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이단우의 마력 스탯을 알게 된 뒤로 차우원은 그를 관찰했다.
‘신체 능력도 우수한 수준은 아니지.’
강울림과 단거리 달리기라도 시켜 보면 이단우는 저 뒤에 처져 있을 터였다. 애초에 근육량과 강도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 장거리라면 상대가 되겠느냐면, 물론 그렇지 않았다. 이단우는 스테미너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껏 전투 상황에서 스테미너가 달린 적이 없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전투를 극도로 빨리 끝내니까.’
이단우의 전투 스타일은 몬스터에게 근접해 딜을 욱여넣는 방식이었다. 체구가 큰 몬스터의 경우 근접한 이단우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 상태에서 거죽에 달라붙어 공격을 넣는 것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스테미너와 근력보다 반사 신경의 싸움이 된다. 그럴 때 이단우의 우위는 압도적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동체 시력이 아닌 머리의 싸움이기도 했다.
‘판단력이 좋다.’
차우원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으나, 곧 단순히 그런 문제인가 싶어졌다.
헌터계에서 베테랑은 흔치 않다. 헌터를 나누는 정부 등급(베테랑, C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력을 쌓은 헌터가 흔치 않다는 뜻으로, 많은 헌터가 경력 10년을 못 채우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전대에는 그랬지.’
헌터들의 교육이라는 것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헌터가 경험을 쌓기 힘들다는 말은, 전략 전술이 발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도 센터와 길드에서 예비 헌터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정석이었다. 탱커가 선두에서 탱킹을 하고 근거리 딜러가 탱커 뒤에 선다. 원거리 딜러는 보조계 혹은 힐러와 함께 후방에서 조력한다.
탱커가 어그로를 끄는 사이 근거리 딜러가 몬스터들의 뒤를 잡는 등의 전술 정도가 가끔 쓰였고, 기책은 논외였다. 정석을 인이 박일 정도로 예비 헌터들의 몸에 새겨 넣어, 던전 안에서 그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게 헌터 교육의 목적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조차 제대로 못 하는 헌터가 태반이니까.’
변칙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단우는 변칙 그 자체로만 이루어진 듯한 인물이었다.
-소서정. 네가 보스 첫 타 쳐.
-어? 잠깐, 나보고 어그로 끌라고? 나 원거리 딜러인데?
-강울림은 쟤 보호하고.
-음, 탱커랑 원거리 딜러가 보스전을 하는구나……. 우리는?
-쟤네가 어그로 끄는 동안 던전핵 파괴하자.
이상한 전술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데다 성공까지 시켜서, 차우원은 그가 늘 신기했다.
다른 팀이 변칙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 건, 그러지 않고 이기는 게 가장 안전하고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단우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의 전투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근거리 딜러의 공격 범위는 그 딜러의 무기 길이와 같았다. 거리 조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공격은 들어가고 상대의 공격은 닿지 않는 범위를 찾기 위해, 딜러들은 무기의 길이에 맞춰 거리를 조절했다.
그러나 이단우는 상대에게 뛰어들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없고 자신의 공격도 상대가 피할 수 없는 범위로 들어가는 것이다.
차우원은 그 방식이 이단우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 외에, 상급 헌터 혹은 상위 던전의 보스 몬스터에게 이단우가 상처를 낼 방법은 없다.
어떤 전쟁에서나 기책을 사용하는 쪽은 약자였다.
전력이 강세인 쪽은 정석을 지키는 것만으로 이길 수 있다.
약자는 그렇지 않았다.
이단우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스탯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판단력으로 메운다.
그게 이단우의 전략인 셈이다.
‘정말 머리가 좋다.’
차우원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럴 때는 싫었다.
“구속구 없어도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데……. 마력도 못 쓰고 저항 스탯도 낮은 네가, 정신계 헌터한테 잡혀서 어떻게 빠져나오려고 그랬어? 못 나오고 잡혀 죽었으면. 그것도 운이 나빴다고 넘어가면 돼?”
“정신계 스킬엔 안 당하지. 그것도 대비 안 했겠어?”
이단우가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그래. 단우가 다 대비를 했구나.”
“빈정거리지 말고.”
“그런데 왜 못 빠져나왔어?”
빈정거리는 게 아니었다. 차우원은 한숨을 참고 있었다.
“순서가 꼬였어. 자해용으로 챙긴 아티팩트를 구속구 푸는 데 사용했어야 해서…….”
“무슨 용?”
차우원은 귀를 의심했다.
그 반문을 무슨 의미로 생각했는지 이단우가 설명했다.
“그놈 정신계 스킬 S랭크야. 웬만한 스킬 저항 아티팩트로는 상대도 안 돼서, 그냥 스킬에 걸리고 빠져나오는 쪽으로 보험을 들었는데.”
스킬에 안 걸리기는 힘드니까, 그냥 걸리고 자해해서 빠져나오는 걸로 대처 방안을 잡았다는 소리다.
차우원은 기가 차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화난 적이 없었는데…….
‘자기 몸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헌터들이 기책을 사용하지 않는 건, 그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다. 헌터라고 목숨이 두 개는 아니지 않은가?
