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17화 (117/170)
  • 117.

    이단우는 상대의 배를 밟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 인간 부상자 맞았잖아.’

    이단우는 헐떡이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생각했다.

    부상자가 무슨 성검 주인이 되겠다고 설친단 말인가? 이래서 잘난 놈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제 한계를 모른다.

    다완 검사는 새파랗게 젊은 이단우가 자신의 명치 위에서 발을 내리는 모습을 봤다. 무표정한 얼굴이 짜증스러운 듯 자신을 응시하다가 떨어졌다.

    ‘전율의 속검사……!’

    검사는 이단우의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알았다. 피부가 파르르 떨려서, 그는 자신의 팔을 손으로 쥐었다.

    쾌검을 막아 내는 건 눈과 머리가 하는 일이 아니다. 몸이 감각을 통해 해내는 일이었는데, 그의 몸은 상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검사는 자신이 늙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베테랑으로서 짊어진 짐이 늘어 간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늙고 지쳤다고 느꼈다.

    ‘아니, 변명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검사를 신체 능력으로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애초에 이단우를 신체 능력으로 찍어 누르려던 게 아니었다. 경험을 앞세워 충고를 해 주려 했으나, 오히려 방심에 의한 치명적인 실수를 내보였을 뿐이다.

    ‘마음가짐도 실력이지.’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거만했던 건 자신이었다. 그는 이 젊은 헌터에게 한 수 배웠다.

    검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우원이 선배들에게 기대했으나 실망했다’는 말은, 이단우가 거만하게 굴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이 훌륭한 후배들에게 본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단우는 자신의 아집을 읽고 틈을 만들어 냈다.

    패배를 인정한 뒤에야 그는 상대의 검로를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영리하고 효율적인 검이다. 그리고 검술 자체의 아름다움…….

    그건 스스로를 끊임없이 연마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검로였다. 자신은 실제로 계속 밀려나지 않았나.

    ‘밀려나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의 계산 내에서 움직였다.

    민망함을 느끼며 검사는 일어났다. 그리고 이단우에게 손을 내밀며 진심으로 말했다.

    “이런 꼴을 보여 부끄럽습니다. 이단우 헌터 말이 맞군요. 실망을 안겨 줘서 미안합니다. 이단우 헌터는 할 말을 했어요. 훌륭한 헌터가 될 겁니다. 아니……. 이미 그렇지만요.”

    ‘부상자가 욕심이 많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던 이단우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아, 예…….”

    “…….”

    그들은 할 말 없는 분위기에서 경기장을 내려갔다.

    그러나 단 아래 있던 사람들은 할 말이 많아졌다. 이 젊은 헌터들의 활약은 익히 들어 왔으나, 실제로 본 그들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갖췄다.

    이후 몇 경기를 더 구경하고 이단우와 차우원은 자리를 떴다.

    ‘더 볼 것도 없다.’

    우승자는 차우원이다.

    다른 헌터들은 교류를 위해서라도 남는 모양새였으나 이단우는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휴식…….’

    남들은 체력이 남아나는지 몰라도 그는 아니었다. <성검>과 정면으로 맞붙은 여파가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다. 아지트가 부서지든 말든 일단 피했어야 했는데…….

    후회하던 이단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랬다면 <성검 난동> 따위로 기사 났지.’

    성물에 대한 불신을 심어 줘서는 안 된다. 인류가 <종말>에 한마음으로 맞설 수 있는 이유는 성물과 영웅으로 상징되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희윤 같은 벌레 무리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희망을 품기 마련이었다.

    영웅팀이 <최후의 던전>을 무너뜨려 줄 것이다. 그때까지 <종말 방어전>의 공동 전선을 펼쳐 살아남는다.

    그 목표와 희망이 사람들을 살렸다. 영웅은 절대적인 희망이어야 했다.

    이단우는 그 희망을 죽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순조롭다.’

    차우원이 경악할 만한 활약을 보여 준 덕에 모든 후보의 머릿속에 ‘혹시’ 하는 임팩트가 박혔다.

    여전히 <성물 쟁탈전>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는 변함없었으나…….

    ‘괜찮아. 그건 아직 안 열렸어.’

    청연으로부터 넘겨받은 구역에서 열려야 할 비정기 게이트가 있다. 이단우는 소서정에게 정기 보고를 받고 있었으나 새로운 던전이 열렸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애초에 비정기 던전의 존재 의의가 뭐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지도 않잖아.

    과거 차우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단우는 그때 차우원의 의문 같은 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에야 알아보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때도 이단우는 호기심은 느끼고 있지 않았지만.

    차우원이 궁금해했기 때문에, 그는 남아 있던 비정기 던전에 <이단우 팀>을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차우원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차우원은 늘 옳았다.

    이것들은 <최후의 던전>과 연결되어 있다.

    차우원이 말했다.

    “들었어, 단우야? 다들 네 칭찬하던데. ‘전율의 속검사’래. 그 별명 전국에 퍼지겠다.”

    그가 도발해서 이단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었다.

    “‘영웅의 아들’은 뭐 멋있는 별명인 줄 알아?”

    “난 칭찬이었는데. 안 멋있어? 곤란하네.”

    그가 기지개를 켰다. 그러더니 잘생긴 얼굴로 웃었다.

    ‘뭐가 곤란하다는 건지…….’

