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인성 교육-91화 (91/170)
  • 91.

    첫 위기는 잠시 뒤에 나타났다.

    “<감지>!”

    “전방에 스무 개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온몸이 비늘로 덮인 이족보행형 몬스터 리자드맨 무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띠링!

    <리자드맨 워리어>(C)

    부족의 전사들은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감지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위험했겠으나, 헌터들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이림의 공격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진형대로 맞섰다.

    “탱커!”

    고청의 명령에 탱커가 앞을 막고 마법사가 공격을 퍼붓는다. 허공에 수놓아진 스킬진들이 제각기 빛을 내서, 뿌옇게 가려진 사방이 그때마다 번쩍거렸다.

    화륵!

    불꽃비가 쏟아지고 우박이 리자드맨에게 날아들었다. 마법이 땅을 강타할 때마다 몸이 울렸다.

    ‘마법사들 수준은 A에서 B랭크.’

    단우는 평가했다. 화계 마법의 순도가 높지 않은지, 수분을 잔뜩 머금은 이 이상한 밀림을 못 태우고 있다.

    그것과 관계없이 전투는 순조로웠다.

    “비키세요.”

    고청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더니 방패에 푸른 빛이 돌며 돌격하던 리자드맨 세 개체를 한꺼번에 후려쳤다.

    쾅!

    리자드맨이 입고 있던 단단한 갑옷이 진동하고, 그 진동이 안에서 증폭됐다. 리자드맨 세 개체가 폭사하며 파충류의 단단한 비늘과 무른 살점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앞으로!”

    당연한 수순으로 딜러들이 나머지 리자드맨을 정리하려는데 공격대의 오른쪽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아악!”

    “우측에 몬스터 출현!”

    “묶어!”

    “<바인드>!”

    이림 제2공격대 소속 보조계 헌터가 스킬을 사용하자,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찰나의 순간 느려졌다.

    딜러들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갑옷의 빈틈에 날붙이를 찔러 넣었다.

    콱, 콱, 콱!

    -케륵……!

    목구멍에 검이 박힌 리자드맨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넘어갔다.

    쿵!

    ‘공격대 하나가 전방을 막고 유사시 다른 공격대가 좌우를 방어한다.’

    세 개의 공격대가 하나의 팀처럼 전방을 상대하다가, 습격 즉시 자신이 담당한 방향으로 갈라졌다. 그 조직된 움직임만으로도 이림 공격대가 잘 교육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쪽에 또 옵니다.”

    적당히 들어오는 공격만 막고 있던 차우원이 문득 좌측을 보고 외쳤다. 감지 타입인 그에게 전투 중 기습은 통하지 않았다.

    말하는 자가 이림 공격대는 아니었으나, 이곳에 경고를 받고도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감 떨어지는 헌터는 없었다.

    띠링!

    <리자드맨 라이더>(B)

    거대 뱀을 길들인 기사들은 땅과 하늘, 어디서든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띠링!

    <자이언트 스네이크>(B)

    이들이 뿜어내는 독은 바위를 녹입니다.

    쉬쉬쉿……!

    빽빽한 나무 사이를 기던 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안개 속에서 그게 거대한 주둥아리를 쩍 벌리는 모습이 그림자로 보였다. 고청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뱀부터 스턴 걸어!”

    쾅!

    명령과 함께 고청의 방패가 뱀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뱀이 경직된 순간, 그 위에 올라탄 리자드맨이 공격대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콱, 콱, 콱!

    이림의 딜러들이 리자드맨 라이더의 훤히 드러난 얼굴에 날붙이를 박아 넣었다. 라이더는 절명했으나 철퇴는 반동에 따라 고청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거울 방패>!”

    콰직!

    보조계 헌터가 고청의 머리에 둥근 방어막을 씌웠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고청은 호흡을 한번 정리하고 바로 지시했다.

    “라이더부터 정리합니다. 타고 있는 뱀 먼저 죽이세요.”

    “예!”

    가장 난해한 공격부터 봉쇄하고 몬스터를 처리한다.

    ‘우수하긴 하네.’

    단우가 있는 후방으로는 아예 공격이 닿질 않았다.

