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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94화 (94/170)

94.

“함정 패턴이에요. 던전 보스는 살아남은 헌터가 함정 밖으로 빠져나갈까 봐 걱정됐던 모양이에요. 정리하러 달려왔더라고요.”

차우원이 말했다.

고청은 보스몹이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한 게 아니었다. 보스몹의 머리 단면에서 이제야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강력한 힘에 단번에 베인 듯이, 매끄러운 단면이었다.

차우원이 검을 수납했다.

이림 길드원들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보스 몬스터가…… 죽었어?”

“끝났다고? 그런데 왜 클리어가 안 뜨고…….”

던전의 공략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보스몹 처치였고, 다른 하나가 던전핵 파괴였다.

보스몹을 처치해도 클리어가 되지 않는다면 던전핵을 찾아 파괴하면 된다. 헌터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수차례 목숨의 위기를 겪은 이림의 헌터들은 뇌까지 창백해져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굳세었고 명문 길드의 헌터로서 자부심도 대단했으나, 이런 상황에서 잠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멍한 길드원들을 뒤로하고 고청은 함정 구덩이 위로 올라갔다. 지상은 불뱀 떼와 함께 전소한 모양새였다. 나무 몬스터는 형태 그대로 새까맣게 타 버렸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고청의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그가 눈을 깜빡인 순간, 몬스터 잔해가 무너지며 지면이 함께 바닥으로 꺼졌다.

고청은 소름이 돋았다.

‘저게 다 함정이었나…….’

그들이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는 게 실감이 됐다. 뒤늦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일대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돌아가, 그는 폐허 위에 서 있는 듯했다.

저 멀리 리자드맨 킹의 몸뚱이가 보였다. 고청은 그 앞에서 꼼지락거리는 형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단우 헌터.’

허리에 검을 매단 그가 두 손으로 리자드맨 킹의 사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마정석이라도 꺼내는 건가?

그렇다기엔 검도 들고 있지 않은데…….

설사 그렇다 해도 고청은 막을 수 없었다. 보스몹을 죽인 건 <차우원 팀>이었고 그들은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이원 체제로 움직이자고 약조했으니까. <차우원 팀>이 전리품을 차지한대도 그는 항의할 수 없었다. 항의할 생각도 없었지만.

고청은 유능한 헌터였다. 이림의 공격대에도 큰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압도적인 방식의 던전 공략은 기대해 본 적 없었다.

‘아니, 이걸 압도적이라고 해도 되나?’

몬스터가 불로 공격하니 거기 더 불을 끼얹자는 발상을?

이상한 짓을 하던 이단우가 흰 얼굴에 묻은 검댕을 슥슥 닦으며 다가왔다. 그 얼굴이 섬세하고 예쁘장했다. 과격한 방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고청은 잠시 그를 쳐다봤다.

이단우가 물었다.

“사망자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부상자는요. 휴식 필요하세요?”

“음…….”

고청은 길드원들을 둘러봤다. 물론 그들은 휴식이 필요했다.

다리가 부러진 채로 전투를 속행하던 길드원들은 위기가 지나간 뒤에야 기절할 수 있었다. 의식을 잃은 길드원들을 역시 부상자인 힐러들이 치료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력 고갈에 시달리면서 마나 포션을 끊임없이 마시는 중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앓아누울 터였다. 그 상황은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리해서 <실드>를 깐 여파로 그들은 쓰러져 경련하고 있었다. 마력 고갈로 인한 흉통에는 물론 힐도 통하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부상자 중 하나는 차우원의 검에 얻어맞고 구덩이에 처박히느라 팔에 금이 간 사람이었으나, 고청은 그런 내막은 몰랐다. 사망자가 없는 건 다시 생각해도 기적이었다.

“예. 마력 보충도 해야 하고 치료도 필요할 듯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이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갈까요.”

“감사합니다.”

고청은 인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단우에게 허락이라도 받는 듯 행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만들어진 지 이제 1년이 된 팀이라니.’

사실 길드원들만큼이나 그도 얼이 빠졌다.

고청은 <차우원 팀>이 신생 독립팀인 것치고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은 너무 어렸고,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이들은 강했다.

-<성물 쟁탈전> 같은 건 개소리였어. 전대 헌터 가운데 성물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고.

‘……이 말을 누구에게 들었더라?’

기억났다. 이림의 전 길드장이었다.

그 전대 영웅은 차문경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비교할 상대가 없었다고.

* * *

전율하는 고청을 뒤로하고 단우는 생각했다.

‘죽겠다…….’

공중에 뜬 순간 그는 판단했다.

‘이거 흩어지게 두면 전멸이다.’

밟는 곳마다 무너지고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드는데,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헌터는 없는 법이다.

‘죄다 모아서 한곳에 밀어 넣고 필드를 터뜨린다.’

한꺼번에 쓸어 버려야 했다. 아니면 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단우는 그게 가능한 스킬을 이미 알고 있었다.

“소서정!”

“이거 맞아?! 아악, 난 몰라! 알아서 해!”

소서정이 비명과 함께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하늘에 거대한 스킬진이 펼쳐지고, 그의 시그니처 스킬이 그 안에서 꿈틀거리며 튀어나왔다. 불타는 용의 형상이 빛을 뿌리며 지상으로 내려간 순간…….

“아니…….”

단우는 누군가의 아연실색한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그러나 비명은 다음 들리는 소음에 묻혀 버렸다.