    이단우는 인상을 썼다.

    “애초에 넌 왜 나왔어? 멋있는 별명 들으면서 선배들한테 예쁨받고 있든가.”

    “단우가 나가는데 내가 왜 거기에 있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서 복도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그들 옆을 스쳐 갔다.

    차우원이 이단우의 어깨를 잡아 안으로 당겼다. 이단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렸다. 통증 같은 경련이 처음에는 차우원 때문이라고 착각했다가…….

    순간 깨달았다.

    이건 마력 반응이다.

    이단우의 몸이 기억하는 마력이, 그에게 통증을 가져왔다.

    단우는 그게 누구인지도 알았다.

    ‘기희윤.’

    그가 즉시 반응했다.

    쾅!

    * * *

    기희윤은 최근 약간의 실패를 경험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물론 그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승패는 병가지상사 아닌가? 그 모든 실패에 이단우 한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곤란한 일이었으나, 기희윤은 대책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이단우를 가져오면 되지!’

    뭐 그 계획도 그렇게 잘되진 않았지만.

    이단우가 때마침 자기 소굴로 기어들어 와준 걸 놓친 일은 뼈아팠으나, 기희윤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날 그는 이단우의 가치를 확신했고 차우원이라는 괴물 손에 붙잡혀 분해당하지도 않았다.

    목숨을 잘 부지한 기희윤은, 약국에서 빠져나온 뒤 이단우를 손에 넣을 계획을 즐거운 마음으로 짜 봤다.

    1번, 무력으로 강제한다.

    -그만둘까?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기희윤은 목숨 소중한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들을 다 갈아 넣는다고 생각해 봐도, 이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기각.

    2번, 이단우가 약쟁이임을 밝히고 사회적 평판을 나락 가게 만든 뒤 팀에서 아웃시켜 본다.

    -그 도련님 봤지?

    -무엇을요?

    -이단우 중독된 거.

    -예……. 구출 순간에 못 봤대도 이후에는 알았을 텐데요.

    그러나 <차우원 팀>은 흔들림 없이 잘나갔다. 얼마 전에는 비정기 던전 <리자드맨 밀림>도 깼고.

    ‘팀원 간 분위기가 묘하게 끈끈하단 말이야?’

    기희윤은 차우원 도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것도 기각.

    3번, 다른 방법으로 멘탈을 흔들어서 세뇌한다.

    마침 적당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기희윤은 기자인 척 이단우의 친척에게 전화해 충동질했다.

    그 결과 이단우 멘탈이 깨지는 대신 친척들이 산산조각 났다!

    ‘아깝다!’

    그다지 기대는 안 했으나, 기희윤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생각하지 않아?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니까?”

    “예, 그렇습니다.”

    비서는 최근 주인님이 의욕에 넘쳐서 기뻤다. 주인님이 너무 잠을 자서 한때는 우울증이 아닌가 걱정했던 것이다. 그의 주인이 우울해할 만한 분인가와는 관계없었다. 그는 사랑하는 상대가 아파하는 데 병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성검>이라니. 이런 게 바로 실패 끝의 성공 아니겠어.”

    기희윤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성물 쟁탈전>의 전 과정이 비밀리에 치러지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이거였다. ‘성물’ 같은 보물에 눈 돌아가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기희윤은 보편타당한 사람이어서 보물이 있으면 일단 손을 뻗고 봤다.

    이단우를 줄곧 지켜봤더니, 웬 정부 요원이 두 사람을 기다리며 독립팀 울타리 밖에서 서 있지 않겠는가.

    그 정부 요원은 최근 이혼해서 몹시 외로운 모양이었다…….

    뭐 그렇게 해서 잠입한 기희윤은, A급 아티팩트 <절대 안경>(효과: 누구의 경계도 받지 않음)를 쓴 보람도 없이 이단우의 공격을 받았다!

    퍽!

    1회용 자동 방어 아티팩트가 새끼손가락 위에서 산산조각 나며, 기희윤의 몸이 벽으로 날아갔다.

    ‘와, 세상에.’

    기희윤은 심장이 다 뛰었다. 으스러질 뻔했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기희윤은 두 팔을 항복하듯 들었다. 이단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기희윤은 A급 스킬 <민첩한 걸음>이 새겨진 피어싱을 작동시키며 이어지는 공격을 피했다.

    “지금 날 잡는 게 중요해? 내 동료가 <성검> 훔치고 있다? 지금 가 보는 게 어때. 시간 없어, 이미 성공했겠다!”

    공격이 물 흐르듯 이어져서, 말을 잇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제안하는 데 성공했다!

    이단우가 눈을 흉흉하게 뜨고 말했다.

    “너 잡으면 따라오잖아, 개새끼야.”

    “…들켰네!”

    그러나 괜찮았다. 시간을 벌었다!

    와지직……!

    갈라진 벽을 뚫고 <성검>을 든 비서가 나타나, 기희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단우야, 비켜.”

    쾅!

    건물이 울리는 충격과 함께, <성검>과 차우원이 격돌했다. 힘의 여파로 기희윤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작은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뺨에 생채기를 만들고 있다.

    ‘우와아……!’

    덕분에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었다.

    미화 요원, 경비병, 관리원, 정부 요원 복장을 한 기희윤의 사랑들이 복도 너머에서 쏟아져 나왔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