    기습에 대한 대처도 막힘없고 난적을 상대하는 법도 확실하다. 딜러들은 센터의 기준에 따르면 전원 A급일 터였다.

    이림 길드원이 보고했다.

    “부길드장님. 일부가 도주합니다.”

    “잡지 마세요.”

    “예!”

    “잡지 마! 그냥 둬!”

    “클리어!”

    엘리트 헌터들의 스킬이 쏟아지자 습격의 선두는 녹아내렸다. 후방의 리자드맨 워리어와 아직 죽지 않은 거대 뱀들은 그 압도적인 폭력에 겁을 먹고 도주를 선택했다.

    리자드맨 부족에 잡혀 길들여졌던 거대 뱀은, 본능만 남아 자신이 왔던 곳으로 재빨리 배를 밀었다. 그러나 공격 때처럼 은밀하게 움직일 정신은 없어서 그림자가 꿈틀댈 때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비명을 질렀다.

    사삭, 사삭-!

    쫓기 쉬운 표적이었다.

    고청이 손짓했다.

    “쫓읍시다.”

    ‘깔끔하다.’

    단우는 팔짱을 풀었다.

    이 던전은 길이 없었다. 들어온 헌터들은 시야 확보도 안 되는 밀림에서 헤매다, 시간은 시간대로 끌리고 일방적으로 습격을 받을 일이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 답 없는 사태를 피할 길은 몇 가지가 있겠으나, 이림은 가장 정석적인 방법을 썼다.

    ‘몬스터를 놓아주고 뒤를 쫓는다.’

    그리고 이게 이 던전의 함정이었다.

    소서정이 옆에서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이거 맞아? 이러다 던전 깨지겠다! 뭐야, 이림 왜 이렇게 잘해?”

    “맞아. 마법 쓰지 마.”

    “안 쓰고 있거든?!”

    “어. 계속 참아.”

    “네가 아는지 모르겠는데, 나 지원팀 활동 중에도 공적치 최하위는 찍어 본 적 없어!”

    “넌 뭐라고 자꾸 종알거려?”

    강울림과 소서정이 싸우게 두고 단우는 고청을 봤다. 그는 길드원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전투 중에도 <감지> 써 주세요.”

    ‘기습 후 도주하는 패턴이라고 생각하는군.’

    모든 몬스터는 습성이 있다. 자이언트 앤트의 경우 ‘굴 만들기’로, 수십 수백 개의 통로가 헌터들을 앞을 가로막아 쉽게 여왕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헌터들은 굴 하나하나를 헤매며 개미 군단과 싸워야 하는데, 개미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동족들을 얼마든 불러 모을 수 있다.

    ‘시간을 주면 포위된다.’

    개미가 동족을 불러 모으기 전에 처치하지 못하면, 수백 수천 마리에 빽빽이 둘러싸여 차우원처럼 개미탑이 되는 것이다.

    그 꼴을 떠올리니 단우는 다시 피가 식었다.

    ‘괜찮아.’

    차우원은 정신 나간 놈이었으나 죽지 않았다.

    자이언트 앤트 던전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간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아니었더라도.

    그리고 리자드맨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흔히 ‘인간형’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들의 습성은 연계를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서로 돕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를 쓴다.’

    이 몬스터들은 인간의 습성을 파악할 줄 알았다.

    자신들이 도망치면 쫓는다는 것을.

    단우가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유일하게 걱정한 것은, 이곳이 자신이 알던 곳과 다른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무언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축이 앞으로 당겨져서, 뭔가가 변했을지도…….

    그러나 이림의 반응이 여상했다.

    ‘척후팀을 보냈을 때 이상이 없었어.’

    고청은 원칙을 지키는 성격이었다. 재공략이라도 해도, 그가 척후 활동을 지시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림 척후팀이 조사한 내용이 첫 공략 당시 기록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문제는 없었다.

    단우는 이곳을 알았다.

    그는 수많은 공략 기록을 읽고 외웠으나 이곳은 다른 던전과 달랐다.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뇌리에 새겨졌다.

    차우원 팀의 공략 기록은 세세하지 않은 편이었는데 사실 세세할 필요도 없었다.

