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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84화 (84/170)
  • 84.

    자신의 거처에서, 용종은 눈을 떴다.

    용종의 의무는 미래를 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세계는 멸망하고 있었다. 그 멸망은 막을 수 없었다.

    불쌍한 이 세계의 종족들은 각자의 벙커를 요새화하고, 그 안에서 끝없는 부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종족 보존이었다.

    이 세계는 새로운 생명을 낳아 기를 능력이 없다. 모든 종족은 마정석에 스스로를 봉인해 생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용종은 이들을 살릴 터였다.

    이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았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땅이었다.

    ‘그곳으로 갈 수 있어.’

    용종이 확언했기 때문에, 이 세계의 생명들은 모두 기꺼이 자신의 영혼을 마정석에 묶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일부는 성급했다. 새로운 땅에 먼저 발을 내디뎠다.

    ‘안 돼.’

    그렇게는 살아남을 수 없다. 정찰은 신중해야 한다.

    용종은 생각했으나 막지 못했다.

    용종은 잠들어 있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들어 올려지질 않았다.

    ‘그곳엔 괴물이 있어.’

    그것이 다 자라기 전에 어서 빨리. 완성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모두가 함께.

    이 멸망하는 세계를 탈출해야 한다…….

    용종은 잠에서 깼다.

    * * *

    는 수많은 헌터를 잡아먹은 던전이었다.

    어느 날 D시에 던전이 열렸다. 척후조의 보고에 따르면 던전의 등급은 C.

    상위 던전으로, 담당 길드는 세 개 길드가 연합해 공략팀을 꾸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은 길드마다 달랐다. 청연 등의 거대 길드에서는 자력으로 공략했으나, 대부분의 길드는 전력상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긴 게 용병 제도였다.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헌터들이 어떻게 던전에 들어가겠는가? 모든 던전의 공략권은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데.

    이 공략권을 가진 길드에서 개인 헌터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길드는 정해진 보수를 헌터에게 지급하고, 헌터는 던전에서 얻은 모든 부속물을 길드에 바친다.

    그 개인 헌터를 부르는 다른 말이 용병이었다.

    E급 헌터 시절, 단우도 용병으로 하급 던전을 돌았다. 사실 그의 역할은 용병 수준도 아니었고 그냥 짐꾼이었지만.

    단우의 부모님은 제대로 된 용병이었다.

    부모님의 유산이 얼마였는지 나중에 듣고, 단우는 부모님이 괜찮은 수준의 용병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훌륭하진 않았다.

    차우원의 공략 기록에서, 척후조의 보고와 다르게 는 A급 던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수준의 헌터는 아니었다.

    는, 세 개 길드의 공격대와 다수의 용병들을 삼키고 사라졌다.

    게이트를 클리어하지도 못했는데도 문이 닫혀서, 사람들은 그게 비정기 게이트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공략 열기는 식어 버렸다.

    ‘클리어는 어려운데 던전 브레이크도 안 일으킨다.’

    비정기 게이트는 그런 던전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선 비활성 던전과 같다. 다른 점은, 비활성 던전처럼 늘상 열려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애써 클리어하지 않아도 대충 있다가 사라진다.

    길드에서는 애써 공략할 이점이 없었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진짜 없애야 하는 것들이지만.’

    이단우는 <최후의 던전> 재공략 직전에 비정기 게이트만 돌며 전부 클리어했다. 그 과정에서 권준홍과 기희윤은 경험치를 먹었고, 이단우는 차우원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비정기 게이트들은 <최후의 던전>과 연관이 있다.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도.

    과거에 스승님은 이 던전에서 돌아가셨다. 그게 자신 때문이라는 걸 단우는 잊은 적이 없었다.

    단우는 그 일이 다시 반복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던전을 깨고, 스승님을 살리고…….’

    차우원에게 다시 성검을 돌려준다.

    ‘성물이 그 안에 있을까?’

    시간대가 당겨졌다. 단우는 또 뭐가 뒤바뀌어 있을지 두려워졌다.

    그러나 이단우는 일어날 일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다. 변하는 건 당연했다.

    그는 이미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만.

    ‘아니야.’

    차우원은 죽지 않았다. 이단우는 그의 어딘가를 망가뜨렸지만, 그건 올바른 방향의 변화였다.

    단우가 원하던 변화 아닌가?

    차우원이 가치 계산을 한다는 건.

    그의 가치 계산은 지금 잘못됐지만.

    괜찮았다. 차우원은 영리했다, 잘못된 계산은 옆에서 교정하면 된다.

    단우는 연신 뺨을 문지르며 공포에 사로잡힌 자신을 억지로 바로 세웠다…….

    “회의하자.”

    “무슨 회의?”

    “종말 대책 회의. 우리 앞으로 상급 던전만 뛸 거야.”

    ‘ 공략권부터 먹는다.’

    단우는 판단했다. 그런데 차우원이 몸을 굽히더니 자기 셔츠를 주워 단우 손에 쥐여 줬다.

    “……?”

    “좋은데, 그 전에 이야기를 하자. 단우야, 그거 입어 줄래. 네 옷은 망가졌더라. 내가 망가뜨린 것 같은데, 새로 사 줄게.”

    “……!”

    단우는 그제야 자신이 맨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려 지끈거리는 가슴팍이 다 보였다.

    숨도 못 쉬고 셔츠를 꿰어 입자, 차우원은 조금 웃었다. 그리고 무표정해졌다.

    ‘아, 망할…….’

    단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원해서 약한 거 아니야.”

    단우는 선수를 쳤다. 차우원은 대답이 없었다. 팔짱을 끼고 자신을 보고 있어서 단우는 조바심이 났다.

