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그때 쾅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
무전기가 소음을 냈다. 비서가 받았다.
“무슨 일이야!”
-외부에서, 침입자입니다! 현재 1층을 돌파…… 으악!
“주인님!”
비서가 기희윤을 돌아봤다. 단우는 심장이 달음박질쳤다.
‘진짜 온다고.’
차우원이, 이곳으로…….
자신이 여기서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건가?
단우는 자신이 아예 기희윤에게 끌려간다면 차우원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했다. 하루나 이틀쯤 연락이 없다면, 차우원이 단우의 위치를 추적해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곳에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기희윤은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주인님!”
비서가 다시 재촉했다. 기희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심각하게 말했다.
“이럴 수가, 비상 상황이잖아? 우리 전투 상황은 대비하지 않았는데.”
“예, 주인님.”
“어쩔 수 없지. 비상조치를 발동할 수밖에!”
“예!”
비서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비상조치 발동! 주인님께서 허락하셨다!”
지직거리는 무전기에서 ‘예, 비상조치 발동!’ 하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비상조치?’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머리가 멍해지는데, 몸 상태가 영 아니라 뭐라 할 정신이 없었다. 단우는 세상이 빙 돌아서 거기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데만 해도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수상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익숙했다.
‘예전에 맡은 적 있다.’
비릿한 기름 냄새와…….
불 냄새.
“뭐야, 제대로 불붙었나? 확인 좀 해봐.”
기희윤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증폭>!”
주변에 있던 각성자 하나가 스킬을 사용했다. 이 건물에 벽이라곤 없는 것처럼 갑자기 온갖 소음이 밀려들었다. 단우는 넘어질 뻔했다.
“꺄아악!”
“뭐, 뭐야? 연기?”
“어어……. 출구가…….”
“허억, 헉…….”
먼 곳의 소리가 증폭돼서 바로 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상했다. 누구도 화재 원인을 모르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사람들은 불 지른 놈들이 아니다.’
기희윤의 숭배자들이 아니었다.
“너 뭐야…….”
단우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기희윤의 목을 쥐었다. 온 힘을 다해 쥐어짜는데도 기희윤은 말하고 있었다.
“오면서 못 봤구나, 여기 아직 영업 중이라 손님이 좀 있어!”
이 약국 손님이 누구겠는가?
‘민간인 중독자들.’
민간들이 가득 찬 건물에 불을 질렀다고…….
“너 돌았어?”
“내가 너희 팀 조사를 좀 해 봤거든, 다들 영웅 지망생답게 착하고 훌륭하더라! 죽어 가는 사람들 보면 안 구하고 못 배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시간 벌이 좀 될까?”
“당장 꺼.”
이 새끼가 미친놈인 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단우는 눈앞이 새하얘졌다. 기희윤의 얼굴을 테이블에 갈아 버리려 했으나 손아귀의 힘이 순간 쭉 빠졌다.
‘안 돼.’
그러나 몸이 통제되지 않았다. 정신력으로 붙잡고 있던 끈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고…….
바닥이 뒤집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머리가 테이블에 처박히고 세상이 쿵 울리더니, 단우는 천장을 보고 쓰러져 있었다. 방금 전과 위치가 뒤바뀐 기희윤이 위에서 단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우야, 그렇게 혀가 길면 내가 다 알잖아. 너 이제 비상수단 없구나?”
단우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겼네.”
기희윤이 웃었다.
다음 순간…….
챙!
단우는 그런 소리를 들은 듯했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머리로 듣는 소리였다.
눈부신 빛이 비산하며 부서져 나갔다. 벽과 문을 가득 채운 강화 스킬진이,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빛을 내다가 외부의 힘을 못 이겨 깨어져 나갔다.
그 파편이 빛이 되어 사방으로 터지고 있었다. 동시에 벽이 가로로 갈라졌다. 검으로 베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단면으로 잘린 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 차우원이 보였다. 그가 창고 안을 둘러봤다.
“그 손 놔.”
차우원이 말했다.
단우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귀가 먹먹했다. 어지러웠고……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긴장해.’
스스로에게 명령했으나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었다.
차우원이 왔다.
“으으응? 잠깐, 어떻게…….”
“그 손 놔.”
차우원이 다시 명령했다. 차분한 목소리인데도 위협적이어서, 기희윤 옆에 있던 놈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비켜!”
“습격자다!”
숭배자들이 차우원에게 달려들었다. 단우의 목을 위협하던 검이 차우원에게 향했고…….
그들이 전부 고꾸라지는 모습만 단우는 간신히 확인했다. 기희윤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잠깐, 잠깐, 잠깐! 난 전투형이 아닌데!”
“손 놔.”
“놨어!”
기희윤이 두 손을 들었다. 단우는 숨통이 트였다.
기침하는 단우를 차우원이 봤다. 눈앞이 하얬다 검었다 하는데도 단우는 그 시선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숨이 모자라고 계속 어지러운데, 그 시선이 단우를 계속 제자리에 붙잡아 뒀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내달리고…….
