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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93화 (93/170)
  • 93.

    마력이 체내를 빠르게 돌았다. 단우는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단우야?”

    차우원의 검이 단우에게 날아드는 뿌리를 베어 냈다. 단우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지상도 지하도 길이 없다.’

    그렇다면 도망칠 곳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소서정. 띄워.”

    “으아아악!”

    강울림에게 매달린 채 소서정이 스태프를 휘둘렀다.

    단우가 팀원들에게 했던 작전 지시는 이랬다.

    -우리는 이림이 공략하는 거 구경합니다.

    -……?

    -거대 길드인데 중반까지 공략은 쉽겠죠. 그동안 우리는 힘 비축해 뒀다가, 이림이 위기에 처하면 구합니다. 던전 보스도 우리가 잡고요. 지쳐 있는 이림 대신 던전 클리어해 주는 거니 그쪽도 고마워하겠죠.

    -……?

    -막타 쳤다고 욕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 전에 생명의 은인부터 되자고요.

    -아, 이림이 위기에 처하는 건 정해진 일이구나?

    -들어간 공략팀이 몰살됐던 게이트를 얕보면 안 되죠.

    -단우가 항상 계획이 있어. 주도권을 왜 넘겼나 했더니 미끼로 삼는 거였네.

    차우원이 감탄하는 척하며 짜증 나게 굴긴 했으나, 이림이 함정 패턴으로 걸어 들어가리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스승님도 당했으니까.’

    스승님은 전략가는 아니었으나 통솔력만큼은 손꼽히는 헌터였다. 그를 따르는 공격대는 빠짐없이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스승님은 죽었다.

    ‘그런데 이림이 빠져나올 리 없지.’

    차우원이 걸려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함정 패턴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차우원 팀>의 공략 기록은 이랬다.

    -게이트 초입. 스무 개체 출현, 스무 개체 제거.

    -밀림. 서른 개체 출현, 서른 개체 제거.

    .

    .

    -필드 몬스터 이동 경로 예측. 던전 보스 위치 추정. 원거리 마법으로 파괴.

    -보스전.

    ‘차우원의 눈을 믿고 한 개체도 안 살려 보냈다는 거 아니야.’

    차우원은 감지 타입이었다. 마력을 읽어 몬스터의 위치를 찾기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보스룸을 찾아내는 건 별개의 능력이었다. 수천, 수만 개의 마력 반응 중에서 보스를 감별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다시 말해 보스룸을 찾은 건 차우원의 머리였다. 차우원은 뭐든 빠지는 데가 없었다.

    <차우원 팀>은 몬스터를 따라가는 대신 이동 경로를 예측해 보스룸을 찾아냈고, 멀리서 보스룸을 파괴해 보스가 자기 소굴에서 기어 나오도록 했다.

    압도적인 파괴력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공략이었다. 공략까지 걸린 시간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때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휴식 없이 차우원은 를 공략해 냈다.

    그렇게 던전을 클리어한 뒤 스승님의 시신을 안고 나와서, 장례식을 치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을 위로하고, 청연을 추스르고, 길드의 다음 대 책임자로서 상주 역할을 떠맡은 채. 영정 사진을 안고 장례식장을 나서서……. 이단우에게 멱살이 잡혔다.

    -네가 죽였어.

    ‘어떻게 안 죽였지?’

    스물네 살의 차우원은 완성된 인간이었다. 단우는 스물네 살의 이단우를 죽여 버릴 자신이 있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스승님이 말한 불쌍한 애가 너잖아.

    단우는 그에게 모든 것을 돌려줄 것이다.

    “단우야.”

    얼굴이 잡혀서 단우는 헉 숨을 뱉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차우원이 한 손으로 단우의 턱을 움켜쥐고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지금의 어린 얼굴이 기억하던 과거 모습에 덧대어졌다. 그 차우원은 없었다. 이단우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차우원은.

    스킬 범위 내의 모든 게 허공에 떠 있었다. 거대 뱀과 이림의 길드원 둘과, 수많은 실뱀들이 공중에 실을 달아 놓은 듯 매달린 채 꿈틀거렸다.

    스킬진 위에 발을 얹고 자기 키만 한 스태프를 든 소서정과, 폭발 한 번을 몸으로 받아 낸 충격으로 머리끝까지 그을린 강울림이 보였다.

    둘의 얼굴이 앳됐다. 이제 단우는 그 얼굴이 익숙했다. 저 둘은 서로 더럽게 맞지 않았으나 좋은 동료였다. 이단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이단우를 싫어했던 건 당연했다. 급이 맞지 않는다거나 차우원에게 대든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라도, 이단우는 개자식이었다.

    “우리만 들어 올리면 어떡해? 밑에 다 남았잖아!”

    “바람은 내 계통 아니거든! 우리라도 살린 게 어디야, 이단우가 ‘우리’ 띄우라고 했잖아!”

    “잘난 척은 있는 대로 하더니!”

    “난 척이 아니라 잘난 거야!”

    쓸데없이 싸우는 두 사람을 이림의 헌터들이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 보이는 건가?

    그런데 이단우가 강울림의 멱살을 잡았다. 이림 헌터들은 그가 싸움을 말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강울림. 너 <표적 지정> 한 번만 더 쓰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지금이 나 혼낼 때야?”

    강울림이 황당해하며 아래를 가리켰다. 그가 다른 헌터들부터 구하려 하리라는 사실을 단우는 물론 알고 있었다.

    “아래 정리하자.”

    “어떻게?”

