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06화 (106/170)
  • 106.

    단우는 벌떡 일어나 보드 앞에 섰다.

    “들어 봐.”

    “응.”

    차우원은 턱을 괴고 입을 가렸다.

    ‘웃지 말고.’

    남이 진지한데 저 자식은 왜 웃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어? 왜 정부에서 차문경을 습격했는지. 뭐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당대에 가장 뛰어난 헌터 중 하나였잖아. 그만한 헌터가 알아서 성물을 찾아오더니 <최후의 던전>에 뛰어들어 가 준다는데 ‘고맙습니다’ 하고 두고 보면 될 일 아니야?”

    “이상할 게 있나? 당대에 뛰어난 헌터가 어머니만 있던 건 아닌데. 당시 사람들이 어머니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을 리도 없는 데다,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만하잖아. 어머니보다 더 성물의 주인으로 적합한 분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 무슨 소리야? 그런 사람은 차문경밖에 없었지.”

    “…….”

    차우원이 자기 어머니를 겸손하게 평가하려 들어서 이단우는 정정했다.

    ‘인물이 있었다면 진작 성물을 찾았어야지.’

    차문경이 나선 뒤에야 성물을 찾아낸다는 게 말이 되나?

    “그걸 못 알아본 놈들이 멍청한 건데, 그 얘기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정부가 기를 쓰고 일단 빼앗으려 했던 건 성물에 문제가 있어서야.”

    “무슨 문제?”

    “과거 성물 주인이 학살을 저지른 적 있어.”

    “뭐?”

    “성물은 소유자의 소원을 들어주거든.”

    단우는 성검의 설명창을 떠올렸다.

      

    <성검>(EX)

    이 검은 주인의 간절한 염원을 이루어 줍니다.

    -제한: <종말>을 막을 자

    ‘그걸 ‘염원을 이루어 준다’고 말해도 되나?’

    욕망을 부추긴다고 하는 편이 옳지 않나?

    과거 이단우가 성검을 버려둔 건 그 물건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무기의 힘이 너무 강하다.’

    갓난아기가 검을 쥐어도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다. 그만한 힘이 손에 들어오면 평범한 사람은 버틸 수 없다.

    몸에 전류가 흐른다는 착각을 할 만큼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이단우 귀에는 검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네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하루 종일 그따위 헛바람을 불어넣는데 사람이 혹하지 않기도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그 빌어먹을 검에 죽은 사람을 되살릴 힘은 없었다.

    ‘닥쳐, 쓸모없는 새끼가.’

    이단우의 모든 소원은 이루어질 희망이 없는 것들이어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욕망은 <최후의 던전> 공략이 됐다. 그러나 그건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단우는 제대로 된 성검의 주인이 아니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성검을 소유하고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사람이 성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이 단우의 눈앞에 있었다.

    “잠깐만, 단우야.”

    차우원이 손을 들어서 단우는 발언을 허락했다.

    “나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성물 주인의 소원이 살인마가 되는 거였다고? 성물은 주인의 자격을 시험하지 않나. 그런 사람을 주인으로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데…….”

    차우원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고 따지거나 그게 믿을 만한 정보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래서는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이 자식은 합리적이다.’

    논리가 납득되면, 차우원은 넘어온다. 단우는 확신했다. 입이 말랐다.

    “성물이 어떤 사람을 주인으로 선택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다. 나도 잘 모르겠네. 강하고 자격 있는 헌터 아닐까?”

    “어. 그니까 그게 누구냐고. 아무도 모르지. 우리가 아는 건 <성물 쟁탈전>이 어떻게 진행되느냐 뿐이잖아. 근데 그 방식 구리지.”

    “우승자가 성물을 갖자는 거잖아. 공정한 게 아니라 별로라고?”

    “그렇게 뽑아서 살인마 나왔잖아.”

    <성물 쟁탈전>을 혹평하고 이단우는 말을 정리했다.

    “당연히 성물 주인의 평생소원이 살인마 되기는 아니었겠지. 저건 1순위 염원이 ‘종말을 끝내는’ 게 아닌 사람 손에 들어가면 문제 일으켜.”

    다른 욕망 없이 <최후의 던전>을 닫기 위해 움직일 사람이 가져야 한다.

    “네가 가져야 돼.”

    단우는 설득을 끝냈다. 뛰는 심장을 누르느라 보드를 부여잡고 차우원을 쳐다봤다.

    ‘반론해 봐라.’

    사실 단우는 <성물 쟁탈전>의 합리성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따위 절차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성검의 주인은 당연히 차우원인데.

    잠시 생각하던 차우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나는 정말 아니지.”

    ‘……?’

    이단우는 어리둥절했다.

