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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76화 (76/170)
  • 76.

    스물여섯 살의 이단우는 기희윤의 거점을 습격했다.

    각성자도 아닌 사람들이 강화 아티팩트로 무장하고 단우에게 마정석 총을 갈겼다. 단우는 총알의 궤도를 피해 상대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목을 꿰뚫었다.

    건너편에서 수십 개의 스킬이 날아왔다. 자신의 편이 휘말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라 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상대편을 방패로 삼는 수법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기희윤은 미친놈이었다. 그 아래 있는 것들도 똑같아서, 기희윤의 숭배자들은 스킬 세례를 피할 생각도 없이 단우의 발을 잡고 늘어졌다.

    -죽어!

    단우가 기희윤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건물도 반파돼서 단우는 기희윤이 진작 도망쳤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기희윤은 떠나지 않았다. 이단우가 자신을 해칠 수 없을 정도로 지치는 꼴을 구경하다가 그 앞에 나타났다.

    -안녕, 단우야. 볼 때마다 화나 있네. 그렇게 열 내면서 ‘기희윤 나와’ 하면 내가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잖아.

    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단우는 기희윤의 목을 여기서 따 버리는 상상을 했으나 자신이 그러지 않을 걸 알았다.

    -그날 일이 그렇게 화났어?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 들킬 줄 몰랐어! 널 그렇게 화나게 만들 줄 알았으면 안 했을 텐데.

    -…….

    -그런데, 너도 너무하지 않아? ‘내가 성검의 주인이다’ 하고 먼저 발표했으면 나도 남의 무덤 파느라 쓸데없는 고생은 안 했을 거야.

    기희윤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기가 살아서 말했다.

    이 역겨운 새끼를 단우는 죽일 수 없었다. 그러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다.

    -거래를 하자.

    -무슨 거래?

    -성검 줄게.

    -……세상에, 너무 기쁘다. 근데 나 바보 취급 당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손도 못 댈 성검, 가지고만 있어서는 무슨 소용이야? 성검을 주려면 따라와야 하는 게 있잖아.

    기희윤이 웃으며 다가와서 단우는 오싹했다. 그의 흰 손을 보면 그가 저지른 짓이 떠올랐고 피가 식었다.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단우는 그의 두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는 걸 참았다. 그의 손이 팔을 타고 올라와 자신의 얼굴을 잡고, 그를 보도록 고정시키는 걸 참았다…….

    기희윤이 이단우를 충분히 탐내도록 했다. 이 욕심 많은 새끼가 자신의 욕망에 걸려 넘어질 때까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기희윤이 말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너뿐인데.

    -좋아.

    -……?

    -너 다 가져.

    ‘멍청한 새끼.’

    단우는 약속했다.

    -대신 넌 <최후의 던전> 공략에 따라오는 거야. <차우원 팀>을 수습하고 <종말>을 끝낼 때까지 협조해. 그런 다음엔…….

    이 망가진 몸뚱이를 가져서 뭐 어떻게 써먹겠다는 걸까? 아무리 탐나는 거라도 상한 물건엔 손대지 않는 법인데 기희윤은 상식이 없었다.

    기희윤의 손에 뺨을 내준 채 단우는 눈을 깜빡였다.

    -전부 네 마음대로 해.

    기희윤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말했다.

    -단우야, 너 정말 비싸다.

    -이름으로 부르지 마.

    * * *

    단우는 눈을 떴다.

    ‘멍청한 놈.’

    스스로를 욕하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눈앞에 잘 아는 놈이 보였다.

    귀신처럼 흰 얼굴에 콧등 위의 점. 신뢰라곤 조금도 안 가는 양아치 같은 인상의 기희윤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

    ‘뭐야.’

    단우는 자신이 의자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이블 위에는 무슨 만찬이 올려져 있었는데, 전부 배달 음식 같아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럴듯한 모양새였다. 그 앞에서 손님맞이하는 주인처럼 앉은 채 기희윤은 꾸벅꾸벅 졸다가 반짝 눈을 떴다. 혼자 힘으로는 아니었고 비서가 뒤에서 귀띔해서였다.

    “주인님. 이단우 헌터가 일어났습니다.”

    “아! 일어났어?”

    기희윤은 늘어져라 하품을 하더니 개처럼 고개를 털어 잠을 떨쳐 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와! 안녕, 이단우. 우리 초면이지! 난 네가 누군지 아는데, 넌 나 알아보겠어?”

    “누구세요?”

    “…….”

    ‘시간을 벌자.’

    단우는 모르는 척 대답하고 주변을 살폈다.

    창고로 보이는 방이었다. 방 안에 기희윤과 비서 외에 적은 없다.

    창고 자체는 크기가 컸으나 문은 하나뿐이었다. 기희윤과 비서가 문을 등지고 있어서 탈출로는 가로막힌 상황.

    뒤로 묶인 손을 꼼지락거려 보니 감각이 없었다. 두 다리까지 의자에 묶여 있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몸을 구속한 건, 대각성자 구속용으로 폭넓게 활용되는 마력 구속구였다. 이 유용한 물건은 정부에서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단우는 정작 범죄자가 쓰는 모습을 더 자주 보는 듯했다.

    ‘왜 이 새끼가 나타났지?’

