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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92화 (92/170)
  • 92.

    힐러는 소름이 돋았다.

    푹!

    힐러는 그가 언제 검을 빼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검 끝에 뱀 머리가 꿰어 있었다. 정중앙을 꿰뚫어서 뱀은 공격 시도도 못 한 모양새였다.

    몬스터가 접근하던 곳은 안개가 자욱한 수풀 속이었다. 시야에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격대는 막 들이닥친 적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대승한 탓에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은 상태.

    ‘그렇다고는 해도 언제 이렇게 가까이……!’

    쉬쉿……!

    다른 방향에서 소리가 들려서 힐러는 펄쩍 뛰었다.

    “으익, 헉……!”

    “멈춰. 아래다!”

    고청이 외쳤다. 동시에 사방에서 억눌린 비명이 들렸다.

    “독이다!”

    “범위 마법 저항 걸고, 전격으로 떨어뜨려!”

    고청이 명령했다.

    ‘이미 달라붙은 다수를 상대로는 번개를 이용한 전격 마법.’

    스턴과 범위 공격이 가능한 범용 스킬을 써서 떨어뜨리는 게 정석이다. 고청은 그런 데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건 이림 공격대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반사적으로 명령에 반응했다. 반투명한 범위 실드가 공격대 헌터들을 감싸고 필드에 거대한 스킬진이 펼쳐졌다.

    “<체인 라이트닝>!”

    파지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일었다. 수백 마리의 뱀이 몸을 뒤틀며 등반하던 헌터들에게서 후드득 떨어졌다.

    띠링!

    <불뱀>(E)

    이 연약한 뱀들은 최후의 저항으로 독 대신 불씨를 토해 냅니다.

    그리고 이것까지가 함정이었다.

    준비된 불씨가 헌터들 사이로 떨어지고, 그 위로 전격이 가해지면…….

    ‘터지잖아.’

    이림 헌터들에게 앞서 함정을 밟을 기회를 양보한 단우는 후미에서 생각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감당할 수준을 넘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미 펼쳐진 마법은 막을 수 없었다. 막을 수 있는 건 수많은 뱀 사체가 한꺼번에 터져 나가는 것 정도다.

    ‘접촉을 막아야 한다.’

    단우는 외쳤다.

    “강울림!”

    파직, 파지직……!

    스파크가 연달아 터지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뱀이 토해 낸 불씨가 전기를 만났다.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빛과 함께 파도 같은 불길이 공격대를 덮쳤다.

    단우는 떠올렸다. <차우원 팀>의 공략 기록에서, …… 그러니까 <리자드맨 부족>의 패턴은 이것이었다.

    ‘함정 패턴.’

    이 도마뱀들은 영악하다.

    이 밀림에는 길도 나침반도 없다. 적당한 희생양을 내어 주면, 헌터들이 그들을 쫓아 함정으로 기어들어 올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단우의 고함을 듣는 순간 강울림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쪽이다!”

    강울림의 스킬 <표적 지정>이 그의 몸을 검게 물들였다. 불뱀의 사체를 집어삼키며 부풀어 오르던 폭발은, 돌이킬 수 없이 커지기 직전 터진 풍선처럼 강울림에게로 빨려들었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기라도 한 듯했다.

    이어서 강울림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쿵!

    그는 왈칵 죽은 피를 쏟았다.

    불꽃을 삼킨 듯했다. 전류가 안에서 터져 나가며 내장은 진탕이 되고 머리카락까지 재가 된 느낌이었다.

    ……쿵!

    다시 몸이 흔들렸다. 핏덩어리를 한 움큼 토해 내면서 강울림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기둥이 넘어진 것처럼 충격이 왔으나 그 정도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파!’

    눈물과 땀과 피 따위의 체액이 피부를 타고 흘러서 그는 일순간 젖어 버렸다.

    일대의 모든 피해를 자신의 몸으로 받는 이 능력은, 이단우가 설명을 듣자마자 봉인을 명령한 스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격 마법은 헌터들의 몸에 직접 사용된 것이었다. 그에 연계된 불뱀의 폭발은 헌터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다른 스킬로는 못 막아.’

    강울림의 시그니처 스킬 <무결의 벽>은 말 그대로 벽을 생성하는 스킬이었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충격을 막을 수는 없다.

    강울림은 길게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것밖에 없잖아!’

    파지지직!

    고문과 같은 고통 끝에 강울림은 간신히 눈을 떴다. 무릎과 뺨은 흙에 파묻혔고 땅을 긁느라 뽑힌 손톱이 손가락 위에서 달랑거렸다. 축축한 흙은 이슬이 아니라 그가 뱉어낸 피로 젖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이림의 힐러들이 그에게 힐을 쏟아붓고 있었다.

