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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81화 (81/170)
  • 81.

    그렇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차우원은 다른 생각을 잊었다.

    각성 후 그에게 가장 힘든 건 선을 넘지 않는 것이었다.

    -너는 문경이를 참 닮았어.

    사람들이 기대하는 선을 따라 걷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건 차우원이 무리해서 성취해야 하는 영역에 있지 않았으니까.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닿는 범위 내였기 때문에, 차우원은 스스로가 별일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우원에게 힘든 건 그 선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차우원은 각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님을 대련에서 이겼다. 스승님은 그때 차우원에게 말했다.

    -내가 널 가르칠 수 있는 건 이제 없는 것 같은데, 볼 장 다 봤다고 나 안 보러 오고 그러면 안 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차우원은 스승님이 늘 그렇듯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담이었다.

    전대 영웅인 스승님에게 차우원이 더 이상 배울 것은 없었다. 그는 우수한 학생이어서 금방 깨달았다. 앞으로 스승님과 백 번을 더 대련하더라도 그가 질 일은 없다.

    차우원은 스승님이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큰 노력 없이 보이는 타인의 마력 반응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건 자신이 특이 체질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부모의 특성을 자식이 물려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해내는 데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센터의 대련 수업에서 교육관을 쉽게 제압했을 때는 스스로도 수가 없었다.

    그 교육관은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센터를 그만둬서, 차우원은 생각했다.

    ‘이건 좀…….'

    교육관이 차우원의 기를 세워 주기 위해 형편없이 당해 준 건 아닌가…… 하는 가설은 폐기됐다.

    자신은 대단히 우수한 모양이었다.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여서 그는 자기 부인을 그만뒀다. 이후로는 타인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활약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했다.

    지금도 기대치는 충분히 높았다. 다들 차우원이 영웅이 될 거라고 떠드는데, 기대를 더 높여 놓았다간 아예 <종말>을 혼자 막을 거라고 믿어 버리지 않겠는가?

    조절이 잘 안 될 때도 있긴 했으나, 차우원은 뭘 하든 수준 이하로 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성공했고 차우원은 적당히 우수한 헌터로 1년 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늘 극도로 이성적이었다. ‘차문경의 아들’ 차우원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자신이 지켜야 할 어떤 선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우원은 이단우를 발견했다.

    이단우는 시체 같았다. 흰 얼굴이 피에 젖어 애처로웠다. 그런 이단우를 누군가 위에서 올라탄 채 결박하고 있었다.

    “손 치워.”

    차우원은 숨을 쉬려고 했다. 그러나 이단우가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눈을 깜빡이면 이단우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숨이 멎을 것 같아서, 차우원은 경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이단우의 몸에서 훅 힘이 빠지더니 그는 초가 꺼지는 것처럼 축 늘어졌다.

    동시에 차우원은 검을 뽑았다.

    아무런 판단도 없이, 그의 검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도륙하고 다시 검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망치는 자들에겐 관심 없었다. 그들은 이단우를 해칠 수 없다.

    손을 대면 차가워진 단우를 만지게 될까 봐, 차우원은 천천히 움직였다. 조금만 힘을 줘도 뭉개질 것을 만지듯이 단우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단우는 숨 쉬고 있었다.

    그제야 차우원에게 숨이 돌아왔다. 제가 지하층에 살아 있던 모든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자신에게 즉결 심판권이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D시는 청연의 관리 구역이 아니다. 가문의 영역도 아니어서 문제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우원은 이단우에게 힐링 포션을 먹였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마른 몸이 차우원의 가슴팍에 붙어서, 가느다란 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그 작은 박동이 차우원의 몸을 울렸다.

    차우원은 이제 다른 것도 떠올릴 수 있었다.

    ‘……주인님이라고 불렀지.’

    단우를 깔고 있던 남자. 그 남자가 이 창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의 주인이었다. 그를 지금 죽어 있는 자들이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차우원은 이 전근대적인 호칭을 임무 중에 들은 적이 있었다.

    ‘기희윤.’

    이단우는 그를 혼자 상대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온 건가. 그렇다면 왜 자신을 동행시키지 않았지?

    ‘기분을 상하게 해서.’

    이단우를 연인처럼 달래고 강제해서.

    이유가 바로 떠올라서, 가슴께가 따끔거렸다. 차우원은 이제껏 비참함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했는데 이단우는 재주가 좋았다. 별 경험을 다 하게 했다.

    그 순간 이단우가 눈을 떴다.

    차우원은 너무 많은 감정에 압도돼서 잠시 입을 닫았다. 그는 자신이 화를 내고 싶은 건지 그저 안도하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차우원을 밑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잠시 건져 올린 이단우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차우원이 기대한 말은 아니었다. 다 죽어 가던 사람이 가장 먼저 할 만한 말도 아닌 듯했다. 그러나 이단우는 원래 기대대로 행동하는 법이 없었다.

    ‘기희윤 팀 말인가?’

    차우원은 대답했다.

    “없어.”

    “민간인들이 없다고?”

    “민간인?”

