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97화 (97/170)

97.

이단우는 자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림을 배제했어야 했는데.’

고청은 아니라면 아닌 인간이었다.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 이림 길드원들을 땅 갈아엎는 데 써먹기는 했으나, 약발은 거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이림이 이대로 던전핵을 파괴하면 게이트는 닫힌다.

‘아니.’

그 전에 찾을 수 있다. 단우는 초조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여기에 있어.’

부모님의 시신은 이 근방에 있었다. 다른 곳일 리 없다.

몬스터의 패턴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종족 습성이라 바뀌지 않는다. 자이언트 앤트의 패턴이 동족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면, 리자드맨은 침입자를 함정으로 유인해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자드맨이 침입자를 유인하던 함정지대는 이곳이었다.

부모님은 이 근처에 있다. 조금만 더 찾으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림의 힘까지 필요 없어.’

단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눌렀다. 탐색은 팀원들만으로 충분했다. 문제는 팀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였다.

“우리는 여기서 빠지자.”

팀원들에게 돌아간 단우는 차우원을 향해 말했다.

“무슨 말이야?”

“이림이랑 결별하자고. 저쪽은 던전핵 찾으라고 해. 우린 다른 거 찾자.”

“뭘 찾으려고?”

소서정이 물었다.

“이전 공략팀.”

“……!”

“잠깐, 어디 있을 줄 알고?”

“우리가 찾을 수 있나?”

소서정과 차우원이 차례로 물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과거 이단우가 부모님의 시신을 찾겠다고 했을 때 스승님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1차 공략팀의 유품 수습’ 따위는 던전 공략의 목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던전 필드는 넓었다. 상급 던전일수록 그랬는데, 그 모든 필드를 돌면서 이미 죽은 사람의 흔적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은 거의 불가능했다.

1차 공략팀, 속되게 불러서 ‘실패팀’의 흔적을 찾아 나올 수 있는 상황은 보통 하나였다.

‘실패팀이 보스전에서 패배한 경우.’

그들이 보스룸에서 몰살당한 경우다.

그 경우 2차 공략팀이 보스몹 레이드를 성공하고 그들을 흔적을 수습해 나올 수 있었다.

여기서 흔적이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는 보통 남아 있는 것이 온전한 형태의 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티팩트, 혹은 뼛조각이나 남아 있을까.’

그걸 수습해서 가지고 나가면, 고인의 소지품을 알아보거나 뼛조각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신원을 알아낸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2차 공략 과정 중에 실패팀의 흔적을 찾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나머지 경우에는 찾을 확률이 극히 낮다. 던전을 클리어해, 실패팀에게 영면을 안겨 준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이단우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찾기 싫어?”

“아니, 찾으면 좋지. 우리 완전 영웅 되고 훈장도 받겠지.”

소서정이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그는 이림과 극적으로 사이가 봉합됐는데, 어제의 활약 덕분이었다. 이림의 심기를 거스를 짓은 하고 싶지 않을 터였다.

단우는 일단 칭찬했다.

“잘 아네.”

“‘잘 아네’가 아니라, 문제가 있잖아!”

“무슨 문제?”

“모르는 척하지 말고. 우리 이미 찾을 데는 다 찾아봤잖아. 너 때문에 하루 종일 삽질도 했는데 뭘 더 찾아보자는 거야? 보스룸 근처엔 아무것도 없어. 그 말은 1차 공략팀이 아예 보스룸 루트로 진입도 못 했다는 뜻인데……. 우리 이 필드 다 뒤질 거야? 한 반년 동안 던전 안에서 살아? 이림 가둬? 가능해?!”

“반년까지 필요 없어. 이 근처에 있어.”

단우는 그를 안심시켰다.

“아니…….”

물론 소서정은 납득하지 않았다. 그에겐 이단우가 억지를 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머리가 있었다.

‘이점을 보여 줘야 한다.’

단우는 말을 이었다.

“이림 가둘 필요도 없고 척질 필요도 없어. 어차피 들어오기 전에 각자 알아서 공략하자고 계약하고 들어온 거니까, 우리가 개별 활동 한다고 그쪽에서 고까워할 일도 없지. 그리고 수색 시간 말인데……. 이림이 솜씨를 발휘해서 던전핵을 하루 안에 찾아서 파괴한다고 치자. 그럼 우리가 수색에 쓰는 시간은 하루뿐이지. 길어 봤자 며칠을 안 넘길걸. 별로 시간 낭비도 아니야. 이미 공헌도 1위 조건은 충족했고.”

손해될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한 뒤, 단우는 덧붙였다.

“사흘 버려서 1차 공략팀 찾으면 남는 장사지. ……1차 공략팀은 함정 속에 있어. 이 던전 패턴이 그거잖아. 가장 잘하는 짓을, 첫 침입자들에게 안 써먹었을 리 없지. 어느 함정에든 있기는 할 거야. 우리가 구할 수 있어. 이 근처에 있다고. 함정만 깨 보면…….”

단우는 입을 닫았다.

‘좀 닥쳐 봐.’

말이 변명처럼 튀어나오고 있다.

‘뭐지’ 하는 얼굴로 팀원들이 자신을 봤다. 이단우는 차우원이 아니었다. 그냥 ‘하자’고 말하는 것만으로 팀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리더가 아니다.

납득 가능한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에 팀원들은 지금까지 자신을 따랐다. 자신이 변명을 해선 안 됐다. 이단우는 다시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차우원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단우야. 그러니까 우리가 찾을 수 있다는 거지.”

‘알았다고?’

차우원이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여상스러워서 단우는 멈칫했다.

