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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16화 (116/170)
  • 116.

    쟁탈전 룰은 토너먼트로, 대진표는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1차 지명자의 이름표가 미리 붙어나온 대진표에 2, 3차 지명자들이 자기 이름을 붙여 대진 상대를 정하는 식이었다.

    1차 지명자들은, 이견의 여지 없이 현재 ‘가장 최전선에서 활약 중’이라는 평가를 받은 헌터들이다. 이들은 다른 후보들의 도전을 받아 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단우는 2차 지명자인 다완 베테랑 검사에게 다가가 ‘여기서 뵙다니 정말 영광이다, 존경하고 있다.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입을 털 생각이었으나, 그럴 필요 없었다.

    “……?”

    “잘 부탁합니다.”

    다완 검사가 점잖게 말했다. 그는 이단우 이름표 옆에 자기 이름을 막 건 차였다.

    그가 이단우의 1라운드 대진 상대다.

    “다음 참가자 입장.”

    감독관의 말에 차우원이 앞으로 나섰다.

    “다녀올게.”

    “내 얘기 기억하지.”

    이단우는 남들처럼 출전하는 동료에게 ‘파이팅’ 소리를 하는 대신 말했다.

    -열심히 해. 봐주지 마.

    -<성물 쟁탈전>에 나온 선배들을 내가 무슨 수로 봐드리겠어?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짓 하지 말라고.

    -내가 봐주지만 않으면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네. 믿어 줘서 고맙긴 한데…….

    -겸손한 소리 말고.

    -하하! 정말 할 말이 없다.

    뭐 그런 소리를 대기하는 일주일 내내 했으니 차우원이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응원해 주는 거지, 알았어.”

    차우원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의 손이 단우의 어깨를 감싸려는 듯 움직이더니 갑자기 옆으로 빠졌다.

    ‘……?’

    그가 나갔다. 이단우는 차우원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정확히 뭐가 찜찜한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차우원의 대결은 뻔하게 진행됐다.

    ‘뭐지.’

    이단우는 놀랐다. 차우원은 본래 대련에 적합한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진검이 아니면 본래의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수련용 검은 차우원의 마력을 담아내고 버틸 만한 내구도가 없었으니까.

    마력 조절을 대련 내내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차우원만큼 마력이 많으면 그것도 어려웠다. 드럼통에 든 물을 컵에 붓는 것과, 주전자에 든 물을 컵에 붓는 것 정도의 난이도 차이였다.

    ‘아니, 드럼통 말고.’

    정확한 묘사를 생각하려던 이단우의 손이 움츠러들었다. 차우원의 내부를 더듬던 감각이 떠올랐다. 어디에도 모자란 곳이 없던, 풍부한 대해 같던 마력의 흐름이. 이단우로서는 양을 짐작할 수도 없던, 그 거대한 마력을 차우원은 매 순간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단우 같은 놈과 대련을 해서도 아차 하면 검을 부숴 먹고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단우가 잘도 끌고 다닌 탓에 차우원은 마력 조절, 힘 조절에 도가 텄다. ‘사람 안 죽이고 기절시킬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던 꼴을 본 게 벌써 까마득하지 않은가.

    이단우는 차우원이 조절한 마력으로도 상대를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수준도 아니었다.

    “하… 항복.”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쓰러진 상대가 말했다.

    이단우는 순식간에 끝난 대결을 떠올렸다.

    차우원은 경기장에 올라가자 예의 바르게 ‘한 수 배우겠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정석 베기를 시도해서 상대는 무심코 똑같이 받아 냈다.

    거기까지는 ‘좀 더 냉정하게 임하라’고 감독관이 경고해도 될 정도로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검이 맞부딪히고…….

    다음 순간 상대는 주저앉았다. 반사적으로 몸에 마력을 둘러 으스러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무릎과 다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걸 모두가 들었다.

    주저앉은 그대로 경기장 바닥을 뚫고 허리 아래까지 처박힌 그는, 차우원과 악수를 할 때도 손을 떨고 있었다.

    대결이 끝나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안 놀랐잖아.’

    단우는 차우원의 표정을 확인했다.

    본인이 의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단우는 긴장을 놓았다. 차우원은 약속을 지킨다.

    “한 합에…….”

    “중검을 쓴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단우는 옆에서 팔짱 끼고 구경하던 이림 검사가 마른침을 삼키는 꼴을 봤다. 일대에 흐르는 침묵이 마음에 들었다.

    ‘나쁘지 않네.’

    차우원은 본래 모든 헌터들에게 연차 상관없이 이런 감탄을 사는 놈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어려서 이 광경을 오랜만에 봤다. 차우원이 나타나면 모두가 그를 존중하는 게 이단우에겐 당연한 상황이었는데.

    <성물 쟁탈전>의 시간 낭비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단우는 팔짱을 꼈다.

    차우원이 웃으며 돌아왔다.

    “이겼다, 단우야.”

    “당연하지.”

    “뭐? 하하!”

    “……?”

    옆에 있던 이림 검사가 귀를 의심하는 얼굴로 그들을 힐끗 봤다. 차우원이 방금 이긴 상대는, 3년 전 A급 범죄 조직을 소탕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검사였다. 1차 명단에도 능히 이름을 올릴 만한 인물이다. 기뻐 날뛰어야 옳은 일이었는데…….

    이림 검사는 차우원의 대결 상대가 구덩이에서 몸을 빼내는 모습을 봤다. 차우원과 검을 맞댔을 때 그가 바닥에 처박히며 생긴 구멍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둘이 기뻐하는 건 이상한 일 같기도 했다.

