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104화 (104/170)

104.

“애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 화 좀 내지 마.”

이모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애초에 당신이 문제를 일으킨 거 아니야! 그놈은 왜 데려와서…….]

“그만해! 내 동생 유산 아니었으면 당신이 계속 사장 소리 들으면서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아?”

[뭐? 당신 말 다 했어?]

“끊어. 나중에 얘기해.”

그녀는 통화를 종료하고 아예 휴대폰을 꺼 버렸다.

남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모르는 번호로 자주 전화가 왔다. 이상한 메시지를 받는 건 물론이었다. 아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랬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 친척 아이를 맡아 기르는 게, 말이 쉬운 일이지 막상 하기는 정말이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녀는 여동생과 친하지도 않았다. 여동생이 각성한 뒤로 두 사람의 삶의 범주는 크게 달라졌다. 결혼 이후에는 거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잘살았다. 헌터 수입이 있었으니까. 5대 길드에 소속된 이름이 알려진 헌터가 아니더라도 헌터 직종 자체가 그렇게 고수입을 올린다는 걸 그녀는 동생을 통해 알았다.

남편의 사업 때문에 매달 이자에 전전긍긍하며 생활을 하는 그녀가 동생을 부러워하지 않기는 어려웠다. 지규에게는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동생에게도 아이가 있었다. 지규와 같은 나이의 사촌인데, 둘은 처지가 전혀 달랐다.

동생을 질시하고 싶지도 않고, 신세 지고 싶지도 않아서 그녀는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어느 날 동생의 부고가 날아왔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생각한 건 그거였다.

‘……빚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동생에게 형제는 그녀 하나였다.

‘미쳤어.’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조카를 봤다. 죄책감에 가슴이 저려서, 그녀는 조카의 손을 잡았다…….

“어마!”

생각에 잠긴 채 서 있는데, 차우원이 코너 모퉁이에서 나와서 그녀는 소스라쳤다.

“죄송해요. 놀라셨어요?”

“아니에요! 제가 넋을 놓고 있어서……. 애가 화장실에 들르자고 해서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차우원을 쳐다봤다. TV에서도 자주 봤던 얼굴이지만, 실물이 더 훌륭했다.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에 사려 깊은 태도가 있어서 저런 아들을 두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다 싶었다.

이 청년도 인터넷을 봤겠지? 아니면, 단우가 무슨 말을 했을까?

그러나 차우원에게선 저를 향한 악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도착했대요. 주차장에 기자들은 없다니까 지금 내려가시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근래 받아 본 적 없는 호의 어린 태도에 그녀는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한편으로 초조감이 찾아왔다.

‘이렇게 돌아가도 될까?’

그러나 그녀는 이미 나왔다. 조카는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나가라’고 한 사람이 조카였으니까.

하지만 믿어도 될까? 그녀를 내보낸 조카가, 정말로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 움직여 줄까?

“단우는…… 잘 지내나요?”

그녀는 망설이다 물었다. 조카가 그녀를 어떻게 언급했을지 궁금했다.

“최근 여러 일이 있긴 하지만, 팀에서는 잘 어울리고 있어요. 팀원들도 모두 단우를 좋아하고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아…….’

차우원은 그녀를 팀원의 여느 친척처럼 평범하게 대하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차까지 그들을 안내하는 건 물론이었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의아했으나, 조카는 조용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애였다. 고민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그런데 차우원이 말을 이었다.

“가족 얘기를 하기 꺼려 해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는데, 부모님이 비정기 던전의 희생자셨을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긴장했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먼저 말했다.

“동생 부부가 그렇게 가고, 단우는 한동안 말을 못 했어요. 갑자기 예민해지거나 폭력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요.”

“그랬군요.”

그녀의 말에 차우원은 놀란 듯했다.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단우에게는 미안해요. 그래도 좋은 팀원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이가 조금, 뭐라고 할까요, 방어적인 행동을 보이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네. 걱정 마세요.”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실제로 단우는 대하기 힘든 아이였다. 이제 차우원은 단우가 무슨 말을 했더라도 그의 성향이 친척들에 대한 오해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터였다.

주차장에는 택시가 아니라 검은 세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가 나와 뒷문을 열어 줬다.

‘우와.’

아들이 옆에서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

그녀도 놀랐다. 하기야 근래 조카의 이름을 자주 들었다.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평범한 헌터였던 여동생도 대단한 유산을 남겼는데, 조카의 벌이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였다. 아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동안 조카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뒷좌석에 앉으려다 말고 차우원을 잡았다. 역시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저, 이거 기자님 번호라고, 단우에게 전해 줄 수 있을까요? 단우가 많이 화가 나서 제 연락은 받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정말 미안해한다고, 부탁한다고 했다고 전해 주세요.”

‘지금 떠도는 모든 소문은 거짓말’이라고 기자 회견을 해 달라는 말이 어째서인지 조카 앞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조카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것뿐이지 않은가. 그녀와 가족들은 하루하루 숨통이 말라 가고 있는데…….

“전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차우원이 성실한 목소리로 약속했다.

‘이걸로 됐어.’

그녀는 안심했다.

