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13화 (113/170)
  • 113.

    소서정은 본가의 스킬 수련장에서 외쳤다.

    “강울림!”

    “물러나!”

    미성체 블랙 드래곤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괴물이 날갯짓을 하자 돌풍이 일었다. 그 풍압만으로 소서정은 날아갈 듯했으나, 강울림이 태산처럼 앞을 막아서는 게 먼저였다.

    “어딜 도망가? 이리 와!”

    탱커의 기본 스킬 <도발>이 펼쳐졌다. 하급 스킬이었으나 시전자의 실력이 훌륭한 까닭에 드래곤은 반응했다.

    키에에에에엑!

    용종 자체가 <도발>에 약한 종족이기도 했다. 스스로 마법을 사용할 줄 알고, 스킬 방어력과 물리 방어력이 모두 훌륭하다. 그만큼 오만하고 흉포한 성질을 지니기도 했다.

    이 상위 종족은 과거 전쟁 시대의 악몽이었다.

    필드는 기괴한 암석이 곳곳에 장애물로 놓여져 있는 협곡이었다. 날아오르다 만 드래곤이 허공에 멈춰 주둥이를 벌렸다. 그 모습이 역광을 받아, 두 절벽 사이를 위압적으로 채웠다.

    순간 주변의 공기가 멈춘 듯했다.

    마력에 둔감한 민간인조차 위협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드래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협곡 아래를 녹일 듯 쏘아졌다.

    “<무결의 벽>!”

    강울림이 바닥에 방패를 꽂아 넣었다. 방패의 외관이 빛으로 확장되더니, 협곡 아래에서부터 브레스와 정면으로 맞섰다.

    브레스의 검은 독기가 절벽마저 녹이고 있는데, 빛의 벽은 아래에서부터 필드를 정화하듯 협곡을 타고 올라갔다.

    “오오오…….”

    기자들은 감탄했다. 누구라도 입을 벌리고 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다음 순간 소서정의 스태프에서 거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붉은빛의 실이 얽히고설켜 허공에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었다.

    <화룡창>의 스킬진이었다.

    “하앗!”

    가벼운 기합과 함께 소서정은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가리키는 방향에는 독을 뿜어내는 블랙 드래곤이 있었다.

    스킬진에서 구불거리는 수염, 이글거리는 눈을 한 위압적인 형상의 붉은 용이 튀어나오더니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쿵……!

    스킬 수련장이 가볍게 진동했다. 수십 겹의 보호 장치로도 위력을 다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화룡창>에 적중당한 드래곤은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꿈틀거렸다.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띠링!

     [120단계: <블랙 드래곤>(S)을 클리어했습니다. 최종 단계 수련을 끝마쳤습니다. 원하시는 단계를 선택해 주세요.]

    “후.”

    소서정은 멋있게 수련 장치를 작동 중지시키고 밖으로 나갔다.

    무리해서 최종 단계를 선택한 보람이 있다.

    ‘위력은 60퍼센트로 줄였지만!’

    보호 장치가 작동한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물러나 있던 기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서정에게 다가갔다.

    “평소에도 이런 훈련을 하십니까?”

    “훈련용 프로그램의 출력을 어느 정도로 설정해 사용하시는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을 두 분이서 레이드하신다는 게…….”

    “<차우원 팀>은 팀원들 간의 사이가 좋은 걸로 유명한데요. 보통 공격대가 사무적인 관계인 반면, 아무래도 친구분들끼리 만든 공격대라 합동 훈련도 즐겁게 놀이처럼 하실 수 있는 걸까요?”

    ‘그럴 리가 있냐?’

    소서정은 얼척없는 질문을 듣고 저도 모르게 대답할 뻔했으나, 수년간 단련된 포커페이스로 무마했다.

    옆에서 강울림이 ‘누가 누구랑 사이가 좋은데?’라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않았어도 표정 관리가 더 쉬울 것 같기는 했다!

    “한 분씩 천천히 여쭤보세요. 사적인 일은 곤란하지만, 팀과 관련된 일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드릴게요. 저희가 최근 훈련 강도를 높이고 있어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팀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다른 분들이 저희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예의는 아닐 것 같아서요.”

    소서정이 싹싹하게 말했다.

    기자들은 그의 말에서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팀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이라니. 최근 이슈가 된 그 일을 물어봐도 된다는 건가?

    장례식 상주인 이단우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도 없는 데다, 차우원이 집안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어 그들은 제대로 된 팀 인터뷰 하나 따지 못했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팀원인 소서정이 기자들에게 ‘훈련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때문에 연락을 받은 사람들은 빠짐없이 달려온 상황이었다.

    손을 드는 기자 사이에서 소서정은 한 명을 지목했다. 기자가 물었다.

    “훈련을 저희에게 공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서정 헌터는 주로 자택에서 훈련을 하시는 건가요? 공용 스킬 수련장과 자택의 익숙한 환경이 훈련에 어떤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녀는 가십만이 아니라 <차우원 팀> 자체에 호기심과 호감을 품고 이곳을 찾은 기자였다.

    ‘무례한 질문을 하지 말자.’

    <차우원 팀>이 공개한 건 훈련 일정이지 이단우 헌터의 사생활이 아니었다. 이곳에 온 기자들이 대부분 후자를 바라고 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예의를 지킬 생각이었다.