기희윤은 물러서고 있었다.
테이블 저쪽까지 물러난 그를 비서가 낚아챘다.
“단우야, 다음에 보자, 나는 지금 좀 바빠서…….”
헛소리를 지껄이며 기희윤이 사라지는데, 또 그놈 도망치는 시간을 벌겠다고 숭배자들이 달려들었다.
“주인님을 보호해!”
“이 괴물!”
“죽어라!”
마정석 총이 불을 뿜었다. 전원이 일제 사격을 하는 상황. 그놈들 손이 타서 나는 냄새 때문에 단우는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그놈들 손이 구워지고 있든 말든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일어나.’
단우는 스스로를 걷어차고 싶었다.
‘움직이라고.’
이 쓸모없는 몸뚱이, 차우원이 표적이 되어 있잖아…….
그러나 아찔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제 사격이 멈추더니 기희윤 숭배자들은 놀란 듯 자기 팔을 내려다봤다.
“어……?”
“왜 손이…….”
털썩……!
비명도 없이 사방이 조용했다.
숭배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단칼에 베였다. 스스로가 죽었다는 것도 알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베여서, 그 단면에서는 이제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육예를 회수한 차우원이 다가왔다. 단우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눈을 마주쳐, 단우가 눈을 깜빡이는 걸 확인했다.
차우원의 눈이 깊었다. 그늘진 눈이 단우에게 고정되어 있어서 어지러운데…….
단우에게 의식이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차우원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가 포션병을 꺼냈다.
“단우야, 입 벌려.”
그의 목소리가 너무 낮았다. 단우는 그가 이를 악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화를 내지.’
생각할 것도 없이, 이유는 뻔했다.
이단우가 번번이 개 같은 짓을 저질러서…….
입을 벌리는데 목이 말랐다. 눈이 뜨거웠다. 눈물샘이 부풀었다. 단우는 입술을 축이고 뭐라도 말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까부터 이명이 울렸다. 머리가 멍하고 헛구역질이 났다.
그런 단우의 입을 차우원이 축였다. 찬 액체가 입으로 들어와서 단우는 정신없이 마셨다.
손부터 팔꿈치까지가 간지럽다 싶더니 곧 화끈거려서 단우는 자신이 마시고 있는 게 힐링 포션이라는 걸 알았다.
망가진 몸에 새살이 돋고 이명이 한순간 사라졌다.
멍청해져 있던 몸에 감각이라는 게 돌아오려는지 온몸이 홧홧하고 쓰라린데…….
차우원의 혀가 단우를 달래서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위로는 잠시였다. 차우원은 금방 떨어졌다.
단우는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건물의 민간인들은 어떻게 됐지?
* * *
단우가 화나서 나간 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차우원은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 아닐 줄 알았다니까.’
이전에도 그는 타인의 마력 패턴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단우의 마력 패턴을 읽을 때도 그는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정말 좋은 생각일까.’
이걸 악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차우원은 헌터 중에서도 몹시 희귀한 감지 타입이었고, 이게 대단한 재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마력이 코앞을 스쳐 지나가도 알아채지 못한다는데, 차우원에게 그건 앞이 안 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각성과 동시에 마력을 볼 수 있었던 차우원은 그걸 감출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역시 어머니의 재능을 닮아서……’ 같은 소리나 듣게 되었으나, 뭐 그건 괜찮은 일이었다.
문제는 이 재능이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었다.
차우원이 처음으로 마력 패턴을 스캔한 상대는 아버지의 경호원이었다. 아버지가 각성자였다면 아버지를 스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니었고……. 차우원이 감지할 수 있는 마력 패턴을 갖지 못했다.
어쨌든 아버지 경호원의 마력 패턴을 알아 둔 덕에 차우원은 아버지를 피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원한다면 서로 집 안에 있는 상태에서도 한 달 내내 아버지와 대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러려면 아버지의 호출을 무시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스캔한 상대는 물론 동생이었는데, 차우원은 거기까지 한 뒤에 깨달았다.
‘나쁜 짓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가족들을 피하고 싶어서 가진 바 능력을 쓴다는 게 옳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가족들은 차우원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걸 모르지만, 알게 되면 대단히 상처받을 터였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차우원은 생각했고 그 뒤로는 되도록 가족들의 위치를 감지하려 들지 않았다.
타인의 마력 패턴을 감지하려면, 그 사람이 차우원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해야 했기 때문에 차우원은 가족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패턴 읽기를 시도해 본 적 없었다.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침범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실은 단순히 귀찮았다.
과하게 쓸모 있는 능력이라, 외부에 알려지면 바빠질 것 같지 않은가?
-헌터가 자신의 능력을 다 알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라는 말에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어 줬기 때문에, 차우원은 감지 타입이라는 정보만 외부에 공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우원은 현재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위치 확인해도 되나?’
단우가 자리를 비운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 시간 안에 연락이 안 된다고 위치 파악하는 게 스토킹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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