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이단우가 연락이 되면 다 해결되는 문제였으나, 단우는 휴대폰을 열어 보지도 않는 듯했다.
‘보고서도 무시하는 걸 수도 있고.’
단우는 알기 힘든 이유로 기분이 상해서 나갔다. 그 상태인 이단우가 연락을 받아 주리라 생각하는 건 너무 큰 기대였다.
‘……아예 연락이 안 갔을 수도 있고.’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전파 장애야 심상찮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차우원은 기다리는 게 옳았다.
옳다고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행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는 법도 종교도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차우원이 한참 고민에 잠겨 있는데 팀원들이 들어왔다.
소서정은 강울림과 합의하고 있었다.
“우리 모르는 척하자.”
“그래.”
“예로부터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어서 좋은 일 없는 법이라고 그랬어.”
“알았어.”
강울림이랑 웬일로 의견이 잘 맞는데 소서정은 한숨이 나왔다.
‘얘도 딱 보고 안 걸 차치원이 모를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게 소서정의 탓인가?
‘아냐. 난 최선을 다했어.’
어제는 차치원을 일단 내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를 올려 보내서 차우원과 이단우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차우원 집안이 뒤집어지든 어쩌든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소서정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좋은 아침!”
대낮이었으나, 소서정은 신경 쓰지 않고 활기차게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이단우가 날 봤나?’
전날 차우원 품에 안겨 있던 이단우는 정신이 없어 보였고 소서정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못 봤다면 이대로 시치미를 뗄 작정이었다.
그런데 드물게 표정이 어두운 차우원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 왔어?”
“어, 어, 차우원이었네.”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
강울림이 물었다.
‘왜 물어보니?’
소서정은 강울림이 눈치를 어디 팔아 버린 걸까 늘 궁금했다. 차우원처럼 매사 온화한 애가 죽상이라면, 그야 당연히 연애사에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남의 연애에 끼어들지 말자고 오 분 전에 약속한 건 어디다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소서정은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이단우랑 또 싸웠나? 차치원 그냥 보낸 거 눈치챘나? 얘네 집 벌써 난리 났나? 내 탓이라고 생각하나?’
소서정은 억울했다.
그런데 차우원이 말했다.
“아, 어제는 곤란했지. 동생 잘 보내 줘서 고마워.”
‘……!’
소서정은 강울림과 눈을 마주쳤다.
‘아는 척해도 되는 건가?’
차치원 처리 못 했다고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차우원이 원래 불합리한 일로 화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동생’이라고 말하는 어조가 별로 곤란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집안에 우환은 안 생긴 모양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소서정은 의문이었다.
‘그럼 왜 저러고 있지?’
역시 이단우랑 싸웠나?
궁금해하기만 하는 소서정과 달리 강울림이 물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단우가 안 들어와서.”
“어제 둘이 화해한 거 아니었어?”
“화해? 그렇게 보였어? 싸우지도 않았는데.”
“……?”
‘그게 싸운 게 아니면 뭔데?’
소서정은 생각했으나 슬그머니 긴장이 풀렸다. 강울림 말을 받아 주는 걸 보니 정말로 안전한 화제인 모양이다.
“그럼 뭐가 고민이야?”
흥미진진해져서 묻는 소서정에게 차우원은 평소와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단우가 안 들어오는데, 전날 나랑 있었던 일 때문 같아서.”
‘……전날 둘이 한 짓이 뭔데?!’
둘이 침실로 올라가지 않았나? 소서정은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눈치 없는 강울림이 계속 물었다.
“몇 시간째 안 들어오는데?”
차우원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세 시간.”
“세 시간 외출한 걸로 뭘 그래?”
“전화도 안 받고 메신저도 안 읽어서.”
“자나 보지.”
‘그만! 그만!’
소서정은 강울림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는 계속 굴러가서 차우원이 말했다.
“단우가 밖에서 자는 애는 아니지.”
“그건 그래.”
“세 시간은 역시 길지? 어디 있는지 알아봐도 괜찮을 것 같지.”
“어?”
그제야 강울림도 이상함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차우원은 여느 때와 같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으나, 반론을 허용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어, 좋지! 근데 걔 위치를 어떻게 알게? 나한테 <추적> 쓰라고 하면 난 안 할 거야.”
소서정은 재빨리 발을 뺐다. 이단우에게 들키면 그가 무슨 꼴을 당하겠는가?
“그런 짓은 안 하지. 단우가 싫어하잖아.”
“그럼? ……둘이 연인 위치 추적 앱이라도 깔았어?”
‘설마.’
이단우가 그런 닭살 돋는 짓을?
그렇다면 둘은 정말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소서정이 두근두근해서 묻는데 차우원이 답했다.
“아니. 단우랑 마력 패턴을 공유해서, 원하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 뒀거든.”
‘……!?’
