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다시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차우원은 성실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가로막혔다.
이모는 안색이 파리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차우원의 어깨 너머를 힐끗거렸다.
“아……. 그러셨군요.”
“예. 연락을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요. 장례 일정이 뉴스로도 보도됐지만 혹시 소식을 듣지 못할 곳에 계시는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이모는 데인 사람처럼 움찔하더니 말했다.
“낯선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아서요……. 집안사람들이 뉴스도 보지 않아서, 소식을 듣는 게 늦었어요. 더 빨리 오고 싶었는데……. 단우는 어떤가요?”
“자고 있어요.”
그녀는 심약한 느낌이었고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차우원의 뒤에서 강울림과 소서정이 다가왔다.
“누구셔?”
“단우 친척분들이시래.”
“헉…….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그들은 서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강울림이 차우원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안으로 모시지 않고.”
“응, 모셔야지.”
차우원은 스스로의 비이성적인 반감을 몰아내고 길을 비켰다. 이 사람들은 단우의 친척이었다. 차우원은 단우의 보호자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나 실제 보호자 자격이 있는 건 이쪽일 것이다.
“이단우, 어디 있냐?”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 사촌 김지규가 큰 소리로 물었다.
‘미쳤나.’
순간 소서정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잠든 이단우를 깨운다고?
이모가 김지규를 나무랐다.
“그만둬. 잔다잖아. 왜 깨우고 그러니?”
“아니, 우리가 왔는데 그럼 자게 둬?”
“단우가 며칠간 잠을 못 자서요. 일어나면 알려 드릴게요.”
차우원이 화도 내지 않고 대답했다. 소서정은 그의 인내심에 감탄하는 대신 등골이 오싹해졌다.
‘차우원이 화 참는 거 처음 보는데.’
소서정은 첫 만남에 차우원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도 지금껏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차우원의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안에서 문이 열리고 이단우가 나왔다.
“뭐야?”
“봐, 일어났잖아. 너는 네 부모님 장례식인데 자고 있냐?”
김지규가 지껄였다. 소서정은 강울림의 솥뚜껑 같은 손이 주먹을 쥐는 걸 봤다.
‘…….’
심정은 소서정도 비슷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단우는 사촌을 경멸하는 눈으로 노려보지 않았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모를 돌아봤다.
“오셨어요.”
“응, 단우야. 우리 때문에 깼구나. 미안해, 이모가 빨리 못 왔지.”
이모가 단우의 손을 잡았다.
자다 깨서 눈이 붓고 조금 붉어져 있는 이단우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고분고분한 분위기가 소서정은 낯설었다.
“팀원들이 와 줬구나, 다행이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이모의 말에 이단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쳐서 소서정은 어쩐지 심장이 철렁했다. 이단우와 약한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왔어?”
“어어…….”
강울림이 대답했다. 그도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양새였다.
이단우는 여느 때처럼 남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인사는 하셨어요?”
“아니, 아직. 향 피우고 올게.”
“내일 발인이에요.”
“그래. 이모가 자고 가야겠다. 이모부도 오고 싶어 했는데,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네. 발인 때는 직원들이랑 와서 관 들어 줄 거야.”
이단우의 어깨를 문지르더니 이모는 향을 피웠다. 그 자리에 있기 뭐해서 팀원들은 밖으로 빠져나갔다.
조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아 떡을 집어 먹던 강울림이 말했다.
“우리도 절 안 했는데.”
“좀 있다가 해.”
“근데 저 사람들 기분 나빠.”
“내 말이.”
“저 사촌 왜 저래? 이단우는 저걸 왜 들어주고 있어?”
“아니, 저 친척들 다 이상해. 걔도 그런데 이모라는 사람은 왜 안 말려?”
그것도 그랬다.
이단우는 어른 앞이라고 고분고분하게 구는 사람이 아니다. 일례로 강울림의 어머니는 아직도 이단우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사실 가장 이상한 건 이단우였다.
‘뭐지.’
집어내라면 뭐를 고르기는 곤란한데,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찜찜했다.
두 사람이 드물게 의견 일치를 보고 있는 동안 차우원은 이단우 곁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데.’
그는 단우 옆에서 친척들과 맞절했다.
이모의 태도는 나무랄 데 없었다. 그녀는 조문을 하고 다시 단우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다정하고 좋은 친척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단우는 그녀를 반기는 기색이 없었고 그녀 자신도 이상하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먼저 입을 뗀 건 그녀였다.
“단우야. 이모가 할 말이 있는데…….”
