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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95화 (95/170)
  • 95.

    그는 평소처럼 차분했는데, 단우가 돌아보자 미소 지었다. 보기 좋은 얼굴이었고 아무 문제도 없었다.

    ‘뭐야.’

    소서정의 웃기지도 않은 짓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우는 뭐 하냐고 묻는 대신 그의 어깨를 잡았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차우원을 따라 보스몹을 치느라 쓸데없이 근육을 혹사해서 안 아픈 곳이 없었는데…….

    소서정의 어깨를 짚고 몸을 붙이자 그가 기겁했다.

    ‘이 새끼 왜 자꾸 도망치냐.’

    단우는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야. 너 네 시그니처 스킬에 대해 뭐라고 했어.”

    “어, S급인 데다 범위 스킬에 이펙트도 쩐다, 근데 너무 강해서 공략 중에는 못 쓰겠다, 팀원 배려 차원으로 봉인 중이다?”

    “헛소리 말고. 숙련도 안 늘고 시전 시간은 오래 걸리는 데다 쓰고 나면 마력 다 빨려서 죽겠다며.”

    “내가!? 그런 소리를 했을 수도 있지, 아니 근데…….”

    소서정이 숨을 들이쉬더니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의 스킬에 감명받아 말도 사라진 모양이었다.

    ‘웃긴 놈.’

    사실 이건 소서정의 온전한 공로가 아니었으나, 단우는 그가 환상에 취하도록 허락했다.

    “너 공헌도 1위 찍겠네.”

    “그렇지! 이건 나지? 아니, 와……. 내가 했지만 미친 거 아니야? 이게 단일 스킬로 가능해? 나 천재였나 봐. 그런 줄은 알고 있었는데, 세상에…….”

    “스킬 하나로 지형을 바꿨네. 서정이 대마법사 달겠다.”

    차우원이 맞장구쳤다. 그는 입에 발린 말도 진심처럼 들리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소서정의 입이 귀에 걸렸다.

    “뭐? 그 정도는 아니야.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만, 스무 살짜리 대마법사가 어디 있어? 다른 사람 시선도 생각해야지. 앞으로 실적 좀 쌓고 명성을 얻어서 다들 찍소리도 못하게 만든 다음에야 달아 줘야 하지 않나…….”

    ‘좋댄다.’

    단우는 다정하게 말했다.

    “어. 이런 거 몇 번 더 하면 되겠네.”

    “에헤헤헤…….”

    ‘이건 끝났고.’

    소서정도 머리 좋은 놈이어서 이게 정말 자기 능력이 아니라는 건 알 터였다. 그러나 당장 보이는 결과가 ‘내가 스킬을 썼더니 필드가 정리됐다’다. 발밑에서 세상이 평정되는 꼴을 봤는데 스무 살짜리 어린 놈이 허파에 바람이 안 들고 버티겠는가? 그 어린애가 소서정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화룡창> 수련은 안 놓겠지.’

    남은 사람은 하나였다.

    ‘차우원.’

    그런데 단우는 그에게 할 말이 없었다.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스무 살 차우원에겐 물을 수 없는 것이었다.

    차우원을 따라 보스몹에게 떨어져서, 단우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마력으로 중력의 영향을 강화한 단우가 보스몹의 정수리에 떨어진 순간…….

    <육영>이 고정시킨 보스몹의 머리를 차우원은 단번에 날려 버렸다.

    이단우가 청연에 들어가기 전 만나 본 최강의 헌터는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이 이단우를 위협하던 몬스터를 일검에 반으로 갈라서 단우는 검이 강한 무기인 걸 알았다.

    이후 스승님을 따라 기술을 성공시키려 노력했으나, 그건 단우에게 맞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 스승님이 위대하고 멋져 보여서 따라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너는 딱 봐도 안 될 것 같지 않냐?

    기술에 실패하고 몬스터에게 물려 팔이 뜯긴 단우에게 스승님은 혀를 차며 말했다.

    -울기는 또 왜 울어? 물리니까 아프지? 넌 한 대 맞으면 골로 가니까 최대한 얍삽하게 움직이래도. 이 늙은 스승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을 해 줘도 듣지를 않아요.

    -얍삽한 게 아니라 영리하게 싸우는 거라면서요. 사실 얍삽하다고 생각하셨던 거잖아요!

    -얍삽한 검에 맞으면 안 죽냐? 뭐 예술 점수 감점돼서 몬스터가 살아나가?

    스승님의 검은 이단우에게 맞지 않았다. 그건 압도적인 재능의 영역이었는데 과거의 이단우는 몰랐다. 몰라서 수도 없이 시도했고 다쳤다. 어린 이단우는 멍청했다. 스승님께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멍청한 이단우에게 현실을 알려 준 건 차우원이었다.

    스승님을 잃고 청연으로 향한 이단우는 상복 입은 차우원을 만났다. 그에게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그가 스승님의 검을 쓰는 걸 봤다. 그는 스승님의 제자였다. 검의 움직임, 싸우는 방식 모두가 스승님의 것이었다.

    기교도 필요 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잘라 내는.

    이단우는 현재의 차우원을 그렇게 만들어야 했는데 차우원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너 뭐야. 어떻게 했어?’

    단우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거였다.

    ‘언제부터였지?’

    단우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차우원은 어렸다. 어설펐고 뇌는 말랑거렸다.

    그렇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헌터 자격 시험을 치를 때. 강울림을 구하러 도박장 건물에 난입했을 때. 던전 브레이크 방어 지원을 나갔을 때. 차우원은 과거의 그가 할 수 있던 일을 하지 못했는데…….

    ‘못 한 게 맞나?’

