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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73화 (73/170)
  • 73.

    “뭘 말하는 거야? 왔으면 앉아. 형 보러 찾아온 거야? 문이 열려 있었나. 어떻게 들어왔어?”

    소서정은 살갑게 물으며 계단에서 내려와 새 소파에 앉았다. 손목이 잡혀 순순히 따라오던 차치원이 낡은 소파에 앉으려 들어서 일부러 자기 옆으로 끌었다.

    ‘그건 이단우 침대고…….’

    “형이 열어 줬지. 형 따라왔으니까……. 그보다 방금 그 사람…….”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아, 이거 그 사람이 요구한 건데…….”

    차치원은 들고 있던 긴 상자를 내려놨다. ‘선물은 손으로 들고 가는 게 예의겠지.’라는 생각에 검을 넣은 목함을 사무소 앞에서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 검을 요구한 것도 방금 올라간 그 약쟁이였다.

    ‘왜 서정이 형이 말을 돌리지?’

    차치원은 혼란스러웠다.

    소서정은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이득에 민감하고 평판이 나빠질 일은 하지 않는다. 더러워질 곳에는 몸도 담그지 않는 성격이었고, 다른 사람을 깔보는 데가 있어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굉장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그런 부류였다. 그럼에도 외모도 집안도 능력도 좋아서 인기는 많았다. 모임에서나, 어디서나.

    소서정이 가장 무시하는 부류는 ‘더 위로 올라갈 가망성이 없는’ 인간들로…….

    ‘약쟁이는 거기 포함되지 않나?’

    이단우는 소서정이 가장 가까이 두기 싫어할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때 봤던 차우원 동생이잖아?”

    “아, 네, 안녕하세요. 차치원입니다.”

    거구에 과묵해 보이는 강울림이 다가와서 차치원은 인사했다.

    “’그 사람’이 누구야? 그거 전해 주러 왔다고?”

    “예. 제가 스승님 대신……. 그, 이단우 헌터에게…….”

    “그래? 우리가 전해 줄게.”

    강울림이 아무렇지 않게 목함을 가져가려 들어서 차치원은 놀랐다.

    “제가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왜?”

    “제가…… 스승님 대신 감사 인사도 정식으로 드리고, 물건도 직접 전달드리려고 했으니까요?”

    “네가 그랬다고 이단우한테 말해 줄게. 걔 요즘 신경 날카로워서 너 기다리면 좋은 꼴 못 볼걸.”

    ‘이 사람은 뭐야?’

    차치원은 강울림이 무례한 건지 자신이 무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리더의 동생을 보통 팀원들이 이렇게 대우하나?

    그게 아니더라도, 손님을 독립팀에서 이렇게 대우하는 게 말이 되나?

    독립팀이라면 의뢰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기를 쓰고 영업하는 게 평범한 일이었다. 그러나 강울림은 차치원을 내쫓고 싶다는 태도였고, 소서정도 동조하며 “그게 좋겠다. 차우원도 바쁜 것 같은데. 팀 구경은 다음에 시켜 줄게.” 같은 말이나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 알고 있어…….’

    차치원은 침을 삼켰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울림은 모르겠지만, 그는 강울림을 알고 있었다. 강울림이 올해 초 크게 터진 <불법 도박장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도, 형과 이단우가 그 사건 해결에 힘을 보탠 게 인연이 되어 이 팀에 합류했다는 사실도…….

    이후 강울림이 여러 봉사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강울림은 영웅의 팀원에게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 사회를 위한 봉사 정신, 오랜 감금과 학대에도 꺾이지 않은 바른 마음…….

    그는 <차우원 팀>의 탱커로서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서정이야 말할 것도 없이 우수한 헌터였고.

    아버지와 차치원이 <차우원 팀>의 멤버로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이단우가 유일했다.

    그런 이단우도 이전까지 검증이 안 되었다 뿐이지, 창의적이고 영리한 팀원이라는 사실이 곧 입증됐다…….

    ‘검증이 안 될 이유가 있었어.’

    중독자가 어떻게 단체 생활을 하겠는가?

    센터나 길드나 헌터 예비생들의 방종을 방관할 곳이 아니었다. 이단우처럼 재능이 출중하다면 더욱 그랬다.

    “지금 팀이 많이 바쁜가 봐.”

    차치원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소서정이 가슴을 펴고 흐뭇하게 답했다.

    “좀 그렇긴 해. 우리 팀이 워낙 잘나가야지.”