    강울림이 반색했다. 역시 이단우는 방법이 있었다.

    단우는 그의 멱살을 잡은 채로 지상으로 밀쳐 버렸다.

    “불 지른다. 스킬 써서 아래 피해 막아. 소서정 넌 <화룡창> 준비해.”

    “뭐? 야! 이단……!”

    ‘우’라는 소리까지는 나오지도 않았다. 강울림은 허공에서 바닥으로 처박혔다.

    “……하아압!”

    퍽!

    튼튼한 몸은 추락 좀 했다고 어떻게 되지 않았으나, 바닥에 착지한 발과 다리가 약간 얼얼하기는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단우의 명령이었다.

    ‘미친 이단우!’

    강울림은 치를 떨며 함정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머리꼭지 위에서 “으아아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었다…….

    강울림은 거대하고 뭉툭한 검날이 허공을 쓰는 것을 분명히 봤다. 그 검풍이 지상의 헌터들과 그들에게 달라붙어 있던 뱀들을 빗자루처럼 한꺼번에 쓸어 함정으로 떨궜다!

    ‘미친 차우원!’

    막 함정 속의 거대 뱀을 처리한 고청과 이림의 헌터들이 그들을 돌아봤다. 하나같이 기겁한 표정이었다.

    “뭡니까!”

    “위에 무슨 일입니까?”

    강울림은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실드 쳐요! 실드!”

    “……?”

    “위로!”

    이단우가 ‘불 지른다’고 말했다는 건, 당장 불을 지를 거라는 뜻이었다. 강울림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림의 길드원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울림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방패를 땅에 박아 넣었다. 방패에 복잡한 무늬가 떠오르며 땅이 울렸다. 구덩이를 타고 올라간 빛이 벽을 생성해, 함정 구덩이를 뚜껑처럼 덮었다. 이단우가 말한 형태 변화였다.

    시그니처 스킬 <무결의 벽>이 찬란한 빛을 뿌렸다. 이 반투명한 벽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안도감을 느낄 정도로 강력해 보였다. 강울림은 자신의 시그니처 스킬을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특성은 자신이 단련하면 할수록 스킬 역시 강해진다는 점이었다.

    ‘은혜를 갚겠어.’

    강울림의 결심이 강할수록 스킬은 강해져, 이단우와 차우원이라는 자신의 은인들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울림이 그간의 단련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지금은 뭐라도 긁어모아야 할 때였다.

    “어서!”

    다음 순간 모든 헌터가 소름 끼치는 열기를 느꼈다. 상공에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용의 형상이 창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설마.’

    위는 이미 불지옥이었다. 그에 더해 불뱀 수천 마리…… 어쩌면 수만 마리가 불티를 튀기며 발화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정신인 마법사라면 거기 불을 끼얹겠다는 발상은 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고청은 <차우원 팀>과 작전을 수행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태를 종결했다. 물론 그 아이디어를 낸 건 <차우원 팀>의 이단우였다…….

    그날의 아찔함을 떠올린 순간 고청은 벼락같이 외쳤다.

    “천장에 실드 보완해!”

    자신이 뭐에 얻어터졌는지도 모르고 함정에 처박힌 길드원들은, 부길드장의 말에 착실하게 따랐다. 그들은 우수한 길드원이었다…….

    몇 겹의 실드가 연달아 천장을 뒤덮었다. 그러나 열기가 강렬했다. 정수리를 녹일 기세로 타올랐다. ‘쩡’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헌터들의 뇌리를 울렸다.

    그 소리가 진짜인지 상상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천장을 응시하던 헌터들은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닌가. 폭발인가?’

    발밑부터 시작해 온몸이 중심을 못 잡고 진동하는데, 자신의 몸 따위는 돌아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공포스러운 광경을 보면 사람은 눈을 떼지 못한다는데, 고청은 그 말이 이토록 실감 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수십 개의 실드가 차례로 깨져 나가며 사방으로 빛이 비산했다. 그 와중에 빛의 벽은 남아 있었는데, 열기로 인해 벽이 아니라 이상하게 소용돌이치는 비눗방울 표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실드>!”

    공격대의 마법사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전부 스태프를 땅에 처박은 뒤 모든 마력을 때려 넣고 있었다.

    “……<실드>!”

    그 옆에서 보조계 헌터가 강화 스킬을 퍼붓고, 바닥에는 빈 마나 포션 병이 굴러다니며 유리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고청은 일단 방패를 쥐고 있었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 죽일 생각인가?’

    여기서 이림 길드원들이 다 죽으면 던전 보상은 <차우원 팀> 차지이긴 했다. 근데 <차우원 팀>이라고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았다…….

    ……쾅!

    이어지는 폭발과 함께 빛의 벽이 쑥 바닥으로 내려와서 고청은 함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죽지 않았다. 폭발도 끝이었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살…….”

    “살았다! 살았어!”

    이림 길드원들은 아군의 공격에서 살아남아서 기뻤다!

    강울림의 스킬이 해제되며 뻥 뚫린 하늘이 드러났다. 안개는 온데간데없었고 사방이 잿빛이었다. 이림 길드원들이 재가 눈처럼 내리는 하늘에서 본 건,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리자드맨 킹>의 머리였다.

    쿵!

    띠링!

    <리자드맨 킹>(A)

    리자드맨은 영리한 밀림의 전략가입니다. 이들을 다스리는 왕은 밀림 최고의 전사이자 장군입니다.

    “아! 괜찮으세요?”

    그 위로 차우원이 떨어지며 물었다.

    고청은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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