“던전핵 깨든 말든 우리가 공헌도 1위니까, 힘든 일은 이림한테 맡기자는 거지. 서정이가 스킬로 땅 다져 놓은 곳도 아니라, 함정 파기가 어렵진 않겠다. 그냥 건들면 무너지지 않나.”

“우리 삽질 안 해도 돼?”

강울림이 반색했다. 옆에서 움찔한 소서정이 팔짱을 풀며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 나도 알고 있었어.”

“하하. 그리고 이런 조건이 아니라도, 1차 공략팀 구하면 좋지. 방금 앞으로 갔던 것도 이림에 이 얘기 하려고 간 거였어?”

“……응.”

“이림은 생각이 달랐나 보네. 어쩔 수 없다. 우린 따로 움직이자.”

차우원이 팀원들을 돌아봤다.

“들었지. 우리 독립한대. 변경된 목표는 1차 공략팀의 흔적을 찾는 거야. 시간 제한은 이림이 던전핵 파괴하기 전까지. 가장 우선적으로 탐색할 곳은 이 일대의 함정 같다. 서정이가 <함정 간파> 써서 함정을 발견하면 울림이가 파괴하자. 안에서 나올 몬스터 조심하고, 그쪽으로 떨어지지 않게 주의해. 주변 경계 소홀히 하지 말고. 인원이 줄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지켜봐 주자.”

차우원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가볍게 웃었다.

“시간 별로 안 걸릴 거야. 단우가 이 근처에 있대.”

“근처라고 해도 넓거든?”

소서정이 투덜거리더니 스태프를 들었다.

그들이 걸음을 멈춰서 이림 공략팀 후미만 뚝 떨어진 모양새였다. 이림의 몇몇이 뒤를 돌아봤으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3팀 힐러만 손짓으로 ‘뭐 하냐, 따라붙어라’라는 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그러나 <차우원 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한다고?’

과거 차우원은 이단우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단우 팀>의 팀원들조차 이유 없는 명령에 반발했는데…….

소서정이 물었다.

“어디부터 시작해?”

“여기.”

단우는 대답했다.

그가 가리킨 곳을 소서정의 스태프가 찍었다. 바닥에 기하학적인 무늬의 스킬진이 형성됐다.

“<함정 간파>!”

“여기?”

차우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

이림 길드원들이 ‘뭔데’라는 시선을 다시 보낸 순간…….

붉게 빛나는 지점을 강울림이 방패로 내리쳤다.

쿵!

가해진 충격에 함정이 반응했다.

땅이 울린다고 느낀 건 잠깐이었다. 함정은 몇 미터 앞이었는데 단우의 발밑도 갑자기 내려앉았다. 이림 길드원들 쪽에서 고함이 울렸다.

“뭐야!”

“함정 조심!”

그들은 이미 함정 지대를 겪은 바 있었다. 이 던전의 함정이 어느 범위까지 무너지는지 대략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바닥을 박찼다.

“……!”

그런데 땅 꺼짐이 멈추지 않았다. 발을 딛는 곳마다 흙더미가 무너지더니 아예 쏟아져 내렸다! 길드원들은 미친 듯이 도약해 단단한 지면으로 몸을 던졌다.

우르릉……!

순식간에 거대한 동공이 만들어졌다. 지하의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지독한 악취가 올라와, 헌터들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독?’

보호 아티팩트가 그들의 얼굴을 감쌌다.

‘뭔가가 다르다.’

지금까지 보아 온 함정과 규모부터가 달랐다.

헌터 전원이 뒤로 물러나며 아래를 경계하는데, 그 사이를 뚫고 반대로 향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단우!”

강울림은 들쳐 메고 있던 소서정을 내팽개쳤다. 이단우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단우가 더 빨랐다. 강울림의 손을 반사 신경으로 피해 낸 이단우가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

강울림이 경악하는데, 이단우를 따라잡은 차우원이 뒤에서 그를 잡아챘다. 강울림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뛰쳐나가던 힘이 얼마나 셌는지 이단우의 팔이 역방향으로 꺾였다. 차우원도 놀라 손의 힘을 푼 순간, 이단우는 강한 힘으로 팔을 잡아 빼려고 했다.

‘부러진다!’

강울림은 눈을 크게 떴다. 헌터의 신체는 튼튼해서 웬만한 작용으로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차우원의 힘은 웬만한 것 이상이었고 이단우는 자신의 몸이 어떤 모양으로 꺾이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모양이었다. 보는 사람이 비명이 나오는 상황을, 차우원이 정리했다.

그가 이단우의 다리를 밟고 넘어뜨렸다!

차우원은 그대로 팔을 뒤로 꺾고 이단우를 범인 잡듯 짓눌렀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우야.”

“놔!”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저길 뛰어들어서 어쩌려고?”

“놓으라고. 확인만 한다고……!”

“뭘? 함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네 몸으로 확인하게?”

“그래!”

이단우가 몸부림쳤다. 꼼짝도 않던 차우원이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울림아, 단우 잡을래.”

“어?”

차우원이 이단우를 던졌다!

강울림은 얼떨결에 품으로 받았다. 그리고 일단 체중으로 눌렀다. 그는 차우원과 이단우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억누르고 있는 상대는 이단우였다.

“너 이거 안 놔?”

바닥에 깔린 이단우가 사나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봤다. 강울림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 죽나?’

그는 차우원이 왜 이런 난관을 자신에게 선사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손을 놓으면 이단우가 죽으러 뛰어내릴 기세였다.

“대체 왜 그러는데?”

억울해진 그가 물었다. 이단우가 지랄하는 이유라도 알자 싶었다.

그런데 이단우는 강울림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이를 갈았다.

“차우원!”

강울림도 고개를 든 뒤에야 상황을 알았다. 이단우를 밀친 차우원이 혼자 함정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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