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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90화 (90/170)
  • 90.

    “뭐?”

    차우원이 손바닥을 내밀고 있어서 단우는 무심코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또 마력이 몸을 헤집을까 봐 긴장했으나, 차우원은 단우의 손을 그대로 쥐기만 했다.

    그가 그대로 있어서 단우는 팔이 저렸다. 손에 힘을 줄 수도 뺄 수도 없었다. 긴장한 몸에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데, 차우원이 단우에게 몸을 기울였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차우원은 다른 손으로 단우의 겉옷 주머니를 더듬고 있었다.

    ‘……?’

    “단우야, 잠깐 실례할게.”

    그가 아무렇지 않게 단우의 외투 안으로 쑥 손을 넣어 안주머니를 더듬어서, 단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열이 받아서 이마에 핏줄이 설 지경이었다.

    ‘이 새끼 지금 약 검사하잖아.’

    “없다고. 안 가지고 있어……!”

    “응, 그래. 내가 단우 말을 믿어. 정말 안 가지고 있네. 훌륭하다.”

    차우원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단우의 뺨에 입을 맞췄다. 건조한 감촉이 피부에 닿아서 단우는 움찔 놀랐다.

    “잘했어.”

    “……?”

    ‘지금 이게 칭찬인가?’

    이 새끼가 사람을 가지고 노는데 단우는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과거 이단우의 신뢰도는 바닥이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이건 단우가 불러온 사달이었다. 단우는 가슴이 술렁거리고 인상이 쓰였다.

    ‘괜찮아.’

    그는 무릎을 노려봤다. 차우원은 여전히 좋은 놈이었으며 문제 많은 이단우를 팀원이랍시고 챙기고 있었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차우원은 변해야 했지만…….

    ‘괜찮아.’

    어쨌든 이단우의 감정과 관계없이 공략은 시작됐다.

    * * *

    비정기 게이트가 열린 D시의 호수는 이림 길드원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이림 길드임을 알리는 깃발을 사방에서 나부끼고 있어서, 소서정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우리 이거 맞아?! 완전 이림 길드가 점령했잖아!”

    “그러게. 본격적이네.”

    차우원이 대답했다.

    “‘그러게’가 아니잖아? 우리 임팩트는 어디 갔어? 기사에 이림만 보이겠네!”

    “이림이 잘 준비해 왔으면 좋지. 공략팀 선두에 서는 것도 이림이니까.”

    “태평하게 굴지 말고.”

    “단우한테 생각이 있나 봐.”

    그가 너무 태연해서 소서정은 ‘아, 그래?’라고 할 뻔했다.

    소서정은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춰 차우원에게 속삭였다.

    “아니 근데.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너 너무 특별 취급하는 거 아니야?”

    “음?”

    “시치미 좀 떼지 마. 너 이럴 때마다 얄밉거든? 알 만한 애가 왜 그래? 뭐 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거야?”

    세상 사람들 눈이 옹이구멍도 아니고, 저렇게 행동하고 다니면 누구나 알아채지 않겠는가?

    그럼 차우원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뭐 거기까진 안 가겠지만, 아무튼 시끄러울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소란의 방향은 소서정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뭐,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 둘이 좋아 죽겠는 건 알겠거든? 그래도 밖에서는 자중하란 말이야. 사람들이 다 강울림 같은 줄 알아?”

    소서정이 충고했다.

    ‘후, 내가 차우원에게 충고를!’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차우원은 별 동요가 없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긴 했다.

    ‘그런데 차우원 취향 진짜 특이하네. 얼굴밖에 안 보는 거 아냐? 얘가 전에 누구를 만났더라…….’

    거기까지 생각한 소서정은 어라 싶었다.

    그는 차우원을 오래전부터 보아 왔는데 딱히 기억나는 상대가 없었다. 차우원이야 언제나 주변에 사람이 넘쳐서 막연히 계속 누굴 만났겠거니 생각했는데…….

    ‘설마.’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을 소서정은 떨쳐 냈다.

    차우원이 손에 턱을 괴더니 웃었다.

    “그렇게 명확히 보여?”

    “너네 관계 강울림도 알거든?”

    “잘 보이는구나. 근데 단우는 왜 모르지.”

    “뭐?”

    그때 이단우가 뒤늦게 렌터카에서 내렸다. 경량 갑옷 위에 파카 하나를 걸치고 허리에 대충 검을 매달아 놓은 이단우는 오늘도 긴장감이 없었다. 그가 새하얀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서 소서정은 약간이나마 가지고 있던 긴장을 떨쳤다.

    “회의 시작할까요.”

    “음, 그래……. 팀원들이 전부 모였으니 공략 회의를 시작해야지.”

    모이지 않았던 팀원은 이단우가 유일했기 때문에 그들의 회의가 늦어진 건 전적으로 이단우 탓이었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에 내서 할 사람은 이 팀에 아무도 없었다.

    소서정은 소름 돋는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쟤는 내숭 떨어 봤자 티도 안 나는데 왜 자꾸 존댓말을…….’

    이단우가 존댓말을 쓰는 이유는 남들 앞에서 차우원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서였으나, 그 사실은 차우원조차 몰랐다.

    차우원이 말했다.