“하세요.”
단우는 별 고민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기…….”
그녀가 자신을 힐끗거려서 차우원은 일어났다.
“단우야, 나 나가 있을게. 대화 나누세요.”
곤란한 일이다. 단우에게 자신이 모르는 일이 생기는 게 차우원은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우원이 나가자 이모는 뒤에서 문을 닫았다. 휴식실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려는 모양이었다.
‘들릴 텐데.’
차우원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장례식장에는 아무런 스킬진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안에서 은밀하게 말해 봤자 헌터가 청력을 집중하면 대화 내용이 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러면 안 되지.’
그는 예의를 아는 사람답게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쳐 냈다.
그러나 식탁에 앉은 팀원들은 입을 딱 닫고 어딘가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하지 마.”
차우원은 헛웃음을 지으며 식탁을 쳤다. 그런데 소서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에 검지를 댔다.
‘쉿!’
그 옆에서 강울림이 중얼거렸다.
“이단우 진짜 왜 저래?”
차우원은 순간 예의와 상식을 잊고 귀를 열었다.
* * *
이단우는 머리가 멍했다. 차우원의 추측과 달리 슬픔에 넋을 잃어서는 아니었다.
‘마력 제어를 제대로 못 했어.’
가만히 있어도 구역질이 났다.
함정을 발견한 순간 멍청하게 감정에 휩쓸려서, 검의 마력을 과도하게 끌어 쓴 탓이다.
그가 적은 마력으로 최상을 효율을 내야 하는 이유는 마력량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게 원인이긴 했으나, <육영>의 마력을 끌어다 씀으로써 마력량 부족 자체는 해결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성질이 다른 마력은 몸에 부하를 줬다.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단우는 마력량을 조절해야 했다. 그걸 못하면 이 꼴을 당하는 것이다.
“단우야, 네가…… 마음이 많이 상해 있는 거 알아. 우리한테 실망도 했을 거야.”
이모가 말했다. 이모의 손이 부드럽고 따듯해서 단우는 속이 메슥거렸다.
‘오실까?’
가족을 묻는 질문에 ‘이모가 있다’고 대답하면서도 단우는 그게 궁금했다. 올 거라고 믿었지만, 오지 않아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이모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유산을 전부 사용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들키고도 이모가 저를 보러 올지 알 수 없어서였다.
실제로 과거 이모는 단우가 그 집을 나간 뒤로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모는 여동생의 장례식은 무시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으로 찾아온 이모를 본 순간, 단우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모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너희를 키우려면 이모부가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회사가 잘될 텐데……. 힘들어서, 스스로에게 변명을 했어. 너에게 잠깐 빌리는 거라고 생각했어. 금방 채워 넣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이모가, 사업을 잘 몰라서……. 너 독립할 때 다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얘기는 됐어요. 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단우는 피곤했다.
‘그 집 나오기 전에 끝난 얘기 아닌가.’
사흘간 대여섯 시간쯤 잔 것 같았다. 그나마도 차우원이 곁에 있어야 잠들 수 있었다.
속이 쥐어짜지는 듯하고, 피가 식었다가 다시 끓고, 연신 심장이 뛰었다. 마력 운용의 부작용은 이단우의 몸을 계속 각성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곳은 위험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이단우의 몸이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단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상태를 티 내지 않고 주어진 일을 끝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모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모는 지규가 너랑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어. 둘이 가끔 다투기는 해도 형제들이 자주 그러듯이 투닥거리는 건 줄 알았지, 학교에서 지규가 너에게 못되게…… 그런, 그렇게 대할 줄은 몰랐어. 이모가 너무 바보 같았어.”
이모가 울었다. 손으로 떨림이 전해져서 단우는 무심결에 이모의 어깨를 잡았다.
‘무슨 말이지?’
김지규를 쳐다보니 그는 인상을 쓰고 있다가 시선을 피했다. 김지규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과거의 잘못을 고백했으리라는 가정은 폐기됐다.
그런데 이모가 어떻게 알았지?
“단우야, 이모가 미안해……. 그런데 정말 아니야, 너를 학대하려던 게 아니었어. 그러지 않았잖아. 응? 이모 너무 힘들어. 기자들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현관에 계란을 던지고, 이모부가 일도 못 하게 하고…….”
“아, 엄마…….”
“너도 빨리 사과하지 않고 뭐 해? 단우야,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겠니?”
이모가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단우는 그녀를 잠시 쳐다봤다.
이모는 동생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녀가 찾아온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