    팀 인터뷰를 하겠다는 그녀의 훌륭한 의지를 소서정은 옆길로 꺾어 버렸다.

    “그런데 그 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저희 팀에 스킬 수련장이 없거든요.”

    “예?”

    아무리 가난한 독립팀이라도 수련 시설 정도는 빌려서라도 사용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차우원 팀>은 그런 팀도 아니지 않은가?

    ‘집안의 지원이 없었나?’

    놀라는 기자에게 소서정이 설명했다.

    “‘집안 도움 없이 우리끼리 하자’가 저희 모토여서요. 그러다 보니 스킬 수련장을 지을 여유 자금이 없더라고요. 저희야 집안 수련장을 이용하면 되지만, 이단우가 고생하기는 했어요. 아무래도 도움받기가 정말 힘든 상황이었으니까요.”

    소서정은 개념 있는 창립 멤버처럼 말하고, 이단우 얘기를 실컷 이어 나갔다.

    ‘힘든 상황이었는데 씩씩하게 성장해서 우리를 챙겨 줬고, 우리는 이단우에게 너무 고맙다. 최근 일로 마음고생을 한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얘기였다.

    애초에 소서정은 이 얘기를 하려고 기자들을 불렀다!

    “근데 우리 이런 인터뷰 멋대로 해도 돼?”

    강울림이 소서정의 귀에 속삭였다.

    ‘새삼스럽게.’

    평소라면 소서정이 무슨 계획을 세우든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던 녀석이, 이단우 일이라니까 적극적으로 협조해 놓고 딴소리다.

    소서정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냥 우리 훈련 일정 인터뷰 한 거잖아. 기자들이 멋대로 뭘 쓰든 우리 책임은 아니지.”

    물론 소서정의 발언 대부분은 이단우 친척 엿 먹으라고 한 게 맞았지만.

    “잘 빠져나간다.”

    강울림이 감탄했다. 이 녀석은 밥 먹고 수작질만 궁리하고 사나?

    그러나 이번 수작은 쓸모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던지는 돌을 얻어맞고 있는 이단우는 정말이지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팀 분위기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때 소서정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잉——.

    진동이 여기저기서 울리며 기자들도 하나둘 휴대폰을 꺼냈다.

    16736077638504.jpg

    “……?”

    “……!”

    ‘벌써?’

    소란스러워진 기자들만큼 소서정도 놀랐다. ‘종말 예언’이 시작되고, 성물이 이렇게 빨리 발견된 적이 있나?

    게다가 발견된 성물은 <성검>이었다. 그들의 팀에는 두 명의 검사가 있었다……. 성물의 주인 후보로 능히 손꼽힐 만한.

    운명 같은 느낌에 그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그런데 기자 한 명이 갑자기 소리쳤다.

    “<차우원 공격대>는 비정기 게이트를 공략하고 그곳에서 <성물>을 발견해……. 차우원 팀이 성물을 발견한 겁니까? 이런 업적을 발표하지 않으셨습니까?”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정부 발표 전문을 소서정도 읽고 있었다. 강울림이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알겠냐?

    “자랑할 만한 업적인데요!”

    “아무래도 상중이라…… 소란을 피우기는…… 정부 발표까지 기다리고자…….”

    떠오르는 대로 변명하며 소서정은 아찔함을 느꼈다. 팀원에게까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숨기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이 팀에는 있었지만!

    ‘이단우!’

    * * *

    “야! 성물 뭐야?!”

    소서정은 아지트에 들어가자마자 외쳤다.

    아지트 영역이 갑자기 소규모 길드 수준으로 확장됐다는 놀라움은 이에 비하면 논할 바가 아니었다.

    “뭘 주워서 인벤토리에 넣어 놓긴 했는데, 성물인 줄은 몰랐어.”

    이단우는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

    소서정은 넘어가지 않았다.

    “개뻥치지 마!”

    ‘눈치 빠른 놈.’

    단우는 포기했다.

    “사실 꿍치려고 했는데 들켰어.”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차우원이 고집만 안 부렸어도 안 빼앗겼을 거야.”

    이단우가 인상을 썼다.

    ‘당연한 거 아니냐?’

    팀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 뺏겼으면 뭘 어쩌려고 그랬단 말인가?

    “여기 뒀어도 내가 주인 될 일은 없었을 거라니까.”

    차우원이 이단우의 소파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큐브 스테이크가 올려져 있었다……. 엎드려 있던 이단우가 접시 위에서 포크를 집어 들고 사납게 돌렸다.

    “어. 바라던 대로 <성물 쟁탈전> 시작돼서 좋겠네.”

    “내가 바라던 일은 아닌데……. 나도 단우 걱정에 공감해. 팀원들과 위기의식을 공유해 두면 같이 대비할 수 있지 않나.”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문제의 싹을 없애자고!”

    “이미 성검은 정부에 넘어갔잖아. 방법이 있나?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자. 할 거면 나랑 같이하고.”

    “쟤들 왜 싸우는 거야?”

    강울림이 물었다.

    ‘아니…….’

    소서정은 다른 게 궁금했다.

    차우원이 왜 앞치마를 입고 있는 거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