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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78화 (78/170)
  • 78.

    이단우는 과거에도 기희윤을 찾아갔는데 그때도 기희윤은 이단우를 죽이지 않았다. 기희윤의 숭배자들이 목숨을 내던지는 상황에서 지시조차 내리지 않았다.

    단우는 그가 얼굴도 보이지 않는 게 처음에는 목숨이 아까워서라고 생각했다. 기희윤의 숭배자에게 ‘네 주인과 협상하러 왔다’고 말하며 건물에 입장하긴 했으나, 단우는 이전에 기희윤을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 기희윤 소굴에 쳐들어가면서 무기를 내려놓을 마음도 없어서, 그는 누가 봐도 습격자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다는 걸 단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우는 분명히 말했다.

    -네 주인 데려오라고.

    ‘주인님의 적’이라고 소리치며 달려드는 놈들을 뒤로 물리고, 기희윤은 앞으로 나올 시간이 있었다. 부하들을 보호할 수 있었는데 나오지 않았다.

    남은 놈들만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단우는 기희윤이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이 광신도들이 제 주인이 도망갈 시간을 버는 게 아니면 이렇게 목숨을 내던질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기희윤은 건물 안에 있었다.

    그는 이단우가 지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단우가 잡기 쉬운 상태가 될 때까지 숭배자들을 하나씩 던지다가, 건물이 다 무너지고 이단우의 호흡이 완전히 흐트러졌을 때야 나타났다.

    이단우는 이 새끼가 짐승 몰이사냥 하듯 사람을 몰아 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이단우를 죽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기희윤의 숭배자 열댓 명씩이 덤벼 대는 걸로는 이단우를 죽일 수 없다.

    그렇다는 걸 기희윤이 모를 리 없었다. 첫 만남 때 이단우 손에 죽을 뻔한 놈이니까.

    ‘기운 빼놓으려고 뻘짓한 거다.’

    이단우 같은 걸 잡겠다고, 자기 부하들을 소모품처럼 써 댔다…….

    이 쓰레기는 자기 부하조차 아끼지 않는다.

    경멸감이 치밀어 오르는 동시에 단우는 깨달았다. 기희윤에게 이단우는 부하 수백 명보다 가치가 있다.

    ‘이 새끼한테 가장 값어치 있는 보물은 자기가 아직 못 가진 물건이다.’

    욕망의 본질이 그렇지 않은가?

    이단우는 기희윤을 알고 있었다.

    “그럼, 단우야. 어차피 나 없이 못 살겠잖아. 행복하게 해 줄게.”

    ‘듣지 마.’

    스스로에게 명령하며 단우는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몸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이 건물에 단우가 표식으로 두고 간 아티팩트는 이런 종류였다.

    <절삭의 반지>(D)(저주)

    이 반지는 잘못된 고리를 끊어 낼 것입니다.

    -효과: 스킬 <절삭> 발동

    -1회용

    -상태 이상: 저주

    -착용 해제 시 저주 발동

    이 아티팩트에서 중요한 지점은 ‘상태 이상: 저주’ 부분으로…….

    ‘이건 자해용 아티팩트다.’

    주인의 마력을 받아 스킬을 발동시키는 평범한 아티팩트가 아니다. 벗으면 스킬 <절삭>이 자동으로 주인에게 발동되는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건 다른 헌터들의 생각이었고, 단우의 생각은 달랐다.

    손가락에서 빼내기만 해도 스킬 발동이 가능하다니 유용하지 않은가?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그랬다.

    ‘마력 구속구를 차서 마력 한 줌 운용 못 할 때.’

    기희윤이 단우의 턱을 잡았다.

    ‘지금.’

    단우는 숨을 참고, 이를 악문 채 아티팩트를 손가락에서 빼냈다.

    콰직……!

    ‘……!’

    순간 악 소리 나는 통증과 함께 팔이 갈렸다. 동시에 마력 구속구도 떨어져 나갔다.

    두 팔이 자유로워지며, 뒤로 한껏 당겨 있던 근육이 느슨해졌다. 팔목을 감싼 수갑 형태의 구속구는 그대로였으나, 그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잘려서 움직임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발을 묶은 구속구 때문에 여전히 마력은 쓸 수 없었으나…….

    쾅!

    초근접전은 단우의 특기였다. 이만한 거리에서라면, 방심한 정신계 헌터를 잠시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기희윤의 팔을 꺾고 단우는 온몸으로 깔아뭉갰다.

    ‘이 새끼는 날 안 죽인다.’

    그렇다면 그 점을 활용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주인님!”

    기희윤의 비서가 비명을 질렀다. 밖에서 문이 열리고 안으로 기희윤의 숭배자들이 우르르 쳐들어왔다. 총구가 단우를 겨누고 칼날이 목에 닿았다.

    “이단우 헌터, 그 손 놓으십시오!”

    “아니지, 그 반대지. 손 치워야 할 건 너네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이단우 헌터. 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네 주인이나 걱정해.”

