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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88화 (88/170)
  • 88.

    그런데 이 팀에서 놀란 사람은 소서정뿐인 듯했다.

    “야. 너 영웅 되고 싶다며.”

    “영웅 되고 싶지 누가 죽고 싶대?”

    “<최후의 던전>은 뭐 친절하고 좋은 던전이라 들어가면 살아서 나와? 남들이 죽을 던전 다 도망쳐 다니면 무슨 던전은 깨겠어?”

    이단우가 헛소리도 말 같게 들리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과거의 소서정이 아니었다!

    맞는 말이라고 다 ‘그렇군’ 하고 수긍하면 이단우에게 끌려갈 뿐이지 않은가?

    “우리 이제 스물한 살이거든? 2년 차 헌터들이 무슨 같은 델 단독 클리어해?”

    “그 던전 파충류 출몰해.”

    “뭐?”

    “공략 성공하면 네가 공적치 1위라고.”

    “……!”

    소서정은 가슴이 뛰었다!

    이단우가 관대하게 덧붙였다.

    “영 힘들면 나와서 청연이랑 공조하든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단일 공략 공적은 인정 못 받겠지만.”

    “아니 근데, 변온 동물이 화계 마법사에게 약한 건 그렇다 치고. 그게 약점이었다면 지난 공략이 왜 실패했겠어?”

    소서정은 팩트 체크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뭐 공격대에 마법사가 없었겠는가?

    “그때 공격대에 거대 길드 없었어.”

    “아하. 우리도 없을 거잖아!”

    “그때 공격대에는 엘리트 헌터(A급)도 한 명 없었고.”

    “수는 많았잖아? 나도 어디서 기사 봤어. 그때 죽은 헌터만 백 명이라며.”

    그런데 차우원이 턱을 만졌다.

    “아, 그러네. 수가 너무 많았구나. 그것도 용병들로만.”

    이단우는 화이트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 예상보다 난도 높은 던전에, 평소 손발을 맞추던 공격대도 아닌 용병. 웬만한 베테랑이라도 지휘하기 어렵지. 애초에 전략부터 잘못됐어. 비정기 던전인 줄 알았으면 그쪽도 팀 구성을 달리했겠지.”

    “소수 엘리트 팀으로?”

    “그래.”

    이 커플이 또 사태를 영리하게 분석해서 소서정은 솔깃했다…….

    ‘아니지.’

    는 불길한 던전이었다. 등급은 그렇다 치고 들어간 헌터들이 몰살 따위를 당한 던전은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우리만 한 공격대는 거대 길드에서도 보기 힘들어. 2년 차가 어쩌고 같은 소리 할 거면 이림에 남았어야지. 신입이 건방지게 어디서 A급 공략이야? 근데 우리 E시 3게이트에서 공적치 1위 먹었어.”

    그런데 이단우가 사실만을 말했다!

    <자이언트 앤트> 공략 때 소서정이 고생을 했던가?

    ‘그야 했지만!’

    그건 이단우가 사람을 험하게 부려 먹는 탓이었고, 소서정은 거기서 능력 부족을 느끼지는 않았다.

    ‘정상적으로 공략했으면 끔찍했겠지.’

    개미굴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다 돌아다니다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면 소서정은 개미 떼에 쓸려 나가지 않았겠는가?

    거길 쉽게 공략한 건 이단우의 공이었다.

    물론 소서정은 자신에게 불리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뭐, 그랬지. 내 덕이 컸지.”

    “어.”

    “……?”

    ‘방금 수긍했어?’

    놀란 소서정을 무시하고 이단우가 팔짱을 꼈다. 그가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팀에서 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네가 없으면 공략은 무리일 거야. 하지만 싫다는 사람 억지로 시킬 순 없으니까. 민주적으로 다수결로 결정할까.”

    ‘이 팀에서의 다수결이 정말 민주적인가?’

    소서정의 의문을 차우원이 끊었다.

    “민주적인 건 좋은데, 서정이도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2년 차에 A급 던전을 깨자는 건 두려울 수 있잖아.”

