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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75화 (75/170)
  • 75.

    ‘이 자식 넘어가 주려는 거 아니었나?’

    단우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응.”

    “그래? 내가 뒤져 봐도 돼?”

    “어딜 뒤져 봐? 뭐 내가 인벤토리라도 다 털어서 보여 줘?”

    단우는 어리둥절했다. 그 모습을 본 차우원이 웃었다.

    “거기 말고. 약은 전투용이라 단우는 항상 몸에 소지하잖아. 습관 같던데. 주머니에 들어 있지 않나 찾아봐도 돼?”

    ‘뭘 어떻게 하겠다는…….’

    단우의 머릿속에 장면 하나가 재생됐다. 차우원이 단우를 붙잡고 몸을 더듬는 상상이었다.

    단우는 즉시 일어나서 바지부터 윗옷까지 모든 주머니를 까뒤집어 보여 주고 자신의 손으로 몸을 더듬었다. 걸리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시켜 준 뒤 그가 다시 앉았다.

    “자. 봤지.”

    “응……. 그래.”

    “애초에 방금 주워 입은 옷에 무슨 수로 약병을 넣어 놔? 벗긴 건 넌데 그때 이미 다 확인했을 거 아냐.”

    “아, 그 얘기 해도 되는 거야? 내가 벗기긴 했지. 근데 단우가 이미 거의 다 벗고 있지 않았나. 빼돌릴 틈은 충분했던 것 같은데.”

    차우원이 그러며 단우의 몸을 눈으로 훑어서 단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열이 훅 올랐다.

    “닥쳐! ……조용히 해. 진짜 약 없어. 네가 원하면 진짜로 인벤토리 비울게. 확인시켜 줄 테니까…….”

    -난 매번 약에 절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사람 밑에서 일할 생각은 없어.

    간밤이 떠올랐다. 단우의 표정이 흐려졌다.

    ‘안 돼.’

    그 꼴을 겪고 마력 회로 확장도 못 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억지로 마력도 운용했다.

    그렇게 과거 전성기 수준까지 마력 회로를 키워 뒀는데…….

    게다가 단우는 <육영>도 얻었다. 이제 마력을 보충할 아티팩트를 찾아서, 진짜 약은 필요 없는데.

    ‘차우원이 떠나면 어떡하지?’

    “맹세할 수도 있어.”

    단우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믿고 싶어져서 차우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단우야. 내가 단우 말이면 믿어야지.”

    한숨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단우는 이 새끼가 비꼬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지금 없는 건 사실이니까.’

    물론 앞으로도 단우 수중에 약은 없을 터였다. 분명했다. 아마도…….

    ……자신이 앞으로 약의 도움이 전혀 없이 <최후의 던전>을 깰 수 있을까?

    단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확신이 없다는 건 좋지 않았다. 이단우는 차우원과 달랐다. 별 계획 없이 정석대로만 대처해도 던전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확신이 없다는 건, 다시 단우가 팀원들을 전부 잃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불안에 사로잡힌 단우를 차우원이 끄집어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라는 건 있으니까, 이렇게 하자. 하나만 허락해 주면 내가 단우 말을 믿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그게 뭔데? 서약서라도 써?”

    “단우야. 네 목숨 하찮은 데 자꾸 걸지 말자.”

    차우원이 정색해서 단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억울했다.

    ‘네가 보증해 달라며…….’

    목숨만큼 확실한 담보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차우원은 누구의 목숨도 함부로 서약에 걸지 않을 만한 인물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야. 내가 비상시에 네 마력 패턴을 감지할 수 있게 허락해 주면 좋겠는데.”

    ‘……?’

    “아, 단우는 안 해 봤구나. 다른 사람의 마력 패턴을 읽어 두면 나중에 멀리 있어도 위치를 대강 알 수 있더라고.”

    단우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차우원이 설명했다. 그러나 단우가 눈을 깜빡이고 있던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이런 걸 뭘 허락을 받지?’

    지금도 차우원은 단우를 내내 감시하고 있었는데 새삼스러운 요청이었다.

    “그래.”

    “아, 괜찮아? 좀 더 싫어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비상시에 팀원들 확보할 수단 마련해 두면 나야 좋지. 다른 팀원들 마력 패턴도 익혀 놔.”