    “우리가 들어갈 곳은 고, 과거 척후조 기록에 따르면 등급은 C급, 파충류 몹이 등장할 것으로 추정되던 던전이야. 그런데 다들 아는 사건으로 수많은 헌터들이 희생됐고, 이후 비정기 게이트라는 게 알려져서 이후 재공략이 이뤄지지 않았어. 현재 추정 등급은 B+ 이상, 최악의 경우 A로 예상해야겠지. 던전 공략에 앞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아무도 살아 오지 못했다’는 점인데……. 단우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네.”

    이단우가 들었던 손을 내렸다.

    “먼저 이 공략은 이림이 앞장선다는 것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음, 맞아.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된 게 뭔데?’

    물론 소서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림 같은 대형 길드가 끼어들었는데 그럼 지휘권을 누가 갖겠는가?

    “그럼 우리 적당히 활약하고 안 나대면 돼?”

    강울림이 물었다. 다른 길드가 지휘권을 가져가면 이단우가 항상 내리는 지시 아닌가?

    그런데 이단우가 답했다.

    “아니. 지휘권을 넘겨준 건 아니고요.”

    “……?”

    “너는 존댓말을 하세요. 리더가 회의를 진행하는데 반말은 아니지 않나요.”

    ‘네가 할 말이냐?’

    강울림은 생각했으나 말하진 못했다.

    소서정이 손을 들었다.

    “그럼 저희는 누가 지휘하나요?”

    “물론 리더가요.”

    “아, 나?”

    차우원이 대꾸했다. 방금 처음 들었다는 반응이라 팀원들은 불길해졌다.

    “이 던전에서 손발 안 맞아서 사고 났다면서요?”

    “혹시 이림이 저희 내다 버렸나요?”

    “그건 아니고, 우리 전략은 이렇습니다.”

    물론 팀원들의 불안감 따위를 독재자 이단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전략을 들은 팀원들은 생각했다.

    ‘이게 뭐야.’

    “음……. 그래……. 잘되면 좋겠다, 단우야.”

    “잘될 겁니다.”

    “음…….”

    “<차우원 팀>, 준비되셨습니까?”

    고청이 물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게이트 입장하겠습니다. 모두 준비. ……갑시다.”

    이림의 정예 공격대 세 팀과 신진 독립 공격대 한 팀은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게이트로 입장했다.

    * * *

    게이트에 입장하자마자 고청은 인상을 썼다.

    ‘습기가.’

    던전 안은 안개가 자욱했다. 시야가 가려지는 건 물론이고 호흡도 불편했다.

    “모두 방호구 착용. 호흡 조심하십시오. 보조계.”

    “예.”

    “<독성 감지>!”

    “<라이트닝 볼>!”

    이림 공격대 소속 보조계 헌터들이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눈앞이 환해지며 잠시 던전 안의 풍경이 보였다.

    과거 척후대의 기록이 남아 있기는 했으나, 고청은 공략 전 이림 척후대를 다시 들여보냈다. ‘척후, 그리고 탐사’는 던전 공략의 기본 원칙이었다.

    이림의 우수한 척후대는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돌아왔다.

    -밀림 같은 환경에, 습도가 높고 날씨가 나쁩니다.

    -전체적으로 시야 확보가 어렵고,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헤매기 좋은 환경입니다.

    -뱀을 여럿 잡았는데 던전의 상위 종족은 아닌 듯합니다.

    -발자국 발견. 이족보행형 몬스터 서식지입니다.

    “안개에 독성은 없습니다.”

    “전방 바위에 표식을 남겨 두겠습니다.”

    “좋습니다. 계속 표식을 남기고 이동합시다. 가장 중요한 건 길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고청은 지시를 내렸다. 지형을 보고받고 고청은 과거 이 게이트를 공략하려 했던 중견 길드가 실패한 이유를 알았다.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군.’

    이런 곳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간 공략 실패에서 그치지 않는다. 몰살이다.

    물론 명문 이림에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감지>!”

    “전방에 몬스터 열 개체 접근.”

    “클리어!”

    공격대 세 팀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던전 탐사를 이어 갔다. 고청이 따로 지시를 내릴 것도 없이 역할 분배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게 우수한 공격대였다. 단일 공격대만으로도 던전을 깰 수 있으며, 모든 팀원이 지시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숙지하고 있는 완벽한 팀.

    ‘이들 중 한 팀은 영웅이 되겠지.’

    고청은 긴장을 놓지 않았으나 저도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우원 팀>은 괜찮나?’

    뒤를 돌아본 고청은 <차우원 팀>이 별 활약 없이 후미에서 그들을 따라오기만 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단우는 재기발랄한 발상력의 소유자였고 본인의 능력을 아는 만큼 자신이 있는 듯했으나, 그 협상은 좋지 않았다. <차우원 팀>에 득 될 것이 전혀 없는 협상이었다. 이림에 선두를 주고서도 던전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다니.

    하지만 저런 우수한 헌터는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 마련이었다.

    ‘이림에 오면 좋을 텐데.’

    고청은 공략 과정에서 <차우원 팀>에게 감명을 준 뒤 클리어 후 적당히 아이템을 분배하자고 생각했다. 차우원은 어차피 후에 청연에 들어갈 인재라 손쓸 방도가 없었으나, 다른 팀원들은 모를 일이다.

    “클리어!”

    ‘속도도 괜찮군.’

    고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우원 팀>도 이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터였다.

    * * *

    공략팀의 후미에서 단우는 생각했다.

    ‘순조롭게 망하는 패턴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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