    “그쪽에서 쓴 거야. 나 제압하려고.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너랑 그 짓 하고 또 약을 처먹겠어?”

    “보통 사람은 안 하지. 근데 단우가 보통은 아니지 않나.”

    “내가 안 했다고.”

    ‘그것 때문에 열받은 거 맞잖아.’

    단우는 답답해졌다. 사실 여차하면 약을 좀 빼돌릴 생각은 있었으나 그땐 상황상 불가능했다.

    이런 소리를 할 수는 없어서 단우는 정색하고 우겼다. 그런데 차우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단우야, 그게 아니지. ……너 어제 죽을 뻔했어. 네가 지금 너한테 왜 약을 했냐고 뭐라 하겠어?”

    ‘그럼 지금 추궁하는 건 뭔데…….’

    단우는 입을 닫았다.

    차우원이 부드럽게 물었다.

    “그 건물엔 왜 갔어?”

    “뭐 좀 확인하러.”

    ‘표식 회수하러.’

    기희윤 새끼를 잘 알아서, 새 약국 위치를 찍었는데 단번에 맞혔다고는 당연히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차우원에게 못 믿을 약쟁이 새끼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 정신까지 나간 새끼처럼 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단우는 말을 정리했다. 그러느라 눈이 침대 어딘가를 노려봐서, 차우원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을 고르네.’

    이단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강울림 구한 도박장 기억나지. 거기 기희윤 놈 거야.”

    “아, 정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센터에서 연합 꾸려서 <기희윤 팀> 사업장 잡아 죽였잖아. 그 사업장들 위치 체크해 봐. 패턴 똑같아. 길드와 센터 영역 사이 회색지대에, 적당히 번화가에, 건물은 지은 지 10년 더 됐고 명의 변경 없는, 별달리 조사할 필요 없는 건실한 사업장들이야. 정부 조사 안 받겠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원래 그런 지역은 불법인지 아닌지 애매한 시설이 많지 않나.”

    단우는 미간을 좁혔다.

    “그건 애매한 시설이 아니지. 몬스터랑 사람 싸움 붙이는 게 뭐가 애매해? 그 건물에 각성자 몇 명이었어.”

    “스물두 명.”

    차우원이 대답했다.

    별 고민도 없이 답이 나와서 단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걸 진짜 기억해?’

    각성자가 많았다고 해 봤자 전부 화재 경보에 어그로가 끌려서 각 층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직접 상대한 수는 많지 않았는데 잘도 기억하고 있다.

    차우원이야 원래가 유능한 놈이라 단우는 내색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돈 벌려고 만든 시설에 누가 각성자를 그렇게 박아 놔? 뭐 고용비는 땅 파서 나와? 그건 기희윤 거 맞고.”

    “아, 그렇네. 본인이 정신계 각성자니까 인건비는 안 들겠네.”

    차우원이 이해력 좋게 대꾸했다.

    “어. 강울림 구할 때부터 이상해서 개인적으로 조사했거든. 그땐 기희윤 놈 존재를 몰랐으니까. 이후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땐 규모가 커서 혼자 손 못 댔고.”

    “그래서 지금이 기회다 싶었구나.”

    “기회 맞잖아. 이제야 꼬리 드러냈는데. 지금까지 잘 운영해 오던 시설이 한 번에 발각된 건 이 새끼가 예상 못 했던 상황이지. 근데 센터에서 박살 낸 데는 그놈 부하들이 자백한 곳이었으니까…….”

    “…….”

    “다른 영업장들도 정리하려 했다가, 방심했겠지. 부하들이 모르는 곳은 센터도 모를 거라고. 그럼 범위가 좁혀지잖아. 최근 업체 정리하려다 다시 영업하는 건물로. 그 자식 사업장인가 의심되는 곳이 몇 군데 생겨서, 확인해 볼까 갔다가 잡혔어. 그게 끝이야.”

    ‘허점 없지.’

    단우는 본인 말을 점검하고 입을 닫았다. 이만하면 괜찮은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차우원은 여전히 별 표정이 없었다.

    “그렇구나. 갑자기 거길 혼자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혼자가 아니면 누구랑 가?”

    단우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러다 차우원의 표정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날 데려갔어야지, 단우야. 위험하잖아.”

    ‘어…….’

    차우원은 괴로워 보였다.

    갈비뼈 안쪽이 따끔거려서, 단우는 잠시 말을 잊었다. 차우원이 저런 표정으로 말하면 이단우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런데 자신은 잘못한 게 없었다.

    “아니……, 전투 상황을 상정 안 했다고. 널 데려가는 게 더 위험했겠지. 네 얼굴이 명함인데 뭐 어떻게 데려가? 보고 다 도망치라고? 적당히 유명하든지.”

    ‘왜 내가 변명을 하고 있지?’

    단우는 의아했다. 변명을 하긴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상한 걸 변명하고 있다.

    “단우야, 유명세는 너도 만만치 않아.”

    “아니…….”

    ‘이 새끼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거리만 돌아다녀도 시선 몰고 다니는 놈과 장비를 벗으면 누구도 신경 안 쓰는 이단우를 갖다 비교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우원을 보는데 그가 말했다.

    “결국 발각됐잖아. 너 위험했어.”

    “그건 운이 나빴고.”

    “그래? 더 운이 나빴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차우원이 단우의 손목을 잡았다. 두 팔목을 모아 한 손에 쥐고 누르자 단우는 순식간에 뒤로 넘어갔다.

    “구속구 없어도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데……. 마력도 못 쓰고 저항 스탯도 낮은 네가, 정신계 헌터한테 잡혀서 어떻게 빠져나오려고 그랬어? 못 나오고 잡혀 죽었으면. 그것도 운이 나빴다고 넘어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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