다시 말해 이단우가 기책을 사용하는 건,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단우에게 위험은 감수할 만한 것이고 자기 몸은 던져 볼 만한 재료였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건물에 불을 지르고 이림 전 길드장 저택에 침입하는 게, 차우원은 재미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차우원에게 그 일이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단우는 아니었다. 그렇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 차우원은 모든 게 재미없어졌다.
이단우는 자신의 몸을 멋대로 쓴다.
가장 화나는 건, 자신이 거기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게 상관이 있나?’
이단우는 차우원을 필요로 하는데.
그가 자신에게 관대하다는 걸, 차우원은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차우원은 성큼 영역을 침범했다.
“단우야. 이렇게 하자. 넌 다 대비가 되어 있었고 운이 나빴고, 내가 걱정할 권리는 없다는 거지. 네가 죽어 버렸으면 굉장히 운이 나빴던 거라고 난 마음 아파하기만 하면 됐던 거고. 근데 난 그런 팀 싫어.”
“아니…….”
“이제 네 약속은 못 믿겠다. 알기 쉬운 걸로 하자.”
차우원의 아래에 깔린 채 이단우는 손목을 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열받았는지 가슴이 들썩거렸으나 그뿐이었다. 차우원에겐 간지럽게만 느껴지는 저항을 끝으로 그가 협상을 시도했다.
“네가 서약 싫댔잖아.”
이단우 목숨을 걸고 하는 그 쓸데없는 서약서를 또 남발하겠다는 소리다.
‘이걸 정말 협상을 하네…….’
조건을 맞춰 줄 테니 팀에 남아 달라는 사업가처럼 굴고 있다.
차우원은 너무 열이 받아서 머릿속의 바늘이 한 바퀴를 돈 상태였다. 그는 화나면 도리어 침착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래. 싫어, 단우야. 누구한테도 득이 안 되는 제안은 협상장에 올리는 게 아니지.”
“뭐 어쩌자고?”
“네가 서약을 어기면 나한테 타격이 가잖아. 안심시키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그러니까 단우야. 앞으로 이렇게 하자. 한 시간 이상 연락이 안 되면 난 널 찾는 거야.”
물론 차우원은 이게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단우가 화내면 할 말도 정해져 있다.
‘싫지. 그러면 네가 널 챙겨야지. 타인이 널 보호할 권리를 가져가겠다고, 주제넘게 생각하지 않게.’
그런데 이단우가 찡그린 채 대답했다.
“그래.”
“……?”
이단우는 이번에도 의문이었다.
‘그런 걸로 괜찮은 건가?’
과거의 차우원은 이단우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나 자유 시간을 줘도 되는 건가 싶었다. 이단우가 다른 짓을 못 하게 막으려면 ‘한 시간’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 단우는 그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한 시간 정도는 슬쩍 사라져도 괜찮을 것처럼 말해 두고, 방심을 틈타 잡으려는 전략인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이단우는 깨달았다.
‘그게 아니잖아.’
지금 이단우를 잡고 있는 건 스무 살의 차우원이었다. 이 차우원이 이상한 게 아니다. 스물네 살의 차우원이 이단우를 조금도 신뢰하고 있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리고 스무 살의 차우원도 이제 거기에 근접한 수준의 불신을 품게 된 모양이었다.
단우가 뜨끔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있는데 차우원은 차우원대로 탄식이 나왔다.
‘뭐지.’
완전 감시 시스템 같은 걸 이단우가 순순히 허용하고 있다.
“단우야, 널 알 수가 없다.”
실은 차우원은 스스로를 더 알 수 없었다.
열받아서 집착증 있는 애인 같은 소리를 내뱉긴 했다. 이단우가 수락한 건 예상외였으나…….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설령 애인이 ‘그러자’고 대답하더라도 본인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차우원은 놀랍게도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사실을 이단우를 만나고서 깨달았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스스로도 곤란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이단우인지 자신인지도 이제 모를 노릇이었다.
“누가 이런 소리를 하면 화를 내야지, 단우야.”
차우원은 이성을 발휘해 말했다. 하는 김에 이단우 위에서 몸도 일으켰다.
배 아래에 깔린 이단우의 가슴이 두근거려서 속이 간지러웠다. 그걸 피해 보려는 시도였으나 효과가 좋진 않았다.
이단우의 얼굴이 잘 보였다. 그가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를 시트 위에 흐트러뜨린 채 차우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말했잖아.”
이단우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차우원은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말하면 다 들어주려고?”
“일리가 있으면 듣겠지.”
‘내가 너도 아니고.’
단우의 생각은 그랬다.
차우원은 이단우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으나 단우는 그와 다른 타입의 리더였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팀원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대답이 나왔겠으나…….
마찬가지로 이단우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차우원은, 한숨을 참았다.
‘부추기는 건 아닐 텐데.’
이단우가 잘도 사람 들쑤시는 말만 해서 그는 괴로웠다.
한 시간 단위로 위치 추적을 하는 게 ‘일리가 있고 괜찮은 일’이라면, 차우원이 어디까지 손을 뻗어도 허락해 주려는 거란 말인가?
‘아니. 단우가 허락한다고 내가 요구하면 안 되지…….’
“단우야, 너 날 좀 이상하게 만든다.”
“……?”
차우원은 자제심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단우가 자신의 두 팔 사이에 있었다.
차우원의 셔츠는, 물론 이단우에게 컸다. 급히 꿰어 입은 탓에 단추도 채우지 않아서 가슴이 다 벌어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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