    단우는 탈출에 도움 되지 않는 생각은 지우고 싶었으나 그 의문은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기희윤이 자기 소굴을 떠날 때는 그가 잘하는 범죄를 저지르러 갈 때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이 새끼는 도둑질할 때만 잘도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 약국에서 기희윤의 것이 아닌 거라곤 없지 않은가?

    이단우를 제외하면.

    ‘…….’

    과거 기희윤은 이단우를 원했는데, 그가 성검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어서였다.

    차우원이 성검의 주인일 때는 고개도 들이밀지 않다가, 그가 죽고서야 탐내는 꼴이 기희윤이 어떤 놈인지 알려 줬다.

    ‘겁쟁이 새끼, 만만해야 발을 뻗지.’

    이단우는 기희윤을 알았다. 기희윤은 희귀하고 특별한 거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이었다. 희귀하다는 게 꼭 가치 있다는 뜻은 아닌데, 기희윤은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이단우를 부단히 탐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이 새끼한테 왜 찍혔냐.’

    “잠깐, 진짜 몰라?”

    “누구신데요. 극성팬이시면 이러지 마시고 사인을 요청하세요. 지금이라도 놓아주시면 같이 사진도 찍어 드릴 테니까요. 신고도 안 할 테니까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누굴 스토커 취급하는 거야? 물론 내가 네 뒤를 좀 캐 보고, 네가 어디 다니는지 시간마다 보고받긴 했지만 스토커는 아니라고!”

    기희윤이 발끈했다.

    ‘변태 스토커 새끼.’

    단우는 소름이 돋았다. 기희윤이 범죄자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서는 아니었다.

    ‘진짜 작정하고 노렸잖아.’

    이단우의 표정을 기희윤도 봤다.

    “정말 억울하다! 난 네가 내 얼굴 이상하게 알리는 것도 참고, 나 따라다니면서 괴롭혀도 참았는데 어떻게 날 스토커 취급할 수 있어?”

    “저 당신 따라다닌 적 없는데요. 사람 착각하셨어요.”

    “아니, 제대로 봤어. 너 이단우 맞잖아. <차우원 팀>의 참모, 약하는 이단우. 약효 잘 듣더라? 힘만 좀 뺄 생각이었는데 기절해서 놀랐지 뭐야. 약 오래 참았어?”

    기희윤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어제도 존나 했다.’

    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역시 그거였나?

    지금도 온몸으로 약의 부작용과 그 여파를 겪어 내고 있는 중이라 기절했다는 게 놀랍지도 않았다. 결심이 설 뿐이었다. 다시 약을 하면 이단우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기희윤.”

    더 이상은 시간 끌기도 안 될 것 같아 단우는 포기하고 말했다.

    기희윤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응, 그래. 직접 보니 어때?”

    ‘사람 납치해 놓고 어떠냐고?’

    단우는 이걸 질문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좆같아.”

    “으하학!”

    기희윤이 기뻐했다. 그 모습을 비서가 따듯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어서 단우는 생각했다.

    ‘미친놈들.’

    갑자기 기희윤이 웃음을 뚝 그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그랬어. 하는 일마다 안 되지 뭐야? 가뜩이나 꿈자리도 사나워서 기분이 안 좋은데, 자꾸 어디서 내 걸 뺏겼다잖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조사 좀 해 봤지! 내 사랑들 방해한 게 너라며.”

    기희윤이 팔짱을 꼈다.

    “이렇게나 방해당하니 못 참겠던걸! 널 가져서 손해를 만회하는 수밖에 없잖아?”

    그가 삼류 악당처럼 계획과 의도를 다 까발려서 단우는 자기가 어디서 걸렸는지 깨달았다.

    ‘이 새끼 진짜 스토커 맞잖아…….’

    <차우원 팀>의 비선 실세가 이단우라는 걸 알려면 얼마나 뒤를 캐야 하겠는가?

    기희윤의 정보력이야 쓸데없이 세세해서 이단우는 그가 어떻게 자신의 흔적을 찾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기희윤이 스무 살짜리 이단우를 탐낸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인 다음……. 결정했다.

    ‘도발하자.’

    틈을 만들어야 한다.

    “네가 무슨 수로?”

    “냉정한 척하네, 이단우. 그럴 상태가 아닐 텐데? 누구라도 안아 줬으면 하잖아.”

    기희윤은 빙글거리며 눈으로 단우의 몸을 훑었다. 얼굴부터 아래로 시선이 내려가더니 한곳에서 고정됐다.

    ‘…….’

    단우는 이가 악물렸다.

    테이블이 가려서 보일 리가 없는데 저 새끼가 사람 희롱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을 입 열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이상한 소리를 할 것 같다.

    외면하던 수치심이 몸을 점령했다. 기희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우도 알고 있었다…….

    단순하게 몸에 열기가 도는 것도 아니고 오싹오싹했다. 전날 다량을 복용해서 면역이 생겼는지, 기희윤이 투약했다고 이성이 날아가진 않았다. 감각이 예민해지지도 않았고…….

    실은 완전히 무뎌져서 마력 구속구에 살이 아무리 긁혀도 뭔가가 팔 위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단우의 팔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다는 사실을 단우도 알았다. 핏방울이 맺혀서 손을 적시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감각이 무딘 게 마력 구속구 때문인가 싶었으나, 구속구에 그런 능력은 없었다.

    약이 잘못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단우는 차마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었다. 자기가 기희윤 앞에서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면 즉시 혀를 깨물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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