화르르르륵……!

……쾅!

모든 걸 녹여 버릴 듯한 열기가 치솟았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는 잠시 뒤에 들렸다.

머리가 먹먹해지는 진공 속에서, 단우의 몸이 떠올랐다.

‘아, 바람이…….’

폭발이 공중에 있는 팀원들을 더 위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단단한 손이 단우를 잡아챘다.

‘차우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단우는 차우원이 언제부터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깜빡인 순간 단우는 깨끗한 상공에 있었다. 열기가 멀어지고…….

깜빡.

<블링크>가 그들을 더 위로 보냈다.

……쾅!

“……으아아아아아!”

소서정의 몸이 위로 휙 솟구치고 있었다. 폭발의 여파로 스킬 활용이 잘 안 되는 상황. 그러나 단우는 사정을 봐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

‘소서정 이 새끼…….’

단우가 고함쳤다.

“<화룡창> 숙련도 30%대라며!”

“거의 40이거든! 30%대 맞는데……!”

공중에서 멱살이 잡힌 소서정은 당황한 채 변명했다. 강울림 혼나는 꼴을 보고 ‘멍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아니었다. 그는 억울했다! 스킬을 쓰라고 한 사람은 이단우가 아닌가?

‘이게 30%대라고?’

단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스킬 응용이 불가능한 수준의 숙련도였다. 그런데도 위력이 지독했다.

과거 이단우는 소서정의 스킬 숙련도 같은 건 몰랐다. 그가 팀장도 아니었던 데다, 본래 헌터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를 타인과 공유하지 않았다. 목숨과 직결된 정보인 까닭이다.

이것은 센터에서 치러지는 헌터 시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헌터 시험 관계자들은, 직책과 관계없이 전원 목숨을 걸고 서약하게 되어 있었다.

-헌터의 개인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다.

이 개인 정보에는 등급과 스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헌터들은 정부에 최소한의 관리 감독 권한을 허락한 셈이었다.

물론 이런 조항이 그냥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차문경 사후에 일어난 길드의 대규모 반발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정부는 헌터 등급표를 공표하고 있었을 터였다.

당시 길드 연합은 ‘헌터 시험’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다.

-<종말>을 막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정부에, 헌터들의 개인 정보를 넘겨줄 수 없다.

차문경은 <종말>을 막고 죽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길드의 요구를 막지 못할 지경이었다.

정부는 숙이고 들어갔고…….

덕분에 지금 이단우가 마력 F급에, 정부 채점 기준으로 최대 C급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없는 헌터라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가족 간에도 잘 묻지 않는 스탯 정보를 과거의 소서정이 이단우에게 말할 리 없었다.

단우는 풀컨디션 <화룡창>의 위력을 알았다. 당연히 소서정이 만렙을 찍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숙련도 100의 위력이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지금 데미지 계산도 틀렸다는 소리가 아닌가?

단우는 아찔했다. 그가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차우원이 침착하게 물었다.

“단우야, 저거 맞아?”

“……?”

그가 내려다보는 곳에서 한 무리의 리자드맨이 폭발을 피해 도주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성냥개비처럼 보이긴 했으나, 헌터의 시력은 번들거리는 파충류의 비늘을 포착해 냈다.

선두에 선 건 다른 리자드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몬스터였다.

‘리자드맨 킹.’

보스몹이 도망치고 있었다…….

차우원이 문제는 그것뿐이라는 듯 말해서 단우는 이성을 찾았다.

‘강울림 안 죽었어.’

“저거 잡아!”

“아, 역시.”

차우원의 검에 마력이 들어차며 검명이 울렸다. 금속이 우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검기가 쏘아져서 소서정은 비명을 질렀다.

“야! 야! 우리 떨어져! 떨어진다! 아악!”

검기의 마력이 소서정의 스킬을 일그러뜨려서 그는 죽을 맛이었다.

뭐 어쨌든…….

보스는 죽었고 팀원들은 경험치를 먹었다.

‘계획대로다.’

“야! 이단우! 말은 제대로 하고 불태워야 할 거 아니야. 우리가 못 막아 냈으면……!”

그런데 강울림이 시끄러웠다.

단우는 지친 다리를 움직여 강울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

얼굴을 슥슥 돌려 가며 살피자 강울림의 얼굴은 더 어리둥절해졌다.

“부상은?”

“없…… 없는데?”

“팔다리 움직여 봐.”

“이렇게?”

강울림이 국민체조 하듯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단우는 안도했다. 그러고 나니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이 자식은 이만한 폭발을 막고도 멀쩡할 거면서, 그런 스킬을 가지고 지 몸으로 충격 받는 미친 짓을 시도해?’

이런 멍청한 놈이니 <최후의 던전>에서 죽어 버린 게 아닌가. 단우는 그에게 고함을 지르고 싶어졌으나 참았다. 이미 채찍은 한번 썼기 때문이다. 때렸으면 당근을 줘야 사람이든 짐승이든 말을 듣는다.

“막았을 때 감각 기억했어?”

“어……. 아마도……?”

‘애매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단우는 강울림의 얼굴을 놓았다.

“잘했어.”

“……!”

깜짝 놀란 강울림을 뒤로하고 단우는 소서정을 봤다.

“나는 얼굴 만지지 말아 줄래?”

소서정이 주춤 물러나며 단우 옆을 힐끗거렸다.

‘……?’

“안 만져.”

옆자리엔 차우원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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