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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86화 (86/170)
  • 86.

    차우원은 상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보이는 곳에 자국을 남기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간밤에도 그걸 잊지 않아서 이단우의 목 위는 멀쩡했다. 그러나 그 아래는 엉망이었다.

    ‘단우가 아직 거울을 못 봤지.’

    다행이었다. 아니면 대화는 아직 시작도 못 했을 테니까…….

    차우원은 셔츠를 여미고 단추를 채워 줬다. 목 끝까지 꼼꼼히 채운 뒤에 잠시 이단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유혹을 못 이기고 입 맞췄다.

    “……?”

    이단우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우원의 팔을 잡고 눈을 감아서 차우원은 웃음이 나왔다.

    ‘얘를 진짜 어떻게 하지…….’

    이단우의 변명은 이상했다. 다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면 납득되지 않는 점이 많았다.

    ‘헌터가 스스로 부상을 입겠다는 발상은 잘 안 하지.’

    몸이 무기인 헌터가, 그 무기를 상하게 한다는 생각을 보통 하겠는가?

    이단우가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것과 이건 별개의 일이었다.

    단우는 그곳을 기희윤의 사업장으로 의심하고 찾아갔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의 목표가 기희윤이라는 뜻이었다.

    기희윤의 사업장을 망하게 하든, 아니면 다른 행동을 취하든……. 기희윤을 방해하고 망치는 게 단우의 목적이다. 기희윤에게 잡히는 건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닐 터였다. 적에게 잡혀서 조종당하는 일을 이단우의 자존심이 견뎌 내겠는가?

    그래서 이단우는 자해용 아티팩트를 소지했다.

    그러나 이건 이상했다.

    ‘기희윤은 왜 단우를 안 죽였지?’

    사업장에 숨어든 적을, 기희윤이 살려 둬야 할 이유가 없다.

    그 적이 조종되지 않는다면 죽여야 마땅하지 않나.

    기희윤은 범죄자였다. 그가 헌터에게 자비를 베풀 리 없다.

    그리고 그 헌터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차우원의 의문은 그것이었다.

    ‘자해로 부상을 입어도, 기희윤에게 살해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

    차우원이 지하 창고에 진입했을 때 기희윤은 단우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살의를 갖고 움직였다면 차우원은 무슨 수를 쓰든 기희윤을 죽였을 터였다.

    그러나 기희윤은 손을 떼고 도주했다.

    그가 떠나며 이단우를 부른 호칭을 차우원은 기억하고 있었다.

    ‘단우야’라고 불렀다.

    초면인 이단우에겐 누구도 시도할 수 없는 지극히 친밀한 호칭이었는데…….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둘은 서로를 알고 있다.’

    차우원은 그 일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단우가 자신을 힐끗 올려다보고 있었다.

    ‘끝났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단우는 실제로 차우원이 자신을 그만 혼내려는 건가 싶었으나…….

    그 얼굴을 보고 참을 수 있을 만큼 차우원은 도를 닦지 못했다.

    그랬다면 그는 헌터가 아니라 성직자가 됐을 것이다.

    * * *

    S급 수배자 기희윤의 새 거점을 무너뜨린 건 평소라면 뜨거울 만한 뉴스였으나, 다음 날 새벽에 터진 성물 출현 예언은 모든 이슈를 휩쓸어 갔다.

    성물이 출현한다고 다음 날 <종말>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모든 길드가 전시 체제에 들어가는 건 맞아서 거리는 조용했다.

    덕분에 <차우원 팀>은 매스컴의 방해 없이 아지트에 모일 수 있었다.

    “야! 너 몸은 괜찮아?”

    아지트에 들어온 강울림이 소리쳤다. 걱정을 들어 본 게 오랜만이라 단우는 순간 뭔가 싶었다.

    “어.”

    “너 어제 부상 때문에 수습도 못 한 거라며. 이단우도 다치는구나. 아니, 범죄자 소굴을 왜 혼자 들어갈 생각을 하냐? 우리한테는 무리를 하지 말라느니 뭐라 하더니…….”

    단우는 저게 감탄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강울림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알았다.

    강울림은 한결같았다.

    ‘얜 어떻게 사람이 똑같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과거로 돌아와서, 팀원들이 전부 이단우가 아는 그대로여서.

    단우는 안도했다.

    그랬다는 걸 알았다.

    -단우야, 네가 말했잖아.

    차우원의 목소리가 그 위로 겹쳤다.

    ‘생각하지 마.’

    단우는 귀를 잡았다.

    ‘괜찮아. 아무도 안 죽었어.’

    모든 게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단우는 흔들리는 바위 위에 서 있는 듯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앉아.”

    “아니 걱정을 해 줘도 뭐래…….”

    시끄러운 강울림을 단우는 한번 쳐다봤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서정도 덩달아 입을 닫아서, 1층은 조용해졌다.

    ‘그러고 보니 저 둘은 어떻게 알고 거기 나타난 거지.’

