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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15화 (115/170)
  • 115.

    ‘……?’

    “기분 상하게 한 채로 가고 싶진 않은데.”

    다정한 어투였다.

    이단우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화난 적 없었다. 오히려 이놈이 화나 있지 않았나?

    평소엔 차분한 놈인데, 성검 논쟁을 하는 동안 약간 열이 올라 있었다. 머리가 식은 이단우는 다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번 결정한 건 안 물리는 놈이었지.’

    그런 놈이라 대련에서 졌다고 정말로 단우의 팀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한번 설득이 막혔을 때 논리를 바꿔서 도전했어야 했는데, 초조해진 이단우는 방법을 잘못 골랐다.

    아무튼 차우원도 지금은 열이 식어서 사람이 말랑해진 상태였다.

    “치원이 일은 미안해. 내 실수였어. 치원이가 저주 아티팩트로 착각한 줄 알았는데, 청연으로 돌아가서 깨달았나 봐.”

    그가 목뒤를 매만졌다.

    “조금만 생각하면 경계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설명창을 치원이가 봤을 테니까. ……네가 다친 것 같아서, 치원이한테 신경을 못 썼어.”

    ‘뭘 사과하나 했더니…….’

    차치원이 성검 실토한 얘기다. 맞은편에 앉은 정부 요원 때문에 에둘러 말하고 있었으나 못 알아들을 얘기는 아니었다.

    이단우는 정보가 어떤 루트로 흘러간 건지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스승님이 그에게 전화해서였다.

    -이야, 성검 발견했다며? 이단우 헌터.

    ‘치원이가 이단우 헌터한테 괜히 라이벌 의식 같은 걸 느끼는 모양인데, 어린애지 않느냐, 좀 봐주지 그랬냐. 애가 넋이 빠져서 왔다.’

    뭐 그런 얘기가 이어지더니 일의 전말을 짐작할 만한 소리가 나왔다.

    청연으로 돌아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던 차치원이 ‘……그게 성검이었나?’ 하고 소스라쳐서, 제자를 걱정하던 스승님이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건이었다.

    ‘그 새끼는 얻어맞고 기어들어 갔으면 잠이나 처자지 왜 사건을 곱씹고 앉았냐.’

    이단우는 이가 악물렸으나 이어지는 말에 힘이 풀렸다.

    -전대에는 발견이 늦어서 희생이 컸지. ……고마워.

    -…….

    -뭐, 내가 이단우 헌터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기는 해도, 내 감사 인사가 표창장이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음, 뭐랄까……. 이런 말은 어떨까 싶지만…….  부모님도 이단우 헌터를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이단우는 합동 장례식에 찾아온 스승님을 봤다.

    조문을 거절 중이어서 대화는 하지 않았으나 스승님은 그때도 잠깐 이단우를 쳐다봤다.

    정 많은 분이다. 이 말을 하고 싶어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던전에서 돌아가셨을 스승님이, 살아서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단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전화가 끊기자 초조함이 사라졌다. 이단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차치원에 대한 분노는 별개였으나…….

    차우원은 자기 잘못도 아닌 걸 연대 책임 지고 있었다. 그때 차우원 때문에 넋이 빠져서 차치원을 생각도 못 했던 건 이단우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단우는 그가 왜 정부가 보낸 차에 올라서 순순히 따라오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자신은 <성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놈이 왜 시험은 보러 가고 있겠는가?

    사람 좋은 놈들은 본래 책임감이 넘쳤다.

    차우원이 할 만한 생각이야 뻔했다.

    ‘갖다 바쳐도 내 결정으로 갖다 바쳤어야 했다는 거지.’

    청연 루트로 정부에 신고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성물을 발견한 공은 이단우에게 있다는 것이다. 차우원이 성물 도둑놈 기분까지 챙기고 있어서 단우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알아서 책임감을 느껴 준다는데 왜 거절하겠는가?

    “네가 갚든가. 가면 네 자격이 뭐 어떻다느니 헛소리 말고 일단 열심히 해.”

    ‘네 눈으로 네가 자격이 있는지 어떤지 보라고.’

    이단우는 말하려 했으나 차우원이 웃었다.

    “그래. 단우 거 빼앗겼는데, 내가 찾아와야지.”

    ‘……?’

    말이 좀 이상했으나 어쨌든 차우원은 약속했다.

    ‘됐다.’

    차우원이 협조적으로 임하기만 하면, 깨닫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현존하는 어떤 검사도 차우원을 이길 수 없다.

    * * *

    영웅 후보로 발탁된 헌터들은 각기 비밀스러운 경로로 정부 모처에 모였다. 다른 후보들이 전원 모이기까지, 그들은 각기 배정된 숙소 층에 머물며 대기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소집이 떨어졌다.

    ‘드디어.’

    5대 길드 다완의 제1공격대 소속인 베테랑 검사는 어깨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잘 아는 얼굴들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엘리트 헌터 간에는 기본적인 교류가 있기 마련이었다.

    길드 수련생 시절부터 유망주 교류전이니 하며 붙고, 나중에는 연합 작전 등으로 마주치게 된다.

    말 한마디 못 나눠 본 상대여도, 서로 활약상 정도는 알기 마련이었다.

    그건 한곳에 모여 있는 센터 소속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친분은 없었으나, 정부에서 그들에 대해 그렇게 홍보를 해 대는데 누가 어떤 헌터인지 모를 수는 없었다.