    차우원은 과거에도 감지 타입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팀원들을 관리했다. 단우는 그가 모든 팀원들의 위치를 항상 알고 있는 데 익숙해져서, 스무 살의 차우원이 그 짓을 안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음……. 다른 팀원들…….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좋지. 서정이가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잖아.”

    차우원이 선량하게 말했다. 단우는 무시했다.

    “걔야말로 가장 관리가 필요한 인간인데 무슨 프라이버시야. 넌 뭐 한가해? 비상시에만 위치 파악할 거잖아.”

    “하하! 아마 그렇겠지? 손 줄래?”

    ‘아마?’

    단우가 의문을 느끼는데 차우원이 손을 내밀었다. 단우는 그의 커다란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과거가 떠올랐다.

    ‘그땐 허락 같은 건 받지도 않았는데.’

    이단우가 막 두 번째 탈출에 실패하고 잡혀 돌아왔을 때, 차우원은 단우의 손을 낚아채고 단우의 안을 마력으로 쑤석였다.

    -그래, 단우야.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어디까지 하나 보자.

    -아! 아프다고, 이거 놔…….

    그 뒤로는 길드 출입구는 물론 외부 창문 근처에만 도착해도 어디선가 청연 길드원들이 나타나 단우를 힐끗거렸다.

    단우는 나중에야 차우원이 그때 한 짓이 무엇인지 알았다. 단우의 마력 패턴을 읽어 내 스스로에게 새기는 일로…….

    단우는 그때 생체 GPS를 차우원에게 넘긴 것과 다름없었다. 그 일로 단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차우원에게 덤벼들었으나, 여느 때와 같이 패하고 차우원 앞에 나뒹구는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안 아프게 할 수도 있었잖아.’

    단우는 이를 악물었다. 차우원의 마력이 손을 타고 체내로 들어와 단우의 안을 훑고 있었다. 간지럽고 따듯했다. 기분이 좋기까지 해서 단우는 미간이 절로 모였다.

    단우가 차우원을 한 대 패기 전에, 핏줄을 타고 한 바퀴 돈 마력은 밖으로 휙 빠져나갔다. 동시에 떨어지는 차우원의 손을, 단우가 움켜쥐었다.

    “너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마력 패턴 읽기? 평소에 주변을 감지할 때 하는 과정을 사람한테 한다는 느낌으로…….”

    ‘뭐라는 거야.’

    단우는 감지 타입이 아니라 차우원이 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당한 짓을 흉내 낼 수는 있어서 차우원의 안에 자신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본래 이런 짓을 하면 서로의 마력이 반발해 폭발이 일어나야 정상일 텐데, 차우원의 마력은 버티고 있질 않았다. 이단우에게 전부 길을 내줬다.

    단우는 차우원의 안을 한 바퀴 훑고 아주 이상한 기분이 되어 손을 떼어 냈다.

    ‘……이 자식 마력이 얼마나 되는 거지?’

    어디에도 풍족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남의 안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본 적이 처음이었다. 그렇다기보다,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을 터였다. 차우원은 이단우가 처음이 아니겠지만…….

    단우는 궁금해졌다. 차우원은 마력 부족을 겪어 봤을까? ……그게 뭔지나 알까?

    -걔? 너는 발끝도 못 따라가지.

    과거에도 스승님은 차우원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스승님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의문이 너무 커서 단우는 자신이 차우원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둘은 코가 맞붙을 듯한 거리에서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단우야, 너 잘한다.”

    차우원이 감탄해서 단우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뭐라는 거야…….’

    스무 살의 차우원은 칭찬이 후하고 순진해서 무서웠다. 단우는 그의 손을 내다 버렸다.

    “됐지. 공평하지?”

    “하하! 잘못한 건 넌데 나까지 마력 패턴을 공유당하는 게?”

    차우원이 웃었다. 단우는 그의 눈을 피했다.

    “싫으면 손을 뗐어야지.”

    “그러게. 내 잘못이네.”