“아, 씨, 차우원. 사인 받을걸.”

“좀……! 조용히 해. 너 다리는 어때.”

앞에 기사가 앉아 있는데 헛소리하는 아들을 나무라고 그녀는 아들의 다리를 살폈다.

몇 년 전 조카의 유산에 손을 댈 때도 그녀가 스스로에게 같은 변명을 했다는 사실은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떠나는 ‘이단우의 가족’을 차우원은 잠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저들은 이단우에게 해롭다.

* * *

차치원은 형의 전화를 받았다.

“치원아, 아버지가 단우 뒷조사했지.”

‘안 돼, 큰일 났다.’

형이 안부 인사도 없이 그렇게 물어서 차치원은 심장이 철렁했다.

‘형은 전부터 뒷조사 같은 건 질색했는데.’

그는 형의 주변에 질 나쁜 사람이 꼬이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걸로 아버지가 크게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형을 알고 싶은 것뿐이다.

애초에 형은 아버지가 질색할 만한 상대와 어울린 적도 없었다. ‘걔랑은 가까이 두고 지내면 좋을 텐데.’ 하는 상대와 친밀하게 지내지도 않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그러셨대?”

차치원은 아버지를 위해 변명했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러나 형은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화낼 생각 없어. 나한테도 보내 줘.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고.”

“……!”

‘있다.’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간 차치원은 원하는 자료가 끼어 있는 서류철을 뽑아냈다. 양옆으로 펼치자 이단우의 증명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그는 공중에서 잡아챘다.

서류를 찾는 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실 차치원은 이 자료를 한번 읽어 본 적 있기 때문이다.

형과 이단우의 사이를 알게 된 뒤로, 그는 이단우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서류 속 이단우는 헌터로서 교육받은 이력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매스컴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단우의 모범적이지 않은 학교생활은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실 차치원은 그가 고학생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단우의 가정형편은, 도련님인 차치원 눈에는 ‘불우’했다. 성품이 나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였다.

차치원은 휴대폰으로 자료를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치원이? 왜 여기에 있어?”

“오셨어요?”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차치원은 반사적으로 자료를 인벤토리에 넣어 버렸다. 겨드랑이가 식은땀으로 젖었다.

“응, 그래. 우원이가 비정기 게이트를 공략한 일로 다들 어찌나 떠들썩하던지. 내 아들 내가 칭찬할 시간도 없지 뭐냐. 다들 우원이 얘기만 해 대서…….”

아버지는 기분 좋게 취한 듯했다. 차치원은 서재를 나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 그런데 형 팀의 이단우 헌터 말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이단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과연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주변 질이 나빠. 학창 시절 평판을 보니 리더십이나 사교성도 부족하고, 우수한 헌터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부족하지. 하지만 두뇌는 그럭저럭 우수한 것 같고, 이림 부길드장이나 시환이도 높게 평가했지. 우원이 보필하는 역할로는 괜찮겠어.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지.”

그건 아버지로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것이었다. 형 옆에 두기 아쉽지 않다니.

하지만 차치원은 아버지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 중독자예요.’

침과 함께 말을 삼키고, 차치원은 인사했다.

“네……. 쉬세요.”

“우원이 보좌역은 네가 맡기를 바랐는데.”

아버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버지는 전대 영웅들을 원망하는 인터뷰 따위는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그러나 그 공략에서 어머니만 희생된 걸 두고두고 한스럽게 여겼다.

-더 우수하고 희생적인 팀원들이 있었다면, 네 엄마는 살아 있었을 텐데.

차치원은 서재를 나섰다. 그리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그런데, 이 자료 어디에 쓰게?”

‘혹시 형도 갈등 중인가? 그 사람과 어울리는 게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걸까?’

그는 기대를 품었다.

[고민 중이야.]

짧은 대답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

차치원은 사실 이단우가 형 곁에 설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평가대로 그는 뛰어나니까. 이번 공략으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단우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으로, 차치원은 언제나처럼 심장이 뛰었다…….

* * *

장례식이 끝나고 단우는 방전되어 있던 휴대폰을 되살렸다.

‘됐나.’

배터리 칸은 채워지지 않았으나 어쨌든 충전이 되고 있으니 기능은 할 것이다. 그러나 전원을 켜자마자 단우는 쉴 새 없는 진동 때문에 휴대폰을 놓아야 했다.

‘……?’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지금도 어디서 전화가 오고 있다.

팀의 이름값이 올랐다는 게 느껴지는 반응이었다.

‘명성 작업은 이제 됐고.’

단우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끊고 부재중 메시지 목록을 살폈다.

16736077327299.jpg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번호로 그는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이단우의 과거사가 오래 화제가 될 리 없다.’

합동 장례식 등으로 잠시 관심을 끌 뿐이다. 벌써 인터넷에 글 하나 올라오지 않으리라 단우는 확신했다. 그러나 요청받은 바가 있으니 기사 하나는 내야 할 터였다.

볼일을 마치고 단우는 전화번호부에 들어갔다.

[권준홍]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기본 통화음이 울렸다.

[이, 이, 이단우 헌터!]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