했습니다. <성검 쟁탈전>이 열리는 건물에 S급 범죄자가 직원처럼 잠입해 있는 게 평범한 일 같지 않아 공격했습니다. 문제가 될까요?”

    “…아닙니다.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차우원 헌터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추궁하려는 자리가 아니라, 당시 상황을 증언 듣고 빠르게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두 분을 모신 겁니다.”

    “다행이네요. 저희가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협조하겠습니다. 추적을 돕고 싶은데요.”

    차우원의 태도가 대단히 정부 친화적이어서 요원은 누그러졌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최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계셔 주셨으면 합니다. <성검>의 유출이 알려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당분간만 저희의 지시에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예. 물론입니다.”

    차우원이 말하면 상대는 믿기 마련이었다.

    요원이 나간 걸 확인하고 이단우는 테이블 아래부터 도청 장치를 확인했다.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을 다 뒤져 봐도 감시 조치는 없었다.

    단우가 물었다.

    “너 정말 기희윤 감지했어?”

    “아니. 인식 방해 아티팩트 착용 중이었잖아.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게 만드는 건데, 내가 무슨 수로 마력 작용을 확인했겠어.”

    이단우는 의문이었다.

    “왜 내가 선공했다고 말 안 하고?”

    “내가 했다는 쪽이 덜 추궁받을 것 같아서.”

    이단우를 아무렇지 않게 보호하고 차우원이 물었다.

    “붙잡혀 있을 시간 없잖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할까?”

    이단우는 순간 자신이 그의 팀원이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나, 아니었다. 상황이 달랐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보호가 필요한 놈이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계획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섰다.

    차우원이 자신을 믿고 있다. 이단우는 차분해졌다.

    그에게 요원이 ‘지시’ 운운하기 전부터 떠오른 생각이 있기도 했다.

    단우는 말했다.

    “탈출하자.”

    “그래.”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차우원은 흔쾌히 대답하고 일어났다.

    즉석에서 2인조 탈출단이 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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