소서정은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으나, 둘이 연인 구속 앱 따위보다 더 엄청난 짓을 서로에게 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팀원들에게 동의를 얻어 낸 차우원은 이단우의 위치를 <감지>했다. 시야에 들어온 물질세계가 반전되며 콘크리트 벽과 철골로 막힌 공간이 반투명하게 변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수천, 수만 개의 마력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제자리에 있거나 개미처럼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러나 차우원이 찾는 것은 아니었다. 차우원은 감지 범위를 넓혔다.
‘찾았다.’
차우원은 휴대폰을 열어 지도 앱에 좌표를 찍었다.
이단우는 D시 외곽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곳은 분명 센터나 길드가 위치한 곳은 아니었고, 이단우의 활동 범위도 아니었다. 사실 이단우의 활동 범위라 봐야 아지트 반경 300미터를 벗어날까 말까 했다.
‘별일인데.’
이단우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차우원이 아는 이단우의 마지막 사적 외출은 약을 사러 다녀온 것이어서, 그는 의심부터 들었다.
‘……아니지. 전날 그런 일이 있었는데 바로 달려가서 약을 구하진 않겠지.’
이단우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사실 머리는 아주 좋은 편이었는데 수단이 과격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튈 뿐이었다. 중독자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각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단우는 차우원을 팀원으로 두고 싶어 했다. 차우원에게 마력 패턴을 넘긴 뒤 잠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약을 하려면 내가 의심하지 못할 때 하겠지.’
예를 들어 사달이 난 바로 다음 날 낮이라든가…….
‘…….’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차우원은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 가?”
소서정이 물었다.
“단우 찾으러.”
차우원이 대답했다.
소서정은 그 말이 ‘이단우 잡으러’로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겉보기에 평범한 건물처럼 보였다. 안에서 수십 개의 마력 반응이 감지되지 않았다면 차우원도 그렇게 느꼈을 터였다.
수십 명의 각성자가 지키는 장소라면 중소형 길드의 경비 수준이다. 길드가 간판도 없이 사업할 리 없으니 이곳은 이상한 건물이었다.
그 안에 이단우가 들어 있었다.
‘단우를 어떻게 할까.’
추측이 들어맞았다는 게 확인되었으나 차우원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단우는 이상한 도덕심의 소유자여서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도둑질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성격인데 거짓말쯤이야 어렵지도 않을 터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려도 된다고 교육받은 모양인데, 차우원은 이단우가 나온 유치원이 궁금했다. 그곳이 만악의 근원이 아닌가 싶었다.
그가 서약서까지 쓴다고 해서 차우원은 믿었다. 그러지 않았대도 믿었겠지만.
이단우의 약속을 믿은 게 아니라 그가 자신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을 믿은 것이었다.
사실 다 변명이고 자신은 이단우의 말이라면 그냥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단우는 머리가 좋아서 그걸 잘도 이용했다.
그러나 제게는 이용당하리라는 걸 알면서 속아 주는 취미는 없었다.
‘단우도 그걸 알아야겠지.’
불법 시설물에 입장한 차우원은 주변을 빙 둘러봤다.
직원이 물었다.
“어서 오세요. 찾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사람을 찾는데요. 얼굴 하얗고 예쁜 애 혹시 여기 있나요?”
차분한 목소리로 묻자 직원이 대답했다.
“그런 분은 못 봤는데요.”
직원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범죄자는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대답한 차우원이 직원의 팔을 꺾었다. 카운터 아래 버튼을 누르려던 직원이 헛숨을 들이켰다.
‘비상 버튼인가.’
역시 멀쩡한 건물이 아니다.
차우원이 다시 물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디 있나요?”
이단우의 마력 반응은 지하에서 감지됐다.
“침입……!”
직원이 소리를 지르려고 해서 차우원은 그를 기절시켰다. 직원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하는 수 없지.’
차우원은 카운터 뒤를 손으로 두드렸다. 빈 소리가 나는 벽을 발견하고 <육예>를 뽑았다.
쾅!
검이 크기를 키우더니 벽을 베었다. 그 소리가 컸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왔다. 차우원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소음을 듣고 역으로 계단을 올라오던 몇 명의 각성자와 마주쳤다.
무리의 가장 뒤에 선 각성자는 무전기로 보고 중이었다.
“외부에서, 침입자입니다! 현재 1층을 돌파…….”
콰직!
차우원은 검기를 날려 무전기부터 파괴했다.
‘경비원이 시간을 끄는 중에 손님들을 대피시키는 건가.’
이곳은 체계적인 시설이다. 대비가 철저했다.
하기야 이단우가 뭐는 대충하겠는가?
센터에서 단속이 나와도 안 잡힐 만한 대처였으나 차우원은 이단우를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비키세요.”
차우원은 침착하게 경고했으나, 이내 매캐한 냄새를 맡고 멈춰 섰다.
‘불?’
이단우는 우수한 헌터였다. 헌터가 화재로 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지하에 있었고 아까부터 움직임이 없었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취할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단우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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