    대화가 헛돌고 있다. 이단우가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기희윤이 거짓말을 했다고?”

    ‘기희윤.’

    이름을 부르는 어조가 편했다.

    전에도 생각한 적 있다. 이단우는 범죄자 ‘기희윤’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 같다고.

    단우가 계속 물었다.

    “너 어디로 들어왔어?”

    “입구에서부터 비밀 계단으로.”

    “올라가야 돼.”

    단우가 다급히 움직이려고 해서 차우원은 그를 들쳐 안았다.

    “아니, 나가야지.”

    “위층에 민간인들이 있어.”

    ‘아, 이런…….’

    차우원은 어깨를 들썩였다. 이단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그렇구나. 그런데 우린 나가야 돼.”

    “무슨 소리야? 위층에 사람들이 있다니까?”

    “단우야, 보호 아티팩트 시간 1분 남았어.”

    “뭐?”

    “너도 보일 텐데. 아래층까지 연기가 찼잖아.”

    “그래서?”

    이단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차우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누가 있든 이미 늦었어.”

    차우원은 단우를 안고 올라가려 했으나 멱살이 잡혔다.

    “너 왜 이리로 왔어?”

    이게 질문인가?

    차우원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왜 민간인을 안 구하고……. 너 여기로 왔어? 내가 내 몸 하나 못 빼내겠어?”

    “못 빼냈잖아, 단우야.”

    “난 여기서 안 죽어!”

    이단우가 화를 냈다.

    차우원은 그가 늘 신기했다. 예비 엘리트 헌터로서의 일반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서인지 이단우는 발상에 틀이 없었다. 그런데도 <종말>을 막겠다는 마음은 선명해서 차우원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늘 의문이었다.

    ‘위악적인 건 겉뿐이지.’

    -너를 살려야지. 네 가치가 더 크잖아.

    강울림에게 눈도 깜짝 않고 그런 소리를 하더니 차우원에겐 자기를 버려두고 민간인을 살리라는 말을 하고 있다.

    차우원은 자신을 알았다. 그는 영웅의 자질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단우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가 말하지 않으면 이단우는 나가지 않을 듯했다.

    “단우야, 더 가치 있는 걸 우선하라며.”

    이단우가 새파랗게 질렸다.

    말해 놓고 차우원은 후회했다. 이건 진심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짓말도 아니었지만.

    그는 다시 말했다.

    “불이 났는데, 네가 움직이질 않잖아. ……다른 곳에 생각이 미치질 않았어. 너한테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어.”

    이단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차우원은 그 틈을 타 그를 안고 내달렸다. 이단우의 다리는 마력 구속구에 묶인 채여서 걷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차우원은 상급 헌터 열 명이 동시에 스킬을 써야 무너질까 말까 한 마정석 강화벽을 방금 베어 냈으나, 얇은 구속구를 베어 내는 건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는 구속구와 함께 이단우의 다리까지 베어 버리고 싶진 않았다.

    이미 아티팩트는 효과를 다해 연기와 열기가 온몸으로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차우원은 이단우의 고개를 자신의 어깨에 눌러 놓고 숨을 참았다. 검풍을 날리자 일순간 연기가 훅 날아가며 눈앞이 밝아졌다.

    ‘이게 되네.’

    이단우에게 별걸 다 배우고 있는데…….

    차우원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고 위로 향했다.

    1층 잡화점에 도착한 순간, 외부에서 무언가 거대한 마력 흐름이 감지됐다. 차우원은 자신의 헛소리를 듣고 팀원들이 따라왔음을 깨달았다.

    빗방울이 건물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부서진 유리 전면창으로 비가 쏟아졌다.

    “이단우 거기 있어? 빨리 나와! 민간인들은 전부 구해 냈어! 소서정이 불 끄고 있는데 이거 스킬이라 잘 안 꺼지거든?”

    강울림의 목소리가 건물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단우가 옳았다. 이 팀원들은 훌륭했다. 능력도 우수한 데다 미래의 영웅으로서 특출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팀원 한 명의 생사에 눈이 돌아가, 구해야 할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잊을 성품이 아니었다. 차우원과 달리.

    차우원은 검기를 날려 무너진 선반을 단번에 부쉈다. 망가진 유리문 앞까지 가로막고 있던 모든 것이 반으로 갈려 날아갔다. 차우원은 <블링크> 두 번으로 건물 밖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팀원들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서 넋이 나가 있는 민간인들을 확인했다.

    그들은 화재에 충격받은 것 같진 않았다. 어디 다친 곳도 없었고……. 그냥 약에 취해 있었다.

    이곳이 약국이 맞는 모양이라 차우원은 다시 머리가 냉정해졌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후.’

    “뭐야, 이단우 괜찮은 거 맞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쏴아아아…….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차우원은 이단우를 내려다봤다.

    “단우야, 병원부터 갈까.”

    “……병원 말고…….”

    그런데 이단우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차우원의 가슴팍을 꼭 쥐고서. 그가 젖은 눈으로 차우원을 올려다봤다.

    ‘아.’

    이건 좋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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