    "그럼 인사만 하고 나갈게. 이단우 헌터에게는 신세 진 것도 있고, 형은 자주 못 봐서…….”

    “인사. 참 좋은 일이지. 그것도 전해 줄게! 차우원 얘는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왜 동생이 형도 못 보게 만들고 난리야?”

    소서정이 친근하게 굴며 차치원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밖으로 이끌었다. 그 힘에 끌려갈 차치원이 아니었으나, 그는 순순히 따라 일어났다.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강울림과, 평소보다 너무 친절해서 어색한 소서정을 보고 그는 확신했다.

    ‘팀원들은 전부 알고 있다.’

    이단우가 약쟁이라는 것도, 그리고…….

    -참아, 단우야.

    ……어쩌면 형과 이단우의 관계도.

    형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형은 익숙한 듯 이단우를 달래며 안고 올라갔다. 차치원이 입구에 서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친구들끼리 만든 독립팀 활동에 열중해서 집에 안 돌아오는 게 아니야.’

    차치원은 숨을 삼켰다.

    “어, 그러면 인사 전해 주고…….”

    “그래! 잘 가.”

    소서정이 차치원을 쫓아냈다. 그 뒤에서 강울림이 정문을 닫아 버렸다.

    쾅!

    닫힌 문 앞에 서서 차치원은 미친 듯 뛰는 심장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버지께 말해야 하나?’

    형과 이단우는 평범한 관계가 아니다.

    이 팀은 뭔가 잘못되어 있다.

    소서정도, 강울림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언가 망가져 있는 부분을 방치하고 썩어 들어가도록 놔두면서, 외부에 알려지는 걸 차단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명백했다.

    ‘이단우.’

    길드로 돌아가는 길에 차치원은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 껐다. 심란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아버지께 알리면, 형은 가족들에게 돌아올까?

    근묵자흑이니 맹모삼천지교니,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따위의,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구절이 머리를 빙글빙글 맴돌고 손에는 식은땀이 찼다.

    ‘어쩌지?’

    형이 이렇게 삐뚤어질 줄은 몰랐다. 형이 물들어 버릴 줄은……. 그것도 저런, 가장 질 낮은 부류의 망나니에게.

    ‘어떻게 하지?’

    그 순간 거짓말처럼 휴대폰이 떨렸다. 차치원은 펄쩍 뛰었다. 전화를 걸어 온 상대를 확인한 뒤에는 눈을 의심했다.

    “형?”

    [치원아. 아버지께는 말하지 말자.]

    전화를 받자마자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차분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차치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 뭘…….”

    [봤잖아.]

    말을 돌리지 말라는 듯해서 차치원은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 나는…….”

    [그렇게 하자.]

    반론을 허용치 않는 어투로 형이 말했다. 형이 그러면 차치원은 망설임 없이 형의 말을 들었다. 형의 선택이 언제나 옳을 테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다. 차치원의 심장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뛰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 * *

    이단우는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죽어 버려.’

    자신의 머리를 누군가 쓰다듬고 있다는 걸 깨달은 뒤에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차우원은 이단우의 머리를 자주 만졌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잠에서 깨면 차우원이 그러고 있어서 이단우는 일어나지 않은 척하느라 고생이었다.

    이 손길이 그리웠다. 차우원이 자신을 만지지 않은 지 오래됐다. 눈꺼풀 안쪽에 눈물이 고여서 단우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아.’

    머리를 다 감싸던 커다란 손이 떨어졌다. 자신을 쓸어 주던 감각이 사라지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단우는 눈을 떴다.

    “일어났어?”

    “어…….”

    단우는 차우원의 눈을 피하며 옷을 꿰어 입었다.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죽어 버려.’

    거울에 머리라도 찧고 싶었으나 밖에는 차우원이 있었다.

    이단우는 그가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다. 아마 별생각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이단우는 다음 날 차우원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에서 깬 뒤 차우원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할 수 없어서 계속 베개에 얼굴을 틀어박고 있었는데, 차우원은 ‘일어났으면 밥 먹자.’ 하고 이단우를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래서 이단우는 차우원에게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없던 일처럼 굴면.

    이번에도 차우원은 평범하게 인사했다. 어색하게 구는 사람은 단우뿐이었다.

    갈 곳을 모르고 헤매던 단우의 눈에 거울에 비친 쓰레기통이 들어왔다. 그 안에 뭔가 있어서 확인해 보니 단우가 늘 소지하던 약병이었다.

    병은 산산조각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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