    “너 내 말 알아들은 거 맞아?”

    “그런 것 같은데. 이게 성물이고 단우는 <성물 쟁탈전>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성물의 주인이 되어야 할 사람은 ‘종말 종식’을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성물 쟁탈전>은 무작정 강한 헌터를 뽑는 거라 취지에 맞지 않다는 거잖아. 오히려 성물이 잘못된 주인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고.”

    “어.”

    “단우가 그런 시간 낭비 싫어하지. 그리고 이 팀은 종말을 막으려고 만든 거고. 단우가 생각하는 내 역할이 성물의 주인이었구나. 그건 의외인데…….”

    차우원이 어깨를 들썩였다.

    “난 안 돼.”

    ‘……?’

    단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 성물이야?”

    “뭐? 하하. 그건 아니지.”

    “예지 능력자야? 만지기도 전에 거절당할 걸 알아? 미래 보고 온 거 아니면 헛소리 말고 성물부터 잡아라. 쟤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데 차우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또 뭔데.’

    단우가 짜증 내려는데 그가 웃음을 거두고 눈을 가늘게 떴다.

    “단우야, 나 네 뒷조사 했어.”

    * * *

    차우원은 이단우 말의 진위 같은 건 애초부터 의심하지 않았다.

    ‘단우가 이런 걸로 거짓말은 안 하지.’

    그는 이단우를 알았다. 이단우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그건 다시 말해 그 목적이 그에게 신성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단우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그의 입에서 어머니 얘기가 나오는 걸 차우원은 이상한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이단우는 객관적으로 ‘차문경’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 사람이 차우원과 어떤 관계인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이단우는 누구보다 차우원이 차문경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네가 주장하면 정부와 5대 길드는 너 협박 못 해. 전대의 일이 있으니까.

    빼돌린 성물을 앞에 두고 이단우가 ‘이거 너 해’ 같은 소리를 해서 차우원은 약간 아찔해졌다.

    ‘아, 설마.’

    그는 이단우가 성물을 빼돌렸다는 데 놀라지는 않았다. 이단우는 필요하다 생각된다면 핵무기 작동 버튼도 일단 챙겨 놓을 사람이었으니까. 차우원이 성물을 사유화하는 제안을 거절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기록으로 읽어서는 알기 힘들지.’

    이단우는 전대의 일을 기록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상황과, 사람들의 불신과, ‘혹시 내가 성물의 선택을 받는다면’ 하는 기대와, 질시 같은 것들을.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 곁에서 경험한 사람이었다.

    거리에서는 몬스터들이 차 대신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데, ‘시간이 없으니 <최후의 던전> 공략에 들어가겠다’는 차문경을 정부 헌터들이 습격했다. 정부에서만 그렇게 주장했던 것이 아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와 다수의 헌터들은 성물의 주인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정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어머니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정부에서 어머니를 습격했을 때, 그를 막기 위해 나선 헌터는 소수였다. 길드 연합은 뒤늦게 보호에 나섰다. 차문경이 스스로 습격을 물리치고 난 뒤에야.

    차문경이 정말로 성창의 주인으로서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는 건 결과적인 얘기니, 당시 그들의 행동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이 정말로 대의를 위해 움직였다고는 믿지 않았다. 차우원도 그 믿음이 어느 정도는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고 있는데 절차를 따져야 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지.’

    물론 이단우는 그런 상황에서 ‘절차’라는 단어는 떠올리지도 않을 사람이었지만.

    차문경처럼.

    요는 그것이었다. 영토 대부분이 침식에 먹혔을 때도 <성물 쟁탈전>을 하자던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지금 ‘성물의 주인이 이미 정해졌다’는 걸 인정할까?

    아니. 반드시 공격받는다.

    이단우의 말대로 어머니의 이름이 차우원을 지킬지도 모른다. 공개적으로는. 그러나 이건 위험한 방법이었다.

    이단우는 순진하리만치 사람의 이성을 믿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차우원은 쓴웃음이 나왔다.

    ‘아, 설마.’

    처음부터 단우가 자신에게 바란 역할이 ‘성물의 주인’이었나?

    이단우는 이 팀의 설계자다. 차우원은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팀원이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은 차우원이었다. 그걸 이용해 여러 차례 이단우의 선을 넘었으니까.

    그들이 성물을 발견하게 될 줄은 이단우도 몰랐을 터였다. 그러나 발견한다면. 아니, 다른 사람에게 발견돼 <성물 쟁탈전>에 들어간다 해도.

    이단우는 차우원이 성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헌터들의 순수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건 차우원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할을 못 하면, 단우가 날 버리나?’

    속 어딘가가 멍든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말해야 했다.

    단우의 말대로라면 차우원은 성물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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