    “게이트 깨고 임팩트 주려면 지금이 적기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고민해 봐.”

    그리고 이단우는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잠깐!”

    소서정은 신문 헤드라인에 실릴 자신의 기사가 날아가는 환상이 보였다. 오늘 새벽에 실제로 겪은 일이었기 때문에 그 비통한 감정은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강울림이 옆에서 물었다.

    “뭐야, 겁먹었냐?”

    “넌 좀 가만히 있을래?”

    소서정은 침착하게 생각했다. 한쪽에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 다른 한쪽에는 별거 아닌 마법사로 끝날 위기가 걸려 있다. 고민할 여지도 없지 않은가?

    “잘 생각해 보니까 거대 길드가 잘못했네. 나서서 먼저 던전 공략을 했으면 아무도 안 죽었을 거 아니야?”

    “그래. 그럼 청연에 연락한다.”

    이단우가 휴대폰을 들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거대 길드들이 이기적이고 자기 좋은 것만 취한다는 거지. 사실 <자이언트 앤트> 공략 때도 우리 팀이 전략부터 다 짰는데 가장 칭찬받은 건 청연이잖아? 이건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일 같애.”

    “뭐 어쩔 수 없지. 거기가 거대 길드니까. 밖에서 보기엔 거기가 다 하고 우리는 전술 단계에서나 끼어들었던 걸로 보이겠지.”

    이단우가 새침하게 말했다.

    “하여간 세상이 문제야. 다들 대기업, 거대 길드, 이런 소리만 하니까 엉망이 되는 거 아니야?”

    소서정은 맞장구쳤다.

    ‘어? 이런 상황이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그래서 뭐 어쩌자고?”

    강울림이 물었다. 두 사람이 말을 돌려 하는 바람에 그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차우원이 온화하게 정리했다.

    “우리 비정기 게이트 공략한대.”

    그렇게 해서 <차우원 공략대>의 다음 행보는 단독 공략으로 결정됐다.

    * * *

    의 공략권을 가지고 있는 건 길드 연합 소속의 중소 길드였다.

    ‘본래 게이트 출몰 지역을 관리하던 길드가 망하고 그 지역을 새로 차지했지.’

    참고로 이전 길드는 공략 실패로 망했다.

    지금의 관리 길드는 이 게이트의 공략을 경험한 적도 없고 앞으로 경험하고 싶어 하지도 않을 거라는 의미였다.

    “공략권을 사고 싶으시다고요?”

    길드장은 놀란 듯했다. ‘그런 골칫거리를 왜?’라는 표정을 숨기지도 못해서 단우는 생각했다.

    ‘저러면 사러 왔다가도 도망치지 않나?’

    길드 입장에서 비정기 게이트는 처치 곤란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사그라들 때까지 두면 되지만, 지금은 시국이 시국이지 않은가?

    ‘모든 길드가 지역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어느 던전에서 성물이 나올지 모른다. 이런 시기에는 어디라도 공략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비정기 게이트는 더 그렇지.’

    언제 닫힐지 모르는 게이트 아닌가? 지금껏 그런 적은 없었으나, 비정기 게이트에 만약에라도 성물이 출현했다면 게이트가 닫히는 순간 성물은 사라지게 된다.

    길드장 입장에서는 위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고민될 터였다.

    ‘적당히 집어넣었다가 몰살하면 끔찍한 일이고, 그렇다고 거대 길드의 힘을 빌리기도 힘들다.’

    역시 시국이 시국이어서 거대 길드도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공략권을 사러 오겠다는 호구를 반기지 않기도 힘들 터였다.

    과연 길드장은 너무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비정기 게이트의 공략권 말씀이시죠? 저희도 공략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진 상황만 아니었어도 비정기 게이트부터 손썼을 텐데, 일이 이렇게 되어 난감하던 차였습니다. 역시 <차우원 공격대>군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먼저 나서 주시다니 훌륭하십니다.”

    “예.”

    “제가 차문경 헌터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말씀드렸습니까? 그 아드님인 차우원 헌터가 이리도 훌륭하게 자라서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제가 차우원 헌터의 대단한 팬입니다.”