    차우원 팀은 기책을 쓰지 않는 공격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압도적인 힘으로 밀고 나갔다.

    그 팀에서 문제 인물은 이단우뿐이었다. 차우원에게 반발하는 건 이단우에게 숨 쉬는 것과 같은 행위였는데, 차우원이 죽어서 단우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척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머리를 써, 단우야.

    차우원의 개같은 말을 떠올리며, 그의 침실에 혼자 남아서. 단우는 그가 남긴 공략 기록을 전부 독파했다. 기록을 읽고 머리에 새겼다.

    차우원이 살아 있을 때 단우는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공략을 제시하고 팀원들에게 명령하는 건 차우원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는 반대 의견을 받는 유형의 리더도 아니어서 이단우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차우원이 죽었다. 단우는 그를 던전에서 꺼내야 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분 계세요?”

    이림 3공격대의 힐러가 물었다. 시선이 단우를 향해 있었다. 단우는 손이 차가웠다. 힐러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어지러우신 거예요? 혹시 중독 증세가…….”

    “아닙니다.”

    “얼굴이 창백하신데요. 부담 갖지 말고 말씀 주세요.”

    힐러가 호들갑을 떨어서 차우원의 주목을 끌 것 같았다. 단우는 신경질적으로 눈꺼풀을 문질렀다. 눈알 안쪽이 답답했다. 무언가 두꺼운 막이 덮고 있는데 손이 닿질 않았다.

    “원래 이렇게 생겼습니다.”

    “아……. 그렇구나…….”

    당황하는 힐러 앞으로 손이 뻗어져 나왔다. 차우원이 단우의 손을 얼굴에서 떼어 내고 아래로 내려 꽉 붙잡았다.

    “상처 난다.”

    ‘아.’

    단우는 정신을 차렸다.

    이단우를 막은 차우원이 웃으며 말했다.

    “단우가 좀 하얗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무슨 말씀을요. 저희가 후미를 담당하니까, <차우원 팀>을 신경 써 달라는 부길드장님 지시가 있었거든요.”

    대등한 공략팀으로 들어왔는데 ‘신경 써 준다’ 같은 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치 이림의 보호하에 <차우원 팀>이 지원팀 활동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림이 그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단우는 놀라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요. 그렇게 말씀 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왜 <차우원 팀>은 힐러 모집을 안 하세요? 보조계 헌터를 안 넣는 팀은 가끔 있지만 힐러를 안 넣는 팀은 처음 봐서요.”

    힐러는 대접받는 직업이었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차우원 팀>이 인기나 돈이 없어서 힐러 모집을 못 할 리도 없지 않은가?

    3공격대 힐러는 이 공략의 모든 과정이 시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부길드장은 그들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누가 <종말> 공략에 알맞은 인재인지 평가할 터였다.

    ‘우리 중 누가 영웅팀에 소속될지 정해진다.’

    힐러가 알기로, 전대 영웅팀의 힐러는 다정한 성품이었다.

    <차우원 팀>은 이림 소속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하나의 공략팀을 구성해 들어온 이상, 소속에 관계없이 살펴 챙기는 성품이야말로 영웅팀의 힐러로서 필요한 자질이 아니겠는가?

    다른 공격대원들은 <차우원 팀>이 갑자기 공략에 끼게 된 이유를 짐작 못 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거야 힐러도 몰랐으나……. 부길드장님은 여러 상황에서의 자질을 살펴보려 하시는 게 아닐까?

    “그러게요. 왜일까요?”

    차우원이 궁금하다는 듯 이단우를 돌아봐서 힐러는 뭔가 했다. 팀 리더는 차우원 아닌가?

    그런데 영입 권한이 없을 이단우가 창백하고 예쁘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 팀이 부상을 안 당해서요.”

    “네?”

    “던전에서 부상당할 일이 없어서 힐러가 필요 없다고요.”

    ‘이게 무슨 개소리지?’

    지금까지 아프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아프지 않을 거라는 수준의 헛소리에 힐러가 다시 물으려고 할 때…….

    “단우야.”

    차우원이 이름을 불렀다. 그 즉시 이단우가 검으로 바닥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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