    그가 근 일 년을 현역에서 떠나 있었다고 해도 그랬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하루아침 사이에 유명해진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몸은 문제없어.’

    1차 선발 이후 2차 명단에서 영웅 후보로 발탁되어 이곳에서 대기하면서,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부상 후유증은…… 없다. 적어도 몸은.

    그는 장기 휴가로 현장을 쉬었는데도 2차 명단에 뽑힐 정도의 인물이었다. 생명 짧은 헌터계에서는 선배 축에 속할 정도의 연배와 경험치가 쌓였다. 자기 몸을 점검하는 데는 도가 텄다. 이상은 없다.

    지친 건 정신이었다. 헌터로서 이뤄야 할 것은 충분히 이뤘다. 행정이나 정치에 재능이 없으니 길드 상층부를 노릴 계획도 없다. 이대로 은퇴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휴가 기간 내내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정부의 부름에 응한 건 사명감 때문이었다.

    종말 예언이 시작됐는데,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후배들을 두고 은퇴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게는 능력을 가진 자로서의 의무가 있었으니까.

    어색하게 반으로 갈려서 서 있는 길드와 센터 측 헌터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아졌어.’

    과거라면 살얼음판 같았을 관계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청연은 길드 마스터의 성향 때문에 본래도 정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그 이림이 정부와 협력할 정도의 세상이 된 것이다.

    베테랑 검사는 긍정적인 일이라고 보고 있었다. 거대한 위기를 맞아, 헌터들은 서로를 도와야 한다. 상대가 어떤 세력이든.

    이 분위기를 만든 게 누구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전대 영웅 차문경의 아들 차우원.

    그 젊은 헌터는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어머니처럼 열다섯 살에 각성해, <검의 주인(S)>을 시그니처 스킬로 가졌다. 그를 수제자로 둔 청연 길마는 가르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제자가 자신보다 낫다’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가 검사 클래스의 최상위 재능을 가진 걸 증명했다고 평가했으나, 다완 검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차우원의 우수함은 그 자신의 품성에서부터 보였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센터에 몸담는 선택을 함으로써 두 세력의 관계를 바꿔 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은 가장 주목받는 헌터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고작 스무 살의 나이에.

    영웅 후보로 자신과 같은 천장 아래 있게 된 것이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명의 헌터가 내렸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차우원과, 얼굴이 하얗고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이단우였다.

    ‘하루 이틀 사이 유명해진 인물…….’

    검사는 무심코 생각했다.

    <리자드맨 밀림> 공략 전까지 검사는 두 사람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직전에야 1차 명단에서 뽑힌 두 어린 검사에 대해 주변에서 활약상을 얻어들었을 뿐이다.

    친분이 있는 이림 부길드장의 평가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요? 제가 말을 얹는 게 좀 그렇습니다. 보시면 바로 아실 테니까요. 이단우 헌터는, 음……. 같이 임무를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러더니 이림 부길드장은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서둘러 덧붙였다. 훌륭한 인재들이니 만나면 좋을 거라고.

    검사는 알아들었다.

    ‘건방진 어린애라는 소리군.’

    팀을 결성하자마자 승승장구해서 영웅 후보로까지 뽑혔다. 재능의 한계를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머리도 좋다. 독립팀이 명성을 얻어 간 설계를 보면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끝내는 <성검>을 발견해 자신에게 천운이 따른다는 것까지 증명했다. 정부에서 고작 스무 살짜리들을 안 뽑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으니…….

    “건너서 들었는데, 어지간하다던데요. 차문경 아들은 거의 청연 길드장 젊은 시절이래요. 선배. 저 둘, 직접 본 적은 없으시죠?”

    “없어.”

    인사해 온 후배가 두 사람을 보며 감탄했다. 이곳에 모인 다른 헌터들과 저 젊은 헌터들은 활동 연차만 평균 6, 7년은 차이가 날 터였다.

    그러나 이 세계가 나이순으로 힘이 주어지던가?

    오히려 어린 나이는 압도적인 재능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너무 어려.’

    검사는 판단했다.

    차우원이 이림의 검사와 대화하는 동안, 이단우는 감흥 없는 눈으로 선배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 건방지고 자신만만한 모습에 검사는 도리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젊은이들이란 평화가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향이 있다.

    ‘확실히, 내가 할 일이 있군.’

    그는 두 사람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러나 저 어린 친구들이 영웅이 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짧은 경험은 재능으로 보완할 수 없는 단점이기 때문이다.

    저 둘은 성장해서 세계를 지키는 방패가 될 터였다. 그만한 인재들에게, 그는 가르침을 줄 생각이었다.

    일단은, 선배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부터.

    * * *

    ‘저 인간 살아 있네.’

    이단우는 다완의 베테랑 검사를 발견하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대다수가 이단우의 기억 속에서 한번 죽었던 사람들이다. 유령 소굴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차우원이 물었다.

    “어지러워?”

    “아니.”

    기분은 아무래도 좋았다.

    ‘변수는 없다.’

    이들 중 성검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없다. 이걸로 만약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고개를 끄덕인 이단우는 잠시 멈칫했다.

    ‘아니, 아니잖아.’

    단우는 고개를 돌려 다완 검사를 쳐다봤다. 저 사람은 성검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

    이단우가 그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차우원과 비슷한 시기에 죽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청연까지 와서 이단우가 앞마당에 꽂아 놓은 성검에 손댈 시간이 없었다.

    ‘…….’

    눈을 한번 깜빡이는 동안 이단우는 결정했다.

    ‘저 인간부터 떨어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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