    이단우는 이림 검사의 생각 같은 건 관심 없었다. 그는 차우원을 보고 있었다.

    단우의 대꾸를 듣고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린 차우원은,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려다 말고 문득 곤란한 얼굴이 됐다.

    “내가 그동안 생각 없이 움직이기는 했던 것 같다. 오해 살 만해. ……의식하고 통제하려니 좀 힘들다.”

    ‘……?’

    뭐 마력 얘긴가?

    “그 얘기 네 상대 앞에서 해봐.”

    땀도 한 방울 안 흘리는 놈이 뭐라는 건가?

    이단우는 자길 경기장 바닥에 파묻은 놈이 저런 소리를 하면 진검으로 덤벼들 용의가 있었다.

    “하하. 경기 얘기는 아니었어.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단우는 어때. 준비됐어?”

    차우원이 준비 동작도 없이 이긴 경기에 이단우는 뭐 얼마나 힘을 써야 하겠는가?

    ‘죽도록 써야겠지만…….’

    이단우는 마력 촉진제 한 알이 간절해졌으나 잊어버리려고 애쓰며 혀로 입을 축였다.

    “어.”

    감독관이 이름을 호명했다.

    “다음 순서는…….”

    이단우의 이력과 대결 상대의 이력이 줄줄이 나왔다. 감독관이 영웅 후보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소리를 들으며 단우는 앞으로 나갔다.

    사실 대련에 적합하지 않은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용 검으로는 마력 사기를 못 치니까.

    ‘오래 못 싸운다.’

    이단우는 연습용 검을 들고 체내의 마력을 슬슬 굴렸다. 오랜만에 스스로의 마력만으로 싸우려니 정신이 다 아찔했다.

    먼지만 한 마력을 공처럼 굴려 슬슬 크기를 키워 가면서 그는 한심함을 느꼈다.

    뭐 어쨌든 이걸로 해 보는 수밖에 없다.

    * * *

    복구된 경기장에 올라간 이단우에게 다완 검사가 점잖게 말했다.

    “방금 전 경기는, 어린 헌터가 상대라고 그 친구가 방심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차우원 헌터에게도 미안한 일입니다.”

    대신 사과라도 하는 투였는데, 이단우는 초면인 인간이 왜 갑자기 차우원을 후려치는지 의문이었다.

    ‘방심이 무슨 상관이냐.’

    상대가 방심하지 않았으면 차우원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아 냈을 거란 소린가?

    “예. 기대했는데 금방 내려오게 돼서 차우원도 놀란 것 같았습니다. 말씀 전해 드리겠습니다.”

    ‘1년 차 헌터의 기대도 박살 내는 수준의 능력 갖고 애 후려치지 마라’를 예의 바르게 말하자 검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더 들을 것도 없을 듯해 단우는 검을 들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단우 헌터 얘기는 나도 들었는데…….”

    “……?”

    “……정말로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군.”

    검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하더니 달려들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둘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

    챙!

    검집에서 뽑힌 검이 순식간에 단우의 가슴을 노렸다. 단우는 막아 냈다.

    상대는 힘 싸움으로 가져가지 않고 반발력을 그대로 가져가 몸을 뒤로 튕겼다.

    “특기가 쾌검이라던데. 우연이지, 나도 마찬가지야.”

    ‘우연 같은 소리 하네.’

    자기가 골라 놓고 헛소리하고 있다.

    이단우는 이 베테랑 검사에게 유감이 없었는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부상 후유증으로 헌터 은퇴했다가 <종말> 때문에 복귀한 사람이잖아.’

    어디 부상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났다. 척추가 으스러졌던가? 아무튼 쇼크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부상이었다는 건 들었다. 우수한 힐러들이 그를 치유했으나, 그는 결국 은퇴했다. 외상이 아니라 마음의 충격 때문에 현역 생활을 더 견디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최후의 던전>이 열리자 복귀해, <종말 방어전>에 참전했다가 죽었다.

    ‘내가 청연 들어가기 전에 은퇴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부상 입은 시점이 이즈음이라는 소리인데…….

    ‘시험해 보자.’

    이단우는 한번 숨을 마시고 바로 몸을 붙였다.

    “……!”

    일부러 쓸데없이 사납게 몰아붙이자, 상대는 미친개를 상대하는 대신 조금씩 물러났다.

    이따위로 힘을 낭비하면, 공세가 끊긴 순간 오히려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그리고 상대는 충분히 그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한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이단우는 멈추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공세를 가져가 접근한 그는, 진각을 밟는 척하며 상대의 발등을 발로 찍었다.

    “……?!”

    상대는 피했다. 그리고 노기를 띤 채 꾸짖었다.

    “이런 잔재주 말고 검을 사용해. 쓸데없는 기술에 의존하는 건 발전에 해가……!”

    ‘네 발이나 봐라.’

    “……!”

    떠들던 상대도 스스로 호흡이 흐트러졌음을 깨달았다. 트라우마 반응은 본능적인 것이어서 우수한 헌터라도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게 원한다고 다룰 수 있는 거였다면 이단우가 스스로를 가만뒀겠는가? 어디 가두고 자기 교육부터 들어갔을 것이다.

    보통 엘리트 검사라면 하지 않을 야비한 짓이 상대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잃도록 만들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는 감각. 불가능한 척수 반사, 움직이지 않는 하반신. 상대의 몸은 자신의 부상을 기억했고…….

    순간적으로 이단우의 속도에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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