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14화 (114/170)

114.

시선을 눈치챈 차우원이 말했다.

“아, 단우가 어제 두 끼를 굶어서.”

‘그래서 그걸 왜 네가 챙기고 있는데?’

소서정은 할 말이 많았으나 묻지 않았다. 그는 저 둘의 연애사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유독 사이가 나빠 보이는 둘의 시선이 나란히 저에게 향한 걸 보니, 이미 끼어 버린 상황 같기는 했다…….

강울림이 물었다.

“아니 근데 성검 빼돌려서 뭐 하려 했는데?”

“차우원 쥐여 주고 던전 연속 공략 신기록 깨려고 했는데.”

“……?”

“그거 전대에 있었던 일 말고 또 있었어?”

‘기록이라고 할 게 있나?’

강울림은 어리둥절했다. 헌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신도 ‘던전 연속 공략’이라는 사건 자체는 알고 있었다.

전대 영웅 차문경이 <성물>을 찾기 위해 휴식 없이 던전 공략에 나선 그거 아닌가?

한 번의 공략에 헌터의 정신력과 체력이 얼마나 소모되는지를 생각하면, 연속 공략이란 대단한 혹사였다.

어렸을 때 듣고는 ‘우와 대단하다’ 하고 넘긴 일화였으나, 커서 직접 던전을 탐사하는 몸이 되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업적이었던 것이다.

그건 헌터의 권리가 확립되지 않았던 전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차문경 이외에는 애초에 그런 짓을 시도한 팀 자체가 없었다.

무슨 기록을 깨겠다는 거지?

“그러니까 전대 기록 깨야지.”

소서정이 물었다.

“너 진짜 미친 사람이야?”

‘성검 들켜서 다행이다!’

소서정은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이단우의 말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니, 그런데 차우원한테 성검을 넘기려고 했다고?”

‘왜 네가 안 갖고?’

차우원의 재능은 또래 가운데 독보적이었다. 그 자신은 유망주 랭킹 경쟁에 관심이 없었으나, 자주 교류전에 나가 본 소서정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이단우는 처음으로 소서정이 ‘어?’ 하고 생각하게 만든 검사였다. 본인이 겸손한 성격도 아닌데 왜 갑자기 차우원을 치켜세운단 말인가?

차우원이 알려 줬다.

“내가 가져야 다른 말이 안 나온대. 확실히, 던전 연속 공략 기록까지 세우면 나를 보고 많이들 어머니를 연상하겠네. 그러다 성검을 들켰다면 변명할 말도 생겼겠다. 어머니처럼 연속 공략 끝에 찾아낸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

“어. 그때가 되면 변명도 아니었겠지. 영웅의 아들이 어머니랑 똑같은 행보를 걸어서 <최후의 던전>을 닫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

소서정은 입이 벌어졌다. 이단우는 미친 사람이 맞았지만, 이 얘기는 그럴듯했다!

이미 성검이 넘어간 마당에 소용없는 가정이었지만.

‘그래서 이 둘은 왜 싸우고 있었던 거지?’

그가 궁금해하는데 차우원이 말했다.

“단우야, 너무 조급해.”

“뭐?”

“전대와는 상황이 다르잖아. 지금은 그때처럼 <종말>의 종반이 아니지. 아직 희생자도 없고 <최후의 던전>도 열리지 않았어. 내가 성검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거라는 건 너무 희망적인 예측 아닌가. 어머니는 당대 손꼽히는 헌터였지만 그래도 정부의 공격을 받았잖아.”

“차문경이 세간의 인정을 못 받았어? 아니지, 사람들한텐 인정받았는데 정부가 억지로 공격한 거지. 너 말 잘했다. 지금은 그때랑 다르긴 하네. 정부는 절대로 너 공격 못 할 테니까.”

“난 내가 사람들한테 인정받을 거라는 예측부터가 너무 희망적이지 않냐는 소리였는데.”

차우원이 민망한 듯 말했다.

“네가 아니면 누가 인정받아? 넌 헛소리 좀 하지 마.”

이단우가 성을 냈다!

‘세상에…….’

소서정은 둘이 왜 싸우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단우 생각에 차우원이 너무 잘났는데, 그가 겸손하게 굴어서 지금 다투고 있다는 게 아닌가?

“하하! 높게 평가해 줘서 고마운데, 강제로 성물을 취하지 않아도 얻을 방법이 있잖아.”

“뭔데?”

강울림이 물었다. 차우원은 쉽게 대답했다.

“우리 <성물 쟁탈전> 후보로 선별됐어.”

“뭐?”

소서정은 기함했다.

“파티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강울림이 놀라서 말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성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게 지난밤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후보로 선별됐다’ 소리가 나온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1차 선발!’

이론의 여지 없이 <차우원 팀>이 영웅 팀 후보에 올랐다는 소리다!

소서정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원이 따라서 독립팀 들어간 거 아니니.’, ‘너 정말 괜찮겠니?’ 하는 부모님의 걱정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서정이 대단하지’ 따위의 소리로 긁어 대던 녀석들을 무시한 보람이 있었다! 그런 소리도 팀에 합류한 초반에만 듣기는 했지만!

이단우가 팔짱을 꼈다.

“파티는 됐고. 하고 싶으면 성검 가져온 날 하든가.”

그가 당연하게 말해서 팀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우리 둘 다 팀 업무 한동안 못 하니까 그렇게 알아 둬. 그사이에 너넨 영웅 팀 명성에 먹칠 안 하게 일하고 있어라. 청연에서 공략권 넘겨받은 지역이 있는데, 거기 관리해야 돼. A급 던전 없으니까 너희끼리도 클리어는 가능하겠지.”