    이단우는 의아해졌으나 차우원이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다들 왔어? 어제 둘한테만 맡겨서 곤란했지. 먼저 가서 미안해. 인질로 잡혀 있던 민간인들은 좀 어때.”

    “건강에 이상은 없다는데, 조사받던 중에 난동 부리더라.”

    “맞아. 거기 뭐 하던 데야? 마약 소굴이라도 돼? 와, 나 중독자 처음 봤잖아. 그런 건 왜 하나 몰라.”

    소서정이 혀를 내둘렀다.

    ‘네 앞에 하나 있다.’

    그렇게 말할 순 없어서 단우는 차우원만 보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이단우가 잘 아는 차우원이었다. 차분하고 온화해서 누구에게나 안정감을 주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챙기고 있다.

    “더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단우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그는 화이트보드 앞에 가서 섰다.

    “잡담은 됐고. 다들 소식 들었지.”

    팀원들은 입을 닫고 보드에 시선을 모았다. 이단우는 그곳에 ‘성물’이라고 썼다.

    “거리에 사람 없는 거 봤지. 지금 길드고 센터고 할 것 없이 전부 종말 대비 들어갔는데, 우리라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지.”

    “우리도 <성물 쟁탈전>에 뛰어들자는 얘기야?”

    차우원이 물었다.

    “어.”

    “스승님께 연락드릴까. 아마 좋아하시긴 할 텐데.”

    ‘스승님은 이 일에 엮여선 안 된다.’

    단우는 말을 잘랐다.

    “무슨 소리야. 청연 도움 받으면 안 되지. <성물 쟁탈전> 하자고 했잖아.”

    “……?”

    “혼자서는 던전 하나 못 깨는 공격대가 <성물> 갖겠다고 하면 다들 ‘아 그러세요’ 하겠어?”

    “……!”

    <성물 쟁탈전>은, 성물의 주인을 찾기까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말했다. 예언이라는 게 대강이어서 ‘성물이 출현했다. 위치는 위도 몇, 경도 얼마.’ 뭐 이런 식으로 자세히 알려 주는 법이 없었다. 그때부터 헌터들이 총출동해 알아서 성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성물도 출현하는 곳이 정해져 있기는 했다.

    ‘전부 던전 안이었지.’

    다시 말해, 성물을 찾기 위해서는 던전 공략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길드와 센터는 ‘성물 출현’ 예언을 기점으로 전투 가능한 헌터를 전부 동원해 던전 공략에 나섰다.

    ‘던전 성숙도를 따져 공략을 미루는 짓은 못 한다.’

    그랬다가 한참 미뤄 둔 던전 안에 성물이 잠자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좆되겠지.’

    성물을 찾는다고 <성물 쟁탈전>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길드의 관계가 아직도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전대 성물은 뒤늦게 발견됐다.’

    종말은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최후의 던전>이 열렸다. 그런데도 성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헌터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우선도 낮은 던전들까지 전부 공략해 ‘성물’을 계속 찾을 것인지, 아니면 성물 없이 <최후의 던전> 공략에 나설 것인지.

    당시 헌터로서의 의무를 잠시 내려놓고 있던 차문경은, 핏덩어리인 두 아이를 남겨 두고 팀원들을 다시 소집했다. 외부에서 <침식>을 막겠다고 남은 현 청연 길마 류시환을 제외한 팀원들을 이끌고 일대의 모든 던전을 클리어했다. 그리고 성물을 찾았다.

    그때 이미 그녀는 성물의 주인이었다. 성물의 형태를 ‘성창槍’으로 변화시켜 가지고 나왔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정부는 <성물 쟁탈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자격 있는 자가 성물을 소유해야 한다.

    성물을 찾는 건 <성물 쟁탈전>의 전반부였다. 이 전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물의 주인을 결정하는 것으로…….

    성물이 발견되면, 자격 있는 헌터들이 서로 겨뤄 주인을 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성물의 주인은 이후 <성물 쟁탈전>의 규칙에 따라 모든 헌터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물을 얻은 개인을 습격해 그것을 빼앗고자 하는 시도는 누누이 있어 왔다. <성물 쟁탈전>은 성물의 주인이 암살되는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기도 했다.

    그것과 별개로 <성물 쟁탈전> 자체가 정부의 영향력을 대단히 강화시키는 건 사실이었다.

    ‘쟁탈전 참가 자격이 있는 헌터를 정부가 심사하니까.’

    모든 헌터를 모아 싸우게 만들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 인선은 정부에 맡겨져 있었다.

    차문경의 전대까지는.

    길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성물을 찾으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성물을 찾은 헌터는 정부와 관계없이 <성물 쟁탈전> 참가 자격을 얻는다.’

    이런저런 일을 차치하고,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 일리가 있기는 했다.

    성물은 정확히는 이런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성검>(EX)

    이 검은 주인의 간절한 염원을 이루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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