    ‘누굴 걱정하고 앉았냐.’

    마정석 총이 그렇게 명중률 높은 물건은 아니다.

    그들이 잘하면 이단우와 기희윤을 함께 날릴 수 있을 듯해서 단우는 순간 혹했다.

    ‘기희윤을 죽일 수 있지 않나?’

    여기서 기희윤을 죽여 버리면, 이 새끼가 다시는 남의 무덤 도굴하는 짓은 못 할 텐데…….

    그러나 단우의 허리춤에는 <육영>이 없었다. 이 건물로 들어오기 전에 인벤토리에 처박아 놨다. 기희윤 소굴로 쳐들어가며 헌터라는 티를 낼 수는 없었으니까.

    ‘안 돼. 못 죽여. 무기도 없잖아. 정신 차려.’

    단우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여기부터 빠져나가. 협상해.’

    이성이 돌아온 순간……. 기희윤이 다시 그를 건드렸다.

    “우와……. 단우야. 어떻게 빠져나왔어?”

    “넌 지금부터 입 다물어.”

    이놈 말에 홀리면 이제 답이 없었다. 정신계 스킬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고문이다. 이단우는 자해용으로 쓰기 위해 반지를 챙겨 뒀는데, 그게 깨져서 더는 <매혹>에 저항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스킬이야? 구속구 차고 스킬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단우는 참지 못하고 기희윤을 후려쳤다. 그런데 숨 막히는 소리는 주변에서만 들렸다.

    ‘이 새끼는 뭐가 좋다고 웃지?’

    깔려서 처맞는 걸 좋아하는 성적 취향이라도 있나?

    이단우는 기희윤의 취향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창백해진 비서가 말했다.

    “이단우 헌터, 그 손 놓으십시오.”

    “비켜.”

    “먼저 주인님을 놓아주십시오. 그럼 비키겠습니다.”

    “웃기지 말고. 이 자식들 검 치우고 벽이나 보고 있으라고 해. 내가 겁이 많아서 지금 손이 벌벌 떨리거든. 잘못 건들면 네 주인이 어떤 꼴이 될지 모르겠는데…….”

    ‘방금 아무렇지 않게 인질 친 놈이 뭐라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비서가 단우를 쳐다봤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해 주면 더 좋다.’

    이건 먼저 겁먹은 놈이 지는 게임이어서 단우는 기희윤을 일으켰다.

    “아야야, 넘어뜨리더니 이제 일으켜도 주는 거야?”

    “입 닫고 걸어. 문까지.”

    검을 들고 있는 놈들도 ‘이 자식 뭐라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단우를 쳐다봤다.

    기희윤 경호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자기 목을 뭐가 찌르고 있는지 모르는 건가?’

    물론 단우는 목을 찌르고 있는 게 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찔러 보든가.’

    기희윤은 탐나는 이단우를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기희윤 자신은, 이단우가 가진 ‘정체불명의 공격 수단’을 경계하느라 저항하지 않는 상황.

    그러나 이 대치가 오래갈 리 없었다. 시간을 끌어 봤자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단우는 빠져나가야 했다.

    “나갈 때까지 네가 길 안내하는 거야. 네 부하가 날 죽이는 게 빠를지 내가 네 목 따고 순직 헌터 되는 게 빠를지 시험해 보고 싶으면 하고…….”

    “휴, 단우는 거친 매력이 있네.”

    퍽!

    단우는 다시 기희윤을 후려쳤다. 동시에 깨달았다.

    ‘실수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단우의 몸은 이미 한계였다.

    자각하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자, 잠깐, 이단우 헌터! 그만! 주인님을 그만 고문하십시오!”

    그 와중에 비서가 눈물겨운 충정을 보여서 단우는 더 어지러웠다.

    그런데 그 사실을 들키면 망할 상황이었다. 단우는 되려 물었다.

    “그만 패면 넌 뭘 해 줄래.”

    “단우야…….”

    “넌 닥쳐. 너한테 안 물어봤어.”

    기희윤이 닥치는 사이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된 비서가 대답했다.

    “뭐든지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밖으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

    “아니, 됐고 너네 다 나가.”

    “예?”

    “보내 줄 때 가라고. 여기 <차우원 팀> 온다.”

    ‘거짓말이지만.’

    “예?”

    ‘여길 어떻게 알고?’

    비서의 얼굴에 불신이 스쳐 지나갔다.

    기희윤이 눈치 빠르게 말했다.

    “아, 단우가 선발대야? 네 소식 끊기면 다른 팀원들이 여기가 내 가게인 줄 알고 돌입하는 작전이었어? 멋지다. 이렇게 희생적이라 아무도 단우가 약쟁이인 줄 몰랐구나?”

    “아니.”

    “……?”

    단우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

    “내가 못 믿을 약쟁이 새끼라 차우원이 감시하고 있어서 그런다.”

    기희윤의 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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