‘……?’

A급 던전이 없다는 말은, 그 이하 랭크 던전은 있다는 소리 아닌가?

소서정이 손을 들었다.

“저기, 혹시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데. 우리 탱커랑 원거리 딜러 조합이거든?”

“근데?”

던전 깨는 데 그게 무슨 관계냐는 표정으로 이단우가 쳐다봤다.

팀원들의 부풀던 가슴이 놀랍게도 꺼졌다.

이단우는 남의 기분을 식히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소서정은 강울림을 잡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쟤 원거리 딜러가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거 아니야? 내가 탁월한 재능으로 안 다치고 생존해 주면서 폭딜 넣어 준다고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

“너는 잘난 척을 하루라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아?”

“지금 그 소리 하자는 게 아니잖아!”

투덜거리면서도 팀원들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팀은 잘나가고 있었고 이단우는 풀 죽어 있지 않았다.

그가 장례식에서 봤던 얼굴로 멍하니 서 있기라도 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겠는가? 그건 세상의 법칙이 무너져 있는 광경이었다.

아무튼 이단우가 성검 도둑질을 하려 할 만큼 활기찬 상태여서 그들은 안도했다.

뭐, 그들이 이단우 걱정을 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단우야, 한 접시 더 먹을래?”

“너나 먹어.”

차우원과 이단우가 쓸데없이 사랑싸움하는 꼴까지 평소의 팀이었다.

소서정은 안도했으나 하나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는 이단우 밑에 깔린 신문을 곁눈질했다.

‘기사 안 들켰나?’

인터넷은 난리인데.

이단우가 디지털 사회에 한참 도태된 아날로그형 인간인 게 다행이었다!

* * *

물론 이단우는 자기 기사를 봤다.

‘실렸군.’

대충 필요한 내용이 적혀 있는 걸 확인한 뒤 자세히 읽어 보지 않아 ‘팀원들’ 운운한 부분을 넘겼을 뿐이다.

반응은 확실했기 때문에 더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지이이이잉——.

[이모]

휴대폰이 반짝이며 발신인이 떴다.

이단우는 번호를 차단하고 휴대폰을 다시 껐다.

‘번호 바꾸자.’

안 그래도 잡다한 데서 연락이 자주 와서 바꿀 생각이었다.

이걸로 더 이상 엮일 일은 없다.

‘…….’

이단우는 자신이 침울해지거나 멍청한 감상에 잠길까 봐 상태를 지켜봤다. 그러나 별 감정은 들지 않았다.

해묵은 짐을 치운 듯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이단우는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차우원이 이단우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정부에서 보낸 차에 실린 채 어디로 향하고 있었다. 짙은 선팅이 된 데다 시야 차단 스킬까지 걸린 차창 탓에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들 외에도 <성물 쟁탈전> 참가자는 전원 도로 위를 이동 중일 터였다.

‘참석자에게 위치를 숨기는 게 의미가 있나?’

이단우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원래 정부 출신들은 ‘정부 모처’라느니 ‘기밀 사항’ 따위를 좋아했다.

“그렇군요.”

차우원은 정부 요원의 잡다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가끔 호응하고 있었다. 언제 이단우의 휴대폰 화면 따위를 확인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손이 따듯했다.

차 안에서 차가워진 손이 그의 온기에 의해 녹아내릴 것 같아서 단우는 자기 손을 빼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었다.

‘쓸데없는 생각 마.’

차우원의 말은 옳았다.

-단우야, 너무 조급해.

이단우는 서둘렀다. <성검>을 갖고 활약하는 차우원이 보고 싶어서.

차우원이 죽은 뒤 머릿속으로 수천 번을 돌려 본 모습을, 두 눈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뛰고 땀이 말랐다.

그러나 초조해서 좋을 일은 없다. 이단우가 <최후의 던전>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괜찮아.’

차우원은 기본적으로 기준이 높았다. 이단우는 그의 눈 끝에도 들지 못하는 놈이어서 그는 항상 ‘얘를 어쩌면 좋을까’ 하는 얼굴로 단우를 지켜보곤 했다.

이단우는 실제로 문제투성이가 맞았지만, 그건 차우원도 만만치 않았다.

세상의 때를 타지 않은 차우원은 도덕성의 기준도 너무 높아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보고 있었다.

‘오히려 잘됐다.’

이단우는 확신했다.

뭐든 직접 경험하는 게 최고 아닌가?

<성물 쟁탈전>에 가면 차우원도 깨닫게 될 터였다.

자기가 얼마나 제대로 된 놈인지.

애초에 영웅 후보라는 놈들은 대개 자의식 과잉에 다양한 욕망이 넘쳐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영웅 후보로 쓰레기들을 뽑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잘났다는 놈들 특성이라는 거지.’

그 위치에 오를 만큼 명성을 쌓고 활약하는 게 보통 재능과 욕심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평생 남보다 잘나게 살아온 놈들이 자아가 비대하지 않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 터였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속이 하얗고 됨됨이 훌륭한 놈들은 있겠지만…….

‘차우원이 더 잘났다.’

단우는 확신했다.

차우원은 과거에도 자신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성물 쟁탈전>의 승자가 돼서.

그건 스물네 살의 차우원이었으나 이단우는 스무 살의 차우원도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차우원의 성장에 이단우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려고 그가 발치를 노려보는데 차우원이 말했다.

“아직도 화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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