    안 한 게 아닌가?

    이단우가 하라고 하면 그는 했다.

    -아, 정말 되네.

    하고 그가 웃어서 이단우는 할 말이 없었다.

    차우원은 못 한 게 아니었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차우원의 완성에 이단우는 필요 없었다.

    “불 지르면 보스몹이 나올 건 어떻게 알았어?”

    그가 웃으며 물었다. 팀원들이 주목해서 단우는 입을 열었다.

    “근처에 보스룸 있을 건 당연했잖아. 일대에 불 지르면 타죽기 싫어서라도 기어 나오겠지.”

    “보스룸 안에서 침입자 대비하고 있는 몬스터보다 화재 피해서 집 버린 몬스터가 잡기는 쉽지.”

    차우원이 동조했다.

    안 듣는 척하던 고청이 건너편에서 끼어들었다.

    “잠깐……. 이 근처에 보스룸이 있을 게 당연했다고요? 미리 아셨단 말입니까?”

    “아 그래. 너 감지 타입이라며. 감지한 거야?”

    강울림이 순진하게 물었다.

    “이단우 헌터 감지 타입입니까?”

    고청이 놀랐다. 각성자 가운데 극히 드문 확률로 나타나는 감지 타입이 그럼 <차우원 팀>에만 두 명이 있는 셈이다.

    ‘아니지만.’

    단우는 대답했다.

    “맞는데 그거랑 상관없고요. 리자드맨 라이더가 있었잖아요.”

    “예, 그런데요?”

    “가축 길러 보셨나요.”

    “……예?”

    “리자드맨이 이 던전의 상위 종족이고, 얘네가 뱀 길들여서 타고 다닌다는 건 뱀이 얘네 가축이란 소리 아닌가요. 가축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기르는 사람은 없죠. 통제하고 길들이려면 곁에 둬야 하니까. 얘네라고 다를 것 같지 않은데요.”

    “뱀 소굴이 여기니까…… 뱀을 길들이는 상위 종족도 근처에 서식할 거다?”

    고청이 입을 매만졌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단우를 봤다.

    “이단우 헌터는 센터 출신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다른 길드 수련생으로 수학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각성이 늦어서요.”

    “실례가 아니라면 각성 나이가…….”

    “열아홉인데요.”

    그 말은 각성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헌터가 됐다는 뜻이다.

    ‘일 년도 아니지. 이단우만 한 인재를 길드에서 일 년씩이나 놓쳤을 리가 없어. 아마 반년…… 그보다 더 짧을지도 모른다.’

    각성도 늦고 교육이라곤 받지도 못한 사람이,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순간 판단력으로 전술을 수립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 전술이 획기적이고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이림에서 데려와야 했는데.’

    고청은 몇 번째인지 모를 생각을 반복하며 침음을 참았다. 감탄으로 가득 찬 마음 탓에 절로 입이 열렸다.

    “던전핵은 어디에 위치할 거라고 추측하십니까? 짐작 가는 곳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설사 저희가 먼저 발견해 파괴한다 해도, 공략 기록엔 이단우 헌터의 공임을 명시하겠습니다. 물론 클리어 보상도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성물 쟁탈전>이 시작된 이상, 헌터들의 임무는 게이트의 빠른 공략이었다.

    이림이 보호하는 구역은 넓었다. 3대 길드니 5대 길드니 하는 거대 길드 가운데서도 이림의 위상을 따라갈 만한 곳은 없는 탓이다. 영토가 넓은 만큼 공략해야 할 게이트도 많아서, 이림 공격대의 부담은 말할 수도 없었다.

    ‘<차우원 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최대한 빨리 공략한다.’

    그런데 이단우가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고청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게이트 클리어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기본적으로 탐색 업무 때문이었다.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위험 속에서 보스몹이든 던전핵이든 찾아 파괴해야 한다.

    상급 던전일수록 필드가 넓어, 헤매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몬스터의 특성에 따라 위험도가 더욱 높아지는 건 물론이었다.

    이단우가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무슨 수로 그 시간을 단축시키겠는가?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고청은 허락했다. 이단우의 말은 들어 볼 가치가 있다.

    “저희 땅 파야 하지 않나요?”

    “……?”

    “지하 함정도 필드로 알고 있는데요. 던전핵이 저 안에 묻혀 있으면 파내야 할 것 같아서요.”

    “…….”

    고청은 주변을 돌아봤다. 폭발로 지반이 무너진 곳들이 보였다.

    그 수가 많았다. 일대의 함정이 그 안에 품고 있던 뱀들과 함께 한꺼번에 매몰된 모양새였다.

    ‘저걸 파내야 한다고…….’

    * * *

    다음 날 휴식을 취하고 일어난 이림 길드원들은 부길드장의 소집 명령을 들었다.

    “모두 충분히 회복하셨습니까? 육체 피로감이 남아 있거나 마력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은 분들은 손 들어 주십시오. ……없군요. 좋습니다.”

    고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대원들은 이림의 최고 엘리트층이었다. 신체 스탯이 훌륭한 만큼 회복 속도도 빨랐다.

    도열한 이림 길드원들에게서 전날의 패잔병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결 마법이 걸린 갑옷은 반짝거렸고 대원들의 기세도 명문 길드의 헌터다웠다.

    평소보다 과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그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들도 이제 <차우원 팀>이 그냥 따라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독립팀은 우수했다. 단순한 신진 독립팀으로 취급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능력 있는 독립팀의 인재가 거대 길드에 입사하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영웅팀의 정원은 다섯 명.’

    저 젊은 천재들 중 하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기합이 든 그들에게 고청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땅을 파 주십시오.”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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