    “강울림 헌터!”

    ‘다들 살았나?’

    강울림은 가물거리는 눈을 억지로 뜨고 주변을 살폈다. 자신만 아니라 누구도 죽지 않았다. 자신이 살렸다. 이단우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했다.

    그러나 안도할 때가 아니었다. 불똥이 튄 수풀이 불길한 기세로 타닥거렸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강울림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이단우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강울림의 잘못은 물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새끼는 왜 스킬 활용을 안 하지?’

    단우는 심장이 터질 듯했다. 강울림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며 까맣게 변하고 스스로 고문하듯 경련하는 동안 단우는 숨도 쉬지 못했다.

    ‘아니야.’

    강울림은 이런 곳에서 죽지 않는다. 폭발이 커지기 전에 막겠다는 생각은 실현됐다. 불씨가 연쇄적으로 터지기 전에 강울림은 스킬을 사용했다. 저 정도 충격으로는 강울림을 죽일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단우는 얼어붙었다. 강울림의 생존을 확인한 뒤에는 눈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저 반사신경에 괴물 같은 신체 내구성, 탱커로서 최상위 스킬을 한 몸에 지니고 한다는 짓이 저따위다. 이단우는 그의 성장을 기다릴 시간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시간은 사라졌다.

    저 미숙한 강울림을 단우는 단기간에 스물여섯의 강울림으로 만들어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다행인 건, 단우가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거였다.

    ‘실전에서 쓰면 는다.’

    물론 그 기회를 강울림은 끔찍한 짓으로 날려 먹었지만.

    단우는 힐 덕분에 사람 꼴로 돌아온 강울림의 멱살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네 시그니처 스킬을 쓰라고…….”

    “이 상황에 벽을 어디다 쳐?”

    강울림이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단우는 이 자식을 죽여 버릴까 싶었다.

    “너…… 뭐 건축해? 스킬 이름이 벽이라고 진짜 벽 세워? 아예 땅부터 다지지그래.”

    “나보고 뭐 어쩌라고?”

    강울림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이 새끼는 진짜 모른다.’

    단우는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불이 뇌까지 옮겨붙은 듯했으나 바닥으로 억눌렀다.

    스킬 수련장을 짓지 않은 건 단우였다. 이 뇌까지 근육으로 찬 놈이 하루 종일 근육만 키우고 있었으니 뇌가 돌아가겠는가?

    물론 <무결의 벽>은 사용자의 육체 능력에 따라 강도가 정해지는 스킬이었고, 그걸 사용했다면 강울림은 멀쩡했겠지만…….

    단우는 참지 못했다.

    “형태 변환을 해!”

    “……!”

    강울림이 ‘그런 방법이 있었지’라는 표정을 지어서 단우는 그를 걷어찰 뻔했다.

    “놓, 놓으세요!”

    “팀 동료 아니에요? 폭발을 막아 준 탱커를 왜…….”

    이림 힐러들이 단우를 떼어 냈다. 여전히 강울림을 노려보는 단우를 차우원이 붙잡았다.

    “단우야. 여기 이상하다.”

    “뭐가.”

    “던전 전체에 마력 반응이 산재해서 내 눈이 이상한가 했는데, 아닌 것 같아.”

    그 말의 의미는 다음 순간 알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힐러 하나가 하늘로 솟구쳤다. 나뭇가지가 살아 있는 것처럼 힐러의 뒷덜미를 잡고 허공에 매달았다!

    띠링!

    <그랜트 파파>(B)

    할아버지는 잘 타지 않습니다. 공생을 좋아하는 이 늙은 나무들은, 함께 어울려 살던 작은 생명체가 습격자에게 죽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화계 스킬 저항

    땅을 갈아엎고 튀어나온 굵은 뿌리들이 헌터의 발목을 노렸다. 위에서는 이파리가 무성한 나뭇가지가 춤을 췄다.

    밀림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 듯했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뿌리가 창처럼 살을 꿰뚫고 다리를 휘감았다. 일순간 패닉에 빠진 보조계 헌터들을 구하기 위해, 탱커와 딜러들은 숨도 가다듬지 못하고 무기를 휘둘렀다.

    “진형 유지!”

    고청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흙과 뿌리에 완전히 동화되어,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갈색 불뱀들이 땅과 나무뿌리 위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탱커가 채찍처럼 날아드는 나뭇가지를 후려치자, 그 위에서 후드득 뱀 떼가 떨어져 탱커의 투구와 갑옷에 붙었다.

    “으……!”