    “예.”

    “……하하! 그러니까 제 말은, 저희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던전 공략의 가치를 재고 따지겠습니까? 인연이 닿아 이렇게 되었으니, 공략권도 마땅한 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됐다.’

    ‘싸게 넘길 테니 가져가라.’라는 말을 좋게 풀어 하던 길드장은 노크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무슨 일인가? 손님이 계시는데.”

    “저, 길드장님.”

    안으로 들어온 비서가 길드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뭐?”

    길드장의 눈이 힐끗 단우를 향했다가 빠르게 돌아갔다.

    ‘……?’

    “아……. 이단우 헌터, 미안하지만 지금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제가 나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거래 끝났으니 저도 일어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길드장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돌았다.

    “아니, 거래가 끝나지는 않았잖습니까?”

    ‘……?’

    방금 전까지 흔쾌히 공략권을 떠넘기려 들더니 말이 이상했다.

    “왔다는 손님이 누굽니까?”

    단우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단우 헌터, 미안하지만…….”

    단우는 더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이단우 헌터?”

    이림의 부길드장 고청이었다.

    ‘이 새끼가 왜 여기서 나와.’

    “부길드장님. 혹시 공략권 건으로 오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설마, 이단우 헌터도?”

    “…….”

    이림이 끼어드는 건 과거에는 없던 일이었다.

    ‘당연하지. 그땐 청연에서 길드장이 나서서 채갔으니까…….’

    그러나 그 일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단우가 바꿨으니까.

    * * *

    단우가 아지트로 돌아가자 소서정이 분주하게 물었다.

    “공략일은 언제로 할 거야? 전략은 이미 정한 거야?”

    “이림한테 빼앗겼어.”

    “뭐?”

    “이림이 비정기 게이트 공략권을 가져갔다고?”

    차우원이 되물었다.

    “어.”

    -차문경 헌터 존경하신다면서요.

    -아니, 물론 그렇지만. 은퇴한 이림 전 길드장님도 제가 무척 존경하는 분인데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텄군.’

    거대 길드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이야 흔해서 단우는 놀랍지도 않았다. 청연에 들어가기 전까지 단우는 거대 길드는커녕 중소 길드의 입김에도 날아가는 처지였는데, 자신에게 갑인 길드장이 거대 길드의 공격대 팀원에게 살갑게 구는 걸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다.

    그런데 이림이 별 얻을 것도 없는 비정기 던전 공략에 왜 끼어든단 말인가?

    ‘이 새끼들 뭘 알고 있냐.’

    성물이 나오는 걸 알고 있나?

    ‘그럴 리 없지.’

    단우처럼 과거로 돌아온 게 아니고서야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림에 거짓말 같은 예언자가 있어서 성물의 위치를 점지해 줬을 리도 없다.

    ‘그랬다면 과거에 스승님한테 공략권을 넘겼을 리 없으니까…….’

    뭐지?

    단우가 고민하는데 소서정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림’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놀라더니 어색한 태도로 앉아 있다.

    ‘아는 거 나오면 더 끼어드는 성격 아닌가.’

    이상함을 감지한 단우가 물었다.

    “너 뭐 아는 거 있어?”

    “아니? 딱히. ……나 이 팀이 좋아. 고민 같은 거 안 했거든?”

    소서정이 얌전하게 말했다.

    단우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너 무슨 연락 받았어?”

    “아니, 진짜로. 내가 연락한 거 아냐! 부길드장님이 전화 거는데 내가 무슨 수로 끊어? 내 센터 선배이기도 하단 말이야!”

    “아, 서정이 이림에 다시 스카우트됐어?”

    차우원이 별 뜻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단우는 그가 저러면 다들 지레 찔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주 겪어 본 일이니까.

    소서정도 별수 없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 나한테 갑자기 <기희윤 팀> 사건 증언을 해 달라잖아. 난 거절했어, 끝이야!”

    ‘그거였냐.’

    단우는 이림이 원하는 바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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