    차우원이 너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이단우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그 순간 단우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차우원의 따듯하고 단단한 손이, 그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식어 버릴 것 같았다. 이단우는 약 없이 <최후의 던전>을 깨본 적이 없었다……. 어떤 던전도 약 없이는 클리어하지 못했다.

    “나 갈래.”

    이단우가 갑자기 일어나서 차우원은 잡을 수 없었다.

    단우는 끊임없이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가 눈을 깜빡이며 허공을 노려봐서 차우원은 또 뭐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나 싶었다.

    ‘분위기 좋지 않았나.’

    그게 나빴는지도 모른다.

    ‘전날 밤을 떠올리게 하지 말라는 거지.’

    차우원은 헛웃음이 나와서 턱을 괴었다. 그리고 얼굴을 문질렀다. 한숨이 나왔다.

    이단우가 그러고 나가 버려서 방에는 차우원 혼자 남았다.

    방금 전까지 손을 잡고 친밀하게 서로를 허락하던 일이 거짓말 같았다. 빈 손바닥이 어색해서 차우원은 손을 몇 번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훑었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정말로.

    그는 자신이 이런 짝사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 * *

    ‘확인만 하자.’

    단우는 길드에서 나와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공평하지.

    ‘뭐가?’

    차우원에게는 그렇게 말했으나, 이단우는 차우원의 마력 패턴 따위는 읽지 못했다. 반발하지 않는, 이단우에게 상처 주지 않는 마력 패턴은 기억할 수 없었다. 이단우는 타인의 마력을 고통으로 학습했으니까.

    차우원이 어디로 가든 영영 떠나 버리든, 단우는 알 길이 없었다.

    ‘확인만 하고 오는 거야.’

    단 하나의 대처 방안만 만들어 놓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단우는 늘려 놓은 마력 회로에 <육영>에서 뽑아낸 마력을 돌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으나, 혹시 모를 일이었다. 대비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뉴스에서는 연일 기희윤의 약국들이 폭발했다. 그중에는 단우가 위치를 전혀 모르던 약국도 있었다.

    ‘그러면, 내가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데 아직 지어지지 않은 약국은?’

    기희윤은 구획을 나눠 약국을 배치해 두었는데, 단우는 그 규칙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지을 약국의 위치는 알았다.

    기희윤이 7년 안에 그곳을 거점화하리라는 사실도 알았으나, 그게 언제인지는 몰랐다.

    해당 건물에 단우가 확인할 수 있는 표식만 해 두었을 뿐이다.

    이단우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쓸모없는 몸뚱이는 물론이고, 두개골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물질도 언제 미쳐서 이상해질지 모를 물건이었다.

    스무 살의 몸은 마력 회로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새것이었는데, 왜 정신은 새로 말끔해지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아니지, 리셋되면 안 되지…….’

    단우는 눈을 문지르고 건물을 쳐다봤다.

    기희윤의 미래의 약국이 될 건물은, 물론 반파된 꼴이 아니었다. 단우가 아직 무너뜨리지 않았으니까…….

    그곳은 지금 망한 잡화상처럼 보였다. 위층은 모텔 간판이 붙어 있었고, 1층에 몇 가지 상가가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단우는 이 건물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

    단우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영업 중이잖아.’

    외벽에 경계 스킬진이 작동 중이었다. 이런 짓을 일반 가게에서 할 리가 없었다. 올해 초 단우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도 스킬진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약국이 열렸다.

    단우는 잠시 판단했다.

    ‘표식부터 회수하자.’

    기희윤한테 걸리면 좆된다.

    단우는 평범한 손님처럼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안에서 젊은 점원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어서 오세요” 하고 손님을 맞았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니요. 좀 둘러보려는데요.”

    단우는 잡화점 손님처럼 대답하고 가게 구석으로 향했다. 선반 매대에 꽉 찬 물건들 틈에서 그가 ‘표식’으로 두고 간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걸 회수하는데, 뒤에서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그러시지 말고요. 저 찾으러 오셨잖아요.”

    단우는 그 목소리가 귀에 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아보자 기희윤이 웃고 있었다.

    “안녕, 단우야.”

    ‘이런 개…….’

    철컥!

    문 잠기는 소리와 함께 약이 살포됐다. 단우는 그대로 무릎이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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