    탱커는 우수한 헌터답게 반응했다. 몸에 달라붙은 뱀을 떨구고 잡히는 대로 때려죽였다.

    이 몬스터들은 상성에 맞는 마법과 만나면 터진다. 그 말은 결국 하나하나 떼어 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1초가 아쉬운 전장에서 이 뱀 떼는 치명적인 방해였다.

    “<아이스 볼>!”

    뒤에서 전개된 스킬에 탱커의 위로 훅 떨어지던 나뭇가지가 얼어붙었다.

    ‘전격 마법이 안 된다면!’

    나뭇가지를 얼린 건 이림 제1공격대 마법사의 스킬이었다.

    B급 몬스터 그랜트 파파는 빙계 기본 마법에 얼어 죽지 않았으나, 뱀 떼는 얼어붙었다.

    그의 스킬에 힌트를 얻은 마법사들이 각자 대응했다.

    “<윈드 애로우>!”

    “<무뎌지는 이빨>!”

    그런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고청이 문제를 느꼈을 땐 늦었다. 단순히 불뱀을 터뜨리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뱀이 너무 많았다. 수도 없었다!

    “죽이지 마! 뱀 죽이지 마십시오!”

    고청이 명령했으나 이미 사방이 불길이었다. 축축하게 젖어서 화계 스킬을 수도 없이 맞혀도 멀쩡하던 나무가 순식간에 불을 키우고 있었다.

    불뱀은 약한 몬스터였다. 이림 헌터들의 공격을 당해 낼 상대가 아니다. 반면에 이림은 너무 강했다. 작은 마법 하나에도 여러 마리의 불뱀이 사체가 됐다. 탱커들이 짓밟은 바닥에도 몸부림치는 불뱀이 있었다. 이 일대가 뱀과 나무의 서식지였다.

    뱀이 죽으며 뿜어낸 불티가 흉악한 나뭇가지와 무성한 잎, 기둥 같은 줄기와 단단한 뿌리에 옮겨붙었다.

    화계 저항인 이 나무형 몬스터는 모든 종류의 화재에 강했다. 단순히 몇 번 불꽃을 던져대는 정도로는 불도 붙지 않을 정도였으나, 사방에서 불티가 튀어 대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랜트 파파는 불이 옮겨붙은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이파리를 불사르고 있는 침입자들에게 강렬한 적개감을 느끼며 날뛸 뿐이었다.

    파사사사사삭!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가 더 까다로운 이 뱀 떼는, 어느새 일대를 불의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후퇴! 후퇴해! 물러나서 다시 모여! 전선 흐트러뜨리지 마십시오!”

    이림의 공격대는 부길드장의 지시에 따랐다. 화마가 덮은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

    “모여!”

    “이쪽으로!”

    필사적으로 물러나던 그들은, 퇴각의 정석에 따라 후미에 탱커를 두고 딜러를 앞세웠다. 보조계가 빛으로 앞을 밝혔다. 순간 바닥이 무너졌다.

    -캬아아아악!

    그 아래에서 거대 뱀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것이 독액을 뿜어냈다.

    “<플레임 버스터>!”

    “<격류의 흐름>!”

    “<윈드>!”

    위와 아래가 전부 사지인 상황에서, 헌터들은 제각기 판단을 내렸다. 일부는 벽에 붙고 일부는 날아올랐다. 그리고 일부는 뱀에 맞섰다.

    ‘글렀다.’

    그렇게 판단한 사람은 단우만이 아니었다.

    “빠져나와!”

    고청이 함정으로 뛰어들며 고함쳤다. 그러나 이미 진형은 붕괴됐다. 위로 올라간 헌터들은 나무줄기를 피해 달렸으나 다시 바닥과 함께 아래로 꺼졌다.

    “안전한 곳이 없어.”

    차우원이 그랜트 파파의 줄기를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수풀을 빙 더듬었다.

    ‘아래는 전부 함정.’

    그리고 위도 마찬가지다.

    불을 두른 그랜트 파파들이 쿵쿵 걸어왔다. 걸음마다 땅에 지진이 일고 헌터들의 몸까지 들썩였다. 코를 찌르는 독의 악취와 피부에 와닿는 화염의 열기 때문에 지옥이 한꺼번에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단우는 약간 어지러웠다.

    그는 이곳에서 과거에 일어났을 일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부모님께 일어났을 일을.

    이전의 공략대는 이림만큼 스스로를 단속할 수 없었다. 이림조차 기어들어 와 스스로 빠진 함정에서, 부모님이 빠져나올 수 있었을 리 없다. 이건 부모님이 삶의 마지막에 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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